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캐붕은 피할 수 없었다.

앞으로 대회 작업할거라 다음편 언제 올라올지 모름


참고로 * 과거  ** 현재 표시 보면서 읽어라




  *

  모든 것이 끝을 맞이한 듯 했다.
 
  수많은 시간선의 움직임을 관측해온 샌즈조차도, 실제로 마주한 태양은 이론으로 가득찬 그의 두개골 속을 환히 메꿔버린다. 하얀 뼈 표면에 닿는 온기는 체온이 없는 해골조차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온다. 모든 것을 포기해버렸는데도, 일말의 빛줄기에 매달려 집착하고 싶어진다. 그것은 삶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그러한 것일까. 샌즈는 그 경이로움을 두 눈구멍속에 꼭꼭 눌러담는다.
 
  샌즈는 흘낏, 제 옆옆자리에서 함께 태양을 바라보는 인간아이를 훔쳐본다. 이 모든 희망과 감동을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절대적인 위협요소. 아이는 인간이었다. 모든 괴물들이 갈망하던 것을 당연하게 누리는 인간이었다. 허무로 가득찬 샌즈조차 붙잡고 싶은 이 맑은 공기와 따스한 태양을 인간 아이는 금새 질려할 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면, 아이는 멋진 모험을 할 수 있었던 지하세계로 돌아가고 싶어할까. 한 번 지상을 맛본 자신은 이 기억을 가진 채 지하로 돌아갔을 때 과연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해골의 두개골 속 가득찼던 햇빛을 몰아내고, 대신 온갖 생각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그리고 그의 이성이 익숙한 방향으로 생각들을 이끌어간다. 지하에서 관측한 시간선처럼, 모든 게 제자리로 되돌아갈 거라면. 그리고 또 절망에 붙잡혀 발버둥칠 거라면.

  그렇다면 이미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힘을 가진 자를 감시하고, 의심하고, 최후에는 심판을 내릴 수 밖에.
 
  마치 괴물들마냥 정신없이 태양을 올려다보는 아이를 뒤로하고 해골은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결국 자신은 지상에서도 허무에 잠겨 익사해나가리라.



  **

 
  "샌즈, 어, 음, 그러니까... 조금은.. 자제하는 게 어떨까..?"


  파피루스가 파스타의 본고장으로 유학을 떠난 지 어언 6개월.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지만 그만큼 어리숙한 해골은 딸랑 제 집주소만 외우고 있는 듯 했다. 아침에 난데없이 십수통의 편지더미를 배달받은 샌즈는 결국 두 통의 편지를 뺀 나머지를 전부 다시 배달해줘야 했다. 전날의 여파로 부디 오늘은 집에만 틀어박혀있고 싶었건만. 샌즈는 내심 제 동생이 정말 '골'때리는 뼈다귀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헤.. 뭐가 알피스?"
  "아니, 그, 너랑, 프리스크 말야..."


  샌즈는 안절부절 못하는 알피스의 말을 적당히 흘려듣는다. 편지배달 거의 끝나갈 즈음, 샌즈는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며 그를 붙잡은 노란 괴물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테이블에 앉은 샌즈 앞에 놓인 머그컵에서 따뜻한 탄산음료의 냄새가 난다. 그는 과연 가열된 탄산음료를 더이상 탄산음료라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려다가도, 마주앉은 알피스의 꼬리가 부산스러워 결국 답할 말을 골라내야 했다. 사실 그로서는 꼬맹이에 대한 화제가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게 샌즈의 성실한 대답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두개골에 박히는 시선이 따갑지만 샌즈는 적당히 화제를 돌린다.


  "음, 꼬맹이가 오늘 여기 왔었나봐?"
  "어? 어, 맞아! 오늘 언다인이 일이 있어서 나간다고 해서 같이 애니를!... 봤거든.. 어, 그러니까 오해는 하지마. 굳이 언다인이 없을 때 프리스크를 부른 건 별 게 아니라, 그냥, 걔는 이제 냥냥고양이소녀1은 좀 지겨워하거든.."
  "그것 참 다행인걸"
  "으응... 네가 걱정할 만한 건 전혀 없었어, 절대로!"


