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크 패러블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7.5  18  19  20  21  특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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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즈는 주변을 잠시 둘러보다가, 거슨의 동굴 입구에 있는 누더기 커튼을 내려 입구를 가렸다. 프리스크는 그걸 보고 나서, 나름 앉아서 이야기를 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구석에 있던 작고 낡은 식탁을 들어 적당한 자리에 두었다. 샌즈는 거슨이 알아채지 못 하도록 조심하면서, 손을 조그마한 동작으로 이리 저리 휘둘렀는데, 그럴 때마다 거슨의 동굴 입구에는 돌이나 나뭇가지가 쌓였고, 결국에는 동굴 입구를 아예 막아버렸다. 휘장을 내린 것만으로는 효과가 부족하다 생각했으리라. 거창한 이야기를 할 생각까진 없었으나, 플라위가 엿들을 가능성이나 습격할 가능성을 생각한 대처였다. 그러나 구석 잡동사니 속에서 찻잔과 주전자를 꺼내려고 뒤지고 있던 거슨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갈 땐 다 치워놓고 가게."


 샌즈는 잠깐 가만히 있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이 말을 하면 대답을 해, 이놈 새끼야!"

 "예? 예!"


 아무리 그래도 뒤에서 고개 끄덕이는 것까지 알아채는 건 무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슨은 찻주전자와 찻잔을 찾아서 꺼내왔고, 이전에 프리스크가 얻어 마신 적이 있던 바다홍차도 꺼내왔다. 거슨은 식탁에 놓은 찻잔에 아무 말 없이 바다 홍차를 따랐고, 프리스크와 샌즈는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거슨은 먼저 홍차를 한 잔 마시더니, 말을 꺼냈다.


 "그래서, 너는 누구냐, 꼬마야?"

 "프리스크예요. 산에 올라가다가 길을 잃었는데, 실수로 구덩이 속으로 떨어져서 여기로 오게 됐어요."


 이야기에 첫 시작은 그랬다. 프리스크는 당연히 시간을 돌리는 힘 따위나, 이전 시간에 있었던 이야기 따위를 전혀 말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처음에 어떻게 지하 세계에 오게 됐는지, 어떻게 폐허를 빠져나왔으며 샌즈와 파피루스는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샌즈와는 지나가다 만났다고 얘기했고, 파피루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파피루스에게 잡혀서 창고에 갇혔는데, 원래 있던 지병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까지 설명을 했다. 다만 불안한 점은, 이런 식으로 말하면 거슨이 이상하게 생각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그 사실은 프리스크와 샌즈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거 아니냐? 그런데 너는 왜 이 해골바가지를 그리도 좋아하고, 네놈은 왜 그리 이 인간 꼬마 아이를 도와주느라 안달이 난 게냐?"

 "그건……."


 프리스크는 이러한 반문이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대답할 거리를 생각해내지 못 했고, 결국 우물쭈물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이것은 샌즈도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핑계 거리는 없었다. 샌즈는 차라리 인간 아이에게 반했습니다, 라고 말할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거슨은 그런 말에 속아넘어갈 정도로 우둔한 괴물이 아니었다. 샌즈의 성격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뿐더러, 애초에 그런 상황은 말이 안 됐다.

 해골과 인간, 모두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있자, 거슨은 대답을 재촉하거나 추궁하는 대신 다른 질문을 하기로 했다.


 "샌즈, 자네는 이 인간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데에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겐가?"


 많은 의미가 함축된 질문이었고, 샌즈는 잠시 뜸을 들였다. 긍정을 했을 시에, 거슨이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고민이 되었다.

 토리엘과의 약속을 제외하고, 프리스크를 죽이는 것이 의미가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로, 이 아이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며, 둘째로, 이 아이는 당연히 죽는 걸 싫어했다. 샌즈는 처음에 첫 번째 이유를 더 크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이 아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샌즈는 이 아이가 괴물들을 대하던 태도를 다시 되새겼다. 파피루스의 장단에 맞추어주고, 경비대원들이 공격할 때에도 오히려 쓰다듬어주었고, 자신에게 의지했고, 파피루스가 싸움을 걸어올 때에도 전투를 의도적으로 피했다.

 샌즈는 자신의 결심을 마음 속에서 다졌다. 그리고 당연히 나올 대답이었으나, 많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


 "예."

 "그렇구만."


