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비가 내린다. 얼마 전 장마 소식이 있었을 때부터 나는 오래도록 이 비를 기다렸다. 올 듯 하다가도 내리지 않아 그토록 날 목마르게 하던 바로 그 비다. 비 내리는 소리가 내 발치를 시원하게 한다. 습기와 물소리가 머릿속을 편안하게 한다. 나는 기분좋게 잠에 빠졌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일까.
그래, 비가 오니 물로 할까. 어찌됐건 사람에게는 물이 필요했다. 밥보다도 말이다. 생존에 직결되는 이것은 하루에도 일정량 이상 꾸준히 마셔주지 않으면 눈에 띄게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내 삶은 살아오며 물보다 귀하게 여긴 것이 많다. 게임이라던지, 책이라던지 사람 같은 것들. 언제나 마음 속을 메우고 날 살아가게 하는 그 모든 존재들은 때때로 내 몸에서 수분을 앗아갔다. 때때로 아주 많이.
인간이 물보다 귀한가?
친구라 불리는 존재들은 명백하게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얄팍한 인간관계는 오히려 삶을 손상시키고 고통스럽게 한다. 삶에 필요한 것을 망가뜨리고 빼앗아가는 악질적 악충인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정신은 동족과의 교감 또한 생존요소에 포함시켜 두었다. 맙소사! 귀중한 자원의 경쟁자이며 시간과 체력을 앗아가는 이들을 필요로 하라니. 도대체 누가 생명체의 DNA에 이런 끔찍한 특성들을 우겨넣었단 말인가.
무슨 이야기인고 하면 사랑하는 것들은 언제나 나를 상처입힌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건 친구건 연인이건 말이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나는 때로 그들의 존재 자체가 몹시 버겁게 느껴졌다.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옥죄는 이것은 때때로 내가 후회할 선택지를 늘어놓고 선택을 강요했다. 끔찍한 욕망! 언젠가 그것들을 정말 선택하게 될 만큼 약해진다면 차라리 도망을 가라고 미래의 나에게 미리 충고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 생존과는 하등 관련도 없는 욕망은 종종 쓸데없이 강해져 많은 걸 망친다. 내 욕망 기관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탁상 위에 있던 물을 집어 벌컥벌컥 마시고야 약간 진정이 된 것을 나는 몹시 우습게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물을 마시고서야 마음이 안정된다? 그렇다면 이 마음의 불안정은 저 내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액체로도 온전히 때우지 못할 만큼 커다란 문제라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수단들을 안정을 위한 도구로 써야 할 만큼. 무엇이 인간을 이따위로 디자인했을까. 동족에 대한 열망과 애정 같은 쓸데없는 것들의 우선순위는 그냥 제일 밑바닥에 처박아 적당히 살아가게 하면 됐을 것을. 왜 굳이 힘들고 귀찮게 타인에게 이토록 가볍게 마음을, 자신을 내어주고 소비해야 하는 건가.
말인즉슨 내가 그들을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몰려오는 인간애가 필요 이상이 되기 전에 가장 좋은 선택지는 수면이다. 간단한 감정 리셋 버튼 같은 것이니 무언가가 필요 이상으로 넘치기 시작했을때 활용하는 것을 적극 권유한다. 뭐 요즘 세상에 필요한 순간 필요한 만큼 잠을 자게 해 주는 공간은 그렇게 흔치 않다는 게 또 문제지만. 이것 또한 생존의 아이러니 중 하나지. 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파는 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봐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창 밖에서 빗소리가 들려온다. 물이 들이쳐 발치를 적시지 않게 약간만 열어둔 창문 틈으로 비에 젖은 흙 냄새가 밀려와 방을 채우고 있었다. 딱 기분 좋게 공기가 묵직하다.
약간 습한 이불이 몸을 무겁게 짓누르고 시원한 바람이 몸을 식힌다. 이보다 잠이 더 잘 올수도 있을까? 나는 좋아하는 노래를 작게 틀어놓는다. 비에 어울리는 애잔한 노랫소리가 방 안에 퍼진다. 좋아. 언젠가 죽을 때 이 상태로 죽었으면 싶을 정도로 완벽한 상태다.