  나랑 언다인은 아직도 뜨거우니까!.... 아니, 이건, 그, 이런 말 하는 게 아닌데... 하하...
  알피스는 허겁지겁 제 앞에 놓인 -가열된-탄산음료를 들이켰다가 인상을 찌푸린다. 그제야 샌즈는 알피스가 말한 '오해'가 무슨 '바람'이나 '치정' 비슷한 것을 의미함을 깨달았다. 정말, 상상력이 풍부하기도 하지. 물론 해골 괴물이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 점이 아니다. 샌즈에게 있어서 그 부분은 일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프리스크한테는 자신밖에 없었으니까.
  해골 괴물이 다행이라고 생각한 부분은, 언다인이 냥냥고양이소녀1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그것이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welp, 그럼 시간나면 팝한테 답장이나 길게 써줘. 그만 가볼게."
  "아, 아 잠깐 샌즈!"


  해골 몸통이 남은 편지 뭉텅이를 쥐고 일어나려다 멈춘다. 해골 괴물은 내색하지 않으면서도 그녀가 제발 본제에서 탈선한 열차를 바로잡지 않기를 빌었다. 두개골 속에서 딱히 마땅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람대로 알피스는 까먹어버린 화제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프리스크한테 말했어야 하는 건데... 언다인이 요즘 프리스크를 통 보질 못했다던데, 아쉬워하고 있다고, 좀 전해줄래?"


  그리고 그것마저 답하기 어려운 질문임에 턱뼈가 탄식을 뱉는다.


  "뭐, 노력해볼게."


  성의없지만 그것이 샌즈가 줄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다. 어정쩡한 답변에 어물쩍거리는 알피스를 뒤로하고 샌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뼈에 늘어진 탄산음료의 단내에 머리가 띵하다. 빨리 손 안의 편지 무더기를 처리하고 쉬고 싶었다.



**

  괴물들의 해방 이후 수 년이 지나고, 인간사회와의 공존이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염소 괴물과 인간아이의 집에는 일대 파란이 분다.


 '아아아아아가?..?? 목 뒤에 나 있는 그,건 대체....?'
 '아,'


  염소괴물이 발견한 것은 아이의 뒷목에 앉은 피딱지였다. 무슨 상처 하나로 호들갑을 떠냐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다만, 그 모양이 마치 이빨자국과 같았던 것이 큰 문제였다. 그리고 그 출처를 추측하자면, 아이는 바로 전날 파피루스는 없는 해골 형제의 집에서 하룻밤 묵고 온 직후였다. 애석하게도, 유추해 낼 실마리는 충분했다. 프리스크는 그 날 당장에라도 해골의 집에 쳐들어가 메테오를 날릴 기세의 보스몬스터를 말려야만 했다.
  그렇게 괴물들의 구원자 프리스크와 게으른 해골 괴물 샌즈의 열렬한 연애사실이 온 괴물사회에 퍼지게 된 것이었다.


  "열렬한 연애사실 말이지, huh"


  해골 괴물의 코없는 코웃음은 참 가볍다. 그 사건 직후 파피루스가 짐을 싸 유학을 떠나버린 탓에, 해골 형제의 집은 졸지에 프리스크와 샌즈의 신혼집이 되어버렸다. 샌즈는 어기적거리며 도착한 집의 거실 소파에 늘어졌다. 편지 배달로 하루종일 지름길을 사용해댄 탓인지 온 뼈마디가 녹진거렸다.
  부디 오늘은 아무 일 없기를. 해골 괴물은 격렬했던 지난 밤을 떠올리며 작게 한숨짓는다.


  "...시비야? 샌즈"
  "야, 꼬맹아. 오늘 알피스랑 같이 다 벗고 목욕이라도 했나봐?"
  "아 그거"


  냉장고 열다가 더워서 목티를 끌어내렸어. 미안.
  부엌에서 주전자 끓는 소리와 함께, 전혀 미안한 기색없는 무신경한 해명이 샌즈의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순간 해골의 왼쪽 눈구멍에 푸른 안광이 맴돌았으나, 이내 픽 하고 꺼졌다. 오늘마저 불이 붙었다간 이번에야말로 해골의 먼지가 납골당에 들어갈 판이다.


  "물론. 그 '뜨거운' '냉'장고 말이지.."


  그 대신 해골은 작게 -그러나 프리스크에게 들리도록- 빈정거렸다. 턱뼈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질질 끌리는 슬리퍼 소리가 점차 거실에 가까워진다. 그제야 TV에 무의미하게 고정되어 있던 하얀 안광이 도르르 굴러 소리의 근원지로 향한다. 프리스크가 거기에 서있었다.