 거슨은 대답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프리스크를 쳐다봤다. 프리스크는 한참 맛있게 마시고 있던 홍차를 내려놓았다. 거슨은 계속 프리스크를 쳐다봤고, 프리스크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우물쭈물 거리다가, 다시 홍차를 한 모금 마시려고 했다. 그러나 찻잔에는 이미 홍차가 없었다. 그걸 보고 거슨은 그저 웃으면서 다시 찻잔에 홍차를 따라주었다. 그저 귀여운 손녀를 보는 할아버지의 눈빛과 동작이었다. 차를 다 따라주고 나서 한숨을 쉰 뒤, 거슨은 프리스크에게 물었다.


 "괜찮겠냐, 꼬마야?"


 프리스크는 차를 바로 마시려다가 동작을 멈추었다. 원래 같았으면 '괜찮아요.' 라고 말하면서 웃었겠으나, 거슨의 말 안에 담긴 의도는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는 듯했다. 프리스크는 찻잔을 내려놓고 눈을 잠시 감았다.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 거슨은 아이가 입을 열 때까지, 그 잠깐의 순간을 기다려주었고, 샌즈는 안절부절했다.

 그리고 프리스크는 거슨에게 활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네, 괜찮아요."


 원래 말하려고 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웃는 표정은 샌즈가 이전에 보았던 것과 비슷했다. 꽃이 만연하듯 기분 좋아 웃는 표정이 아닌, 깊이가 있는 웃음에 괜찮다는 말이 담긴 것이었다. 하지만, 샌즈가 보았던, 아이에게서 볼 수 없는 그 쓴웃음은 아니었다. 그것보단 나은 것이었다. 걱정보단 희망이 더 담긴 웃음이었다. 그러면서 프리스크는 샌즈를 힐끗 쳐다보았다. 믿음직한 친구에게 기대고 싶은 것이리라. 거슨은 그 모습을 잠깐 보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내 알 바 아니구나."


 거슨은 찻잔 안 에 남아있던 바다홍차를 다 마셨다. 그러다 잠깐 조용히 있었다. 그렇게 적막이 흐르고 아무 말도 없던 와중에, 샌즈가 무언가를 더 말하려 했다. 그런데, 거슨이 아직 홍차가 그대로 남아있는 샌즈의 찻잔을 뺏어오며 말했다.


 "안 마실 거면 내놔, 이놈아."


 거슨은 그런 뒤 샌즈의 홍차를 벌컥벌컥 마셔 버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샌즈는 순간 벙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거슨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런 분위기 싫으니께, 꼬맹이 데리고 갈 길 가라. 이놈아. 나중에 올 때에는 좀 웃으면서 얘기 허자고. 알겄냐?"

 "예, 어르신."


 거슨이 이 짧은 대화에서 무엇을 알아내고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더 이상의 질문이나 대화를 원하진 않았다. 프리스크는 남아 있던 홍차를 마신 뒤,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고, 샌즈도 뒤따라 일어났다. 지금의 프리스크는 응석 부리길 좋아하고 쉬는 걸 좋아했으나, 그녀도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으므로 거슨의 말대로 이 자리를 뜨기로 했다. 거슨은 프리스크에게 다가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며 말했다.


 "꼬마야. 다음에 올 때에는 가볍게 와라. 나는 옛날 이야기를 좋아 하는 고고학자고 잡동사니나 파는 상인이니까."

 "네, 할아버지."


 거슨과 프리스크가 이런 짧은 말을 나누었을 때, 샌즈는 입구를 막아둔 장애물들을 치우고 장막을 다시 말아놓았다. 그리고 다시 프리스크에게 다가가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거슨은 다시 잡동사니 쪽으로 천천히 뒤돌아 걸어가면서 말했다.


 "다음에 보자꾸나."

 "예."


 샌즈는 그렇게 말하면서 프리스크와 함께 스노우딘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거슨이 외쳤다.


 "잠깐!"

 "에?" 왜 그러십니까?"


 거슨이 갑자기 뒤돌아보면서 다급하게 외쳤기 때문에, 샌즈는 깜짝 놀라 순간 이동을 멈추었다. 거슨이 샌즈에게 가까이 다가가,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차 값, 30G 받겠네."


 ……


 "예?"





 *





 "정말 여기 있어도 괜찮겠어?"

 "응, 샌즈만 같이 있어주면."


