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크가 시한부인 이야기.


하이퍼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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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프리스크는 태어나서 일탈이란 것을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


온통 새하얀 벽과 새하얀 침대, 새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온통 알파벳인 무늬가 아로새겨진, 새하얀 옷을 입은 자신.


그것이 프리스크가 기억하는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침대에 가만히 앉아, 가만히 시간을 보낸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 한창 뛰어놀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무리임이 분명했다.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인형엔 이젠 눈길조차 가지 않았고, 심심할 때 읽으라고 부모님이 가져다준 책은 수십 번도 더 읽은 뒤였다. 게다가 좀이 쑤시는 것을 견디지 못해 병실 밖으로 나갈 때면, 어김없이 새하얀 옷을 입은 간호사가 와서 이런저런 말로 타이르며 다시 방안으로 돌려보내곤 했다.


그래도 한 때는 가족들이 꼬박꼬박 병문안을 와주었다. 어렸을 적부터 입원해있느라 변변찮은 친구 하나 없던 프리스크에게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은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을 정도였다. 가족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매번 새로웠고, 구석에 놓인 그림동화 따위보다 훨씬 재밌었다. 프리스크도 대화에 충분히 목이 말랐던 터라, 침대에 밖에 앉아있지 못하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뭔가를 얘기해주려고 매일매일 애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족들의 방문은 뜸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언제까지고 자신과 같이 있어줄 순 없는 노릇이다. 가족들에게도 가족들 나름의 삶이 있고, 프리스크도 프리스크 나름의 삶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기다려도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는 가족들이 밉기도 했다. 그러나 프리스크는 떼를 쓰지도, 울지도 않았다. 외로움에는 충분히 익숙해져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게다가 자신이 병실에서라도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족들 덕분이 아닌가. 떼를 쓴다니, 배가 부른 것도 정도가 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침대에 누워 무료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중, 병실 바깥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프리스크는 가족들이 왔음을 직감하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강아지처럼 쪼르르 달려가 문을 열고 가족들을 반갑게 맞이할 참이었다. 오랜만의 방문에 잔뜩 들뜬 프리스크는 가족들과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있었다. 하지만 방 밖에선 뜻밖의 소리가 들려왔다.


프리스크를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 한마디에, 프리스크는 문고리를 잡으려다 말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지금 대체 무슨 말을 들은 거지? 프리스크는 스스로의 귀를 의심했다. 문 밖에 있는 가족들은 그런 정황은 전혀 모른 채 이야기를 계속했다.


불치병인 애를 언제까지 입원시킬 순 없잖아요.”


문밖에선 충격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한 아이를 몇 년이나 병원에 입원시킨다는 게 꽤 돈이 나가는 일이란 것은 프리스크도 자각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가족들에겐 항상 미안한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프리스크라고 병실 생활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루빨리 나아서 훌훌 털고 일어나 자신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고 싶었다. 가족들이 자신에게 신경써준 만큼, 빨리 퇴원해서 가족들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럼 당신은 프리스크를 어쩔 생각이란 말이야?”


그만.


차라리 못 나을 거면 안락사라도……


그만, 그만. 그만!

프리스크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울분이 뒤섞여 순식간에 머릿속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자신을 마치 물건처럼 말하는 게 참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문밖에서 말하는 게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들려오는 건 틀림없는 부모님의 목소리였다. 쿵쾅쿵쾅. 심장 고동이 멈출 생각을 않고 빨라져만 갔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가슴 부근에서 끔찍한 아픔이 느껴졌다.


…… 아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프리스크는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에 엎어졌다. 카학, 쿨럭! 기침을 하자 입에서 피거품이 올라왔다. 그때서야 언젠가 간호사가 신신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화가 나거나 울 것만 같이 감정이 격해지면 큰일이 날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만약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하겠으면 침대 옆의 부저를 누르거나 도움을 청하라고. 되도록 빨리.


프리스크!?”


벌컥. 프리스크의 비명을 들은 가족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은 제각각 입을 틀어막고 놀라거나 의사를 부르며 프리스크의 몸을 흔들었다. 어째서 쓰러졌는지는 알지도 못한 채. 흐릿해져가는 시야 너머로 곧 의사가 나타났다. 의사선생님. 도와줄 필요 없으니까 죽게 내버려두세요. 할 수만 있다면 프리스크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는 황급히 프리스크를 들어서 침대에 눕혔다. 프리스크를 보며 다급하게 무어라 외치는 가족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프리스크의 의식은 곧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다시 프리스크가 눈을 떴을 땐, 여느 때와 같은 병실이었다.

가족들은 곁에 있지 않았다. 아마도 일이 바빠 돌봐줄 시간이 없던 거겠지. 분명 옛날이라면 이렇게 말 한마디 없이 떠난 게 굉장히 섭섭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곁에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프리스크는 평소와 같이 가족들을 대할 자신이 없어졌다. 가족들의 얼굴을 봤다간 자기도 모르게 심한 말을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프리스크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가족들이 바라는 대로 해주리라. 언젠가 가족들이 들려준, 돌아오지 못하는 산의 전설이 프리스크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사박, 사박.

흙이 밟히는 소리조차도 프리스크에겐 새로웠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생생한 바깥 풍경인지. 갑갑한 환자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니 살 것 같았다. 의사가 격한 운동은 삼가라고 일렀던 것 같지만, 이제 와서 그런 걸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얼마나 올라왔을까. 저 멀리 굴 비슷한 게 보였다. 한달음에 달려가자 깊디깊은 구덩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면, 프리스크는 태어나서 일탈이란 것을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



온통 새하얀 벽과 새하얀 침대, 새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온통 알파벳인 무늬가 아로새겨진, 새하얀 옷을 입은 자신.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앞으로도 그런 풍경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다신 돌아가지 못할 테니까.




프리스크는, 그대로 마지막 발걸음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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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필이니 가독성 뭐같은 부분은 감안해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