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크 패러블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7.5 18 19 20 21 특별편
22 23 24 25 26 27 27.5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0.5 51 ]
샌즈는 망설임 없이 갈 장소를 선택했다. 신속하게 판단했지만 꽤 많은 고민을 해가며 고려한 장소였다. 언다인과 파피루스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이가 어둡고 폐쇄된 공간에 대해 불안 증세를 보이는 것 같았으므로, 지하에서도 비교적 넓으면서도 밝은 곳으로 가야 했다. 일단 핫랜드는 제외였다.핫랜드는 넓고 밝다 하더라도 너무 더웠다. 코어는 전체적으로 밝긴 했으나 폐쇄된 공간이 많았고 아이의 신경을 건드릴만한 이상한 소리가 많이 났다. 자신의 방은 안 됐다. 파피루스가 소리를 듣고 들어올 가능성이 있었다. 스노우딘은 당연히 안 됐다.
샌즈는 아이를 안아드는 순간 동안 이 길고도 복잡한 생각을 했으나, 왜 가장 시급한 상황에 적절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순간 폐허의 문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까지 했으나 그건 정말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남은 곳은 워터폴밖에 없었는데, 워터폴은 동굴이 많았으므로 아이에게 정말 최악의 장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순간 떠오르는 장소가 한 곳 있었다. 아이를 다룰 줄 알 수도 있는 보호자도 있으면서, 그렇게 어둡지 않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장소.
"오랜만이네, 자네! 손에 든 건 뭔가?"
촛불과, 동굴 벽에 박혀 은은한 빛깔을 뿜어내는 보석이 가득한 곳, 그리고 연세가 지긋한 괴물이 있는 장소였다. 거슨은 샌즈가 갑작스레 나타났음에도 별로 놀라지 않았고, 그저 샌즈가 안아들고 있던 프리스크에게 돋보기를 들이댔다. 프리스크는 그 순간에도 몸을 떨면서 무서워 했고,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있었다.제대로 들춰본 적이 없는 기억 속에서 흘러 들어오는 공포와 불안의 기억은, 이와 같은 일을 겪어본 적이 없는 프리스크에겐 너무 압도적인 것이었다. 불안해 하는 것은 차라가 아니냐고? 그대는 잊지 말라, 그녀가 누구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녀가 차라이든, 프리스크이든, 아이가 겪었던 수많은 고통의 흔적이 들추어져, 고스란히 그것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그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어르신, 정말 죄송합니다. 생각나는 곳이 여기밖에……."
"인간 하나가 왠지는 몰라도 부들부들 떨면서 무서워 하고 있고, 얘를 자네가 주워왔는데 얘를 진정시킬 만한 장소를 찾아온 다는 게 바로 내가 있는 동굴이라고?세상에, 자네도 노망이 들었구만! 와하하!"
"다른 괴물들이 있을 만한 곳은 안 되고, 으슥한 장소를 찾자니 이 아이는 어두운 장소를 싫어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시끄러! 어떻게 애보다 자기가 더 땀을 많이 흘리고 있는 게야? 그리고 그렇게 불안해 할 거면 귀떼기에 걸고 있는 입꼬리 좀 내리든가!"
샌즈는 그럼에도 표정을 바꾸진 않았다. 굳이 바꾸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정신 없어 보여서 문제는 없었다.
거슨은 투덜거리면서도, 샌즈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양초 몇 개를 더 꺼내어 동굴 구석 구석에 놓아둔 뒤 불을 켰고, 그 덕에 동굴 안은 더욱 밝아졌다. 거슨이 항상 앉아서 쉬던 소파의 팔걸이에 오래 되었지만 더럽진 않은 담요를 놓아두었다. 샌즈는 프리스크를 조심스럽게 소파 위에 눕히려고 했지만, 그러려는 순간, 거슨이 샌즈의 뒤통수를 돋보기로 후렸다.
"이 골 빈 놈아! 애가 떨어지기 싫다는데 왜 내려놓으려고 지랄이여!"
거슨은 언성을 높였지만, 목소리는 크게 내지 않았다. 샌즈는 얼얼한 뒤통수를 만져보지도 못 하고, 얼떨떨하게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했는데, 프리스크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서야 거슨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프리스크는 얼굴을 샌즈의 가슴팍에 파묻고 옷자락을 꽉 쥐고 벌벌 떨고 있었던 것이다. 샌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여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는데, 거슨이 한 번 더 뒤통수를 후렸다. 이번엔 손바닥이었다.
"애 안은 채로 앉으라고! 가만히 잘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쳐 들어와선 답답하게 뭐 하는 거여!"
거슨은 평소에 화를 잘 내는 성격이 아니었고 누군가를 때리거나 욕지거리를 하는 성격도 아니었으나, 왠지 지금만큼은 화가 잔뜩 난 노인네 행세를 했다.샌즈는 거슨의 말 대로 프리스크를 안은 채 소파에 앉았고, 조심스레 프리스크를 떼어내어 자신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 베개 했다. 뼈 밖에 없는 샌즈의 몸에서 그리도 떨어지기가 싫은지, 눈을 꽉 감고 신음 소리를 내는 순간에도 저항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던 것이, 샌즈는 말 그대로 뼈만 앙상한 그의 몸이, 안겨 있기엔 너무 불편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샌즈는 자신의 허벅지 위에 거슨이 건네준 다른 얇은 담요를 올려두었고, 그 위에 다시 프리스크의 머리를 누였다. 그리고 샌즈는 프리스크의 손을 꼭 잡아주었고, 거슨은 아이의 몸을 아까 소파의 팔걸이 위에 올려두었던 담요로 덮어주었다.
