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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이야기ㅡ

인간과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결국 죽음을 택했다.

누구도 나를 찾지 못할 장소, 에봇 산의 가장 깊은 곳에서 투신자살로.

그런데 의식을 되찾은 나를 반기는 건 핑크색으로 칠해진 이상 취향에, 머리가 어질어질 할 만큼 추상적인 퍼즐들과 위험하게 아가리를 벌린 함정들.

그렇다고 그것들에 목숨의 위협까지 느꼈었냐면?

분명 그건 아니다. 분명 퍼즐들은 교묘하고, 복잡했다. 위에서 전체적으로 바라봐야 해결할 수 있는 것들, 근육질의 남자나 옮길 수 있을만한 돌덩이를 움직여야 했고,

진짜로 살의가 돋보인 달까, 까딱하면 황천길 걷게 될 함정들도 많았다.

그래도 누울 장소 찾아가며 발 뻗으라고,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이동해 나간다면, 이곳을 탐험하는 게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가장 기본적인 식수와 식량은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걸어 나가다 보면 센스가 돋보이게 조각된 분수들, 그리고 아마도 함정에 이용될 물이 흐르는 길도 자주 보였다.

먹을 것은 어떠냐 하고 물으면, 이곳의 기상천외함에 의지했다.

정말 이상하지만, 식수와 마찬가지로 함정을 해치고 나가다 보면 책상에 놓인 치즈, 샌드위치, 심지어 도넛들까지 보일정도로 널려있었던 것이다.

초콜릿이 없는 건 아쉽지만 의외로 맛도 있어서...이 상황이 기쁘게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역시, 물이 있는 곳에 생명체가 있고, 음식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는 법.

이것들은 역시 누군가가 이 폐허에 존재한다는 증거 역시 될 수 있기 때문에, 기쁘게만 받아 들일 순 없었다.

솔직하게, 굳이 비유하자면 이 유적은 마치 조금 흉악함을 가미한 어린이들 놀이터들 같다.

위험함의 극복을 최고의 쾌감으로 느끼는 암벽 등반이나 낚시 ㅡ 방심하다 익사로 죽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ㅡ 같은 걸 즐기는 사람들, 위험함의 극복을 최고의 쾌감으로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아무튼 이렇게 대략, 아마 열 시간 정도 이 폐허를 탐험했는데, 구조가 단순하진 않지만 익숙해진다면 의외로 좁게 느껴질 정도로, 같은 배경색 때문인지 모르겠지만...이제는 반복되는 타일의 배경색에 조금 친근함도 느껴진다.

그렇다 해도 처음 보는 장소에서 방심은 금물이기에.

머릿속 지도에 완전히 구조를 끼워 넣으려 쉴 틈 없이 이동 중이었다.

그래.

그러던 중이었는데.

곤란해.

“개굴.”

이러면 곤란하다.

“개굴개굴.”

개구리.

탐험 열 시간째, 내가 가장 먼저 만난 동물은 의도치 않게 개구리로 결정 되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눈을 어지럽히는 핑크빛 폐허의 수로.

이곳에서 개구리와 차라는 대치했다.

차라는 마음속에서 꾸물거리는 황당함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폐허의 탐험을 개시한지 대략 열 시간 가량이 지나고.

변방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비록 재능을 밝힐 수 있을 만한 일은 없었지만.

그녀는 본인도 모르게 어마어마한 암기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적응한 차라는 대략적으로나마 폐허의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차라는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이곳의 지리를 완벽히 파악하기 위한 탐색의 준비를 하기 위해, 혹시 모를 식량과 식수의 부족에 대한 대비를 하려했다.

폐허로 입성하고 나서, 정신이 반쯤 빠진 상태에서 일어 난 것을 기억해낸 차라는 다시 한 번 꽃밭으로 돌아갔다.

다행이도 에봇 산을 오를 때 사용 했던 짐들은 그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어 그 중 사용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챙겨 돌아 올 수 있었고, 그 중에는 물주머니로 사용했던 가죽 주머니도 있었다.

그래도 배부른 흥정이라고, 꽤나 더럽혀져 있던 물건들에 드는 찜찜함을 견디긴 힘들었다.

그래서 식수의 보충의 덤으로 세척도 할겸 머릿속의 지도에 몇 번 이고 동그라미를 겹쳐놓은 이곳의 수원으로 보이는 분수로 이동했다.

그리고 지금의 대치상황.

분명 분수가 있는 방의 문은 각져 있어서 갑자기 나타난 생물체에 당황할 법도 했다.

하물며 아직 앳된 티도 벗지 못한 어린 소녀이지 않은가.

하지만, 차라리 평범한 개구리였다면 이 당찬 소녀에게는 한낱 장애물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마 등장과 동시에 발로 차여 날아갔겠지.

그런데 이 개구리, 아니, ‘괴물’은...

‘크다.’

평범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보통의 양서류라면 발 크기하나를 넘지 않는다.

도룡뇽, 영원, 그러니까...개구리 같은 것들.

이 어린 소녀는 영리했지만 소와 염소이외에 자신보다 큰 동물을 본 적은 없었다.

어딘가에 어린 아이보다도 큰 거대한 도마뱀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있지만 그건 논외였다. 눈앞에 있는 것은 평소에 무난하게도 보아왔던 그 생물이었으니까.

차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한 번 눈앞의 녹색 생명체를 살펴보았다.

신장이 압도적으로 큰 건 아니었다. 차라와 눈이 맞을 정도의 크기.

초록색 피부는 양서류답게 번들거리고 있었고 커다란 눈과 발과 그 갈퀴는 명백하게 개구리의 생김새였다.

그리고 다시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그 눈과 마주했다.

그런데 그 때.

“아. 아. 알아듣나 인간 이제?”

“....!?!?”

인간의 말이 튀어나왔다! 개구리의 의성어대신!

뒤로 자빠질 뻔한 몸을 가까스로 잡았지만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어린애 같은, 아니, 문법을 아예 뒤집어 놓은 듯한 말이었지만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차라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쩍 벌리고 있는데,

“프로깃 나는 라고 한다네.”

“프로깃.”

자신도 모르게 그가 말한 것을 ㅡ 아마도 그의 이름이겠지 ㅡ 중얼거렸다.

비현실적인 상황속 에서도 차라가 든 생각은, 이상하게도...

“멋진 이름이네요.”

“그런가. 맙고군. 소녀.”

“풉.”

푸하하하하하하하ㅡ

차라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곧 폭소하기 시작했다.

개구리, 프로깃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쉽게도 프로깃은 꽤나 똑똑한 편이었다. 곧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달은 그는 그 큰 눈을 내리깔았다.

아마도 부끄러워하는 듯 했다.

“그, 그렇군. 잘못 되었는가 문법이. 것은 오랜만이다 인간과 대화하는.”

“크크크...”

여전히 당황하는 프로깃과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폭소하는 소녀.

둘의 단순한 대화는 십 분후 프로깃이 역정을 낼 때까지 계속되었다.


핑크빛 폐허ㅡ지하세계에서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