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크가 시한부인 이야기.


하이퍼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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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스크는 눈을 꼭 감았다. 언제선가 죽으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못하게 된다고 하던데, 프리스크는 그 말이 사실이길 바랐다. 천국이나 저승도 프리스크에겐 전혀 필요 없는 것이었다. 그저 이대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게 되길. 그냥 편해지길. 버림받을 걱정도, 매일매일 혼자인 외로운 시간도, 이따금씩 찾아오는 끔찍한 고통도, 부탁이니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이젠 모두 지쳤다. 물론, 프리스크가 이렇게 간절히 빌지 않더라도 그 소망은 곧 이루어질 터였다. 빠르게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느껴졌다.


 쿠웅.

 바닥에 몸이 닿았다. 분명히 이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어라? 예상 외로 약한 충격에 프리스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프리스크의 몸 아래에, 조금 짓이겨진 황금빛 꽃 한 무더기가 자라있었다. 프리스크는 이번엔 위를 올려다보았다. 구멍 너머로 햇빛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구덩이는 프리스크가 생각한 것만큼 깊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떨어진다면 충분히 위험한 높이임은 자명했다. 그러나 프리스크는 죽지도, 크게 다치지도 않았다. 프리스크는 손으로 황금꽃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폭신한 잎이 느껴진다. 이 꽃 무더기가 완충작용을 하는 바람에, 죽지 않았다고?


 “하, 하하.”


 허탈하다.

 내 결심이 불러온 결과가 겨우 이 정도란 말인가. 프리스크는 자조하듯이 웃음을 흘렸다. 요즘 너무 말을 안 한 탓일까. 웃음소리를 내는 것도 힘에 부쳤다. 잠시 멍하니 앉아있던 프리스크는, 몸을 돌려 황금꽃 무더기에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다신 돌아오지 못한다는 산의 전설이 갑자기 웃기게도 느껴졌다. 확실히, 떨어지면 다신 돌아오지 못하긴 하겠다. 프리스크는 다시 킥킥 웃었다.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 병든 몸을 끌고 애써 산까지 올라온 자신 또한 바보같이 느껴졌다.


 꼬르륵.

 그러던 와중, 프리스크의 배가 뜬금없이 소리를 냈다. 생각해보니 밥도 먹지 않고 산을 올랐구나. 프리스크는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그래도 황금빛 꽃 무더기에 가만히 누워있다가 밥을 못 먹어서 죽게 된다는 건 싫었다. 적어도 스스로의 결심으로 죽고 싶었다. 몇 년 동안이나 프리스크를 괴롭혀온 병마나 다른 외부적 요인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건 사양이었다. 게다가 아직 몸은 멀쩡하다. 살날이 어느 정도는 남아있다는 거겠지. 프리스크는 꽃을 밟지 않게 조심스레 일어났다. 이미 몸으로 깔아뭉갠 주제에 뭘 조심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밟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어난 프리스크는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그러자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탓에 미처 보지 못했던 지하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서진 기둥들. 먼지투성이인 벽과 바닥. 한때는 이곳에 누군가 살았던 건가? 마치 유적 같은 생김새에 프리스크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두렵기도, 흥미롭기도 했다. 프리스크는 황금꽃 무더기를 뒤로 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구멍에서 들어오던 빛은 멀어지고, 보이는 것은 온통 어둠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프리스크는 새하얀 병실보다는 낫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곧 프리스크의 눈앞에 거대한 입구가 보였다. 그리고 그 입구 너머로 또다른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프리스크가 입구를 지나 그 빛으로 가까이 다가가려던 찰나.


 “반가워! 난 플라위야! 노란꽃 플라위!”


 별안간 피어있던 황금꽃이 인사를 건넸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프리스크는 깜짝 놀라 그만 제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게다가 꽃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꽃 한가운데에 본디 있을 리 없는 얼굴이 있던 것이다. 자신을 플라위라고 소개한 꽃은 당황한 프리스크를 유심히 보며 말했다.


 “흐음… 너, 이 지하는 처음인가 보구나. 그치?”