잘 자.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일까.
그래, 비가 오니 물로 할까. 어찌됐건 사람에게는 물이 필요했다. 밥보다도 말이다. 생존에 직결되는 이것은 하루에도 일정량 이상 꾸준히 마셔주지 않으면 눈에 띄게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내 삶은 살아오며 물보다 귀하게 여긴 것이 많다. 게임이라던지, 책이라던지 사람 같은 것들. 언제나 마음 속을 메우고 날 살아가게 하는 그 모든 존재들은 때때로 내 몸에서 수분을 앗아갔다. 때때로 아주 많이.
인간이 물보다 귀한가?
친구라 불리는 존재들은 명백하게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얄팍한 인간관계는 오히려 삶을 손상시키고 고통스럽게 한다. 삶에 필요한 것을 망가뜨리고 빼앗아가는 악질적 악충인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정신은 동족과의 교감 또한 생존요소에 포함시켜 두었다. 맙소사! 귀중한 자원의 경쟁자이며 시간과 체력을 앗아가는 이들을 필요로 하라니. 도대체 누가 생명체의 DNA에 이런 끔찍한 특성들을 우겨넣었단 말인가.
무슨 이야기인고 하면 사랑하는 것들은 언제나 나를 상처입힌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건 친구건 연인이건 말이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나는 때로 그들의 존재 자체가 몹시 버겁게 느껴졌다.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옥죄는 이것은 때때로 내가 후회할 선택지를 늘어놓고 선택을 강요했다. 끔찍한 욕망! 언젠가 그것들을 정말 선택하게 될 만큼 약해진다면 차라리 도망을 가라고 미래의 나에게 미리 충고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 생존과는 하등 관련도 없는 욕망은 종종 쓸데없이 강해져 많은 걸 망친다. 내 욕망 기관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탁상 위에 있던 물을 집어 벌컥벌컥 마시고야 약간 진정이 된 것을 나는 몹시 우습게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물을 마시고서야 마음이 안정된다? 그렇다면 이 마음의 불안정은 저 내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액체로도 온전히 때우지 못할 만큼 커다란 문제라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수단들을 안정을 위한 도구로 써야 할 만큼. 무엇이 인간을 이따위로 디자인했을까. 동족에 대한 열망과 애정 같은 쓸데없는 것들의 우선순위는 그냥 제일 밑바닥에 처박아 적당히 살아가게 하면 됐을 것을. 왜 굳이 힘들고 귀찮게 타인에게 이토록 가볍게 마음을, 자신을 내어주고 소비해야 하는 건가.
말인즉슨 내가 그들을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몰려오는 인간애가 필요 이상이 되기 전에 가장 좋은 선택지는 수면이다. 간단한 감정 리셋 버튼 같은 것이니 무언가가 필요 이상으로 넘치기 시작했을때 활용하는 것을 적극 권유한다. 뭐 요즘 세상에 필요한 순간 필요한 만큼 잠을 자게 해 주는 공간은 그렇게 흔치 않다는 게 또 문제지만. 이것 또한 생존의 아이러니 중 하나지. 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파는 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봐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창 밖에서 빗소리가 들려온다. 물이 들이쳐 발치를 적시지 않게 약간만 열어둔 창문 틈으로 비에 젖은 흙 냄새가 밀려와 방을 채우고 있었다. 딱 기분 좋게 공기가 묵직하다.
약간 습한 이불이 몸을 무겁게 짓누르고 시원한 바람이 몸을 식힌다. 이보다 잠이 더 잘 올수도 있을까? 나는 좋아하는 노래를 작게 틀어놓는다. 비에 어울리는 애잔한 노랫소리가 방 안에 퍼진다. 좋아. 언젠가 죽을 때 이 상태로 죽었으면 싶을 정도로 완벽한 상태다.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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