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올린지 한 달 됨.


기억하는 사람도 없을거고 묻힐거 같긴 하지만 완결은 내고 싶어서 올린다.

묻혀도 상관없이 완결은 올림. 다음편이 아마 마지막일 거니까. 


이거 들으며 써내린 음악도 함께 첨부함.





1편 - http://gall.dcinside.com/undertale/435489

2편 - http://gall.dcinside.com/undertale/435493

2-1편 - http://gall.dcinside.com/undertale/435565

 

3편 - http://gall.dcinside.com/undertale/438826
 

4편 - http://gall.dcinside.com/undertale/459242

 

5편-http://gall.dcinside.com/undertale/459253

 

6편 - http://gall.dcinside.com/undertale/480071

 

7편 - http://gall.dcinside.com/undertale/508159

 

8편 - http://gall.dcinside.com/undertale/535404


9편 - http://gall.dcinside.com/undertale/572953


10편 - http://gall.dcinside.com/undertale/572969























프리스크는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헐벗은 나무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창 뒤로 지나치는 모습과 하늘에서 조용히 내려오는 눈송이들이 그녀의 눈에 담긴다.


눈이 내린다. 그의 말대로.


야트막하게 깔린 새하얀 설원 위에 앙상한 가지가 드러난 나무들이 혹독한 겨울 속 질긴 생명을 이어가며 자신의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들을 고요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왠지 그 차가움과는 상반된 따스한 느낌으로 피어났다.


..봄이 올 걸 알고있기 때문일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프리스크는 기차의 덜컹임에 흔들리는 몸을 가만히 좌석 등받이에 기댔다.



그리곤 조용히 두 눈을 감은 채 오늘 아침 자신의 핸드폰으로 수신되었던 음성메세지를 떠올린다.














...


「.. 음, 잘 잤어? 아니, 이건 좀 이상한 인삿말인가..」


짧은 침묵 뒤에 흘러나온 목소리는,



그러고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



비가 내린 후 말라가는 진흙의 빛깔.



회색빛이 감도는 짙은 갈색의. 눈에 익은 그 나무천장이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으로 어슴푸레 비춰지는 모습을


침대에 누운 채 샌즈는 멍하니 두 눈을 깜빡이며 바라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방에 협탁 위의 스탠드만이 무드등 특유의 노랗고 은은한 빛으로 채워지며 이 곳이 자신의 방임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었고.

어쩐지 한몸처럼 들러붙어 있던 늪으로 빠져드는 듯한 묵직하고 깊은 피로감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끼며, 몇 년만에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은 채
그 기분도 낯설게 푹 잠들었던 듯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잠들기 직전까지 연신 술을 들이켰던 그의 숙취감까지 해소되어 사라져 줄 까닭은 없을 것이다.


샌즈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지끈거리는 두개골에 손을 짚은 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고 목에서는 끙, 하는 신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그렇게 잠시 이마를 감싸쥔 채 두통을 다스리던 그는 가만히 생각한다.


..내가 언제 방으로 올라왔지?


소파에서 잠들었던 것이 그의 마지막 기억으로, 짧은 의문은 곧 언제나처럼 술, 그래 술 때문이겠거니.
그 의문만큼이나 짧은 시간 안에 합리화 되어 이내 잊혀지게 되었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바늘은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침대 위 커텐을 힘없이 걷어내니 창 밖은 이미 하루의 폐막을 알리는 어둠의 장막이 내려앉은 채다.


암흑에 잠긴 유리창에 해골의 푹 꺼진 관자뼈와 비어있는 눈구멍이 까만 밤을 담은 채 비치고 있었고
그 눈길은 밖의 풍경인지 자신인지 모를 것을 무심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침에 잠들어서 밤에 일어나는군.


유리창의 해골은 생기없는 미소를 지어낸다.


..그래. 이젠 비참할 정도로 밤과 어울리게 되었어.


집으로 스미는 밝은 빛 속에 그의 죄명들이 낱낱이 드러날 것만 같은지, 샌즈는 창문마다 커텐을 쳐서 집 안으로 들어오는 빛을 모조리 차단한 상태였고

이제 어둠은 그에게 있어 일상을 넘어선 숨어들기 위한 대피처이자 곧 안식이 되었다.


한 줄기 빛조차 들지 않는 완전한 어둠은 죽음과 가장 닮아있었다.


참 안심스럽게도.


의미모를 웃음이 입가를 비집고 새어나오고.

