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는 꿈을 꾸었다.
꿈 속의 세상은 참 부드러웠다.
따뜻하고, 밝은 세상.
괴물들도, 인간들도, 모두가 그를 보며 다정하게 웃어주었다.


하하, 제리-


제리는 먹먹해지는 가슴을 느끼며 그들을 향해 더없이 환하게 웃었다.
누군가 그를 향해 웃어준 것이 얼마만인지...


제리가 지나가며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제리에게 웃어주는 세상.
이곳이야말로 그가 간절히 원하는 세상일 것이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그를 향해 웃어주던 사람들이 점점 더 크게 웃기 시작했다.
점점 더 크게, 점점 더 크게...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뭐, 뭐야.'


제리는 놀라서 뒷걸음질쳣으나 이미 그는 포위되어있었다.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하하하하하하하 제리-.


"싫어, 싫다고!"


제리는 귀를 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리는 그의 귀를 뚫고 들어와 뇌를 파고들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싫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고함과 함께 제리는 눈을 떳다.
온몸이 푹 젖어있었다.


'꿈이구나.'


제리는 생각했다.
그러나 제리가 채 안심하기도 전에, 그의 곁에서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푸하하하하하, 이 녀석 진짜 웃기네? 왜, 싫어? 뭐가 싫은데? 우리랑 노는게 싫어?"


장난스러운 얼굴의 소년이 그를 보며 웃고있었다.
그 소년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소년소녀들이 웃으며 제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제리는 순간 생각났다.
아아, 차라리 그 꿈에서 영영 깨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텐데.


괴물들이 지하를 벗어날 수 있게 됬을 때, 제리는 기뻤다.
모든 괴물들이 그를 싫어하지만 어쩌면 인간들은 다를지도 모른다.
인간들은 그를 받아들여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


헛된 희망이었지만.


"으에엑, 야! 이 새끼 지렸잖아! 으으, 누가 더러운 괴물새끼 아니랄까봐."


제리 근처에 쪼그려앉아 있던 주근께 소녀가 화를내며 이야기했다.
그러자 더벅머리 소년이 능글맞게 받아쳤다.


"너무 그러지 마. 옷을 입을 줄도 모르는 미개한 괴물이 어떻게 대소변을 가리겠어?
 자비로운 우리 인간들이 이해해줘야지."


제리는 밀려오는 수치심과 분노에 어쩔 줄을 몰랐다.
조금전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더러운 괴물을 깨끗이 한다며 자신을 변기에 빠뜨려 기절까지 시켜놓고는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수가!
제리가 분노하거나 말거나 소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런 너를 위해 이 자비로우신 인간님께서 특별한 훈련을 준비했으니까 영광으로 알도록!"


소년은 키득거리며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소년이 들고있는 것을 본 그의 무리들이 환호성을 보냈다.
그것은, 밧줄이었다.


"어때? 내가 준비한 목줄은 마음에 들어?"


제리의 목을 밧줄로 칭칭 동여맨 소년은 짐짓 다정한체 제리에게 질문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응? 마음에 드냐니까?"


소년은 한쪽 발로 제리를 짓밟은체로 제리의 목을 묶고 있는 밧줄을 힘차게 잡아당겼다.
제리는 고개가 꺾이며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켁-켁겍.
제리가 억눌린 신음소리를 내뱉자 소년은 잠시 밧줄을 느슨하게 놓아준 뒤 다시 한번 물었다.


"마음에 들지?"


제리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리는 늘 스스로를 혐오했지만 그 순간만큼 스스로가 역겨웠던 적은 없었다.


소년은 제리의 반응이 흡족했는지 제리를 밟고있던 발을 치웠다.
그리고는 제리를 끌고 자랑스럽게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제리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기에 제리는 몸의 이곳저곳이 쓸리고 다쳤지만 이를 악물었다.
눈물을 흘리거나 아파하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제는 털끝만큼 남은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어때. 괴물? 산책은 즐거웠어?"


아까 전, 제리에게 타박을 놓던 주근께 소녀가 비웃듯 물었다.
제리는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온 몸이 쓰라렸다.
확인하진 못했지만 지금 그의 몸은 분명 멍 자국으로 울긋불긋해져 있으리라.


소녀는 제리가 대답을 하지 않는데 대해 타박을 놓지는 않았다.
제리는 한편으로는 이를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는 스스로가 추하다고 느꼈다.


