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3편  4편  5편  6편





잠시만....”

결말이 정해진 사내가 남자를 부른다. 부지런히, 딜러에게 돌아갈 몫을 제외한 모든 금화를 넘겨받은 가방에 넣으며 어느새 테이블 가까이 달라붙어오는 덜 취한 이들을 어떻게 따돌릴지. 고민하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 대답하듯, 사내의 쪽을 바라보자 아직 허망한 웃음기를 지우지 못한 목소리가.

이것도 가져가시죠.”

품 안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하얀 봉투를 남자에게 권하고, 남자는 그것을 받아든다. 손가락에 누인 순간 짤각거리는 소리와 단단한 종이의 감촉이. 봉투 안에서 새어나와, 뼈다귀의 두개골 속을 의문 부호로 채운다.

이건?”

덤입니다.. 나가서 살펴보시죠.”

... 이젠 굳이 미쳤다는 말을 더할 것도 없겠군.”

괜찮습니다. 제겐 더 이상 쓸모가 없으니..”

말을 나누는 동안에도 몇 번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보면 느껴지는 늘씬한 기척. 대충, 짐작은 가지만 굳이 그 정체를 드러내어 이야기하지 않아 준 파트너의 세심함에 맞추어. 천연덕스러운 웃음으로 남자는. 그것을 받아 속에 품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지, 왜 이런 것을 가지고 다니는 지. 빈 두개골 속을 떠도는 비릿한 의문들의 답은. 이미 필요 없다는 한 마디로 받았기에. 잠시 마주 웃다가.

, 그러면 잘 가. 파트너.”

먼저 자리를 뜨는 그를 가벼운 인사로 보낸다. 인사를 받은 사내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쑥하고 예의바른. 본래의 사내 자신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었던 모양으로. 결국 인사를 거르고야 말았다. 그 발걸음의 뒤에 끝내 떨쳐 내버리지 못한 음울함이 떨어져, 더러운 마룻바닥에 남아 고여. 더 고약하고 슬픈 무언가로 썩어갈 것을 알기에. 남자는 오히려 그것을 오래도록 응시한다.

이제 완전히 비어버린 그를 구경꾼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하룻밤 사이에 그만큼의 돈을 날려버린 사내의 불운이. 혹시라도 자기에게도 옮겨 묻을까, 슬슬 피하여 길을 내어주는 모습이 누군가와 참 많이도 닮은 것 같아. 남자는 그 텅 빈 속 어디에선가 올라오는 역함을 느낀다만. 역한 쓰레기와 취한 그 동류라도, 이 정도 숫자는 아무래도 부담스럽기에 얼굴을 핀다. 온통 하얀 얼굴에 승리자의 웃음을 기억 속 어디에서 따와 덧씌운다.

마음 같아서는 지름길을 쓰고 싶지만-.

무엇이 되었든 감추어야. 살아갈 수 있는 남자는 자신의 힘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뼈마디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증표를 통해 이미 잘. 배워둔 바였다.

, 다들 기대에 찬 눈빛이네.”

드라마틱하게, 너무 무거워진 탓인지 공중제비를 돌면서도 소리도 잘 내질 않는. 아슬아슬하게 견디는 낡은 주머니를 그들의 눈에 새긴다. 도박장에서의 운의 범위는 조금 넓기에, 오늘 자신을 잠기도록 감싸 안은 이 흘러넘치는 운이 한번만 더 자기를 돕길 바라며.

갖고 싶어? 그럼 잡아 봐.”


비틀거린다.

여기, 스노우딘에서는 눈도 비틀거리면서 내린다. 아니, 어쩌면 미친 이 세상이 비틀거리기에 눈마저 견디지 못하고 장단을 맞춰주는 것일 수도 있다. 멀리서 본다면, 언제나 눈이 내려 동화 속에 나오는 것 같은 마을. 하양색, 수도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떨거지들이 사는 곳 치고는 과분한 색이다.

젠장맞을 눈.”

새벽, 모방한 거짓의 새벽. 그 한없이 어둠에 가까운 여명 안에서도 눈은 빛난다. 남자는 하얀 눈밭에 두드러지는 죄의 주홍빛. 입에서는 욕지기가 나오면서도 마음은 들떴고, 마음은 들떴으면서도 입에서는 욕지기가 나오는. 알 수 없는 기쁨에 도취해 있는 지친 자였다.