  "그래, 온장고라고 하면 되잖아..."
  "어련하시겠어, 해골 신부님"
  "웩..."


  그거 하지마... 프리스크가 구역질하는 시늉을 하며 손에 들린 머그컵을 홀짝였다. 샌즈는 잠깐 '연인의 독설에 상처입은 해골 신랑'을 연기할까 고민하다 그만두었다. 본인도 속이 메스꺼워질 찰나였다. 대신 그는 편안한 실내복 차림의 프리스크를 관찰했다.
 
  아이의 모습은.... 솔직히 그가 보기에도 참 가관이었다.
  아마 알피스가 봤을 목부근은 울혈과 잇자국으로 엉망이었고, 그 외에 쇄골께, 반소매 반바지로 훤히 드러난 팔다리는 푸르스름한 멍자국과 피딱지로 한가득. 물론 옷으로 가려진 부분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겠지. 까놓고 말해 내성적인 알피스가 한마디 할 정도로 충분히 심각해 보였다.
  샌즈의 말대로, 만약 알피스가 본 것이 목뿐만이 아니라 홀딱 벗은 전신이었다면. 그리고 언다인에게든 토리엘에게든 그 참상을 전했다면, 그러면 그 날이 바로 샌즈의 제삿날이 되었을 것이다.


  "...좀 억울한데"
  "뭐가?"
  "아무것도."


  그래. 아무리 억울해도, 자신의 몸이 뼈다귀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한탄하는 것 만큼 쓸모없는 짓은 없다. 비록 상처입어도 표가 안나는 해골의 몸과, 그때문에 옛 동료한테 파렴치한 놈으로 찍힌다고 해도 말이다.
  샌즈는 종일 제 정신을 괴롭혀대던, 금 간 갈비뼈를 조심스럽게 감싸쥔다.


  "..."


  인간은 말없이 해골이 하는 양을 바라보더니 그의 옆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소파가 출렁거려 해골이 아이에게 시선을 보냈지만, 프리스크는 그저 손에 든 머그컵을 몇 번 홀짝일 뿐이었다. 결국 해골도 더이상 아이를 찔러대기가 귀찮아졌는지 다시 TV로 시선을 옮긴다. 아무렇게나 틀어놓은 채널에선 요즘 인기있다는 인간과 괴물간의 로멘스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화면 속 서로 부둥켜안고 키스하는 두 지성체, 그것을 보는 해골 괴물과 인간아이의 시선은 충분히 메마르고 무미건조하다.


  ['...당신을 사랑해. 인간이 아니어도 상관없어. 당신은 나한테 있어서 유일한 존재야...']


  유일한 존재. 인간이 아니어도. 괴물. 혹은 또 다른 무언가.
  이빨 사이로 흘러간 허구 속 대사를 곱씹고 있자니, 어깨뼈로 위로 무게감이 얹어진다. 문득 상념에서 깨어나 고개를 돌린 눈구멍은 바로 앞에 자리한 아이의 갈색 머리칼과 마주한다. 시야 구석으로 프리스크의 손에 걸린 머그컵이 위태로이 달랑거리는 것이 보여 해골 괴물이 친절하게 바닥으로 내려준다.


  "딱딱해..."
  "뼈밖에 안남았으니, 당연히."


  해골의 영 좋지 않은 쿠션감에도 아이는 기댄 머리를 치울 생각이 없어보였다. 샌즈 또한 핀잔을 주면서도 아이의 머리를 밀어내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는 대신 반대쪽 손뼈를 들어올려 아이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슬슬 쓰다듬어주었다. 결 좋은 머리칼이 손뼈에 휘감기며 익숙한 샴푸냄새를 해골의 코뼈 속에 남긴다.
  TV속에서는 여전히, 비극의 두 주인공이 상대방에게 제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저도... 저도 이젠 당신뿐이에요! 저한텐 당신밖에 없어요... 사랑해요..']


  평범한 하루가, 또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
 
  샌즈의 우려와는 달리, 지상에서 프리스크는 제 나이대 아이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았다.
 
  아이는 괴물들의 대사가 되어주지 않겠냐는 아스고어의 부탁을 거절하고, 토리엘과 함께 가족이 되어 지상의 생활을 시작했다. 토리엘이 괴물과 인간이 함께하는 학교를 열고나서는 프리스크도 그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아이를 감시하는 샌즈의 일은 생각보다 수월했지만 달갑지는 않았다. 해골은 매일 뼈다귀 형제의 집에 놀러오는 아이를 지켜보고, 또 토리엘과 자주 티타임을 보내면서 아이의 학교생활이 어떤지를 귀담아들었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쾌활해진 것 같아요. 좀 짓궂은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인간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다행이죠."
 
