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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계가 부숴진지 한 달이 지났다.
나는 하늘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저, 절벽 위로 보이는 하늘의 태양 아래서 빛을 받고 있었다. 햇빛을 보며 가만히 있자면, 나름 편안했다. 기분이 좋진 않았다. 기분이 좋다고 느낄만한 감정은 이제 내 안에 없었다. 그저, 햇볕의 따스함을 나는 이파리와 꽃잎으로 느꼈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달그락 하는 소리가 갑자기 들렸다. 나는 한참 즐기던 와중에 들린 갑작스런 소리에 옆을 돌아봤다. 엉성한 듯하면서도 튼튼한 사다리가 바람에 흔들려 난 소리였다. 모두가 지상으로 나간 뒤, 인간이 떨어졌던 이 자리에 그들은 사다리를 만들었다. 줄과 나무 판자를 이용해서 꽤 튼튼한 사다리를 만들어 설치한 것이었고, 인간은 이 사다리를 통해 가끔씩 나를 찾아왔다. 인간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그저 무심하게 일관했지만, 인간은 짜증나리만큼 웃으면서 나에게 여러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이제, 별 상관 없는 이야기다. 갑자기 구덩이 속으로 불어들어오는 바람에 나는 흥이 깨져버렸다. 햇빛이 조금 약해지고 있었다. 구덩이 안으로 불어들어오는 바람과, 약해지기 시작한 햇볕. 저녁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전조였다. 햇볕을 즐기느라 그런 것인지, 나는 항상 빛의 밝기보단 바람의 흐름으로 시간을 판단하곤 했다. 여기에 가만히 있어봤자 별 흥미로운 일은 없으리라 싶었다. 나는 땅 속으로 파고들어 다른 장소로 향했다.
나는 익숙한 움직임으로 땅굴을 파며 스노우딘으로 향했다. 지하에 남은 괴물은 거의 없었지만, 스노우딘에 한 괴물이 남아있었다. 나는 적절한 위치에 도착했다고 판단하고 꽃머리를 땅 위로 들이밀었다.
"오, 안녕!"
눈사람 괴물이 나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옛날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녀석이었지만, 지하에 남은 녀석들이 거의 없는 이 와중엔 꽤 나쁘지 않은 대화 상대였다. 인간은 우연인지는 몰라도 항상 이 녀석을 지나쳤었다. 나는 과거를 수정할 때, 인간이 이 녀석의 눈조각을 가져가도록 했다. 원리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이 녀석의 몸 조각은 녹지도 않고, 시야를 공유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프리스크, 아니, 인간이 지상으로 나간 뒤에는 꽤 즐거운 모양이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래, 오늘은 뭐가 보여?"
"이번엔 엄청나게 신기하게 생긴 건물들이 많아! 저 하늘 꼭대기까지 뻗은 건물들이 보여!"
"하, 그거 신기하네. 그 꼬마는 뭘 하고 있어?"
"평소랑 똑같지! 엄청나게 웃긴 표정을 지은 채로 쭈뼛쭈뼛대면서 걷고 있어."
인간이 괴물과 함께 지상으로 나간 뒤, 꽤 많은 소동이 벌어졌다. 그 정도는 나도 지상으로 몰래 올라가서 훔쳐봤었다. 괴물들을 보면서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달려오는 주민들이나, 그걸 말리는 인간. 그리고 인간의 만류 덕에 대치 상황이 진정된 뒤, 주민들에게 자세를 낮추며 사과하는 아스고어. 그런 식이었다. 아스고어는 인간과 대화하는 저자세를 유지했다. 그래봤자 원체 큰 키 때문에 위압적인 건 똑같았다. 그들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인간의 부모에게 인간을 데려다주는 거였다. 이틀 동안 사라졌던 딸이 괴물과 함께 돌아오자 부모는 소스라치듯 놀랐으나, 그래도 딸을 되찾았다는 마음에 눈물을 먼저 흘렸었다. 물론, 인간도 꽤 많이 눈물을 흘렸다. 뭐,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꽤 복잡했다.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눈사람 괴물 또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지금 자신의 앞에 뭐가 있는지, 다른 괴물들은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해 계속 떠들어댔다. 특히, 작은 해골이 하는 행동은 너무 볼썽사납다고 했다. 인간을 지켜주다 못 해 과보호하거나, 눈을 뜨고 봐주기 어려울 만큼 호들갑을 떤다고 했다. 별로 웃기진 않았으나, 나는 피식 웃는 표정을 만들어 눈사람에게 보여주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눈사람에게 다른 곳에게 가보겠다고 말한 뒤, 땅 속으로 머리를 다시 박았다.