"아까 오줌 지렸다고 놀려서 미안해~. 애초에 너같은게 오줌을 가릴리가 없는데 내가 너무했지?"


그런 널 위해 준비했어!
소녀는 말과 함께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데자뷰가 느껴지는 상황에 제리는 간절히 이 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을리가 없었다.


"쨘-. 방수포대야. 기저귀를 준비하고 싶었지만, 우리집에는 아기가 없는걸?"


그 말과 함께 씌워지는 포대에 그는 기겁하였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포대에 갇혔다.


"그 안에서 오줌을 싸면 네가 그걸 다 마셔야 되니까 조심하는게 좋을걸?"


이를 본 아이들은 또다시 웃어재끼기 시작했다.
제리는 그 웃음소리에 노이로제가 생길 것 같았다.
제리는 또다시 이를 악물었다.
울지 않는다, 울지 않는다.


"야, 근데 이거 진짜 방수포대야? 그럼 이거 물가에 던져도 괜찮아?"


누군지 모를 아이의 물음에 제리는 몸을 떨었다.
물은 싫었다.
조금 전 변기에 빠진 것만해도 충분히 끔찍했다.

"글쎄? 잘 모르겠지만 상관없지 않을까? 어차피 괴물이니까 숨 좀 못 쉰다고 죽지는 않겠지."

"역시 그렇지?"

여상스러운 목소리에 제리는 그의 운명을 직감했다.
그래도 괜찮다. 참을 수 있다.
괜찮아. 이런 일, 한 두번도 아니고.


그때 이변이 발생했다.


"야!!! 니네, 당장 그 괴물을 놓아주지 못해?"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가 아는 목소리였다.


"하. 프리스크잖아? 뭐야, 성녀행세라도 하시게?
 너 괴물들이랑만 놀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거 아냐? 네까짓게 뭐라고 나서는거야?"


누군가 아이를 향해 조롱을 보냈지만 프리스크는 당당히 말했다.


"난 물론 아무것도 아니지. 난 그냥 평범한 여자애일뿐이야.
 그렇지만 반대로 물어볼게. 너희는 뭔데?
 너희가 무슨 자격이 있기에 그 죄없는 괴물을 괴롭히는 건데?
 그들은 아무 죄도 짓지 않았어.
 너희와 조금 다르다고 그게 괴롭힘 당할 이유가 되지는 않아."


아이들은 주춤거리는 듯 했다.
자루 안의 제리는 울컥했다.
누군가가 그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
그를 위해서 싸워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제리는 지금까지의 고난이 싹 사라지는 듯 했다.


프리스크는 말을 이었다.


"내가 지하로 떨어졌을 때, 난 수많은 괴물들 사이의 유일한 인간이었어.
 너희들과는 달리 괴물들은 인간을 미워할만한 이유도 충분했지.
 그런데도, 그런데도 그들은 나를 친구로 받아들여줬어.
 상냥하게 대해주었다고! 그래서 내가 그들과 함께 지상으로 나온거야.
 그런데 너희가 이런 식으로 괴물들을 대하면, 나는..."


프리스크는 이제 거의 울먹거리고 있었다.


"괴물들에게 미안해.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
 다른 인간들이 괴물들한테 어떻게 대하는지 볼때마다 내가 그들에게 죄를 짓는것만 같아.
 그들은 아무 죄가 없는데 어째서 이렇게 대우받아야 하는거야?"


아이들은 조용했다.
그들은 당황한 얼굴로 프리스크를 바라보았다.
잠시후 어떤 아이가 말문을 텃다.


"...미안해 프리스크. 제리는 이제 그만 풀어줄게."


제리는 감격했다.
그래, 아직 세상에는 희망이 있었다.
모두가 그를 싫어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단 한명일지라도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때 프리스크가 말했다.


"잠깐, 제리? 제리라고?"


프리스크는 눈을 두어번 깜빡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그럼 안 미안하네!"


말을 마친 프리스크는 그대로 뒤를 돌아 자리를 떠났다.
제리는 떠나는 프리스크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아무 근심걱정없이 가볍게 타닥거리는 그 소리를 듣던 제리의 뺨에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어라, 방수라고 하더니. 불량품이었던 걸까.'


제리는 생각했다.


그날, 한 괴물을 이루고있던 가장 소중한 무언가가 산산조각나 사라졌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