토리엘은 눈 앞의 광경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P, 아니 프리스크는 괜찮다고 말해주었지만... 사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가 잠들어린 현실을 믿기란 토리엘로서는 힘들 일이었다. 폐허 안의 괴물 모두를 자신의 집에 데리고 온 것은 토리엘 나름의 적응 방식이었다. 토리엘은 폐허 밖의 괴물들도 걱정이 되었다. 토리엘은 기분을 전환시키고자 뼈와 관련된 농담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예전처럼 웃기지 않았다. 그 남자도 분명 잠들어 있겠지.
생각에 잠겨 있다 토리엘은 퍼뜩 시계를 보았다. 슬슬 프리스크가 올 시간이였기에 토리엘은 파이를 굽기 위해 급히 부엌으로 향했다. 프리스크와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파이를 굽는 것은 토리엘의 일과가 되었다. 토리엘은 버터스카치를 좋아할 거 같다는 자신의 말에 지었던 프리스크의 애매한 표정이 떠올랐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보였지. 언젠가 자신에게 말해줄 것이란 걸 믿으며 토리엘은 파이를 구웠다. 혼자 지내는게 편하다고 했던 프리스크가 자신의 제안에 응해준 것만으로 충분히 고마웠다.
프리스크는 약속한 시간보다 좀 늦게 도착하였다. 기다렸냐며 미안해하는 프리스크에게 토리엘은 괜찮으니 완전히 식기전에 파이를 먹으라고 말해주었다. 프리스크는 쭈볏 거리며 식탁에 앉아 파이를 먹기 시작했다. 매번 어색해하면서도 자신과 한 약속을 지켜주는 프리스크가 기특했다. 토리엘은 이 아이와 함께라면 지금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가끔씩 프리스크와 얘기하다가 느끼는 이질감이 문제였지만. 자신은 대체 누구를 떠올리는 것일까.
토리엘은 앞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프리스크가 물끄러미 자신을 보고 있었다. 파이가 더 먹고싶나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데 입맛이 없냐며 프리스크가 물어왔다. 토리엘은 그때서야 자신이 접시 위의 파이를 조금도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토리엘이 파이에 손을 대자 프리스크는 어딘가 아픈 줄 알았다며 수줍게 웃었다. 그래, 감정 표현이 서툴긴해도 이렇게 착한 아인데. 토리엘은 자신이 떠올리는 이가 누구였든 더 이상 신경쓰지 않고 눈 앞의 프리스크에게 집중하기로 다짐했다.
RESTTALE
EPISODE 3
TORIEL
식
사를 마치고 토리엘과 책을 꺼내 들었다. 처음 깨어났을 땐 사라졌던 책들이 조금씩 채워지더니 이제는 모두 돌아왔다. 진지한 얼굴로
유령의 짓이라고 말하던 프리스크는 무척이나 귀여웠지. 토리엘이 책 한권을 골라 쇼파에 앉자 프리스크는 기다렸다는 듯 난로가 앞에
자리를 잡았다. 토리엘은 헛기침을 두어번 한 뒤 책을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프리스크는 토리엘의 말에 귀기울였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시계의 시침이 9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가버릴 줄 알았던 프리스크가 어쩐 일로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한참 후에 정말 작은 목소리로 토리엘에게 자고 가도 되냐고 물어왔다. 토리엘은 흔쾌히 언제든지 그래도 좋다고 대답해주었다.
프
리스크를 재우고 토리엘은 수리된 방에 들어섰다. 잠들어 있는 괴물들. 언제나처럼 평온하게 보였지만 지나갈 때마다 들르지 않으면
토리엘은 안심이 되질 않았다. 모두가 잘 있는 것을 확인한 뒤 토리엘은 방에 들려 양동이를 챙긴 뒤 달팽치 채집을 겸한 밤 산책에
나섰다. 폐허는 오늘따라 더 고요하게 느껴졌다. 황금 꽃 밭에서 들러 잎 위를 기어다니고 있는 달팽이를 조심스럽게 채집하던 중
플라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노란 꽃의 모습을 한 괴물이 생각이 났다.
플라위는 우연히 지나가는 길이었다며 막 일어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말해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프리스크를 괴롭혔던 괴물이라는 이유로 못된 장난으로 치부했었다. 그때, 그 괴물이 지었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표정을 토리엘은 알고 있었다. 크게 상처 받았을 때 아닌 척하며 짓곤 하던, 아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난. 토리엘은 플라위에게 사과해야 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물론 자신과 만나길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일단 프리스크에게 만남을 주선해달라 부탁하기로 마음 먹었다.
* 밤 중에 참 부지런하네.
모두가 잠들었는 데 말이야.
달팽이 채집에 열중하고 하고 있던 토리엘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화염 마법이 비추는 땅 위로 플라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플라위는 미소 짓고 있었지만 토리엘은 어쩐지 플라위가 긴장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토리엘은 플라위의 계속되는 비아냥을 잠자코 듣다가 말이 끊기는 타이밍에 맞춰 미안하다고 말하였다. 플라위는 당황한 듯 말을 잇질 못하다가 다시 웃어보였다.
* 아~ 저번 일 떄문에 그러는거야?
하긴 그 날 많은 일들이 있었지, 안그래?
괜찮아! 난 그런거 조금도 신경쓰지 않아.
