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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크는 부탁을 먼저 말하기 이전에, 긴 이야기를 먼저 아스리엘에게 말해주었다. 아예 자리에 앉아서 서로를 마주 본 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얼마나 긴 이야기었냐면, 자신이 여행을 시작하고서부터 무엇을 했으며,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었다. 정말, 길고 긴 이야기였다. 아스리엘은 갑작스레 프리스크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지는 이해하지 못 했으나, 가만히 계속 듣고 있었다.
플라위일 때에는 보지 못 했던 이야기들을 아스리엘은 프리스크의 입을 통해 들었다. 주변에서 걱정해주는 괴물들의 배려, 어떻게든 프리스크를 구해주려고 하는 괴물들, 자신의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인간을 위하는 행동들,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스리엘은 자신의 영혼 안에 갇힌 모든 괴물들의 생각을 느낄 수 있었고, 그렇기에 더욱 프리스크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을 수 있었다. 프리스크가 샌즈의 이야기를 해주면, 샌즈의 기억이 떠올랐다. 언다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언다인의 기억 또한 떠올랐다. 아스리엘은 마치 프리스크가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처럼 느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스리엘은, 아스리엘이자 동시에 모두였다. 프리스크가 모두의 마음과 진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아스리엘은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받아들였다.
프리스크의 이야기가 끝이 났을 때,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프리스크는 손을 뻗어 아스리엘의 손을 맞잡았다. 아스리엘은 프리스크의 눈을 쳐다 보았고, 그 눈 속에서 오랜 친구의 아련함과 낯설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프리스크가 잠깐의 침묵 후에, 입을 열었다.
"이 모든 이야기 속에서, 너는 항상 나와 함께였던 거야."
"응?"
프리스크는 항상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차라는 그걸 굉장히 잘 알고 있었기에, 쉬지 않고 안내를 했던 것이다. 죽은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일종의 감각이었다. 그런 감각은 프리스크의 마음 속에서 차라 잠시 침묵했을 때, 프리스크도 느낀 적이 있었다. 프리스크는 그런 감각을 싫어하진 않았으나, 내심 그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 했다. 하지만, 아스리엘과 대면하고 나서부터 모든 해답을 얻었다.
"아스리엘, 넌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응……, 지금 내 힘으로 결계를 부술 수 있어. 그리고, 내가 가진 영혼들을 모두 다 다시 풀어줘야지?"
"그러면 넌 어떻게 돼?"
"영혼이 없으면……, 이 모습을 유지하지 못 해. 다시 감정을 잃어버린 채 꽃이 되버리고 말 거야."
프리스크는 다른 한 손도 내밀어 아스리엘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프리스크는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스리엘이 결계를 부술 수 있다면, 자신과 모든 괴물들은 해방 되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아스리엘은 다시 플라위가 될 것이었고,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플라위가 다시 이상한 음모를 꾸밀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원인은 바로 차라 자신이었다. 차라는 자신 때문에 또 다른 불행이 일어나지 않길 원했다.
아이는 아스리엘에게 말했다.
"넌 지금 엄청나게 세지? 그렇지?"
"어……, 응. 차라."
"무지막지하게 세니까, 과거로 가는 것도 가능하지? 이런 이상한 곳도 만들었잖아."
"어? 응 가능한데……."
아이는 답을 찾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영혼이 없지만, 프리스크 덕분에 감정을 느낄 수 있어. 이게 단순히 프리스크와 영혼을 공유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 영혼이 없어도,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 거야. 난, 그걸 프리스크가 정말 잘 안다고 생각해."
"어떻게……?"
"프리스크가 처음 지하 세계에 오기 전부터, 겪었던 모든 일들을 과거로 돌아가서 봐. 프리스크 옆을 항상 지켜줘. 난,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어. 난 처음부터 프리스크한테 깃든 채 도와줬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가 항상 내 옆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 그게 바로 너였던 거야. 지금 바로, 해볼 수 있지? 아스리엘?"
"하지만, 굳이……, 그냥 빨리 모두의 영혼을 풀어줘야 해."
"아니야, 아스리엘. 괜찮아. 그 힘으로 시간을 되돌려서 지켜봐. 프리스크를 지켜줘.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서 너와 대화할 수 있었던 거야."
아스리엘은 자신이 아무리 공격해도 죽지 않았던 아이의 모습을 다시 기억해냈다. 죽음을 초월한 절대신인 자신이 죽이지 못 하는 인간. 그것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과 동급의 존재가 아이를 지킨다면, 불가능하진 않았다. 아스리엘은, 이 모든 일이 사실은 예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놀라움을 속으로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가 부탁한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아, 맞아. 잠깐."
아이가 아스리엘에게 말했다. 아스리엘은 아이를 내려다보았고, 아이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음을 느꼈다. 아이도 아스리엘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한 가지 더 부탁할 게 있어."
"뭐든지 말해, 프리스크."
"괴물들은 나를 너무 많이 걱정해. 정말로 많이. 하지만, 난 누군가가 나 때문에 마음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이는 미묘하게 웃었고, 아스리엘은 그 표정을 이해하지 못 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보고 나면, 과거를 바꾸거나 지워줘. 그 정돈 할 수 있지?"
"뭐라구?"
아스리엘은 이미 프리스크의 입을 통해서 겪은 일들을 모두 들은 상태였고, 그렇기에 프리스크의 부탁을 더욱 이해하지 못 했다. 프리스크가 겪은 일은, 단순히 잊어야 할 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나는 너무 많이 죽었어. 그걸 샌즈가 눈치 챘나봐. 토리엘 아줌마도 알고 있는 것 같고. 알피스나 메타톤도 내가 했던 일들에 대해서 잘 알지. 그건, 지상으로 나간 뒤엔 별로 쓸모 없는 이야기가 될 거야. 차라리 천진난만한 애가 지하로 와서 괴물들이 도와주는 덕에 결계를 부술 수 있었다, 정도의 스토리였으면 좋겠어. 그러면, 나도 별로 힘들지 않을 거고, 샌즈도 날 덜 걱정할 거고. 음, 더 많은 게 좋아지겠지."