이윽고 침대 밑으로 내려 온 발가락 뼈가 처음으로 나무바닥과 맞닿는 순간, 끼익거리며 신음하는 소리가 애처롭게 울렸고
침대를 짚은 손 뼈를 밀어내듯 튕겨내며 힘주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그 높달 수 없는 눈높이에 핑 도는 현기증을 느끼며 작게 몸을 휘청인다.


그대로 넘어질 듯 하다가 옆의 벽을 짚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딛어 간신히 균형을 잡고는, 잠시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르던 샌즈의 입가에 한심한 웃음이 지어진다.


이거.. 술 주정뱅이들은 걸음마부터 다시 배워야겠어.


술을 마시다 외려 술에 잡아먹혀 비틀대는 자신의 꼴이 우스운지 잠시 자조적인 미소를 짓던 그는. 이내 작은 한숨과 함께 웃음기를 지워내고는

주머니에 두 손 뼈를 찔러넣은 채 느릿한 걸음새로 문으로 향한다.


집 안에 있음에도 밤 공기 특유의 싸늘하면서도 고요한 냄새가 익숙한 듯 낯설게 그의 비강을 메워오고. 적막한 집의 공기 중 다른 무언가가 흐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샌즈는 낮의 꿈이 너무나 생생했던 탓이라고 애써 자신의 감각을 자르듯 부정한다.


곧 문 앞에 다다른 그는 문고리를 잡았고 그 서늘함과 딱딱한 쇠의 감촉을 느끼며 그 손 뼈에 힘을 준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생각을 칼로 쳐내듯 끊어낼 수만 있다면.


그래서 널 떠올림으로써 옥죄여오는 이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미 오래 전 생기없이 시든 얼굴에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미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다 부질없겠지.



샌즈는 문고리를 돌렸다.














때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위층 오른쪽의 샌즈의 방문이 열렸다.


곧 비척거리는 발걸음으로 샌즈가 나왔고, 그러다 아래층에 있던 프리스크와 눈이 딱 마주치게 되었다.


샌즈는 잠시 눈쌀을 찌푸리다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프리스크?"


"....안녕 샌즈. 잘 잤어?"



프리스크의 어색한 인사에도 샌즈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좀 늦었다 싶을 정도로 시간을 지체하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언제 온거야?"


그는 아까 프리스크를 본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듯 했다.








프리스크의 시점에서.


샌즈 혼자 남은 집에 프리스크가 찾아온 이야기 1편 中.











"..완전히 돌아버린 줄 알았어. 하다하다 헛 것까지 보게된 것인지.

결핍의 골이 깊어지고 그리움의 강이 굽이쳐 마침내 환각으로서 널 이루어낸 것인가 하고 말이야."


프리스크의 손등 위로 부서져내린 차가운 눈물방울은

그녀를 현실로 불러들이는 신호였다.


그의 이야기에 빨려들어가 그의 시간선부터 8년 전 과거에까지 발 디뎌 걷고있던 그녀의 정신은 파피루스의 부탁을 받아 샌즈 혼자 살던 집에

겨울방학을 보내러 찾아 오게 됐던 자신으로, 그리고 깊어진 새벽. 주방 의자에 마주앉아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소리없이 눈물을 흘려내던

프리스크 자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서로를 마주하게 된 지금, 프리스크는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난 샌즈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과거 아주머니께 프로포즈하며 날 향한 괴롭게 일그러진 표정은 정말 나에게 보내는 경멸이었을까? 8년 전 이 집을 뛰쳐나올 때, 그는 정말 날 비웃었었나?
자신의 결혼식 날 아주머니의 반지를 한 번 끼워볼 것이냐고 묻던 것이 과연 나를 향한 조롱이었나?


그가 들려준 이야기와 자신의 기억이 뒤늦은 자각에 섞여들어가며, 큰 괴리감은 찾아든다.


안타까움을 담은 웃음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충격으로 물든 표정이. 정말 날 싫어해서였다고..? 난 왜 그렇게 받아들였던거지?



과거의 기억들이 모조리 부정되고 뒤집혀버리는 혼란스러움으로 복잡한 그 때 잠시동안의 정적 사이로 스며들듯, 샌즈의 긴 한숨같은 말이 이어졌다.


"..그 후에는 너도 알다시피.. 널 밀어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 프리스크, 네가 인식하고 있는대로의 내가 되기로 한 거야. 넌 날 무서워하니까."


그러더니, 갑자기 피식이며 뭔가 포기한 듯한 쓴웃음을 짓고는 "..아니, 조금 더 솔직해 지자면."


"..좀 화나 있었던 것도 같아, 너에게. 나한테 그럴 자격은 처음부터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리스크는 눈물젖은 눈을 들어 그를 조용히 바라본다.


말은 천천히 계속 이어진다.


