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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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토버(OCTOBER) - Romance)

13 - 지하의 빛.

프리스크의 손은 피로 얼룩져있었다.
덤으로 여기까지 오면서 배겨나온 피가 한 방울씩 여기저기 점지어져 있었다.
파피루스는 조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제가 한 일이기에 불평을 할 수는 없었다.
프리스크의 부주의로 피가 묻은 이불을 들고 파피루스가 프리스크와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로 가기 전의 입구에 있는 세탁기 같은 것에 파피루스는 이불을 욱여넣었다.

"인간, 손 다 씻었어?"
"으.."

프리스크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하려다가 재차 자신의 목 상태를 실감했다.
목소리를 잃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았기에, 프리스크는 아직 이 상태에 익숙해지려면 오래 걸릴듯했다.
파피루스도 첫 만남과 달리,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프리스크를 겨우 인지했다.

"어.. 미안, 인간. 지금은 말을 못했지.. 손은.. 다 씻은 거 같네."

파피루스는 마른 수건을 가져와 프리스크의 손을 닦아주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오자, 아까는 보지 못했던 집안이 보였다.
여기저기 화병이 있었고, 그 안에는 꽃이나 덩굴식물이 가득했다.
현관에는 정말 작은 꽃으로 만든 화관을 쓴 애완돌도 있었다.
프리스크는 피가 묻은 채 굳어버린 메모지의 표지를 걷어 올리고 글을 썼다.

*파피루스는 꽃을 좋아하는 거야?

그 글을 쓰고 파피루스의 허리를 툭툭 쳐서 글을 보여주자, 파피루스는 더할 나위 없이 밝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야! 녜헤헤! 꽃은 향긋하고, 마음을 안정시켜주거든! 그리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달콤함도 있지!"

프리스크는 그런 파피루스를 보며 방긋 웃었다.
지하에 와서 두 번째로 완벽하게 안심하고 만날 수 있는 괴물이 생긴 것이다.
파피루스와 만나고 나서 죽었다는 기억은 없었다.
파피루스는 프리스크를 해치지 않았고, 오히려 실수로 다친 상처를 너무나도 걱정해주었다.
프리스크는 그런 파피루스가 마음에 들었지만, 따가운 시선 끝에 서 있는 샌즈만큼은 아니었다.
샌즈는 프리스크를 거실의 현관문 앞에서 프리스크를 따갑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표정에는 혐오라기보단, 어서 빨리 나가버렸으면 하는 원념이 담겨있었다.
그저 프리스크가 귀찮고 짜증 나는 손님이라는 마냥 짜증을 쏟아내고 있던 것이다.

"heh-. 난 그릴비나 가야겠다."
"형? 지금 아직 한낮이거든!?"
"난 내 할 일은 다한 거 같아서 말이지. 나중에 저녁에나 돌아올 테니 걱정 말라고."

샌즈가 왜 현관문 앞에 있었는지 프리스크는 알았다.
그는 프리스크와 같은 곳에 있는 게 싫은 듯 보였다.
프리스크는 나가는 샌즈의 뒤통수를 보며, 착한 줄 알았던 그가 노골적으로 이리 대하는 게 이상했다.
처음에는 착한 괴물인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닌 듯이 현재는 행동하고 있었다.
마치 프리스크를 굉장히 싫어한다는 마냥 표정부터가 그랬다.
말도 상냥하지 않았다.
프리스크는 샌즈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샌즈는 항상 저래?

프리스크의 질문에 파피루스는 살짝 난처한 듯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음.. 아니, 전혀. 오늘 굉장히 이상한 거야. 형이 원래 인기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누굴 피하지는 않거든."

파피루스도 샌즈가 프리스크를 피한다는 걸 눈치챈듯했다.

"아, 하지만 걱정 마시라! 그냥 오늘 상태가 안 좋은 것 뿐일 거야! 형은 굉장히 착하거든! 녜헤헤헤!"

프리스크는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을 접어두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샌즈는 굉장히 귀찮은듯했지만, 프리스크를 제대로 걱정은 해주었던 것이다.
처음 보면서, 대부분의 괴물이 그렇듯 프리스크를 기분 나쁘게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프리스크를 구해주려는 듯했다.
프리스크는 샌즈의 심경변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려 했지만, 무엇 때문인지를 몰랐다.
결국, 그냥 시간이 지나면 되겠거니, 하며 적당히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목의 피가 멎은 듯이 약하던 욱신거림이 없어졌다.
프리스크가 목에 두른 것을 조심스레 풀어, 아직 익숙지 않은 감각에 몸을 떨었다.
손끝의 감각에 의지하여 거울 없는 지하에서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꽃은 다시 4송이하고 한송이의 꽃봉오리로 변해있었고, 잘렸던 넝쿨은 언제 잘렸냐는 마냥 줄기를 뻗고 있었다.
프리스크는 살짝 어두운 표정으로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피로 얼룩진 주황 끈만을 쳐다보았다.
그런 프리스크에게 파피루스는 다가왔다.

"녷.. 인간! 형이라면 걱정하지 마!"
*아니, 나는 그를 걱정하는 게 아니야.