내가 다시 고개를 쳐든 곳은 그릴비네였다. 지금은 아무도 없었지만, 가끔씩 샌즈와 여기서 대화하곤 했다. 결계가 부숴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폐허에 있는 나에게 찾아왔었다. 그러고 나선 그릴비네에서 이야기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고선,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바로 여기로 데려왔었다. 얼굴은 아주 죽을 상이었는데, 뭐, 나름 내가 원하는 바였다. 그때 샌즈가 했던 얘기는 내가 어느 정도 나올 거라 예상했던 이야기였다.
"왜 내 기억은 그대로 둔 거지, 아스리엘?"
나를 딱딱하고 불편한 나무 의자 위에, 뿌리가 뽑힌 채로 놓아둔 채로 물어봤다는 게 문제였다면 문제였다. 하지만, 나는 불쾌감을 덮어두고 천천히 대답해주었다.
"그 애가 그 고생을 한 건 내 탓도 있지만, 네 탓도 있어, 뼈다귀."
샌즈는 대답을 바로 하지 못 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옆을 돌아볼 뿐이었다. 샌즈는 어디서 꺼내온 건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술을 깠다. 맨날 멍청하게 웃어대고, 케찹이나 빨아 먹던 놈이 술을 깠다. 해골이 취할 수나 있나? 나는 그런 잡념을 잠시 마음 속에 두었으나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샌즈는 모든 상황에 대해 매우 답답해보였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 때 당시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괴물들과 완전히 다른 기억을 지닌 채 있었고, 심지어 인간마저도 모르는 것들은 샌즈는 기억할 수 있었다. 내가, 샌즈를 그렇게 만들었다.
과거를 수정하던 와중, 나는 샌즈의 행동에게 주목했다. 인간을 지켜주던 그 모습을 잘 관찰했다.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인간을 지켜주려 하던 그 모습이 이상했고, 그래서 나는 내 영혼 안에 들어 있던 샌즈의 영혼을 잠시 들여다 보았다. 나는 그런 행동을 일부러 하지 않고 있었다. 남의 마음 속을 마음대로 들여다 보는 건, 별로 좋은 행동이 아니란 걸 그 당시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샌즈의 영혼을 들여다 보았다. 샌즈의 기억 속에는 죄책감이 서려 있었고, 나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과거를 잠시 돌려봤다.
그 결과는 당시의 나에겐 조금 충격적이었다. 샌즈가 인간 대신에 자신의 목숨을 희생시켰을 때의 영혼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그 행위를 굉장히 감상적으로 해석했다. 인간에 대한 애착이나, 보호 따위로 생각했다.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으나, 저의는 따로 있었다. 인간 대신에 자신이 죽음으로써, 모든 괴물들을 구해주어야 한다는 마음을 인간에게 심어주는 동시에, 절대로 괴물이나 자신을 배신하지 않도록 인간에게 충격을 주기 위함이었다. 어차피 자신이 다시 살아날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실행한 계산적 행동이었다. 그 퍼포먼스의 화룡점정은 자신의 영혼을 꺼내주며 결계를 빠져나가라고 말해줬던 것이다. 샌즈는, 당연히 인간이 그러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 제안을 했다. 그 행동은 어느 정도의 신뢰를 기반으로 했지만, 어느 정도 계산적이었다.