"더는 내가 있는 집으로 찾아오지 않고, 더는 날 사랑하지도 않고. 다가가면 움찔거리며 자리를 피해버리는 너를,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미워했던 것 같아."


나지막한 음성 후로, 말은 멈추었다.


공기는 얼어붙은 것처럼 차갑기만 하고 멈춰버린 호흡같은 고독이 이곳에 흐른다.


그는 의자에 걸터앉아 두 손을 맞잡은 채 고개를 돌려 창문이 있는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미 새벽이 깊어 까맣기만 한 그 네모난 작은 공간을. 그는 말없이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겨울비로군. 흔치 않은 일인데."


말하다가,


"아니.. 눈 비인가. 하지만 눈에 섞인 비의 양은 많지 않아보여. 내일은 제대로 된 눈이 내리겠지."


프리스크는 잠시 그를 따라 창으로 시선을 옮겼지만 창 밖은 마치 시력을 잃은 세상이 된 듯,
암흑 외에 그녀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프리스크는 다시금 고개돌린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 퇴색한 해골의 죽은 눈빛을 보는 순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여전히, 그는 나를 사랑한다.


사무칠 정도로 깊이,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마음에 지쳐있을 정도로.


그런데.



..그런데 그게 정말 '나'인 걸까?


불현듯 그녀가 답을 알 수 없는 어떤 혼란에 잠기려던 그 때, 샌즈의 고개가 프리스크를 향해 돌려졌고 그러자 프리스크의 숨이 짧게 끊어지며 그녀 자신도 모르게 고개돌려

그를 외면하고 말았다.


...

"..조금 추워질거야. 벽난로 앞으로 자리를 옮겼으면 하는데."


어두운 음성은 적막을 뚫고 그녀의 귓전을 울렸다.


그러나 프리스크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여전히 그를 외면한 채였고 그러자 그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는 듯,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낡은 마룻바닥은 그 발길이 닿는 곳마다 끼익 거리는 기이한 신음을 뱉어냈고 그 소리는 이윽고 프리스크의 앞에 멈춰 머물렀다.


그리곤 말없는 두 눈구멍이 자신을 지켜보는 것이 외면한 시야로도 느껴져, 프리스크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에 갈 곳 잃은 눈동자만 좌우로 서성였다.


..왜 여태 몰랐던 걸까.

처음부터 줄곧, 그는 날 알아왔던 시간보다도 더 나를 알고있는 눈으로 보고 있었는데.


마치 지금처럼.


"..아직은 아니야, 프리스크."

깊은 울림이 담긴 목소리는 그녀의 앞에서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아직 해야 할 말들이 더 남았어. 날 외면하는건 그 뒤로 미뤄 둬."

...
프리스크는 천천히 고개돌려 자신의 앞에 와 있는 샌즈에 눈을 들어 바라보았고 그러자 해골은 그 입가에 힘없는 미소를 지어낸다.


"..겨울밤이 꽤 길어. 온기가 필요할 거야, 너나 나나."


프리스크는 샌즈가 손 뼈를 내밀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 그의 손이 작게 움찔거렸던 듯도 했지만, 마치 그녀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것처럼. 그는 그저 등 돌려 주방을 빠져나가더니
그대로 거실로 향했다.


잠시동안, 프리스크는 말없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곧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그 뒤를 따랐다.


천천히 거실로 나와보니 샌즈가 벽난로 앞에서 이미 긋고난 성냥을 던져버리며 미약하게 피어오른 불길을 부지깽이로 뒤적이고 있었고
그러자 불은 한층 안정적인 크기로 타오르며 싸늘한 집안 공기를 서서히 따스한 온기로 채워가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적막한 거실 사이로 조용히 들려오는 가운데 벽난로의 불길은 어둑한 거실을 불그스름하게 물들였고 빛을 마주한 물체들 뒤로 길고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고요하게 타올랐다.


샌즈는 프리스크에게 말없이 두 개의 안락 의자 중 하나를 가리켰다.


벽난로의 불길은 해골의 두개골을 검고 붉은색으로 시시각각 물들이며 일렁였고 그래서 그의 모습은 고뇌에 찬 듯 보이기도 했다.


"..고마워."


프리스크는 말하며 벽난로 앞에 위치한 안락의자에 앉아 자리했고 그 말을 들은 샌즈의 눈이 조금 커진 것 같았다.

...
그러나 곧 내색없이 프리스크의 맞은편 안락의자에 풀썩 주저앉은 샌즈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팔걸이에 오른쪽 팔꿈치를 기대고는 고개를 기울여 턱을 굈다.


