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ence


01 02


03 - 방치되다.



프리스크와 토리엘은 다음 방에서 멈췄다.

토리엘이 프리스크를 조금 걱정스러운 듯 머뭇거리며 쳐다보았다.


"저기.. 아가."

"네? 왜 그러세요?"


인형이 덩그러니 서 있는 방에서, 토리엘은 무릎을 꿇고 프리스크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리고 망설이는 듯이 입을 우물거리다가 겨우 말을 내뱉었다.


"잘 들으렴. 이곳의 모든 괴물이 나처럼 상냥하지 않단다."

"으음.. 네.. 역시 타인에게 친절하기는 어렵죠.."

"그래. 잘 알고 있구나. 그걸 알고 있어서 다행이란다."


토리엘은 일어난 뒤, 인형 뒤의 벽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벽과 같은 색의 판자가 떨어지고, 그 안에서 조금 날카로워 보이는 장난감 칼을 프리스크에게 쥐여주었다.

토리엘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정말로 이걸 줘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토리엘의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아가. 이 장난감 칼로 저 인형을 찌르렴. 대화로는 도저히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거란다."

"네..?"


손에 들린 장난감 칼은 매우 가벼웠다.

손만 대서는 베이진 않겠지만, 힘을 실어 휘두른다면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프리스크는 토리엘에게 어깨를 붙잡히고, 강제로 인형 앞에 세워졌다.


"아가.. 때로는 폭력이 필요하단다."


프리스크는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인형과 자신에 손에 들린 장난감 칼을 번갈아 보았다.

손이 떨리지만, 어떻게든 두 손으로 장난감 칼을 꽉 쥐었다.

그것을 본 토리엘은 차마 못 보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장난감 칼이 바닥을 나뒹군다.

프리스크가 선택한 것은 무기를 버리고 인형을 안아주는 일이었다.


"아가..?"

"아주머니.. 괜찮아요. 누구든지 웃으며 있으면 제가 조금 다치는 것으로 끝나니까요."


프리스크의 대답에, 토리엘은 프리스크의 어깨를 붙잡고 마주 보았다.

그리고 다급한 표정으로 프리스크를 다그쳤다.


"오, 맙소사.. 아가.. 안돼, 그건 안되는 생각이란다!"

"아니요. 여기도 다를 바 없을 거예요."

"..아가..."


토리엘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프리스크를 꼬옥 안아주었다.

프리스크는 지상에서 받아보지 못한 애정을 토리엘에게서 받았다.

괜스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품은 상상보다도, 따스했다.


"저, 저기.. 숨 막혀요."

"오, 미안하구나,아가.. 그럼, 내가 이 폐허를 안내해주마."


토리엘은 프리스크의 손을 잡고 폐허 안을 돌아다녔다.

프리스크는 그런 토리엘의 친절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눈앞에 프로깃이 나타났을 때는 호기심에 인사를 건네었다.

하지만, 토리엘이 그 앞을 가로막은 뒤, 프로깃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프로깃은 야옹- 하는 소리와 함께 도망치듯 사라져버렸다.


"아가. 여기는 꽤나 위험하단다. 해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기 몸은 지켜주렴."


토리엘은 어느샌가 주워온 것인지, 장난감 칼을 프리스크에게 건네주었다.

프리스크는 이걸 가져가지 않으면, 토리엘이 더 걱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 넣었다.

물론 프리스크는 그걸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가시 퍼즐을 넘어가고, 긴 복도가 나타났다.

토리엘은 프리스크를 흘끔 보다가, 손을 놓고 프리스크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가, 이 복도를 하얀 기둥이 있는 데까지 혼자서 걸어올 수 있겠니?"

"그건 어렵지 않지만.. 왜요?"

"그저.. 네가 혼자서 끝까지 와주었으면 해서란다. 먼저 가서 기다리마."


토리엘은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프리스크는 고개를 갸웃 이며 그 복도를 끝까지 걸어나갔다.

그저 묵묵히 걷고, 걸어서 하얀 기둥 옆에 서 있는 토리엘을 발견했다.


"다리가 아프진 않았니?"

"으음.. 이 정도는 괜찮았어요. 갑자기 왜 그러세요?"

"조금, 네가 기다려야 하는 일이 생각나서 말이다. 네 자립심을 시험해 본 거란다."


토리엘의 말에 프리스크의 표정이 살짝 미안해졌다.


"아, 설마 제가 방해한 거에요? 어.. 죄송해요.."

"오, 아가. 아니란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저 내가 여태 까먹고 있었을 뿐이란다."


토리엘은 프리스크가 참을성도 많고, 상냥한 아이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아이답지 않게 기대는 법을 거의 모르는 듯 보였다.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지하에 떨어지는 모든 아이들이 어딘가 아이다운 면이 조금씩은 없었던 것이다.


토리엘은 프리스크에게 조금 커다란 휴대전화를 주었다.


"아가, 무슨 일이 있거든, 이 버튼을 누르렴. 그럼 내게 전화가 올 거란다."

"알았어요. 여기서 기다리면 되는 거죠?"

"그래.. 그럼, 금방 다녀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렴."


그렇게 토리엘은 프리스크의 곁을 떠났다.

프리스크는 복도 너머로 사라져 가는 토리엘을 쳐다보다가, 기둥 앞에 쭈그려 앉았다.


"으으.. 아파라..."


프리스크는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았지만, 상처 난 다리가 꽤 아팠다.

피는 멎은 듯 보였고, 감싸고 있던 노란색의 끈은 이미 붉게 물들어있었다.


"아, 이거 어떻게 하지.. 빨리 안 지우면 이대로 남을 텐데.."

"...떨어졌네."


누군가의 목소리에 프리스크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눈앞에는 아까 본, 그 꽃이 있었다.


"..뭐, 그녀도 널 여기에 혼자 두는 건 맘에 안 들 테지만."


프리스크는 공포에 질렸다.

그리고 아픈 다리를 신경도 안 쓰고 일어나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아픈 다리에 갑자기 힘을 주어도..

넘어질뿐이다.


"됐어. 그녀가 널 만난 그 순간부터 널 죽일 생각은 이제 없어."

"으....? 그럼 왜.."


꽃은 여전히 어딘가 축 처져 보였다.


"내 이름은 플라위야. 넌?"

"어..프리스크.."

"그래.. 프리스크.. 그건 네 진짜 이름이니?"

"어..?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걸 묻는 거야?"


플라위는 뽀족한 잎사귀로 자신의 턱쯤 되는 곳을 툭툭 건드렸다.

마치 뭔가는 생각하는 듯 보였다.


"뭐 됐어. 죽을 거라면 여기 폐허에서 죽어. 여긴 그녀의 영역이니까.."


그말만 남기고 플라위는 땅속으로 사라졌다.

프리스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곧 전화벨이 울렸다.


"아, 아가. 혹시 그 방에서 나간 것은 아니지?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말이야."

"아, ...아주머니. 혹시 여기에 말하는 꽃처럼 생긴 괴물도 있나요?"

"..말하는꽃.. 처럼 생긴..? ...으으음... 글쎄.. 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무슨 일이 있었니?"

"..아뇨, 아무것도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혹시 기다리기 지루하면 전화를 해도 좋단다."

"네. 감사해요. 아주머니."


프리스크는 수화기 너머에 들리는 목소리를 향해 미소 지었다.

전화는 끊어졌고, 이내 다시 프리스크는 정적에 휩싸였다.


--------------

삽화는 포기했다.

손목이 갈수록 상태가 나빠져서, 스토리만 전개하기로했어.

디자인은 현제 스노우딘편까진 문제없을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