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이 언제부터 당신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한때 세상은 고요했고 그 누구도 없었다. 평화로운 시절이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왔으며 오늘과 같은 내일이 올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 나날들.

그리고 어느 날 세상은 갑자기 바뀌었다. 머리 위가 울리는 것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 온 지하가 흔들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진동에 당신은 제 자리를 벗어나 어딘가로 굴러갔다. 그렇게 다시 자리 잡은 곳은 어느 어둡고 축축한 곳이었다. 물줄기가 졸졸 새어나와 당신의 이마를 쳐 내렸다. 당신은 큰 불만이 없었다.

며칠이 지났다. 당신은 그저께와 같은 어제는 아니었어도 어제와 같은 오늘일 수는 있겠다는 생각에 평온했다. 멀리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점점 다가오던 그 목소리들은 대개 분개하거나 슬퍼하고 있었다. 곧 당신보다 조금 작은, 당신보다 조금 큰, 가끔 꼭 당신만한 이들이 당신을 스쳐갔다. 그러다 누군가 당신을 향해 무심한 한 마디를 던졌다.


“뭐야, 돌덩이네.”


당신은 당신의 이름이 돌덩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여태 억겁의 시간을 혼자 보내도 아무렇지 않았던 당신은 문득 그 이름을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다면 아쉬울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신은 소음이라고 생각하던 그들의 대화에 조금 더 귀를 기울였다. 당신은 그들이 괴물이라는 것과 인간과의 전쟁에서 진 바람에 이 곳으로 쫓겨 왔다는 것, 그리고 이 지하에 결계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당신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괴물은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에 너무 바빴다. 곧 당신은 괴물들을 잊어버리기로 한다. 이름 없이 살아온 날이 많았기에 이름이 불리지 않는 날 또한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당신은 곧 당신 안으로 가라앉았다.


아무도 당신을 보지 않고 당신 또한 누구도 보지 않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그 시간 속에서 물줄기만이 당신의 이마를 깎아내리며 휘돌아 내렸다.


당신은 누군가가 당신 앞에 있는 것을 느꼈다. 괴물이 당신의 앞을 지나가는 것은 흔하지는 않지만 그리 드물지도 않은 일이라 당신은 그것을 인식했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꼈다. 당신은 곧 그 괴물이 멈춰선 채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신에게 눈길을 준 괴물은 그 옛날 당신에게 이름을 준 괴물 다음으로는 처음이었다. 당신은 새삼 그 세월의 무게를 깨달았다. 괴물은 슬픈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았다. 내미는 손은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물줄기에 손이 젖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세월에 닳아버린 당신의 이마는 뿔처럼 두 갈래로 갈라져있다. 괴물의 목소리는 떨린다.


“너도 뿔이 있구나, 내 아이처럼.”


내 아이, 내 아이. 괴물은 몇 번이고 그 말을 읊조리다 이내 울음을 참지 못한다. 당신의 뾰족한 돌출부, 아니 뿔을 쓰다듬으며 괴물은 목놓아 울었다. 당신은 그 괴물을 달랠 수 없어 당혹스러웠다. 시간에 단련되어 온 인내심으로 당신은 괴물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괴물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내겐 아이가 둘 있었단다. 그리고 두 아이 모두를 잃어버렸지.”


괴물은 손에 불을 일으켰다. 그 불로 먼저 흘러내리던 물줄기를 막은 괴물은 불을 들고 당신에게로 다가온다. 당신은 조금 움찔했지만 고통은 없었다. 마법으로 피운 불은 물줄기가 당신을 깎아내리던 시간에 비하면 찰나라고 해도 좋을 사이 당신을 다듬어놓았다. 그러나 괴물이 몇 번이고 지쳐 쉬다 일어나 다시 당신을 다듬은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결코 짧은 시간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당신은 서서히 앉아있는 한 어린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괴물은 슬프게 말을 덧붙였다.


“이제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테니 내겐 시간이 많단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록 괴물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당신을 조각했다. 가끔 피곤에 지쳐 잠들 때마다 괴물은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아스리엘, 아스리엘, 차라, 아가, 아가. 당신은 한때 당신이 이름을 불리기를 갈망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렇게 불리는 것은 너무 슬플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을 상해가며 당신을 다듬던 괴물이 어느 날 크게 앓았다. 당신은 괴물이 아프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다. 괴물의 손에 불길이 일어나지 않았다. 자신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괴물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니, 물러서려 했다. 괴물은 그대로 당신 앞에 쓰러졌다. 당신은 괴물이 잠든 것이라 생각했으나 곧 그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당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당신은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도했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스... 리엘.”


