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갤에서 가장 길고, 가장 오랫동안 연재한 문학이지.
오래전에 막 내린 감상문 대회 시절에 감상을 쓰려고 했는데, ‘완결나면 써야지’ 하고 미루고 있었더니
글쓴이의 의지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세상에나, 언갤 닫기 직전까지 쓸 기세더라.
더 미뤘다가는 내 의지가 먼저 저물 것 같아서 중간 시점까지라도 먼저 써보려고 한다.
(1부/2부 구분이 있는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없네. 좀 멋대로 끊은 것 같아 미안...)
감상문 들어가기 전에 내용이랑은 별 상관없는 이야기 좀 할게. 귀찮으면 요약도 있어.
내가 2차 창작을 보면서 가장 열 뻗치는 건, ‘작가가 중간에 쨌을 때’다.
나는 원작과 비슷하게 시작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좋아.
(아예 다른 작품마냥 시작하면 이게 뭐야 싶은 거고, 계속 똑같으면 그게 왜 2차 창작이겠어)
원작이 끝났더라도, 만약을 가정한 다른 분기의 다른 이야기를 보면서 계속 뽕을 보충하고 있는 거지.
그런데 그 ‘달라져야 할 부분’에서 작가가 튄다? 그럼 내가 본 건 원작이랑 별로 다르지도 않은 부분뿐이야.
최근에 원작이 여러 매체로 많이 리메이크 되고 있는 페이트 시리즈로 예를 들어보자.
루트가 갈린 이후의 스토리는 좋아. 그런데 그 ‘갈리기 전’까지의 같은 내용을 계속 보는 게 진짜 고역이야.
도대체 학교 씬을 몇 번을 보고, 랜서한테 몇 번을 뒤지고, 세이버를 몇 번을 불러야 하는건데.
적어도 얘들은 정식 연재니까 확실하게 나중 이야기까지 다뤄준다는 보장이라도 있지.
2차 창작에서, 원작이랑 별 다를 것도 없는 초반부가 끝났다 했더니, 작가가 튀었을 때의 분노는 말로 못한다.
심지어 그 초반부가 재미있었다면 분노를 넘어 슬프기까지 해...
창작이고 뭐고 못하는 똥손은 그냥 닥치고 볼 수밖에 없는데, 존나 농락당한 기분이 들거든. 오...
언갤에서 기차게 재밌는 문학이나 AU가 나왔는데, 토리엘 스토리까지만 쓰고 작가가 탈갤한다고 생각해 봐.
심지어 너는 뼈박이나 물고기박이인데 말이야. 그리고 그런 일을 몇 번을 당하면?
『프리스크 패러블』이 연재된 초기에, 나는 잘 보면서도 솔직히 좀 체념하고 있었다.
폐허를 나오는 데만 7화가 걸리는 이 문학은 분명 중간에 쨀 거라고.
괴물 하나하나를 그냥 넘어가지를 못하는 이 문학러의 의지는 중간에 끝날 거라고.
위에서 문학러들의 연중에 분노하긴 했지만, 계속해서 뭔가를 꾸준히 써 주는 게 힘든 일이라는 것도 아니까.
난 창작력이 없는 걸 둘째 쳐도, 초등학교 방학일기도 제 때 써 본 적이 없거든. 작가로서는 최악이지.
그만큼, 이 긴 작품을 여기까지 끌고 와 준 이 글쓴이에게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야.
포기하지 않는 와중에 연재 속도도 빠르고, 내용도 좋았으니. 정말 고마워.
파피루스를 대차게 까면서도, 막상 쓰면 특유의 녜-헥!함을 잘 묘사해 주는 프로 정신에는 정말 감탄이 나왔다.
‘개좆같은 파피루스 씹쌔끼’에 대한 증오서린 첨언들을 보기 전까지는 글쓴이가 파피루스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
원래 언갤하면서 감상문을 몇 편 더 쓰려고 했는데, 바쁘기도 했고 언뽕이 좀 빠지기도 해서 꽤 오래 관뒀었어.
그런데도 『프리스크 패러블』 감상문은 마지막으로라도 쓰고 싶어 뽕을 긁어모아왔다.
창작도 그림도 못하는 비루한 손이 감사할 수 있는 방법은 감상문 쓰기밖에 없더라고.
요약: 작품을 시작했다면 부디 완결도 내 줘. 정말 잘 보고 있다.
그럼 주절거림은 끝내고 감상문 시작할게.
[프리스크 패러블 1부]
1~45편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undertale&no=616897
"넌, 만족하지 않는 부류가 아니야. 그냥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은 인간 꼬마일 뿐이지."
너는 이해하지 못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평범한 인간이다. 위대한 영웅도 아니고, 자비없는 살인마도 아닌, 그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에봇 산을 들렀다가 실수로 떨어지고 만, 작은 꼬마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너가 지니고 있는 것은,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 뿐이었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능력도 원하지 않았다. 다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어느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프리스크’의 이야기.
RPG 게임에서 주인공은 우리가 플레이하는 캐릭터(Playable character)에 지나지 않아.
최소한의 특징만이 주어지고, 남은 부분은 플레이어가 채워야 해.
언더테일의 프리스크도 마찬가지야. 아이에 가까운 건 알겠지만 성별마저 애매한 도트 이미지가 프리스크의 전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언더테일을 플레이하고, 프리스크가 되면서, 텅 비어있던 프리스크가 여러 모습으로 변하지.
남자에서 여자. 울보 아이에서 어른스러운 아이. 성녀에서 악마까지.
그런데 이런 게임이 가끔 애니메이션화나 만화화 될 때가 있어.