 거슨에게 차 값을 지불한 뒤에 돌아온 곳은, 다시 창고였다. 그것이 프리스크의 뜻이었다. 프리스크는 정말 언다인이 올 때까지 창고 안에서 조용히 기다릴 작정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샌즈는 반대했으나, 프리스크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대신, 샌즈도 같이 있어야 하는 꼴이었다. 언다인과 파피루스가 이 광경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 지가 고민이었으나, 프리스크는 샌즈를 놓아주지 않았다.

 샌즈와 프리스크는 나란히 벽에 기대 앉아 있었고, 아이는 샌즈의 팔을 안은 채로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마냥 좋은 듯 샌즈에게 기대어 있었고, 샌즈는 기분이 나쁘거나 불쾌하진 않았지만, 적절하지 않은 모습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샌즈는 그녀를 거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샌즈는 질문을 꺼냈다.


 "도대체 왜 나랑 이렇게 붙어있으려고 하는 거야, 꼬마야?"

 "음……."


 샌즈는 이런 질문을 하면 프리스크가 당황하면서 얼굴을 붉히리라고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프리스크는 골똘히 생각에 잠기며 무어라 말할지 정리하다가 입을 열었다.


 "샌즈가 좋아서."

 "왜?"

 "내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걸 알면서도, 대신 죽어줬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에도 영혼을 주려고 했으니까."


 샌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대신 죽어주기까지 한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영혼을 주려고 했던 것은 그저 연기이지 않았나 싶었다. 아이가 자신을 살려줄 거라는 확신을 하고, 아이의 동정심이나 사명감을 더욱 강하게 하려고 한 연기 말이다. 프리스크는 어차피 영혼을 가지고 결계를 통과할 그런 아이가 아니라는 걸, 이전 샌즈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리라. 

 샌즈는 프리스크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도 이전 샌즈처럼 아이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그것이 정말 목숨을 바치는 행위가 맞을까? 자신의 목숨이냐, 아이의 목숨이냐를 양자택일하는 상황에서, 결국 프리스크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굳이 자신의 목숨을 바칠 필요가 있을까? 도대체 이전 샌즈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일까?

 샌즈는 프리스크에게 들었던 그녀의 여정을 상기하면서 그 답을 찾았다. 샌즈는 아이에게서 신뢰를 얻어야 했다. 자신이 프리스크를 믿는 만큼, 프리스크도 자신을 믿게 해야만 했다. 그 때문에 이전의 샌즈는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게 된 것이리라. 그런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자신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목숨을 버리진 못 한다.

 결국 이전 샌즈는 자신의 영혼을 주겠다는 식의 연기를 하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아이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샌즈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전 샌즈와 똑같은 태도를 취해야만 할까? 혹시 똑같은 태도를 취하면 결과도 이전과 같아지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 프리스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날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나한테 보일 때는 나랑 붙어있으면 좋겠어."


 프리스크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했다.


 "안 그러면, 또 샌즈가 죽을 지도 몰라."


 헤헤.

 샌즈는 그렇게 마음 속으로 웃었다. 어떤 태도를 취할지 고민하는 건 애초에 의미가 없는 짓이란 걸, 프리스크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애초에 선택권은 샌즈에게 없었던 것이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건 그녀의 행동이리라. 자신은 어떻게 하든 소용이 없었다. 그저 이 아이를 믿고 지켜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일련의 말과 행동으로 샌즈를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 아이는 나를 정말로 믿고 있구나.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해줄 수밖에 없겠다. 샌즈는 결국 결론을 내렸다.

 샌즈는 프리스크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프리스크는 샌즈의 품 안에 더 파고 들어 앵겼다. 그렇게 잠깐 동안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 순식간에 벌어진 일 때문에 평화로운 분위기는 깨지고 만다.


 "느아아아, 죽어라, 인간!"


 근위대장의 목소리가 바깥에서 쩌렁쩌렁 울려 퍼졌고, 동시에 창고 문이 박살이 나며 갑옷을 입은 근위대장이 들어왔다. 갑옷을 입은 채로 뛰어온 것인지, 이 추운 스노우딘에서 땀을 잔뜩 흘리고 있었고, 투구는 어딘가로 벗어 던졌는지 쓰고 있지 않았다.

 바로 손에서 창을 뽑아내려 인간을 찾아냈으나, 그 자리엔 전혀 예상하지 못 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샌즈에게 거의 안겨있다시피 한 인간과, 그런 인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는 해골이었다.

 언다인은 예상치 못 한 광경에 창을 던지려다가 주춤하여, 영 어색한 자세로 그 자리에 굳은 채, 어이 없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말을 흘렸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