 
  토리엘이 호호 웃으며 황금꽃차를 한 모금 마셨다. 프리스크가 키드와 함께 놀러나간 틈을 타 샌즈가 어김없이 그들의 집에 찾아온 참이었다. 아무리 모든 지름길을 꿰고 있는 샌즈라 해도 학교에 있는 아이를 들여다보기란 요원치 않았기 때문에, 해골은 기회가 되면 언제나 토리엘을 보러오고는 했다. 토리엘 또한 아이가 외출해 집에 혼자 남았을 때의 적적함을 달래주는 친구의 방문을 기꺼워했다. 아마 복슬대왕님이 이 소식을 들으면 우울해하겠지, 생각하며 샌즈는 달달한 버터스카치 파이를 한 입 베어문다.
 
 
  "-다녀왔습니다."
  "어머 아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구나."
  "어, 안녕 꼬맹아"
 
 
  그러던 와중, 갑자기 거실문 너머로 나타난 프리스크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아이가 키드와 놀러나간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던 터라 토리엘은 의아해하면서도 아이를 반갑게 맞이했다. 해골 또한 놀란 속내를 감추고 입안에 든 파이를 우물거리며 인사를 건냈다.
 
 
  "..."
  "huh?"
 
 
  해골의 인사를 들은 아이는 샌즈를 지긋이 쳐다보더니, 도도도 달려와 그의 옆자리에 폴짝 뛰어앉았다. 샌즈는 순간 파이를 씹던 것을 멈췄다가, 이내 두 세번 더 씹고는 꿀꺽 삼켰다. 문제없이 삼켰는데도 마치 파이 덩어리가 목구멍 한가운데에 멈춘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그러나 해골의 겉모습은 여전히 멀쩡하게 보일 것이다.
 
 
  "후후, 프리스크가 샌즈를 정말로 좋아하네요. 가끔은 질투까지 난다니까... 아가, 파이 먹을래?"
  "..."
 
 
  토리엘의 물음에 아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토리엘은 웃는 낯 그대로 파이를 가지러 부얶으로 들어갔다. 둘만 남은 거실에서 샌즈의 옆에 앉은 프리스크는 그저 바닥에 닿지 않는 발을 휘적휘적 흔들뿐이다. 평온한 공간에, 아이도 아무렇지 않은데 그만 홀로 좌불안석인 것 같았다.

  일이 수월하게 풀리는데도 달갑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지상에 올라오고 나서부터 아이는 유독 샌즈의 곁에 붙어있기를 좋아했다. 학교가 끝나면 매일같이 뼈다귀 형제의 집에 놀러오는 아이를, 처음에는 파피루스를 보기 위해 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는 파피루스와 놀기는 커녕 늘어지게 누운 샌즈의 옆에 앉아 제가 가져온 책이나 읽기 일쑤였다. 자기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왜 굳이 본하우스까지 와서 하는 건지. 지하에서처럼 하루종일 아이의 뒤를 밟을 수고는 덜었지만, 도통 아이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으니 갈비뼈 안쪽에 불편함이 가시질 않았다.
  토리엘의 말대로 아이가 샌즈를 좋아하기라도 해서?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종족이 다른 건 둘째치고, 시간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아이를 비난했으면 비난했지, 보듬어준 적 한 번 없을 해골 괴물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면, 해골이 인간을 감시하고 있단 것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다면 굳이 감시자의 눈 앞에 알짱거리는 이유는?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고 싶기라도 한 건가?
 
  ...조건 없는 수식을 백날 붙들고 있어봐야 해답이 나오진 않는다. 샌즈는 답답한 가슴을 황금꽃차 한 모금으로 축였다.
 
 
  "꼬마, 같이 놀러갔다던 키드는 어쩌고 이렇게 일찍 온거야?"
  "...언다인"
  "음?"
 
 
  샌즈의 물음에 소파에 부딫혀 투닥투닥 소리를 내던 아이의 발이, 뚝, 멎는다.
 
 
  "중간에, 언다인이랑 파피루스랑 만나서, 키드는 거기 꼈어."
  "huh? 꼬마 넌 그냥 오고?"
 