벽난로 앞. 몸을 감싸는 따스한 온기에 차가웠던 몸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며, 프리스크는 샌즈의 입이 천천히 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전에 묻고싶은 것이 있는데, 프리스크."


...

"넌 지금까지 한 번도 내 말에 토를 달거나 의심하는 말을 꺼내지 않았어. 마치 내 말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처럼."


프리스크는 비스듬한 시선을 보내는 해골의 얼굴을 바라보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샌즈는 힘없이 피식이며 두 눈을 스르르 내려감고는,


"..이봐, 내가 술 김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너에게 저지르곤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조금은 경계하라는 듯, 그렇게 말한다.



실수.

그 말이 가리키는 것을 떠올린 프리스크의 얼굴이 대번에 붉어졌지만 이내 침착하게 표정을 굳히고는. 단호한 동작으로 고개를 내젓는다.


"..난 믿어, 샌즈."


샌즈는 작게 눈을 뜨고 불그스름한 빛으로 물든 나무바닥을 내리깐 시선으로 내려다 보았다.


"..증명할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도?"


"..그래."


..Heh,

샌즈는 묘한 웃음을 지어냈다.


"..내가 토리를 죽게한 것도 말이지."


토리엘의 이름을 꺼내 든 순간, 여태 담담하던 그 목소리가 일순 희미하게 떨린 것 같았다.


프리스크 역시 그 이름을 듣자 무릎에 모아쥔 두 손을 꽉 맞잡아 새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아주머니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셨다.
언제나 따스히 안아주던 그 품이, 한결처럼 날 걱정하며 다독여주던 손이 그토록 허망하게도.

프리스크는 입술을 사려물었다.


지난 일 년간 슬픔과 그리움을 간신히 삭여온 노력을 헛되도록 비를 닮은 감정의 결정체를 더는 쏟아내지 않기위해.


..그가 뭘 탓하는지는 잘 안다. 하지만 그건.


"..샌즈 탓이 아니야."


그렇게 말한 프리스크는 샌즈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짐작할 수 없는 표정만 짓고 있었다.


"..이 말을 기억하는지 모르겠군."

메마른 목소리는 말했다.


".. 「시간의 아무것도 확립되지 않은 불확실성, 미래는 알 수 없어 그 의미를 가진다」"


순간 프리스크는 등줄기가 선뜻해오는 소름을 느꼈다.


8년 전, 그의 입에서 들은 후로 단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그 때문에, 어릴 적 자신은 그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잠깐이나마 마음 먹었었으니까.


"..이 말을 좋아했던 적이 있었지. 시간,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의 가능성에 매료됐었어, 하지만 지금은."

말하는 샌즈의 눈구멍에서 엿보인 공허함은 죽은 생물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눈빛.


"..끔찍할 정도야."


프리스크는 샌즈의 얼굴에서 드러난 끝도 없는 절망감에 그만 눈 돌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눈을 뗄 수 없었다. 프리스크는 마치 홀린 듯, 숨만 헐떡이며 그를 보고 있었다.


"..다른 이야기를 하지."


피로함이 물씬 배어나오는 목소리.



벽난로의 불은 조용히 타올라 거실을 그 불빛으로 일렁이게 만들고 긴 그림자는 춤추듯 흔들린다.
샌즈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이 모든 것의 근원이자 불행의 시작, '세이브 포인트'에 관해서."


세이브 포인트.


그 단어에, 프리스크는 몸을 떨며 전율했다.

..모든 것의 근원이자 불행의 시작.


"..그게 뜻하는건 너도 잘 알테지. 그럼 볼까. 난 지금 네 앞에 앉아 이야기하는 중이고 아무 잘못없던 토리도.. 여전히 1년 전 사고로 죽은 채야."


토리엘의 이름을 꺼내들 때마다 분명 그 목소리는 희미하게 흔들린다. 하지만 그건 일순간일 뿐이었고, 어쩌면 착각이라고 여길만큼. 금새 평상시의 목소리를 되찾아 흘러나온다.


"..그럼 맞춰볼래, 프리스크. 내가 결국 '세이브 포인트'를 다시 제작해내는데 실패한 걸까?"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며. 그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비스듬히 기울였다.



...세이브 포인트를 다시 제작했다면, 샌즈는 이 시간선을 없던 일로 만들고 그의 시간대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건..


프리스크는 짧게. 체념으로 얼룩진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고 그 모습에 샌즈는 의미모를 미소를 짓더니 지친 두 눈구멍을 스르르 닫아내렸다.


짧은 침묵을 담아, 그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4년 전 나는, '세이브 포인트'를 다시 제작해내는데 성공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