"그건 아니야, 프리스크!"
아스리엘이 프리스크의 두 팔을 잡으며 소리쳤다.
"그러면 내가 했던 나쁜 짓들을 스스로 지워버리라고? 너가 했던 그 고생들을 기억하지 못 하게 만들라고? 그건 말도 안 돼! 무, 물론 너가 힘들었던 기억이었다면 정말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이젠 다들 널 좋아하고 아껴준다고! 그런 이야기를 나 혼자 어떻게 맘대로 바꿀 수 있어?"
"난 이런 짐을 평생동안 짊어질 자신이 없어, 아스리엘."
아스리엘은 프리스크의 말에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말하자면, 프리스크는 지쳤다는 거였다.
"나는, 내가 했던 일들을 후회하지 않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 하지만, 조금 더 나은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 내가 서툴지 않게 행동하고, 내가 정답인 길을 밟아왔다면, 괴물들도 나도 덜 상처받은 채로 행복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 누군가의 걱정을 받고, 나는 그 누군가의 걱정에 의지하고, 이런 상황이 마냥 좋을 것 같진 않아. 샌즈가 말했던 대로……, 나는 너무 희생적이었으니까."
프리스크는 힘들었다.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이 모든 일이 해결되었음에도 그 기억에 괴로워할 수 있었다. 아이는 자기 자신을 소모하고 있었고, 그 막바지에 다다르기 전에 겨우 일을 해결한 셈이었다. 아스리엘은, 자신이 플라위일 때 본 프리스크의 모습을 기억해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는 프리스크의 엷은 웃음. 그 웃음은, 마냥 행복한 웃음이 아니었다. 억지 웃음, 성인의 웃음. 슬픔을 이해하는 웃음이었다. 아스리엘은 자신이, 프리스크가 걸어왔던 길을 지우고 수정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프리스크가 하는 말에도 반박할 수 없었다. 프리스크의 원하는 바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수는 생각나지 않았다.
아스리엘은 고개를 끄덕였고, 프리스크는 아스리엘에게 짧고, 작은 목소리로,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아스리엘은 눈을 감았다. 자신이 쓸 수 있는 힘의 한계를 가늠해보았다. 과거로 돌아가서 프리스크의 곁을 지키는 일이라, 아스리엘에겐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스리엘은 영혼 속에 담긴 힘을 불러내었고, 그렇게, 아스리엘은 과거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지금까지 프리스크가 걸어온 모든 길을 보았다.
프리스크에게는 매우 짧은 순간, 그저 아스리엘이 눈을 감은 것으로 보았으리라. 나는 그 자리에서 눈을 떴고, 프리스크가 내 앞에 있었다. 오랜만에, 나는 내 입으로 프리스크에게 말했다.
"정말 힘들었구나, 프리스크."
프리스크가 나를 안아주었듯이, 이번엔 내가 프리스크를 안아주었다. 프리스크가 걸어온 길, 여정, 모든 것을 보고 온 내가 프리스크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딱히 없었다. 그저, 조용히 프리스크를 안아줄 뿐이었다. 프리스크는 나에 대해 눈치챈 듯,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의 사악함과, 프리스크의 선함 덕분에 지하는 구원받았다. 그런데, 프리스크는 누가 구해준단 말인가?
나는 누군가에게 구원받고 싶지 않았다. 이 모든 건 나의 잘못이었다. 프리스크의 여정을 보고 나서 더욱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차라가 말했듯, 나는 나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지만, 그것은 죄책감도 해당되었다. 내가 처음부터 이상한 짓을 하지 않고, 프리스크를 도와줬다면 모든 게 더 잘됐을 텐데. 프리스크가 부탁한 대로, 이 모든 과거를 고칠 차례이지만, 나는 도저히 나 자신을 선역으로 바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 때문에 모든 이들이 고통 받았는데, 그 과거마저 수정할 수는 없었디.
프리스크가 내 품에서 울고 있을 동안, 이야기를 어떻게 고쳐나갈 지에 대해 고민했다. 나를 악역으로 남긴 채, 다른 괴물들과 프리스크가 모두 행복한 이야기라. 그래, 이걸 굉장히 희망적인 이야기로 바꾸어보자. 프리스크가 지하에서 얻은 것들을 모두 없애지는 않은 채, 너무 많은 고통을 짊어지게 하지는 않는 그런 이야기와 결말. 프리스크의 고통을 덜어주되, 프리스크의 지식까지 잃게 만들지는 않는 이야기.
그게 어떤 이야기인지는, '너희'도 잘 알고 있잖아.
나는 프리스크를 품에 안은 채로, 모든 것을 바꾸기 시작했다.
*
그리고, 결계가 부숴진 지, 한 달이 지났다.
퍄
완결 축하.
'너희';;; 지렸다;
와...
ㄴ 아스리엘도, 프리스크도 이제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아
내가 이해를 제대로 한 건지 모르겠는데... 프리스크 패러블은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는 모르는 이야기고(아스리엘을 마지막에서야 봤는데, 아스리엘이 처음부터 있기도 했으니까), 아스리엘이 새로 쓰게 되는 '너희'가 아는, '너무 고통스럽지는' 않은 이야기가 언더테일이 되는거야?
ㄴ 아직 한 편이 남아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