 
  프리스크는 특별한 대답 없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 아이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언다인과 파피루스를 만나서, 피한건가? 왜?'
 
 
  그의 두개골 안쪽에 몇가지 의문이 떠올랐지만, 더 이상 답해줄 것 같지 않은 아이의 모습을 보고 샌즈는 한 발 물러났다. 대신 분위기 환기를 위해 익숙한 뼈 농담을 던졌다. "헤헤, 키드가 널 버려서 '뭐' 났구나. 바로 '골' 말이야." 그에 고개를 든 아이가 샌즈를 향해 살풋 웃음을 지었고, 직후 딱 좋은 타이밍으로 토리엘이 파이를 들고 거실로 돌아왔다. 차를 더 마시겠냐는 그녀의 물음에 샌즈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케묵은 의심이 잠시 구석쟁이로 미뤄지고, 뻥 뚫린 눈구멍을 통해 지금의 풍경이 해골의 두개골 속에 흘러든다. 작은 입에 파이를 넣고 오물거리는 프리스크와, 그런 아이를 보고 흐뭇하게 웃는 토리엘과, 향긋한 황금꽃차 버터스카치 파이의 냄새와, 거실 창문에 비치는 따스한 햇살, 지저귀는 새들, 피어나는 꽃들...
 
  심판자를 자처한 해골마저도 작게, 이 시간선이 뜯겨나가지 않기를, 마음 한 켠으로 소망했다.
 
 
 
  **
 
 
  "오늘은 달달한 게 좋아"
 
 
  식탁에 뺨을 대고 엎드린 프리스크가 웅얼거리며 말하고 샌즈는 그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인간 괴물 모두가 안식을 취하는 일요일의, 창문 너머로 새가 지저귀는 이른 아침. 놀랍게도 게으른 해골 샌즈는 잠에서 덜 깬 뼈다귀들을 질질 이끌고 부엌에 서있었다. 밀가루, 치즈, 시금치, 계란, 우유, 소금 후추 등등 키슈 재료가 늘어선 조리대 위로 잠에 취한 손뼈가 재료를 하나 추가한다.
 
 
  "달달한 게 좋으면 토리한테 가서 파이라도 구워달라 하지 그래, huh?"
  "샌즈가 그렇게 먼지가 되고싶은 줄은 몰랐는데"
  "꼬마의 난폭한 칼질보다야 보스몬스터의 화끈한 화염마법이 낫지 않겠어?"
  "그래, 그 편이 자연스럽겠네. 먼지가루가 아니라 뼛가루로 보일거야."
  "헤, 부디 등'골' 빠지게 비싼 납'골'당에다 안치시켜줘"
 
 
  전날 편지배달로 이리저리 쏘다녀 피곤한데다 아침 일찍 일어난 해골이 심통을 부리자, 여전히 온 몸에 멍자국이 가득한 프리스크 또한 해골의 짜증을 맞받아쳤다. 상대방을 향해 시선도 주지 않고 둘은 익숙하게 핑퐁을 치듯 시비거는 말을 하나씩 주고받는다. 서로를 디스하는 게 너무도 수준급이라 아마 다른 괴물들이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었다.
 
  아니, 그래. 감탄이 아니라 경악.
  샌즈는 한숨을 쉬면서 능숙한 솜씨로 볼에 계란을 까넣었다. 아마 세상 모든 괴물들은 저희를 무슨 서로에게 죽고 못 사는 커플 쯤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한 집에 같이 살고. 프리스크의 몸에는 그렇고 그런 자국이 떨어질 날이 없고. 심지어 게으르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울 해골이 이렇게 아침일찍 나서서 요리를 하고 있으니, 그렇게 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겠지. 속알맹이야 어떻더라도 겉으로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건 인정한다. 샌즈는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계란을 풀며 생각을 이어간다.
   
 
  "...경험자의 의견으로는, 별로 좋진 않았어."
  "뭐?"
 
 
  갑작스러운 프리스크의 말에 샌즈는 순간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곧 그것이 방금 전 대화의 연장선상이라는 걸 깨닫고 말을 이었다.
 
 
  "어... 비싼 납골당이?"
  "아니, 토리엘의 화염마법"


  열심히 거품기를 휘젓던 손뼈가 뚝 멎는다. "샌즈는 녹아내릴 피부가 없으니까 어떨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한텐 좀 끔찍했지." 담담하게 잇는 말이 갈비뼈 사이로 쿡 박혀들어와, 샌즈는 텅 빈 두개골 안쪽을 뒤져 아이에게 답해줄 말을 골라냈다.
 