그렇게 몇 분간 잠잠히 있다가, 프리스크는 곤히 잠들기 시작했다. 샌즈는 프리스크의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꽉 잡아주었다. 조금 상황이 나아진 듯 싶자, 샌즈는 한숨을 푹 쉬고 난 뒤 거슨을 쳐다봤다. 거슨은 프리스크와 샌즈가 그 자리에 없다는 듯이 움직이며, 골동품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샌즈를 쳐다보지도 않았으며,정말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르신……"
"조용히 하게. 애 깨겄어."
샌즈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그저, 아무것도 묻지 않아주는 거슨에게 감사하단 말을 마음 속으로 몇 번이나 반복할 뿐이었다. 샌즈는 정말 편안하게 잠에 빠진 프리스크의 모습을 몇 번이고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지금 상황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인간 아이가 쓰러지는 걸 보고 나서 초조해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자신의 모습이라, 그것 참 웃긴 꼴이다. 어차피 시간선이 돌려지면 끝 아닌가. 이것이 샌즈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샌즈는 머리 속으로 아무리 다른 방향으로 계산을 해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을 직면해야 했다. 자신은 이 아이를 믿고 있었고, 지켜주어야 한다는 의무 아래 있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폐허의 문 너머로 농담을 나눈, 그녀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거리낌 없이 인간을 죽였을 자신이었다. 그런데,지금은 아이의 긴 이야기와 껍데기 뿐일지도 모르는 모습에 넘어갔다. 영락없이 인간의 보호자가 된 것이었다. 샌즈가 가장 싫었던 것은, 이런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그 느낌이었다. 사라졌던 희망을 잡는다. 커다란 힘에 의해 짓밟힌 자신의 희망이 되살아난다. 그 감각은 반가웠으나, 낯설었다.
프리스크는 플라위를 해치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지금 샌즈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겪어왔던 일들과 절망은 플라위의 의지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샌즈에게 있어서 플라위는 원수인 셈이었다. 이 아이가 진실되게 행동하고 있음에도 샌즈가 일말의 불안감을 내보이는 것은, 여태까지 플라위가 저질러온 짓들 때문이었다. 샌즈는 그 힘의 주체를 지금까지 알지 못 했으나, 그 장본인을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다. 특히, 아이가 이렇게 아플 때는 더욱 그랬다. 아이가 아프다면, 언제라도 플라위가 습격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의지의 힘을 아주 잘 알고 있는 플라위였으므로, 프리스크를 죽일 생각은 없을 것이다. 죽여도 소용 없다는 사실을 플라위는 잘 알고 있으리라. 처음 프리스크를 습격하려고 했다는 것도, 차라의 존재 때문에 충동적으로 했던 것이지, 이제는 프리스크를 죽이려고 들진 않을 것이다. 그것이 샌즈의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프리스크가 샌즈의 품속으로 더욱 파고 들었고, 그 움직임 때문에 샌즈의 생각이 끊겼다. 정말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그 모습이었다. 샌즈는 그 모습을 보자, 당장은 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에 대한 일말의 의심조차 거두기로 했다. 그저 샌즈는 프리스크를 쓰다듬을 뿐이었고,거슨은 어딘가에서 꺼낸 사과를 와작 씹어먹으면서, 아이가 깨어나면 무슨 얘기를 할 지 고민중이었다.
*
샌즈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이를 돌보다가 같이 잠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허벅지와 손에 느껴져야 할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품 안을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자신이 담요를 덮고 있었다. 아이가 사라졌다.
"프리스크!"
샌즈는 안광을 불태우며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잠깐만, 샌즈! 이것만 좀 하고!"
"와하하! 꼬마야! 어차피 질 건데 뭘 더 하겠다는 거냐!"
샌즈는 프리스크와 거슨의 목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소파 뒤쪽을 확인해봤다. 소파 뒤쪽 바닥에서 프리스크와 거슨이 앉아 있었다. 샌즈는 깜짝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속으로 헛기침을 삼켰다. 아이와 거슨은 체커를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프리스크가 지고 있었고, 거슨이 다음 수를 두자, 프리스크는 체커판을 잠시 살펴보다가 앓는 소리를 내면서 그 자리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거슨은 또 호탕한 웃음 소리를 내었다.
"꼬마야, 괜찮은 거야?"
"하나도 안 괜찮아……. 벌써 열 번째 졌다구……."
샌즈는 정말 괜찮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샌즈는 그제서야 평소처럼 편하게 웃고 있을 수 있었다. 프리스크는 바닥에서 일어나 샌즈에게 총총 뛰어가 안겼고,샌즈는 어색함 없이 그걸 받아주었다. 프리스크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여주면서 얼굴을 샌즈의 가슴팍에 부비고 있을 뿐이었다. 거슨은 자리에서 일어나 체커판을 치우면서 그 모습을 잠깐 보다가, 골동품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자네도 깼고, 애도 괜찮으니, 이젠 설명을 할 차례야! 홍차를 가져올 테니까 무슨 말을 할지, 머리 속으로 잘 정리해 두고 있게!"
거슨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잡동사니 속을 뒤지고 있었고, 샌즈는 별 말 없이 자신을 안고 있는 프리스크의 머리를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는, 꽤 고민거리긴 했으나, 샌즈는 어느새 고민 따위는 하고 있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프리스크가 멀쩡해진 모습을 보고 나서 느낀 감정을 다시 되새기면서, 샌즈는 자신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다잡을 뿐이었다. 그리고 거슨은 홍차를 찾겠다고 잡동사니 속을 뒤지면서, '젊은 놈들이…….'라고 말하며 작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퍄퍄
졸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혼자 남은 할아버지 앞에서 연애질이네 이새끼들이
다행이네
젊은놈들잌ㅋㅋㅋㅋㅋ
어머, 귀여워라
우리 유쾌하신 거슨 옹
ㅊㄱ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