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취했군, 이제 집에 가는게 어때?
 항상 무심하게 컵을 닦고 있으면서 내가 마시는 양은 어째 아나보다, 역시 술집 주인은 달라
 -이것 또한 나의 선택인데...

 그릴비의 술집에서 나서면서 중얼거렸다. 이 모든 일은 나의 선택이나 다름없다, 약속에 묶여 모든 것을 방관해온 나의 죄, 그런데 지금은 나도 잘 모르겠다.
 무거운 뼉다구를 끌고 우리의, 아니 이제 나만의 집으로 향했다. 나를 반겨주는 형제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저 곰팡이가 피어 가는 파스타의 향이 코를 찌를 뿐이다. 

나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남겨진 애완 돌을 마치 사람 대하듯 이런 말 저런 말 하고 나서 항상 그랬듯 설탕을 뿌렸다. 그러곤 터벅터벅 안으로 들어가 옷을 벗고 침대로 몸을 옮겼다. 어제는 잠을 많이 못 잤다. 

언다인이 녹아서 죽어가는 모습을 뜬 눈으로 보아야만 했다. 그것 또한 수없이 반복되어온 일과 같이 그저 방관하고 있었을 뿐이다. 술에 취해 정신도 아득해질터니 차라리 잘 되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한 번이라도 기억만 남은 채로 시간이 되감기는 경험을 한다면 분명 그 이후로 정상적인 수면이라는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젠장

잠 대신 다시 술 한 잔을 들이킨다. 졸음과 분노, 술기운이 뒤섞여 몽롱함이 내 몸을 휘감았다. 그래도 쓰러지듯 잠이 들면 좋을 텐데 오늘따라 참 좋은 날이다. 꽃도 새도 없지만.

나는 흘러간 동생의 어설픈 노래를 조잘대다 혼잣말을 했다. 내가 막을 수 있었을까.

 -너야 당연 못 막지! 이 언다인이 놈을 죽여버리겠어!

파피루스가 죽고 난 직후 분노에 찬 언다인이 나에게 한 충고다. 충고라는보다는 호통에 가까웠다. 뚱뚱하고 체력도 모자란 해골바가지의 독백에 질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소릴 듣고도, 그 말을 한 친구가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버리고도 나는 멍청한 약속때문에 이렇게 술을 마셔대고 있으니 픽 쓴웃음이 났다.
후회할 것도 없다. 내가 술에 기대지 않았다면 어디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까? 술이 주는 위로, 정확히 말해서 고통을 잊게 해주는 것은 내게 매우 절박한 것이었다. 

술이라도 있었으니 쌓인 후회를 한 시라도 잊을 수 있었다.
  
참 많이 것이 사라졌고 사라져갈 것이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파피루스, 언다인, 도고와 그레이터 도그. 아주 오랜 시간을 지하에서 지내왔던 친구들이 한순간에 사라져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곁에서 하나둘씩 사라짐이 생각보다 슬픈 일은 아니다. 다만 얼굴도 모르는 친구와 해버린 약속에 끊임없는 후회를 할 뿐이다.

술을 다 비우고서야 다시 침대에 몸을 기댔다. 곧바로 잠에 들 줄만 알았는데 영 잠이 오질 않는다. 그저 침대에 기댄 채로 잡념에 휩싸였다. 

이제 내가 잃을 것이 뭐가 남았는지 손가락으로 헤아리고 있었다.
-그릴비? , 알피스?, 문 너머의 친구?
도무지 떠오르질 않는다. 그렇게 고민을 하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건 내 선택이 아니야

눈에서 푸른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