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크 패러블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7.5  18  19  20  21  특별편 

 22  23  24  25  26  27 27.5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0.5  51  52  53  54  55  56 ]




 하루가 지났다. 샌즈는 난생 처음으로 밤을 새보았다. 파피루스에게 동화책도 읽어주지 못 했다. 언다인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소파에서 잠을 잤다. 파피루스는 교대해주겠다고 했지만, 샌즈는 허락하지 않았다.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언다인을 잘 봐달라고 부탁했고, 그래서 파피루스는 거실에서 잠을 잤다. 이른 아침, 샌즈조차 잠에 빠지고, 아직 언다인과 파피루스가 잠에 빠져 있을 때 프리스크는 다시 깨어났다.

 프리스크는 자신의 팔 위에서 엎드린 채 잠든 샌즈를 조심스레 밀었다. 프리스크는 조심스레 후드 지퍼를 열며 자신의 가슴팍에 난 상처를 확인해봤다. 붕대에 감겨 있어서 확인하진 못 하지만, 만져보아도 아무런 통증이 없었고, 심지어는 아팠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언다인의 창에 찔리고 일어난 뒤에도, 이런 느낌이었다. 샌즈는 그때도 프리스크에게 이렇게 해주었던 것이리라.

 프리스크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나와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살금살금 걸어 나왔다.. 프리스크는 1층에 내려가 언다인과 파피루스를 피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 안에 있는 냉장고를 열어보았는데, 안에 들어 있던 것은 프리스크가 기억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감자칩과 스파게티였다. 하지만, 프리스크는 냉장고를 더 뒤져보았고, 결국 다른 음식을 찾아냈다. 키슈였다.

 프리스크는 밀봉되어 있는 키슈를 찾아내고선 반갑기까지 했지만, 건드릴 수 없었다. 이건 샌즈의 것이었다.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결국 이 집엔 아침 밥을 준비할 만한 재료가 없었다. 프리스크는 밖에 나가서 무언가 사올까 했지만, 돈도 없는 데다가 말도 없이 집을 나가버리면 샌즈가 화를 낼 것 같았다. 프리스크는 결국 파피루스가 만들어놓은 듯한 스파게티를 꺼내서 손가락으로 집어 한 입 먹어봤다. 프리스크는 입에 넣자마자 바로 면발을 뱉어버렸다. 이걸 먹을 순 없었다.

 언다인이 깨어나면 맛있는 요리라도 해서 줄 참이었다. 그것 외에는 언다인을 설득할 만한 수단이 생각나지 않았다. 극적인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없었고, 그렇다면 최대한 친근감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그 방법이 막힌 상태였다.


 "지금 거기서 뭐 하는 거냐?"


 프리스크는 갑작스레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반쯤 머리에 걸쳐있던 후드를 뒤집어 썼다. 딱히 의미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뒤를 돌아보자, 언다인이 못 마땅하다는 눈빛으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프리스크는 웃으면서 아침 밥을 하려고 했다고 말하려 했지만, 위압감이 느껴지는 눈빛과 과거의 기억 때문에 주눅이 들며 말했다.


 "아, 아침밥을 하려고요……. 죄송해요. 제가 깨워……"

 "왜 사과를 하는 거야? 왜 또 겁을 먹은 거지?"


 언다인이 하나만 남은 눈을 치켜 뜨며 말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꽤 당당했던 거 같은데 말이야."

 "아, 그, 기분 나쁘셨다면……"

 "아 제기랄, 또 사과하고 있네.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야. 오호, 그런 연약한 모습으로 샌즈를 꼬신 건가? 응?"

 "네? 전 샌즈를 꼬신 적이 없어요. 근데 꼬시는 게 뭐예요?"


 언다인은 인간 꼬마의 반응에 얼굴을 쓸어 내렸다. 언다인이 낸 결론은 대강 이러했다. 자신과 파피루스, 샌즈만 세뇌 당했다고 하기엔 뭔가 이상하다. 정말 이 아이가 세뇌를 하는 마법사라면 스노우딘에 있는 모든 괴물이 프리스크 옆에 달라 붙어서 호위라도 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으니 세뇌는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자신의 마음 속에 끓어 오르는 미안함은 무시하기로 했다. 인간을 죽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런 거겠지, 하고 말아 버린 것이었다.

 대신 생각해낸 결론은, 아이가 만나는 괴물마다 '꼬시고자' 하며, 그게 특히나 샌즈와 파피루스에게 잘 통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피루스는 원래 성격에 누구든지 좋아한다 쳐도, 샌즈는 성격이 뒤바뀔 정도로 제대로 통한 것 같았다. 아이의 불쌍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나, 헤벌쭉 웃으면서 다니는 모습, 지금 저렇게 두 눈을 뜨고 '꼬시다'의 정의를 묻는 순수한 아이의 모습, 이런 걸 누가 좋아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샌즈라면 그런 취향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워낙에 독특한 괴물이니까.

 이런 생각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바로 샌즈가 프리스크에게 입혀준 후드였다. 언다인이 본 인간의 역사서 중에는, 호감이 있는 남자가 여자에게 옷을 벗어준다는 내용의 지식이 있었다.


 "그런 거 나한텐 안 통해. 왜냐 하면……, 난 여자거든!"

 "네?"


 그런 생각들과 별개로, 언다인은 일단 이 인간을 죽이고자 하는 계획을 접었다. 파피루스의 끝없는 설득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이었다. 저 인간이 착한지 나쁜지를 구분하고 나서 죽여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착한 인간이라면, 언다인도 정말 죽이고 싶진 않았다. 인간은 모두 나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괴물의 자유를 위해선 그런 인간들은 죽어야만 했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면? 그것은 언다인에게 다시 생각해볼 만한 주제였던 것이다.


 "아침밥을 하겠다고? 그냥 너가 배고픈 거 아니냐?"


 제 딴에는 인간의 이기심을 시험하고자 하는 질문이었으나, 프리스크가 들었을 땐 그냥 장난처럼 들렸을 뿐이었다.


 "헤헤, 맞아요. 그런데 다 같이 먹어야 맛있죠."

 '흠, 잘도 피해가는군.'


 언다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프리스크를 가볍게 밀쳐내며 걸어간 뒤, 냉장고를 열어봤다. 당연히 스파게티랑 감자칩밖에 없었다. 언다인은 얼굴을 찡그리며 냉장고 문을 닫아버렸다.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봐, 너 그릴비네에 가본 적 있나?"

 "그릴비네요? 지나오면서 보긴 했는데 가보진 않았어요.


 프리스크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고, 언다인은 프리스크에게 손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거기서 뭐라도 사오자고. 거기 내 근위대원들이 자주 가는 곳이야."

 "그래요? 그럼 빨리 가요!"


 언다인은 나름대로 계획을 머리 속에서 꾸미고 있었고, 프리스크는 언다인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그저 기쁠 뿐이었다. 언다인은 씨익 웃은 뒤 따라오라고 말하며 집 문을 나섰다. 프리스크는 언다인을 따라 나서려다가 파피루스를 확인해보았다. 파피루스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그리고 프리스크는 뒤통수 뒤로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뒤를 돌아봤다. 2층에서 샌즈가 지켜보고 있었다. 프리스크는 언다인이 듣지 못 하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갔다 올게요."


 그러면서 프리스크는 잽싸게 뼈다귀 형제의 집을 나선 뒤 언다인의 뒤를 따라갔다. 프리스크가 집을 나선 뒤, 2층에 서 있던 샌즈도 뒤따라 사라져 버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