이 경우 주인공은 개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이게 좀 곤란해지는 거지.
지나치게 개성적인 녀석으로 만들었다가는, 소위 ‘내 주인공은 이렇지 않아!’ 같은 반응이 나올 테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특징을 지웠다가는 작품 내 비중이 그냥 공기가 되어 버릴 테니까.
플레이어들은 각자 ‘자신의 주인공’을 최고로 생각할텐데, 그 가운데를 잡아내는 건 얼마나 어려울까.
언더테일의 프리스크가 『프리스크 패러블』의 프리스크가 되면서,
우리가 플레이했던 프리스크가 플레이할 수 없는 하나의 캐릭터가 되면서, 프리스크 역시 개성을 가져야 했어.
이 작품의 프리스크는 기본적으로는 그저 천진난만한 아이지만 어떨 때는 어른스러워.
죽음의 트라우마에 떠는 평범한 아이지만 어떨 때는 자신을 대신 희생하는 영웅이 되는 아이.
이런 상반되는 모습을 난잡하게 그렸다가는 모순에 설정 붕괴라면서 욕을 무지하게 먹었겠지.
나는 『프리스크 패러블』이 이런 어려움을 딛고 ‘좋은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데에 성공했다고 생각해.
이입하기 쉬운 평범함과 동시에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뚜렷한 개성을 가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아이. 소년만화 계열의 주인공이 생각나네.
(감상문 부제 후보 중 하나가 ‘소년만화식 언더테일’이었어. 느낌이 뭔가 엿같아서 폐기했지만)
이 문학러는 작품의 섬세함을 생명으로 생각했다는데 딱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작품을 읽으면서 칭찬하고 싶었던 부분인데, 글쓴이가 이미 정확히 알고 있더라고.
『프리스크 패러블』에 나오는 캐릭터 모두가 한마디로는 다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입체적이야.
"헤헤, 말이 길어졌네. 꼬마 친구. 어쨌든 기억해둬. 난 너에게서 지하 세계의 희망이 보여. 너가 온 뒤로……, 굉장히 안정적이거든."
‘파피루스가 언다인에게 뭔가 계속 말하고 있었지만, 언다인은 듣지 않는 것 같았다. 파피루스가 아무리 프리스크에 대해 말해봤자, 저 미친 물고기 새끼는 전혀 듣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몸을 던져 가면서 꼬마애 하나를 살려줬어요! 당신을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괴물에게 찾아가 따뜻한 말을 건네고 같이 요리도 했어요! 게으른 괴물도 하나 갱생시켰고! 근위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괴물마저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어요! 스노우딘의 추위를 버티려고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괴물의 투정을 듣고 슬퍼 했어요! 괴물들을 구해주겠다고 큰소리도 치고 다녔죠! 세상에! 제가 자기에 대해 얼마나 더 설명해야 하죠? 이런 당신을 죽이고 결계를 부수라고요?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의심병을 거두고 프리스크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주는 샌즈.
프리스크를 정말로 죽여버리는 ‘미친 물고기 새끼’ 언다인.
자기의 꿈을 접어두면서까지 프리스크를 도우려는 메타톤.
여러 캐릭터가 원작과는 다르거나 상반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설정붕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 이렇게 되었을 수도 있겠구나’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줬거든.
초반부에 전개가 느리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다 이런 스토리를 밟기 위한 포석이라 생각하면 뺄 수가 없었겠지.
의외로 날릴 부분은 잘 날리기까지 해서 내용 전개가 생각보다 그리 느리지도 않았어.
‘개좆같은 파피루스 씹쌔끼’ 파트라든가를 쓸 땐 고통받은 모양이지만, 덕분에 개연성 탄탄한 좋은 작품이 됐다.
설정붕괴의 대표사례로 꼽히는 샌즈프리 루트가 이 작품에서는 납득이 갈 정도더라고.
이 작품의 섬세함은 캐릭터 묘사를 넘어, 스토리 전개 면에서도 참 흥미로웠다.
특히 차라는 프리스크와 마찬가지로 2차 창작자에 따라 해석이 많이 바뀌는 캐릭터인데,
프리스크 이상으로 차라의 캐릭터를 독특하면서도 명확하게 잘 잡아서 흥미로운 전개가 됐다.
캐릭터가 달라진 만큼 스토리도 상당히 많이 달라졌는데, 이게 묘하게 원작을 따라가는 것 같다가도
이제 좀 예측이 가서 지루해질 것 같다 싶으면 또 휙 틀어 급선회 하는 운전 실력이 또 참 대단했어.
2부에 와서 한 번 더 변화한 캐릭터들과 전개도 참 흥미롭지만
아직 완결도 안 난데다 그것들까지 여기에 마저 다 썼다간 좀 난리가 날 것 같다.
지금 여기까지 썼는데도 4천자가 넘어가는데, 내가 도대체 뭘 쓴 거지...
내가 쓰면서도 후빨이 정말 오진다 싶은 감상문이기는 한데, 그 정도로 정말 마음에 드는 문학이다.
완결까지 힘내줘. 휘리리릭.
공감가는 감상문이다. 특히 작품 전반적으로 곳곳에 깔린 복선과 심리묘사에서 느껴지는 글쓴이의 섬세함이 가지는 힘이 정말 대단하지. 완결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는데 끝까지 기대하는 한 편으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어.
와..정성 미쳤다 다읽고 추천도 박고감 외람되지만 처음부분에 '작가가쨋을때' 읽고 엄청 움찔였다..
허... 고마울 따름이다
감상문이 문학급ㅋㅋㄱ
그냥 다 좋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