 달리 할 말도 없었기에 프리스크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듣곤 다시 꽃은 벙글대며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정말 정신없겠네. 이곳이 어떤 곳인지 누군가 알려줘야겠는데!”


 꽃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프리스크도 아직 당혹감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까지고 혼란스러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지하에선, 꽃이 말하는 것이 당연한 걸지도 모르니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야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중에는 나무가 말을 하고, 길거리에 자라난 풀들이 자기들끼리 떠드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꽃이 말을 한다고 나무랑 풀도 말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조금 아닌가? 애초에 지하에 나무나 풀이 있기는 할까? 


 “준비됐어? 간다!”

 

 한참 혼자서 이것저것 생각하던 중, 꽃의 말에 프리스크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공중에 무슨 동글동글한 알갱이가 여러개 떠있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하는 와중에 꽃이 친절 알갱이인가 뭔가를 말한 것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던 알갱이들은 프리스크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우선 친절이라니까, 안 받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프리스크는 알갱이들을 받을 요량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알갱이들은 프리스크가 뻗은 손을 그대로 지나쳐, 프리스크의 가슴으로 향했다. 그 순간, 시종일관 생글대던 꽃이 갑자기 사악한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


 그제야 프리스크는 깨달았다. 친절 따위가 아니었다는 걸.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가슴을 찢어발기는 듯한 격통이 찾아왔다. 프리스크는 뭔갈 해보기도 전에 그 끔찍한 고통에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콜록, 콜록! 기침을 하자 입가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프리스크는 가슴 언저리를 부여잡고 끅끅대며 신음을 내뱉었다. 옷이 찢어진 것도 아니고, 가슴에 구멍이 난 것도 아니다. 대체 무얼 어떻게 한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프리스크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보자 플라위는 소름끼치는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멍청하긴. 정말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모양이지, 응?”


 프리스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대체 왜 이러냐고 물으려 했다. 그러나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아직도 프리스크를 괴롭히고 있는 끔찍한 고통에 프리스크는 정신을 놓지 않도록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그 모습에 플라위는 만족스럽다는 듯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들어. 이 세상에선 죽이지 않으면 죽는 거라고. 알아들었어?”


 다시 한 번 허공에 프리스크의 가슴을 꿰뚫었던 둥근 알갱이들이 나타났다. 도망쳐야해. 프리스크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힘이 풀린 다리를 질질 끌며, 손을 뻗어 다시 반대편으로 기어가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몸이 생각대로 따라와 주질 않았다. 프리스크는 몸을 일으키려다 그만 엎어지고 말았다. 허공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알갱이들은 이미 프리스크를 겹겹이 둘러싼 채 날아오고 있었다.


 죽기 싫어.


 이렇게 죽기 싫어.


 프리스크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생각했다. 죽기 위해 산을 오르긴 했지만, 이렇게 비참하고 아픈 죽음을 맞이할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회한이 프리스크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이렇게 죽기는 싫다.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린 아이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도움을 구했다. 제발,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 부탁이니까, 제발…


 그때였다.

 프리스크를 가득 둘러싼 알갱이들이 막 프리스크의 몸을 꿰뚫으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아픔이 사그라드는 게 느껴졌다. 프리스크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방금까지 그렇게 많던 알갱이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플라위도 당황했는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곧 어디선가 불빛이 깜빡이는가 싶더니, 커다란 불덩이가 날아들어선 플라위에게 직격했다. 


 “으아아악!”

 

 꽃은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버렸다. 신기하게도, 주변에는 어떤 피해도 끼치지 않은 채 정확하게 꽃만 공격한 듯 보였다. 그러나 감상도 잠시, 어둠 너머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프리스크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프리스크의 앞으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괜찮니, 아가야?”


 어둠 속에서 나타난 누군가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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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0편이 1편이었는데 그건 프롤로그 격이니까 그냥 0편으로 바꾸고 이번 화부터 1편으로 친다.




그리고 한 토리엘 집까지는 원작 노선 그대로 따라갈 예정...이긴 한데. 지루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을 것 같다


의지를 갖고 봐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