리셋 이후, 샌즈는 이전이 자신이 했던 행동의 이유를 어느 정도 예측한 듯했다. 하지만, 정작 인간이 하는 행동을 보자 죄책감이 심하게 든 것이었다. 자신이 인간을 이렇게 만들었다, 그런 죄책감이었다. 나는 그 죄책감이 타당하다 판단했고, 내가 짊어진 짐을 그에게도 지게 했다.
샌즈는 글라스에 술을 따른 뒤에 들이마셨다. 취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당연하지. 자신이 잘못 했던 행동마저 모두 없던 일이 됐는데 그걸 자기 자신만 알고 남들은 아무도 모르니까. 죄책감이 증폭됐을 거다. 나를 노려보는 샌즈에게 나는 조금 폭언을 했었다.
"그러면, 앞으로 지상에서 니가 그 애를 계속 지켜, 병신아. 니가 잘못 한 거에 대해서 앞으로 속죄를 하라고, 알았지? 어? 나한테는 지랄하지 마. 나는 평생동안 이 지하에서 썩다가 죽을 거니까."
대충 그런 식으로 대화를 했었다. 그 뒤, 샌즈는 몇 잔의 술을 더 마신 뒤 지상으로 돌아갔다. 병에 남은 술을 나에게 몇 방울 뿌려줬는데, 나는 술의 감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꽃은 술 못 마시니까. 뭐, 그런 대화를 했었다는 거다. 그 뒤로 가끔 나를 찾아와서 이야기를 했다. 인간은 괜찮다. 자신이 어떻게 해주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 얘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요즘엔 발길이 좀 뜸한데, 인간에게 붙어있느라 바쁜 듯했다.
줄기를 뻗어 그릴비네의 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먼지가 쌓여 있었다. 텅 빈 가게와 굴러다니는 탁자 등을 보니, 조금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거짓말이다. 사실 아무 느낌 안 든다. 뭐라도 느껴졌으면 좋겠다만, 그렇질 않았다. 나는 그릴비네 안으로 조금 기어들어갔다. 그때 샌즈가 남기고 간 술병이 바닥에 굴러다녔다. 흠, 불쌍하기도 하지. 아마, 이 때에는 불쌍하다고 하는 게 적절한 판단이라 생각한다. 내가 샌즈에게 말해준 게 틀린 건 아니었으나, 전부는 아니었다.
샌즈가 잘못 하긴 했지만, 인간을 지켜줄 수 있는 가장 강한 녀석이 바로 그 해골이었다. 게으른 성격을 그대로 놔두고선, 인간의 보호를 맡길 순 없었다. 결과적으로, 난 샌즈에게 인간을 지켜주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준 셈이었다. 가끔씩 지하를 빠져나가 몰래 인간을 찾아가서 살펴보면, 샌즈의 보호를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인간이 어떻게 해골을 좋아할 수 있냐에 대한 문제는 그냥 덮어두기로 했다. 하, 물고기랑 공룡도 사귀던데 인간과 해골이 안 될 건 없겠지. 하지만, 속단할 문제는 아니다. 인간은 아직 어리니까.
