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아이들과 어울려 공을 차고 있었다. 여러 괴물과 인간 아이들이 아무런 걱정도 없이 그저 공 하나를 쫓아 다 같이 우르르 뛰어놀고 있었다. 그게 신기한 일이 아닌 당연한 모습에 문득 꿈이란 걸 깨닫는다. 하지만 굳이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는 않다. 이 순간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나는 어릴 적 모습으로 그저 공을 따라 인간과 부딪치고 괴물들과 부딪치지만 즐겁게 뛰놀고 있다. 꿈이란 걸 깨달았지만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그저 과거의 한순간을 재현하고 있을 뿐, 그리움과 슬픔으로 꿈을 그저 따라가니 가장 보고 싶었으며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네가 나타나 나에게서 공을 쉽게 가로채 간다. 열심히 따라 붙어보지만 너는 재빠르게 나를 따돌리고 가볍게 이겨버린다. 분해하는 나에게 다가와 느림보치곤 잘했다고 등을 두드리며 싱긋 웃는다.

나도 이내 따라 웃어버리고 다른 아이들이 다가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가자 한다.


나는 지는 해를 바라보고 아이들의 뒤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게 끝이다. 꿈은 깨어나고 늙은 나는 이 씁쓸한 현실에 다시 내동댕이쳐진다. 얼마나 따듯한 꿈이든 깨어나고 나면 고독과 향수에 젖어 떨 뿐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나를 차갑게 질책한다.

나에겐 향수조차도 사치일 뿐,그립다 말해서도 안 될 죄인이 바로 나다.

어째서 이제 와서 그 옛날의 꿈을 꾸는지...오늘 지나간 인간 아이를 보고 그리운 너를 떠올린 탓일까? 은근슬쩍 모른 척 인간 아이를 잡지 않고 바다 홍차를 쥐여 보낸 것도?

떨리는 손으로 침대 옆의 자리끼를 한잔 마시고 다시 누워 잠을 청해본다. 다시 꿈속에서나마 너를 보고 싶다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짊어진 내게 허락되지 않을 욕심이라고 중얼거리고 눈을 감는다. 늙으니 느는 것은 잠뿐인지 다시금 수마가 다가온다.


꿈의 시작은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었다. 인간들과 어울려 즐겁게 떠드는 괴물들의 모습.

과거엔 그랬다. 인간이 괴물과 어울려 살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친구가 되고 반려자로 삼고 평범하게 서로 존중하고 다투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시 어울리고, 그런 시간이 있었다. 나 또한 그 속에서 인간과 괴물 사이에서 평범하게 즐거웠다. 이번에는 시작부터 꿈이란 것을 인지했지만, 그저 과거의 기억을 따라갈 뿐이였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운 네가 내게 다가와 웃어준다. 너와 나는 좋은 친구였고 좋은 적수였다. 우리는 매일 함께 단련했고 전적은 어땠던가? 항상 느림보라고 놀리는 너와 꺽다리라고 놀리는 나, 그렇게 영원할 거 같은 행복한 꿈은  순간일뿐, 말 그대로 꿈같은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간다.

점차 나를 뛰어넘는 속도로 성장한 너는 아름다운 여성과 축복받은 결혼식을 올린다. 아직 너에 비해 덜 여문 나는 느림보가 크는 것도 느리다고 놀려대는 너를 그리 빨리 커봐야 빨리 죽는 거 말고 뭐 있느냐고 되받아친다.너는 킬킬 웃고는 네 아내에게 가버린다.시간은 또 빠르게 흘러간다.


차라리 지금 꿈에서 깨는 편이 나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깨어나면 두 번 다시 널 떠올리지도 못하리란 생각에 그저 계속해서 흘러가는 시간을 무력하게 바라본다.


불행한 사고가 인간과 괴물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한 괴물의 실수로 몇 명의 인간이 다치고 죽었고 인간들은 괴물들이 영혼을 흡수할 경우 생겨날 일을 알게 되었다. 점차 인간은 괴물들을 불신했고 너와 나는 이 모든 일이 그저 시간이 흐르면 잊힐 거라 믿고 서로 위로했으나 그렇지않았다. 인간은 괴물들을 두려워하며 배척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 괴물들의 분노 또한 정당하다 할 수 있겠지.

너와 나는 견해가 달랐고 마지막 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말들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헤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렇게 친구와 삶의 터전을 잃고 괴물들은 서서히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우리의 왕 드리무어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고 부당한 박해에 항거하여 결국 전쟁은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괴물들에게도 그리 나쁜 전황은 아녔다. 괴물들의 마법에 인간들은 취약했고 죽인 인간들의 영혼을 이용해서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인간의 숫자는 무시할 것이 아니었다. 점차 괴물들은 수에서 밀려나 전선은 계속 뒤로 밀리기만 했다.