프리스크는 그렇게 적은 종이를 내보였고, 파피루스는 다시 어림짐작을 하기 시작했다.

"음.. 그러면 옷이 더러워져서 그래?"
*사실 이 목도리는 날 좋아해 주시는 분에게 받은 거라서.. 하지만 이제 이건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르고..
"녷! 걱정 마! 하룻밤 내로 예쁘게 빨아줄게!"

파피루스는 프리스크의 손위에 힘없이 얹어져 있는 얼룩진 주황 끈을 낚아채 갔다.
프리스크는 잠시 머뭇거리며 파피루스에게 돌려달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파피루스가 뭘 어찌하든 프리스크는 더이상 뭔가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손을 주먹 쥐어 거두어 자신의 가슴 위로 얹었다.

'엄마..아빠.. 만날 수..있을까.. 나는..'

더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이 몸으로, 부모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 프리스크는 걱정했다.
하지만 미리 겁먹어서는 안 된다는 언젠가 보았던 TV의 구문이 떠올랐다.
프리스크는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졌다.

'가야만 해. 기다리실 거야.. 기다리고 계실 거라 믿어..'

프리스크의 표정 변화를 전부 보고 있던 차라는 살짝 소리 없이 비웃었다.

'뭐야, 이애... 아직도 그것들이 살아있을 거라 믿는건가? 하긴, 그전에 기절한 거 같던데.'

그렇게 앉아있던 프리스크에게 소리 없이 다가온 파피루스는 프리스크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프리스크의 손을 잡아주었다.

"녷.. 인간! 그때 내가 하려던 말은 말이지.. 사실 너와 친구가 되고 싶었어!"

프리스크는 갑작스런 파피루스의 고백에 잠시 몸을 떨었다.
파피루스는 바보가 아니다.
모든 괴물들이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단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편할 대로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했을 뿐이다.
프리스크가 뭐에 걱정하는지 대충은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친구가 된다면.. 이 위대한 파피루스님은 네가 기사단장과 만나지 못하도록 도와주도록 하지!"

파피루스의 말에 프리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 수 있는 길이 분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프리스크는 진심으로 파피루스와 친구가 되고 싶기도 했다.
프리스크의 수긍과 동시에 파피루스가 와락 껴안고 들어 올렸다.

"녷! 그럼 우리 이제 친구인 거야! 인간! 녜헤헤헤!"

파피루스는 그대로 한 바퀴 돌더니, 프리스크를 조심히 내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하듯 외쳤다.

"이 위대한 파피루스님께서 인간이 가는 길을 최대한 돕도록 하겠노라! 녜헤헤!"
*그런데, 어떻게..?

프리스크의 질문에 파피루스는 자신만만한 포즈를 취했다.

"기사단장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거든! 문자로 네 인상착의를 헷갈리게 만들어버리면 돼!"

파피루스의 자신만만한 미소에 프리스크는 피식하고 웃었다.

*응. 믿을게. 고마워 파피루스.
"아, 맞아. 인간! 오늘은 선물의 날이야! 밤에 너도 같이 가보자!"

파피루스의 말에 프리스크는 고개를 갸웃였다.
그리고 의문을 그대로 글로 적어 표현했다.

*그거 아까 다른 애한테도 들었는데.. 데체 뭐하는 날이야?
"밤을 기대하시라!"

프리스크는 고개를 갸웃였으나, 파피루스가 스콘과 알 수 없는 과일주스를 가져와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퍼즐을 가져와서 놀거나 하며 파피루스와 프리스크는 친해져 갔다.

그리고 밤이 되어 파피루스가 프리스크를 이끌고 마을로 나왔다.
스노우딘의 광장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마법으로 된 빛들이 걸리고, 그 아래에 선물들이 잔뜩 있었다.
그리고 파피루스는 눈을 반짝이며 두 개의 상자를 들고 프리스크에게 다가갔다.

"세에상에! 이것 봐 인간! 네 것도 있어!"

프리스크는 지상의 크리스마스 정도로 생각했고, 어째서 자신의 것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은 들었다.
하지만 그런 프리스크의 의문이 더 커지기 전에 파피루스가 멋대로 프리스크의 손에 상자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대로 쌩하니 손을 잡고 가더니 화원 안에서 파피루스는 위를 가리켰다.
그에 따라 프리스크는 고개를 들었고, 하늘의 어둡고 컴컴한 동굴의 천장 위로 뭔가가 치솟았다.
그것은 한번 터짐과 동시에 수많은 빛을 뿌리며 어두운 천장 위에 머물렀다.

"1시간밖에 못 보지만, 스노우딘의 별이야! 녜헤헤! 사실은 지붕 위가 제일 좋지만.. 인간은 추우면 안 되니까!"

프리스크는 그 별과 같은 빛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녜헤헤! 보아하니 인간도 맘에 들었나 보구나!"

프리스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결국 그대로 프리스크는 화원 속에서 잠에 빠져들었다.
약간 붕 뜨는 기분이 들었지만, 프리스크를 덮친 수마는 그것으로 쉽게 깨어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