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되살아난 지하세계의 왕자는 그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하였다. 감정을 되찾고자 하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낙담했다.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 했다. 그 시도는 분명 성공하였다.

하지만, 만약 영혼이 없어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는 걱정했다. 그러자 그의 안의 어떠한 본능이 안에서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다. 죽고 싶지 않다고, 살고 싶다고.

꽃은 깨어났다. 마치 모든 것이 나쁜 꿈인 것만 같았다. 꽃은 정원으로, 그의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와 있었다.

흥미로워서, 꽃은 실험을 하나 해보기로 하였다. 계속, 계속해서, 그는 자기 자신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붙였다. 언제라도, 이 세계에서 자기 자신을 지워버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게 살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 한, 그는 돌아올 수 있었다.

놀라운 결과였다. 동시에 위대한 힘이었다. 세상을 순수한 의지만으로 새롭게 바꾸는 힘. 그가 손에 넣은 것이었다. 세이브와 로드만 있으면, 꽃은 모든 것이 가능했다. 모두를 패배시킬 수 있었고, 자신 앞에 무릎 꿇게 할 수 있었다. 그 누구라 해도 신의 능력을 가진 꽃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 신이 된 꽃은 즐거워했다.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게 되기까지 잠깐은.

그리고 그것은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혹은 단순한 변덕, 그것도 아니라면 사소한 우연. 어리고 약한 괴물이 있었고, 지하세계에서 자연스레 도태되어도 이상할 것 없는 존재는 큰 위험에 빠졌다.  그런 괴물 수천 마리를 지배하고 손아귀에서 가지고 놀았을 터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반대였다. 꽃은 로드를 해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갔고, 위험에 빠질 괴물을 손쉽게 구해냈다.

그가 첫 번째로 자신의 능력을 선한 일에 사용한 순간임과 동시에 두 번째로 누군가와 친구가 된 순간이었다. 지하세계를 가득 채운 어둠에 채 물들지도 않은 괴물이 자신에게 감사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는 알 수 있었다. 공허하고 빈 껍데기와도 같았던 꽃을 채워준, 오래전 이 지하에 떨어진 아이와도 같은….


폐허에 한 아이가 떨어졌다. 아이와 마주치자 자신을 플라위라 소개한 꽃은 아이에게 지하세계를 안내해주려 했다. 그때 폐허의 관리자, 토리엘이 플라위를 불꽃 마법으로 날려버리고 아이를 데려가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플라위가 한참 후 정신을 차린 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인간 아이가 위험해!' 이 한 문장이었다. 플라위는 재빨리 자신의 세이브 파일을 불러오려 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인간 아이의 의지 때문이었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이의 의지는 플라위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렇게 세이브와 로드의 힘은 플라위에게서 아이에게 넘어갔다.

지하세계는 위협이 가득 도사리고 있어, 어린 아이가 버텨내기에는 힘들다. 하지만 아이는 의지를 놓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법 탄환들을 피해, 괴물들에게 자비를 보여줬다. 그리고 숨어서 아이의 뒤를 밟던 플라위는 그 모든 자비를 지켜보았다. 그 자비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고 플라위는 생각했다.

플라위의 예상과는 달리 토리엘은 아이를 해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아이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아이가 폐허를 나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자 토리엘의 태도가 바뀌었다. 결국 그녀는 폐허의 밖으로 통하는 문 앞에서 아이를 죽여서라도 이곳에 남기고자 하였다. 토리엘은 폐허의 다른 괴물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그녀의 집착을 꺾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이가 그녀를 죽이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아이는 지금까지 그러했듯 자비를 베풀었다. 화염구가 바닥에 튕겨져 뜨거운 세례를 쏟아내고, 불꽃이 엮여 만들어진 사슬이 벽을 치고 난무를 펼치는 그 중간에 서서 그녀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자비에 광증어린 그녀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꺾인 것은 아이의 의지가 아닌 토리엘의 집착이었다.

플라위가 괴물들의 감시를 피해 겨우 폐허 밖으로 통하는 문 앞까지 도착했을 때, 전투는 이미 끝나있었다. 토리엘이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아이에게 문을 열어준 것을 본 플라위는 아이가 그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떠올렸다. 그가 첫번째로 누군가와 친구가 되었던 순간을, 지하세계에 처음 떨어진 그 자비로운 인간을. 플라위는 문 밖을 나서 앞으로 향하는 아이의 뒤를 황급히 붙잡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너 Chara 맞지, 그렇지?"

훗날 지하세계와 괴물들의 구원자는 말했다. 그 노란 꽃은 정말이지, '나의 최고의 친구'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