나는 용감히 망치를 휘두르며 인간들을 물리쳤고 괴물들은 그런 날 칭송하기 시작했다.


이 뒤의 일을 떠올리니 당장에라도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만 내 뜻과는 반대로 점차 꿈은 나를 더욱 깊은 과거로 밀어 넣는다.


문득 이게 정말 꿈인가 의뭉스러워진다. 어쩌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 내가 주마등을 보는 게 아닌가? 어렴풋이 스친다.


어찌됫던 꿈은 계속되고 나는 꿈에 이끌려 흘러갈 뿐.

저 멀리 평야가 보인다. 아마 이게 괴물들의 마지막 전투가 되리라.이제 전황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나빴으며 더는 물러설 곳도 없다. 절망이 괴물들을 후려치지만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겠노라며 우리는 전장에 나선다. 피와 가루가 튀는 전쟁터에서 수많은 무공을 쌓은 나에게 일반병사들은 크게 힘든 적은 아니었고 최후라는 생각으로 힘을 쥐어짜네 인간들을 망치로 후려갈긴다.

드리무어 왕에게 변고가 생겼다는 전언에 사기가 떨어지는 군사들을 이끌고 계속해서 싸워나간다.

지쳐갈 무렵 제법 지위가 있어 보이는 자를 발견한다. 저놈이라도 잡아서 어떻게든 사기를 올려야 한다 생각하고 있는 힘껏 등을 노려 내려치지만, 그 자는 손쉽게 피해버리고 나를 베려다 순간, 시간이라도 멈춘 듯 공격을 멈춘다. 그 틈에 자세를 가다듬고 제 이격을 날리지만 역시 쉽게 막아낸다.

이 적은 만만치 않은 상대란 걸 빠르게 깨닫지만 물러설 곳도 없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전사는 물러서선 안 된다고 되새기며 미친 듯이 공방을 나눈다. 적의 검은 어딘가 눈에 익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치 않다. 눈앞의 적을 물리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멈추지 않는 나에게 공격을 주저하는 적은 조금 어렵지만 해치울 수는 있을 거 같다.


어쩌면 풋내기일지도 모르지 라고 중얼거리고 내려치는 망치를 비스듬히 받아내는 적의 등 뒤에 아군이 나타나 마법을 쏘아낸다. 저자는 반사적으로 마법을 피하고 나의 전우를 쉽게 베어버린다. 분노한 나는 방어를 포기하고 뛰어들어 망치를 휘두른다. 적은 순간 엄청난 속도로 내 목을 찔러오기에 죽음을 떠올리지만 어째서인지 마지막 순간에 검을 놓아버린다. 문득 의문스럽지만 내 공격은 멈추지 않고 적의 머리를 투구 채로 날려버린다.







나는 돌아서서 가려다가 적의 수급을 취하고 왜인지 모르게 투구를 날아간 머리에서 벗겨 낸다.

늙은 인간의 머리가 찌그러지고 한쪽이 터져나간 잔혹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왠지 그 인간은 웃고 있다.


나는 등을 타고 오르는 뭔지 모를 감정에 지금이 전쟁터 한복판이란 것도 잊고 그 머리를 빤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나는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다. 그리고, 인간들의 마법이 드디어 발동되었다.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며 정의의 망치 거슨이라는 분에 넘치는 칭호를 받았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나의 비극 따위는 괴물들의 상황에 의해 전공이라는 말로 포장되었으며


더러운 살인자일 뿐인 나는 영웅이라 칭송받는다.


나같은 것을 존경한다는 자들이 나타났으나 나만큼은 잊어선 안될 것이다.


내 친우는 나를 알아보고 나 대신 죽음을 선택했으며 나는 그저 더러운 살인자일 뿐이다.


이 꿈은 나를 붙들고 내가 가장 외면하고 싶던 것을 보여줬다.

나는 사실 그게 내 친우란 걸 알면서도 망치를 휘둘렀고 친우의 머리를 날려버리던 나는 웃고 있었다.

전쟁은 그런 것이었다. 한때 목숨보다 소중했던 친우를 광기에 물들어 죽여버린 나는 얼마나 끔찍한 괴물인지.

그런 추악한 괴물을 위해 목숨을 버린 너는 얼마나 자비로운 인간이었는지.

이 지하세계는 마치 나를 위한 감옥 같다고 생각한다 하면 너는 뭐라 말할까? 




죽을 용기도 없는 늙은 괴물은 꿈에서 내쫓겨 잔혹한 현실에 떨 뿐이다.





전쟁은 위대한 서사시와 위대한 영웅을 남기는 게 아니라 욕심과 자만에서 탄생되며

남는 건 눈물과 고통, 피만 남게되는 비참한 것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클라우제비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