괴물은 짧게 신음하다 말을 멈추었다. 당신은 괴물의 숨소리가 서서히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라면 하루가 가기 전에 숨이 멎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움직일 수 없음에 이토록 분개한 적이 없었다. 움직일 수 있는 누군가 이 괴물을 위해 와 주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누군가가 왔다.

당신을 다듬던 괴물과 꼭 닮은 또 다른 괴물이었다. 서툰 모양새의 파이 조각을 들고 있던 그 괴물은 쓰러진 괴물과 당신을 거푸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는 당혹스러움이 감춰지지 않았다. 허공을 향해 흩어지는 말에는 놀람이 짙게 묻어있었다.


“파이를... 선물하려 했는데.”


괴물은 파이를 내동댕이치듯 내려놓았다. 그리고 의식을 잃은 괴물을 안아들었다. 토리, 토리엘. 괴물은 당신에게 눈길을 줄 틈도 없이 그 괴물을 안은 채 당신의 시야 너머로 달려갔다. 당신은 정신을 잃은 괴물이 부디 깨어나기를 바랐다.


쓰러진 괴물을 안고 달려갔던 괴물이 돌아온 것은 다음 날이었다. 괴물은 혼자였기에 당신은 기절했던 괴물을 걱정했지만 당신의 생각을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바닥에 뭉개진 파이를 보며 씁쓸하게 웃던 그 괴물은 당신에게 말을 건넸다.


“닮았군.”


누구와 닮았다는 말인가. 당신은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침묵으로 괴물의 말을 기다렸다. 거대한 정적.


“내겐 아이가 둘 있었다네. 그리고 이제 아내마저 잃어버렸지.”


괴물은 손에 불꽃을 띄웠다. 그 불꽃이 자신을 다듬던 괴물의 불꽃과 퍽 닮아있다는 사실에 당신은 놀랐다. 괴물은 슬피 웃었다.


“아이들이 이 노래를 좋아했지. 토리도 좋아했다네.”


아니, 차라는 싫어했었나. 괴물의 웃음에서 슬픔이 가셨다. 괴물은 피워 올린 불꽃을 당신의 가슴 속에 집어넣었다. 그 불꽃이 따스하다. 이것이 마법이라는 것일까. 당신의 가슴이 간질거리는 벅참으로 가득 찼다. 몇 천 몇 만 년간 닫혀 있던 당신의 입이 열렸다. 당신은 노래했다.


라라라라 라라 라라...


괴물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 소리 없는 눈물을 당신은 묵묵히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오르골 소리가 당신의 입을 통해 스며 나왔다. 보이지 않는 불꽃이 흔들, 흔들거렸다.


괴물은 떠난다.




그리고 괴물이 돌아온다.


괴물은 당신이 부르는 노래에 흠칫했다. 그리고 이내 당신을 감싸 안았다. 당신은 한때 당신을 깎아내리던 물줄기보다 훨씬 뜨거운 물방울이 당신 위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괴물은 말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어. 아이들이 죽는 것을 지켜봤으면서도 모든 괴물들의 미래를 망가뜨리는 모습을 볼 수 없었어. 그래서, 내가, 내가 죽었다고 해 달라고...”


미안, 미안, 미안. 누구에게 하는 사과일지 모를 사과를 연신 내뱉으며 괴물은 울었다. 당신은 괴물이 울지 않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노래했다. 괴물은 떠나갔다.


그리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 누구의 시선도 당신에게 닿지 않았다. 당신은 조금 견뎠지만 이내 기다림에 지쳐 당신 안으로 가라앉았다.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 감각도 없는 그야말로 돌덩이에 어울리는 세상 속으로.

노래가 멎었다. 당신은 잠들었다.




당신이 깨어났을 때 세상은 조금 변해 있었다. 한때 괴물이 막아주었던 물방울은 예전처럼 거세게 흘러내리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당신의 머리 위로 비처럼 골고루 뿌려졌다. 덕분에 당신의 몸이 조금 삭아들어가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을 가장 슬프게 했던 것은 그 빗방울 때문에 괴물이 당신 안에 넣어주었던 마법 불꽃이 사그라들었다는 점이다. 마법으로 지펴진 불꽃은 결코 꺼지지 않지만 너무나 약한 불길에 당신은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당신은 움직일 수 없었기에 빗방울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신은 좌절했다.

당신의 좌절과 별개로 당신을 깨운 누군가가 당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헤, 대왕님이랑 닮았네.”


당신은 그제야 당신이 깨어난 이유를 깨달았다. 세 번째로 당신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나타난 것이다. 백의를 입은 작은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이미 사그라질 대로 사그라져 있었다.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 이런 석상이 있는 지도 몰랐는데.”