 
  "꼬맹이 네가 화염마법을 쓸 줄 모른다는 게 유감이군."
 
 
  해골의 말에 아이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샌즈는 뜨거운 불길에 피부가 불타 녹아내리는 느낌을 상상해보려 애썼지만 뼈밖에 없는 해골에게는 요원한 일이었다. 그 사실이 샌즈의 혀로 하여금 일말의 씁쓸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래서 샌즈는 병에서 설탕을 크게 세 숟갈 퍼내어 볼 속에 넣었다. 설탕 덩어리가 달걀물에 빠지며 퐁당 소리를 냈다.
 
 
 
 
 
 
  ['제발 포기해요! 당신과 난 달라요!']
  "흠? 어제 그 드라마잖아?"
 
 
  샌즈가 완성된 키슈를 들고 거실로 나갔을 때 프리스크는 소파에 반쯤 누운 듯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거실 탁자에 우유가 든 머그컵과 키슈를 담은 접시를 내려놓으며 본 화면에는 어제 보았던 장면이 그대로 재생되고 있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그만해! 당신한텐 나밖에 없잖아..']
  "재방송?"
  "응"
  "재미있어?"
  "아니, 볼 게 없어"
 
 
  샌즈가 옆자리에 앉으며 포크를 내밀자 프리스크가 자연스럽게 받아든다. "똑바로 앉아 꼬마, 허리 나갈라" "샌즈가 할 소린 아닌 것 같은데.." 투덜거리면서도 자세를 바로잡고는 포크로 키슈를 찍어 한 입 먹는다. 해골 또한 제 몫의 키슈를 입 안에 넣고 씹었다. 달달한 필링에 감싸인 시금치가 오묘한 맛을 해골의 혀 끝에 남기는 동안, 화면 속 배우들이 어제와 똑같이 서로 부둥켜 안고 진한 입맞춤을 나누었다.
 
 
  ['...당신을 사랑해. 인간이 아니어도 상관없어. 당신은 나한테 있어서 유일한 존재야...']
  ['저도... 저도 이젠 당신뿐이에요! 저한텐 당신밖에 없어요... 사랑해요..']
  "헤.. 참 낭만적이야, 안그래?"
  "응, 그게 농담인 건 알겠네"
 
 
  샌즈가 이제껏 했던 농담중에 제일 최악이었어. 여상스레 대답한 프리스크가 머그컵에 든 우유를 호로록 마셨다. 하지만 그런 냉정한 반응에도 해골은 웃는 낯으로 농담을 계속한다.
 
 
  "왜 꼬맹아, 저 바보상자가 하는 말대로라면 꼬맹이 너랑 나도 서로를 사랑하는 거라고"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지, 샌즈..?"
 
 
  인간과 해골의 사이가 낭만적이라니, 그만큼 웃기는 얘기도 없을거라는 인간의 의견에 해골 또한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남들이 그들같은 관계를 사랑이라고 본다면, 그리고 그것이 절대 다수의 보편적인 의견이라면, 그 또한 충분히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샌즈와 프리스크에게 있어 서로가 유일한 존재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두개골 안쪽으로 이러한 논지를 펼치는 해골조차도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임의로 양 측을 나누어 진행하는 토론게임 같은 것이었다. 샌즈는 '둘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라는 논제의 찬성측 패널인 셈이다. 그리고 이제는 반대측 패널의 발언 순서였다. 샌즈는 뼈에 좋은 칼슘이 잔뜩 들어간 우유를 홀짝이며 프리스크의 말을 기다렸다. 속으로는 어떤 근거로 반박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면서.
 
 
  "샌즈랑 내 사이는 그거지, 일종의 자위행위."
 
 
  그리고 게임은 순식간에 반대측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말문이 막힌 샌즈를 뒤로하고 프리스크는 먼저 씻겠다며 화장실로 들어가버렸다. 오, 그래. 자위행위. 이보다도 둘의 사이를 설명하는 완벽한 단어가 있을까, 해골은 크게 감탄한다.
  뭐? 아니라고?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떠올려버렸군'
 
 
  샌즈는 잡생각이 들어차기 시작한 두개골을 비우려고 노력하며 남은 키슈를 한 입에 털어넣었다. 제 손으로 만들었음에도, 달콤한 키슈는 그의 입맛에는 영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