나는 그릴비네에서 몸을 끌며 워터폴 쪽으로 향했다. 워터폴 쪽으로 가다가 보인 뼈다귀 형제의 집을 잠깐 쳐다봤다. 그, 파피루스라고 하는 큰 뼈다귀는 지상을 나가기 전이나 후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다. 시끄럽고, 활기차고, 긍정적이었다. 뭐, 내가 과거를 수정하기 전과 후의 차이는 어느 정도 있었다. 지금의 파피루스는 인간의 앞을 막아서고 공격한 적이 있었다. 별로 의미 없긴 했다. 파피루스가 제 풀에 싸움을 그만두고 오히려 인간과 데이트하기로 했으니까. 내 생각은 아니었다. 내 영혼 안의 파피루스가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나는 승낙했을 뿐이었다. 그 정도로, 파피루스란 해골은 오지랖이 넓고 쾌할한 녀석이었다. 지금은, 뭐, 이런 저런 일을 다 하고 있나보다. 가끔은 인간과도 다니고, 가끔은 요리를 하고, 가끔은 놀러 가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워터폴에 들어가자 여전히 잘 자생하고 있는 반딧불이 같은 이상한 벌레들이나 메아리 꽃이 즐비했다. 메아리꽃에서는, 새겨진지 꽤 오래된 목소리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다. '아싸, 빨리 가자!' 라는 말을 계속 메아리꽃은 하고 있었다. 나는 슬슬 대사를 바꿔주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 그 메아리꽃 앞에 서서 말했다.
"입닥쳐."
그러자, 메아리꽃은 '입닥쳐.'라는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목소리를 잠깐 듣고 있다가, 다음으로 가야할 장소로 떠났다. 머리를 땅에 처박고, 어느 정도 가다가 다시 나온 곳은 거슨의 만물상 앞이었다.
이 늙은 괴물은 지금 뭘 하는지 모르겠다. 아스고어 옆에서 이것저것 잔소리를 하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외에는 딱히 본 적이 없었다. 뒤졌나? 아니, 오래 살았으니까, 앞으로도 더 오래 살겠지. 만물상 앞에 있자니, 갑자기 그 안에서 뭔가 떨어지고, 박살나며,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안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텁텁하고 어두컴컴한 동굴 안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엔 익숙한 괴물 하나가 난잡하게 움직이며 나에게 인사했다.
"호엑! 안뇽! 내 이르믄……."
"야, 나야."
"아, 너였니?"
동굴 내부가 어두운 탓에, 내가 온 것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 한 것 같았다. 동굴 안으로 들어온 게 나임을 알아채자, 테미는 말투를 바로 정상적으로 바꿨다. 몸을 난잡하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동굴 안에서 하릴 없이 나뒹굴고 있었던 와중에 내가 끼어든 듯했다. 테미는 동굴 중앙 바닥에 어질러진 곳에 있던 양초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불을 붙이고 남은 성냥쪼가리는 구석에다가 던져버렸다.
"요즘 넌 살만하니?"
"평소랑 똑같지. 근데, 계속 안 말해줄 거냐?"
"뭘?"
"네 정체 말이야."
이 녀석은, 워터폴에서 인간에게 딱 달라붙어 있던 그 테미였다. 다른 테미도 많았지만, 유독 이 녀석이 눈에 가장 띄었다. 다른 테미들이 신이 나서 지상으로 떠난 와중에도, 이 녀석은 아무것도 상관 없다는 듯이 지하에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이 녀석은 내가 인간을 관찰하고 있을 때 나를 향한 듯한 말을 던지기도 했었다. 테미 갑옷이 가격인지 뭔지 말했던 것 같았는데, 무슨 의미인진 잘 모르겠다. 단순히 이 테미 한 마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행동만 괴상한 뿐, 다른 테미도 수상한 건 똑같았다. 내가 과거를 수정해도 이 녀석들은 쓸데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냥,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멍청한 행동만 골라서 했기에 별 문제가 안 됐을 뿐이었다.
"신경 쓸 거 없어."
"흐음……."
테미는 그저 자신의 발을 핥으면서 털을 정리할 뿐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행동들이나, 의지의 힘에 관련 없이 기억을 하는 것에 대해 뭘 물어볼라 치면, 항상 이런 대답만을 했다. 혹시 '너희'들이랑 관련 있는 거냐? 뭐, 물어봤자 대답도 안 하겠지. 나는 흥미를 잃고 그냥 땅 속으로 머리를 처박았다. 나는 적절한 위치에서 다시 꽃머리를 들이밀었다. 다 타버린 물고기 모양 집이었다. 요리를 하다가 타버린 언다인의 집은, 꽤 오래도 불탔다. 결계가 부서지고 나서도 하루는 종일 탔었다.