어리석은 이들은 한 순간 자신에게 날아오는 돈뭉치에 마음이 깃들어 남자를 놓쳤고, 그대로 사이를 잽싸게 파고들어 뒤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남자. 지하 중의 지하는 시내에서도 한참 떨어진 어느 절벽 아래에 깃들어 있었고, 남자와 동생이 몸을 맡긴 집은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눈의 근원, 산 그나마 낮은 언덕 위에. 단숨에 가기엔 먼 거리다만 쫓기는 남자는 머리 위에 쌓이다 간혹 눈물마냥 녹아내리는 하얀 먼지들을 떨어내지 못했다. 추위를 거의 타지 않는 뼈다귀들이 아니라면 살 수 없는 집이. 저기 보이고, 이제야 조금 마음을 놓은 그가. 비틀거리는 남자가 조금씩 속도를 늦춘다. 하얀 언덕에 점점이 더 좁은 간격으로 새겨진다.

밝아지는 새벽, 발아래 놓인 건물과 나무와 괴물과 돈과 죽음. 이 세상은 하나의 커다란 판. 지나치게 좋은 오늘의 운, 이긴 남자가. 그 모두를 완상하며 찬 숨을 고르다 돌아선다. 부지런할 밖에 없는 이들은 벌써 오늘의 축제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떠맡기고 간 사내는 어디쯤 있을지, 살피려던 남자가 돌아선다. 몇 걸음 더 위로 올라가, . 얼어붙은 문고리를 잡고 잠시 멈췄다. 불안하다, 추위를 타지 않는 등골이 시리게 울린다. 언제나 같은 습관과 기억처럼. 아니 더욱.

녀석, 자고 있을까-.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작고 섬세하다. 지금 잠을 깨운다면 또 도박이나 하다 늦게 들어왔다고 화를 내는 척 하며 돈을 뜯어갈 동생. 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적당히. 죽지 않을 정도로 두들길 동생에게 돈은 숨길 수 있지만 집은 숨길 수 없어 비참하다. 조금 이르게, 아침 준비라도 하는 쪽이 마음을 풀어주는 데 나을지도 모르겠다만. 세상 모든 것을 기만하여도 단순하고 폭력적이기에 더욱 종잡을 수 없는 동생만은 아직 어찌하지 못하는 남자. 마침내 낡은 몸 삐걱거리며 단칸방의 문이 열리고.

샌즈 이 XX. 어딜 갔다 지금 돌아와!!”

그의 불행이. 소리를 지르며 날아들어 두개골을 울리는 소리로 밀어낸다. 고통으로 밀어낸다.

XX가 그러고 다니니까 이 위대하신.....”

단 한번의. 쪼개지는 통증. 부서지고 짓뭉개져 검어졌다 희어졌다 하는 시야, 어느새 완전히 색도 논리도 뒤집어져 환상적으로 흐느적대자 아예 감아버리고. 눈을 해치던 두 팔로 균열을 애써 감싸보지만.

듣고 있는...?”

새어나는 소리. 죽음에 가까운 소리와 손쓸 새 없이 부스러져 결국 눈과 섞이어 저 멀리 날아가 버린 먼지. 어깨를 흔드는 손길. 혹은 발길질.

“XX. 샌즈....”

퓨즈가 나간 한쪽 망막에 비취는 것은 세상이 뒤집힌 것일까?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형이라고 부르는 동생. 미안하다고 울부짖는 동생. 아직 세상의 절반은 어둠이건만, 형이었으니까. 문장이 되지 않는 단어로 중얼거린다.

파피루스, 이제 우리 집이 생겼어. 먼지만 좀 털면.. 깨끗하고 좋은 집일거야-.

야 엄살 좀...”

운을 너무 쏟아 버렸나봐, . 첫 판에서 이겨보고 스트레이트 플러시도 잡아보고-.

뭐라는 거야, 일어나 XX!”

이만큼이나 벌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세상에는 찾을 수 없는 이유도 있었다. 마음 속 동생을 향한 마지막 말을 남기고 이내

완전한 암전.



[完]




* 집과 돈을 얻고 눈을 잃은, 운수 넘친 날의 샌즈 이야기.

* 감사합니다. 혹시 읽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댓글로 물어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