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결말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괴물들에게 배우고 가르치고 함께한 것들. 사랑하고, 인내하고, 자비를 배풀고... 어쩌면 모든 것이 이 엔딩을 향해 나아가게끔 예언되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괴물 근위대장은 그녀를 널따란 언덕으로 끌고갔다. 핫랜드나 스노우딘과는 거리가 먼 돌과 먼지로 가득한 언덕. 무거운 십자가가 그녀의 여린 어깨를 짓누르며, 피멍을 내다 못해 살을 헤집기 시작했다. 그녀의 작은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괴물 군중들 사이에서 야유하며 그 작은 인간 아이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돌은 거의 헐벗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녀의 맨살을 긁으며 핏망울을 뿌렸다.

<<한마디만.>>

그녀의 귓가에서 군중들의 목소리가 지워졌다. 낯익은 목소리. 폐허에서 맴돌던 위화감의 속삭임이 그녀를 채웠다.

<<한 마디만 하면 되.>>

목소리는 채찍질과 함께 다시 희미해졌다. 열 가닥으로 나뉜 채찍이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을 한 움큼씩 퍼갈 때마다, 그녀의 여린 입에서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그레이터 도그 백인대장에게는 그 개의 머리 만큼이나 \'자비\'가 존재하지 않았다. 따듯한 눈물이 터진 볼살을 적셔주었다.

\"아..... 아아....\"

제대로 된 말도 나오지 못하게 된 어린 소녀의 머릿속에 다시금 속삭임이 들려왔다.

<<어떤 단어인지 너도 알잖아...?>>

붉은 눈은 애틋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보았다. \'그 단어.\' 그 한마디가 어떤 상처의 고통보다. 야유보다도 아프고 달콤하게 그녀를 유혹하고 있었다.

<<네가 폐허에 있을 때에도. 친구들을 사귀고 그 알량한 \'자비\'를 괴물들에게 설교할 때에도. 너에겐 기회가 있었잖아?>>  

소녀의 다리는 더 이상 무게를 견딜 수 없었다. 마치 내동댕이쳐지듯, 그녀는 쓰러졌다. 채찍질은 멈추었다. 그 앞에는 오르막길이 펼쳐져 있었다. 그 꼭대기엔, 그녀가 마지막 사역을 배풀 장소. 골고다 언덕이 펼쳐저 있었다.

골고다. 말 그대로 \'뼈의 언덕\' 이였다.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어. 그 \'한마디\'만 하면 이 세상은 너의 것이야.>>  

이름을 부르면 찾아오는 악마는, 마치 달콤한 사탕을 핥듯이 그녀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괴물과 인간들의 희망이라면서 왜 자기 자신은 구원 못하는 건데?\"  

군중 중 누군가가 비웃었다. 하지만 성녀는 견뎌야 했다. 이 모든 상처, 이 모든 눈물과 아픔을 쉽사리 없에버릴 수 있는 방법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그녀는 떨쳐 내야 했다.

그녀의 마음이 의지로 충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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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어머니는 항상 그녀가 \'이 세상\'의 아이가 아니라고 말하셨다.

\'의지\'의 아이. 괴물과 인간 모두를 구원할 자.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뼈의 언덕\' 꼭대기에는 단지 괴물 제국의 근위대들과, 그녀와 함께 못박힐 죄수 둘 뿐이였다.
근위대장은 피투성이가 된 소녀를 안스럽게 바라보았다. 이런 고문은 근위대장의 방식이 아니었다. 대장의 목적은 언제나 \'정의\'의 실현이였지 고통이나 징벌이 아니었다.

하지만 명령은 명령이였다. 왕은 인간의 영혼을 거두라 명하였고, 그녀는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두 근위대원이 형틀 위에 그녀를 얹었다. 가벼운 몸이 나무토막 위로 널브러지고 축 쳐진 채,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파피루스, 죄목을 효시하라.\"

근위대장은 부관에게 명령했다.
부관은 언제나 이 명령에 불만스러워하였다. 그는 소녀가 죄 없음을 믿고 있었다. 그의 형은 심지어 인간과 친근하게 지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과 그 추종자들에 대한 체포령 당시에 그들을 눈감아주었던 부관의 태업과 이적행위도, 이제는 끝날 터였다.

부관의 갑옷은 말없이 철그럭거렸고,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군중들 앞에 섰다.

\"프리스크.\"

쇳소리가 새는 부관의 목소리는 군중앞에서 여전히 컸다. 하지만 근위대장은 십수년을 함께한 전우의 목소리에서 죄책감의 깊은 회한을 느꼈다.

\"죄목, 괴물과 인간의 희망을 사칭함. 위선을 배풀어 혹세를 무민하고, 거미를 밟아죽임.\"

군중들 사이에서 놀람과 혐오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몇몇 괴물들은 흐느끼기까지 하였다. 근위대장은 지금까지 소녀의 무고함보다는, 충실한 부관의 창창한 앞날이 더 중요했다. 무고한 소녀의 죽음을 군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병사. 형을 집행하라.\"

근위대장은 침착한 목소리로 레서 도그들에게 명령했다. 그들은 나무못과 망치를 들고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못박힐 그녀의 죄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 피투성이 소녀가, 아무런 악의도 없다는 듯이 물끄러미 대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예 반란을 일으키지 그랬나. 코어나 핫랜드, 심지어 스노우딘에만 가도. 너를 믿는 사람들은 많은데.\"

근위대장은 무릎을 꿇고 소녀 곁에 앉아 물었다.

\"너에게 싸우고, 이길 \'의지\'만 있었더라면, 이런 고통은 겪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의지.>>

근위대장의 목소리가 붉은 여인의 속삭임처럼 당신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하지만 당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아야만 했다. 당신이 지키고 싶은 것은 단지 자신의 목숨이나, 친구들의 목숨 정도가 아니었다.


세상의 미래가 당신의 손에 달려있었다.

다시금, 소녀의 의지는 충만해졌다.

\"나의 창은 예리하고 정확하다. 이런 비참한 운명으로 죽지는 않았을 터...\"

고통으로 떨리는 입술이 조금씩 달싹 거리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근위대장은 말을 잇지 못하는 소녀를 안스럽게 쳐다보며 다시금 일어섰다.

하지만 소녀의 한 마디는 끝나지 않았다.

\"자비를.... 용서를.....\"

근위대장은 고개를 돌려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아련한 목소리에는 작지만 강한 진심이 들어있었다. 가엽게도. 소녀는 곧 소녀를 못박을 자에게 자비를 배풀려 하고 있었다. 그 애처로운 광경에, 대장은 미간을 찌뿌리며 시선을 피했다.

순간, 근위대장의 머릿속에는 어처구니가 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소녀가. 터무니없이 큰 의지로 모두를 품으려 한다는 바보같은 생각이였다.

군인에게는 필요없는 의심이 꼬리를 물자. 그녀는 머리를 휘젓고는 멀찍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일부러 힘준 목소리로. 레서 도그들에게 형을 집행할 것을 채근하였다.

회한이. 느껴본 적 없는 이상한 죄책감이 근위대장의 등줄기를 타고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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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럼에도 근위대장 언다인을 용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