언다인은 평소의 성격대로 지금도 잘 살고 있다. 근위대장을 그만두지도 않고, 이상한 죄책감에 절어있지도 않은 채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 괴물의 권리를 침해하는 인간들의 행태를 조사하고 이에 대해 고발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조금 과격하게 일을 하는 모양이지만, 자신의 일은 곧잘 하고 있었다. 가끔씩 보면 너무 일을 막무가내로 처리했는데, 마침 내가 그 자리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언다인에게 반감을 가지고 암살 계획을 세운 듯한 놈들이 몇이 있었는데, 언다인에게 달려들기 전에 내가 바로 처리했다. 뭐, 인간에겐 비밀이다. 쓰레기가 몇 죽는다고 해서 지상 사회가 신경쓰지도 않고, 나도 별로 문제 없고.
다 타버린 집 앞에 낡은 연습용 인형 하나가 굴러다녔다. 이 인형 안에 들어 있던, 다혈질 유령은 다른 마네킹으로 몸을 옮긴 모양이다. 지금이면, 꽤 멋진 마네킹이 되었으리라.
다음으로 어디를 갈지 생각해봤다. 이 앞은 핫랜드였는데, 난 핫랜드 싫어한다. 거기 너무 뜨겁거든. 굳이 거기를 지나갈 일이 없었고, 가고 싶지도 않았다. 뭐, 이쯤에서 그냥 돌아가야지. 나는 다시 땅 속으로 머리르 쳐박았고, 돌아와야 할 곳으로 돌아왔다. 내가 머리를 내밀자, 익숙한 목소리가 날 반겼다.
"오, 이제 왔구나?"
폐허의 집, 내가 온 곳은 여기였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던 토리엘이 날 맞이했다. 토리엘은, 나와 사는 걸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 듯했지만, 싫어하지도 않았다. 자신들에게 나쁜 짓을 저지른 꽃이지만, 인간은 나를 용서해주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고, 토리엘은 인간의 뜻을 따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나는 토리엘과 지하에서 같이 사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보통 말하는 쪽보단, 듣는 쪽이었다.
"음, 달팽이 파이를 했는데 먹어보겠니?"
"아, 네, 뭐, 그러죠."
지하에 다시 혼자 살게 되어 적적할 것이다. 나는 토리엘이 하자는 건 웬만하면 다 들어주었고,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다. 뭐, 보통 이해는 잘 안 되지만 말이다. 나는 땅굴을 통해서 주방 쪽으로 갔다. 토리엘은 날 위해 집 바닥 여기저기에 구멍을 뚫어놓았다. 뿌리를 뽑은 채 바닥을 기어가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나로선 꽤 편했다. 주방에서 머리를 들자, 토리엘은 접시에 담아놓았던 달팽이 파이를 내 앞에 두었다. 나는 머리를 뻗어 그 파이를 한 입 물어 씹어먹었다. 별로 맛은 없었다.
"꽤 괜찮네요."
"그래? 다행이구나. 나는 이미 파이를 먹었단다. 할 게 없으면 먹고 나서 거실로 오렴. 메타톤이 인간들의 방송에 나온다는구나."
"네, 이따 갈 게요."
토리엘은 거실로 걸어갔고, 이내 TV 소리가 들렸다. 토리엘은 지상에 나갔다가 다시 여기로 돌아올 때, TV를 들고 돌아왔었다. 지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싶었나보다.