그리고, 나도 당신한테 한 거짓말이 있으니까.
플라위는 토리엘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황금 꽃 밭 중앙 쯤에서 우뚝 섰다. 그리고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더니 결심했다는 듯 토리엘을 향해서 돌아섰다. 지금까지 보아온 표정 중에서 가장 환한 얼굴을 한 채로 플라위는 입을 열었다. 시선은 아까부터 계속 토리엘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토리엘은 플라위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자신을 여전히 어려워 하고 있다는 것에 미안함을 느꼈다.
* 내가 저번에 우연히 지나가고 있는 길이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아니야, 당신을 깨우건 바로 나였어.
어쩌다 깨운거긴 한데, 뭐, 그건 중요하지 않고.
...고마워 하지 않아도 돼! 진짜 우연이었으니까!!
토리엘이 괴물들을 깨울 수 있다는 가능성에 반색하며 자신에게 고마워하자 플라위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토리엘은 어쩔줄을 몰라하며 플라위의 기분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씩씩 거리며 목소리를 높이던 플라위는 자신의 잎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동안 가만히 있더니 다시 빙긋 웃는 얼굴을 내보이며 말을 이었다.
* 그냥 본론만 말할게.
그냥 깨우고 싶은 괴물을 만지면 돼, 쉽지?
문제는 한 괴물당 다른 괴물을 깨울 수 있는 건 한번 뿐인 거 같아.
그리고 깨어날 수 있는 괴물의 수 역시 한정되어 있는 모양이야.
이번에 깨우는 괴물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
그러니 누구를 깨울지 신중히 생각해봐!
뭐, 결국 남는건 가족 아니겠어?
말을 마친 플라위는 땅 밑으로 쑥 하고 꺼지는가 싶더니 사라졌다.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토리엘은 우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돌아가는 길에 플라위가 했던 말들을 되짚으며 토리엘은 깨울 괴물을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에 크게 낙담하였다. 어떻게 자신이 결정 할 수 있겠는 가. 이번이 마지막 일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토리엘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양동이를 제자리 둔 뒤 침대에 누워 뒤척이다가 겨우 잠에 들었다.
잠을 설쳤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감히 누군가의 운명을 결정해야 된다는 마음의 짐 때문이었는 지 토리엘은 아침 밥을 홀랑 태워버렸다. 복합적인 감정에 크게 우울해진 토리엘은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런 토리엘의 옆에 서서 프리스크가 등을 조심스럽데 토닥거려주었다. 토리엘은 어린 아이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싶어 프리스크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한 뒤 자신의 방에 들어왔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책상 의자에 앉았는 데 펼쳐져 있는
자신의 일기장이 보였다. 왜 해골에게 친구가 필요할까? 뼈에 사무치게 외로워서... 토리엘은 쓰게 웃었다. 이 농담을 그 남자가
들었다면 어떤 반응이었을까. 토리엘은 순간 든 이기적인 생각에 자책을 하며 일기장을 덮는 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토리엘이 문을 여자 프리스크가 열린 문 사이로 괜찮냐며 말을 걸어왔다. 토리엘은 괜찮다고, 단지 어려운 결정을 해야해서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프리스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토리엘을 이끌고 거실로 가 쇼파에 앉혔다. 그러고나서 책 한권을 들고와 토리엘에게 읽어주었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자신만의 방향을 따른다. 어린이 명언집에 나온 글귀 중 하나였다. 프리스크는 책을 덮고서 내려놓더니 토리엘에게 어떤 결정이든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니까 괜찮을 거라고 말하였다. 토리엘은 자신을 힘내게 하려는 진심에 크게 감동하여 프리스크를 꼬옥 끌어안았다. 프리스크는 허둥대다가 어색하게 토리엘의 등위에 손을 얹었다.
토리엘은 프리스크에게 아침밥을 마져 해준 뒤 지하의 문 앞에 섰다. 오랫동안 폐허에 있었던 탓인지 토리엘은 문을 여는 것이 이토록 떨릴 줄 몰랐다. 심호흡을 몇차례나 한 뒤 토리엘은 천천히 문을 열고 나섰다. 새하얗게 눈이 쌓여 있는 세상. 토리엘은 짧게 탄성을 내지른 뒤 어린 아이처럼 새하얀 눈 위에 자신의 발자국 내었다. 그러다 자신이 무슨 이유로 밖에 나왔는 지 되새기고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러고보니 그 남자는 어디에 있을까? 토리엘은 자신이 그 남자의 이름도, 집도 무엇도 모른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다.
토리엘은 허탈하게 웃다가 수풀 옆에 눈사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남자가 만든 눈사람일까? 토리엘은 눈사람에게 다가가 찬찬히 살펴보았다. 프리스크만한 크기의 그 눈사람은 눈이 덧쌓여서 그런지 어딘가 모르게 어정쩡했다. 토리엘은 자신이 대신해서 눈사람을 완성시켜주기로 하고 모양을 잡기 위해 머리 부분을 다듬었다. 아니, 그럴려고 했다. 토리엘이 손을 대자 눈이 후두둑 하고 떨어지면서 왠 해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멍하니 그 해골을 바라보다가 토리엘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해골 위에 손을 대었다. 깨어나요, 뼈그맨씨.
* 샌즈가 깨어났다.
2화 추천 네분 감사
오 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