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을 가두었던 결계가 사라지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직후 언다인은 여름이란게 지독히도 싫어졌다. 모든 괴물들을 잿더미로 만들 것처럼 강렬하게 내리쬐는 저 망할 놈의 태양빛은 항시 수분을 유지해야만 하는 자신의 피부를 바짝 마르게 하였다. 그늘로 피신을 한다고 해도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온 몸을 부드럽게 감싸안는 촉촉함 이건만,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땀의 끈적함은 차라리 건조한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언다인으로 하여금 들게 했다. 생선구이가 될 것인가, 생선찜이 될 것이냐. 이런 식으로 죽음의 종류를 결정해야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언다인은 오두막에 드러누운 채 사방에 마력의 창들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 꺄!


익숙한 비명소리에 자리에서 정신이 확 깨어 벌떡 일어난 언다인은 문 앞에서 주저 앉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알피스에게 달려가 두 손을 잡아주었다. 자신의 마법으로 인해 놀랐을 알피스를 우선 안심시켜야 된다는 무의식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어디 조금이라도 스친 곳은 없는 지 알피스의 몸을 면밀히 살펴본 후에야 안심을 한 언다인은 뒤늦게 얼굴이 새빨개질대로 빨개진 알피스의 뺨을 발견하였다. 알피스가 없었다면 난 절대 이 지옥을 견뎌내지 못했을거야. 언다인은 이토록 사랑스러운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설령 만화 속 일지라도 없음을 다시 한번 느끼며 알피스를 끌어안았다. 아니, 자신의 뒷통수로 날아온 샌즈의 뼈다귀가 아니었다면 그랬을 터였다.


* 누구야!

* 안그래도 더운데 작작 좀 하지?

* 내가 뭘 어쨌다고, 이 간통범아!!

* 하,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싶나 봐?

* 그만!!!


자신들 각자 고유의 마법을 발동하면서, 당장에라도 치고 박고 싸울 것처럼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둘 사이를 가로 막아 세운 것은 토리엘이였다. 토리엘은 도대체 애도 아니고 무슨 짓이냐면서 샌즈를 엄하게 다그치곤, 벙쪄 있는 언다인과 알피스에게 다가와 같이 물놀이 하러 가는 게 어떤지 상냥히 웃으며 물었다. 그 상반된 태도에 샌즈의 표정이 굳은 건 덤이였다. 언다인은 그제서야 토리엘과 샌즈가 물놀이에 관련 된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있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였다. 물놀이라니, 당연히 가야지! 이 깊은 산 속에 물놀이를 할만한 곳이 있었나 싶은 궁금증이 일순간 들었지만, 언다인은 그보다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잔뜩 신이난 목소리로 가겠다고 대답하였다. 알피스도 역시 작은 목소리로 동참하겠다고 말하였다. 토리엘은 가져갈 물건들 챙기고서 자신의 집 앞에 오면 된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샌즈는 토리엘이 뒤 돈 순간 언다인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보여주곤 토리엘을 뒤따라서 가버렸다.


* ...준비나 하자!

* 으,응!


지금까지 쌓여있던 더위에 대한 원한을 푼 다는 것에 잔뜩 기대하며 언다인은 온갖 물건들을 뭉텅 모아다가 보자기 위에 쌓았다. 가방 하나에 짐을 다 챙긴 알피스는 그 모습에 살짝 당황하다가 도와줄게 있냐며 언다인의 옆에 섰다. 언다인은 괜찮으니 조그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며 짐을 노끈으로 여러차례 싸맸다. 보자기에 감싸여진 커다란 공처럼 보이게 됬을 때, 언다인은 그것을 가뿐히 들어다가 둘러멨다. 알피스가 놀란 기색을 감추질 못하자 언다인은 그 반응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이 숨길 수 없는 터프함에 또 반해버렸구나. 공들여서 짐을 싼 결과에 대해 만족하며 언다인은 알피스와 함께 토리엘의 집으로 향했다.


토리엘의 집 근처에 다다르자 노란색의 커다란 버스가 보였다. 저런 차가 마을에 있었던가, 하면서도 언다인은 앞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드넓게 펼쳐진 호수 따위를 상상하였다. 그 상상 속에선 자신에게 물을 뿌리는 알피스나, 물 속에서 귀엽게 헤엄치는 알피스라던가, 물에 젖은 알피스가... 아, 진정하자. 과도한 망상에 코에서 피를 쏟을 뻔한 언다인은 자신의 옷가지를 당기는 알피스의 손길에 정신을 차렸다. 알피스가 이끈 곳은 다름이 아닌 버스로 들어가기 위해 줄지어진 괴물들의 행렬이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파피루스에게 짐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좌석에 안착한 언다인은 터져나오는 비명을 속으로 삼켰다.


처음 차를 탔을 때 자신이 경험했던 그 메쓰거움과 밀폐 된 공간에 갇혀 있다는 압박감이 다시금 떠오르며 언다인은 벌써부터 속이 메슥거렸다. 이딴 산골에 물놀이 할 곳이 있었다면 진작에 알았겠지. 언다인은 순간순간 지나쳐갔던 자신의 의문들을 돌이켜 생각하다, 옆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마냥 웃고만 있는 알피스를 내려다 보았다. 알피스에게만은 자신의 이런 나약함을 보여줄 수 없었다. 이제는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이란 것을 받아들인 언다인은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 그리곤 방실방실 웃으며 인원을 체크하고 있는 파피루스를 불러다가 아무도 듣지 못하게 귀에 속삭였다. 언다인과 파피루스는 비장한 얼굴이 되어 서로를 바라보았다. 파피루스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언다인의 뒷목을 툭하고 쳤고, 효과는 굉장했다!


* 언다인... 언다인...


자신을 깨우는 목소리에 힘겹게 눈을 뜬 언다인은 도착했다는 알피스의 말을 듣고 쏜살같이 버스에서 내렸다. 물 속에 뛰어들거야...? 언다인은 울창한 산림과 졸졸졸 물이 흐르는 계곡을 본 순간 지금까지 부풀대로 부풀었던 환상이 와장창 깨졌다. 옆에서 가뭄 때문에 계곡물이 마른 거 같다는 프리스크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언다인은 실망감을 느끼다 못해 화가난 나머지 계곡으로 내려가 저들끼리 놀고 있는 괴물들에게 분풀이 하려고 했다. 그러다 자신을 부르는 알피스의 소리에 뒤돌아보자 얕은 물에서 참방참방 물장구치는 알피스가 보였다. 물이 정말 시원하다며 오라고 손짓 하는 알피스의 청명한 미소를 본 순간 언다인의 끓어오르던 속이 순신간에 정화되었다. 너만 있으면 됬지, 너만 있으면 그걸로 다 된거야. 언다인은 알피스에게 다가가 천천히 끌어당기며 아까 못했던 포옹을 마져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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