토리엘이 다시 지하로 돌아와서 살게 된 이유는 이러했다. 아스고어와 토리엘, 샌즈나 파피루스 같은 괴물들이 인간의 집에게 찾아가 인간의 부모에게 인사했다. 인간의 부모는 꽤 놀랐지만,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었고, 일단 딸을 돌아오게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아스고어는 인간의 감사에 송구스럽다는 듯, 오히려 인간이 괴물들을 구했다고 대답했다. 인간의 부모는 그 전말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고, 인간을 포함한 그 괴물들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간은 인간의 이야기를, 토리엘은 토리엘의 이야기를, 샌즈는 샌즈의, 파피루스는 파피루스의, 메타톤은 메타톤의, 알피스는 알피스의 이야기를 했다. 길고 긴 이야기를, 인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끝까지 잘도 들어주었다. 인간의 부모는 생각보다 꽤 침착하고 현명했다. 이야기가 모두 끝나자, 인간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고, 어머니는 토리엘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우리 아이를 공격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 와중에, 아스고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인간을 공격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괴물의 방식이란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 괴물 여자에 대해선 할 말이 조금 많네요."
인간의 어머니는 토리엘을 다시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아이를 감옥에 가두려다가 거기서 나오려는 애를 불로 지졌다는 거 아닌가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우리 아이를 괴롭힌 건 다른 괴물들도 마찬가지니까, 조금 화가 나긴해요. 하지만, 당신에겐 그 이상으로 치가 떨리네요."
그 이후에 벌어진 상황에 대해선 잘 모른다. 나도 인간을 통해서 조금 들은 거니까. 그 대화를 한 이후, 토리엘은 죄책감 때문인지, 지상에 있지 않고 다시 폐허로 돌아왔다. 토리엘을 다시 지상으로 데리고 나가기 위해, 인간을 포함한 다른 괴물들이 많이 왔었다. 하지만, 토리엘은 미안하다고만 말할 뿐, 다시 폐허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해서 토리엘에 물어보지 않았기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다.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 줄 알았지.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 과거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어졌다. 사실 인간이 나한테 과거를 고쳐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런 일은 일어났으리라. 상황이 나아지길 바란다면, 인간이나 다른 괴물들이 노력할 수밖에 없다.
토리엘이 자신을 가둔 정확힌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충 예상은 됐다. 아스고어를 그리도 싫어해 놓고, 자신도 아스고어를 욕할 만큼 도덕적인 괴물은 아니었으니까. 인간이 어머니가 내뱉은 비수와 같은 말에 토리엘은 제대로 된 반박 하나 하지 못 하고, 그 자리를 조용히 빠져나왔으리라. 반박 따윈 할 수 없었으리라. 그리고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겠지. 뭐,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짓이랑 별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나는 달팽이 파이를 마저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진짜 맛없네. 꽃은 뭐 먹을 필요 없는데.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는 건가?
달팽이 파이를 다 먹고 나니, 거실에서 시끄러운 메타톤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다가 멍청한 알피스의 띨띨한 목소리까지 들렸다. 지상에서도, 알피스까지 끼어들어 멍청한 자신의 방송을 계속 하고 있는 듯했다. 토리엘이 거실에 오라고 하긴 했지만, 나는 그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다시 집에서 빠져나왔다. 내가 가장 맘에 들어하는 장소다. 햇빛이 비치는 절벽 아래. 뭐, 지금은 밤인 것 같지만 말이다. 하늘에는 오직 별들이 제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아스고어는 어떻게 지낼까? 뭐, 왕 노릇을 계속 할 것 같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집 앞에서 나무나 치고 있지 않을까. 아스고어는 왕이었으나, 짐을 짊어지며 사는 것에 지쳐보였다. 이제는 좀, 의무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편하게 살고 싶겠지. 가끔씩은 여기에 와선 토리엘을 찾아오곤 한다. 올 때마다 문전박대지만 말이다. 그래도, 끊임 없이 올 것 같다.