당신은 당신의 이름이 석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괴물은 지쳐보였다. 가만히 서 있던 그 괴물은 천천히 주저앉았다. 당신을 올려다보는 눈빛이 처연하다.


“이 시간선은 언제 리셋될 지 몰라. 그런데도 내가 동생을 버리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


괴물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웃음. 히히, 히히힉. 괴물의 눈물이 떨어졌다.


“시간선이 마음대로 뒤엉키고 있었어... 이게 무슨 말이라고 생각해?”


우리는 언제 어제로 돌아갈지 몰라. 오늘의 고민, 좌절, 슬픔 모두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된다고. 괴물은 읊조렸다. 그런데도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까. 왜 살아남아야 할까.


“죽고 싶어...”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사실 당신이 말을 할 수 있다 한들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괴물이 당신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당신을 껴안았다. 빗줄기가 괴물을 적시고 당신을 아주 조금 덜 적시자 당신 안의 불꽃이 하늘거렸다. 당신은 가늘게 노래했다.


라라... 라... 라라...


괴물은 흠칫했다. 헛것을 들은 것은 아닌가 고개를 젓던 괴물은 그 음악이 당신 안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고 당신을 더욱 강하게 껴안았다. 당신의 노래는 조금 더 커졌다.

해골 괴물은 온 몸으로 빗방울을 막아주었다. 이윽고 괴물도 당신도 모조리 젖어버린 뒤에야 당신의 노래는 멎었다. 그러나 괴물은 여전히 그 노래를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세상에, 그런 생각을 하다니... 팝, 팝... 미안해.”


괴물은 일어났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신고 있던 슬리퍼가 한 짝 벗겨져 떨어져나갔다. 괴물은 어둠 속으로 멀리 사라졌다. 당신의 노래는 그쳤으나 당신은 마음 속으로 노래했다. 괴물이 행복하기를, 괴물의 동생이 괴물과 함께 행복하기를. 라라라라 라라, 라라.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언제나와 같은 시간이었기에 당신은 낯선 누군가가 당신 앞에 서 있는 것조차 쉬이 깨닫지 못했다. 그동안 보아오던 모든 괴물과 다른 괴물이었다. 두 개의 팔, 두 개의 다리, 두 개의 눈. 입은 고집스레 닫혀 있다. 아, 괴물들이 말하던 인간과 비슷한 것도 같다. 인간은 무언가를 들고 있다. 인간이 어떻게 하자 그 무언가가 펼쳐지며 커진다. 인간의 입에 웃음기가 번진다.


“우산, 써...”


인간이 조용히 말한다. 그것이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라는 것을 조금 뒤에야 깨닫고 당신은 놀란다. 인간은 그 ‘우산’이라는 것을 당신의 머리 위에 씌운다. 빗방울들이 가신다. 당신에게 우산을 건넨 인간은 비에 젖어들고 있다. 당신을 적시던 빗방울이 줄어들자 당신 안에 있던 불길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당신은 인간을 바라본다. 인간은 자신이 젖는 것보다 당신이 젖지 않는 것에 행복해한다. 당신은 인간을 위해 노래한다.


라라라라 라라 라라...


인간은 놀란다. 인간은 감동한다. 인간은 눈물을 찔끔 짜내려다 만다. 당신의 여전히 젖어 있는 머리 위에 얹어오는 손이 자그마하다. 웃음을 보내며 인간은 떠나간다. 당신은 인간의 등 뒤로 노래를 전한다. 인간이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누군가가 다가온다. 인간 정도 크기의 괴물이라 생각하고 시선을 보내던 당신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에 당황한다. 그리고 시선을 내린다. 작은 꽃이 한 송이 피어 있다. 그 자리에는 어떤 꽃도 피어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당신은 다시 한 번 당황한다. 자세히 보니 꽃은 표정을 짓고 있다. 경멸? 아니 고통에 더 가까운 표정이다.


“뭐야, 나야?”


꽃은 비죽 웃는다. 당신은 꽃이 왜 웃는지 알 수 없다.


“필요 없어, 필요 없다고...”


당신은 꽃이 왜 웃는지 알 수 없었듯 꽃이 왜 우는지 또한 알 수 없다. 꽃은 그 자리에 못박힌 듯 가만히 선 채 눈물을 떨군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일 뿐이다. 당신은 괴물의 아이를 위해, 괴물의 동생을 위해, 그리고 꽃을 위해 노래할 수 있다.


라라라라 라라 라라...


당신의 노래가 물소리에 섞여 흘러나간다. 소리죽인 울음소리 또한 섞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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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쓰든 문학은 걸러지겠지...

광광 우러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