뭐, 인간은 졸지에 괴물들의 대사가 되서 여기저기 끌려다니는 것 같고. 뭐, 내 알 바냐. 그래도 고향은 여기인지라, 가끔은 여기에 온다. 한 달간 한 다섯 번은 찾아왔지? 나를 찾아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게 됐는데, 그게 자기한텐 너무 힘들다는 둥, 뭐가 신기하는 둥, 여러 얘기를 많이 한다. 나는 마지못해 대답해준다. 그렇게 대화하다가, 마지막은 항상 인간이 나를 못 구해줘서 미안하다고 한다. 인간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난 그냥 괜찮다고 말해준다. 더 이상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인간이 부탁한 것을 지키려 노력했으니까. 굳이, 많은 것을 언급하지는 않고자 한다.
과거를 바꿨으니, 기억도 바뀌었을 텐데 왜 이렇게 나한테 집착하는 지 알 수 없다. 인간의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아니면, 차라가 날 신경 써주는 건가. 아, 차라는 인간 속에서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예전만큼 대놓고 나오는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뭐, 그렇게 됐다.
나는 하늘을 봤다. 별이 참 많았다. 만약에 저 밖으로 나가면……, 아니지. 난 나가면 안 된다. 내가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그냥 하늘을 계속 보기로 했다.
기분이……, 별로 좋진 않았다.
기분? 기분이라…….
너흰 이제 좀 꺼져. 얘기 끝났어. 다른 할 일은 없는 거야?
……, 프리스크는 언제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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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프리스크 패러블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했다 - 아스리엘 애껴
내
고생했어! - 정상적인 애낌
수고했어.
수고했어. 좋은 후일담이네.
수고했어! 편집된 화자는 플라위=아스리엘 이었던거네.
퍄ㅠㅠㅠㅠㅠㅜㅜㅜㅜㅜㅜㅠㅠ
드디어 완결이니
야 드디어 완결이구나 토리엘이 폐허로 다시 간건 좀 놀랍다망 - SEX
수고했어 - SEX
기분, 기분이라....하는 마지막 말 왜 이렇게 아련하냐. 가슴이 푹 찔리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좋은 글 써줘서 고마워. 고생많았어
오타가 있네. 행돔마저 - 행동마저
퍄 수고했다 드디어 완결됬구나..
ㄴㄴ 지적감사
수고해쓰어어엉!!
그럼 여태까지의 이야기들을 기억하는 건 플라위랑 샌즈 뿐이고(샌즈도 맨 첫주차는 기억 못하는 것도 같지만) 프리스크를 포함한 나머지가 기억하는 건 아스리엘이 새로 쓴 언텔 불살엔딩 비슷한 현 엔딩인거?
감상문 쓰다가 헛다리 짚을까봐 혹시 후기에 간단한 정리라든가 올려줄 거면 좀 더 대기함...
수고했어 ㅠㅠ
어머나...ㅠㅠ
플라위 마지막대사에 뭔가 하트어택당함 ㄷ..수고했다 재밌게봤어!
길었던 이야기가 재밋게 끝나서 좋았어
진짜 너무 재밌게 봤고 좋은글 써줘서 고마웡 프패 완결났으니 이제 탈갤이다 어예
진짜 재밌게 봤다 수고많았고 다시한번 진짜 입갤이유가 이것때문이었다 그만큼 재밌게 봤다는 소리임 수고했어 - dc App
와.....정주행 몇십번은 한듯....미쳤다 표현력. 지금까지 쓴거 다합치면 아예 책하나가 될텐데?! 71화까지 쓴 끈기 돌었다.....가능한지도 몰랐는데....해냈네! 완결 축하한다! 마지막 플라위 대사가 뭐랄까, 어딘가 구슬프기도 하고 아련하네...
이색기 수고했다 - dc App
와..진짜 재밌었어. 수고 많았고 글 써줘서 고맙다고 하고 싶네.
명작이다 이말밖에는 못하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