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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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yama Erina - Kai)

15 - 지하의 꽃.

프리스크는 계속 앞으로 향했다.
문득 상자가 눈에 보였다.
시험 삼아 상자를 열어보니, 스노우딘에서 넣어둔 눈사람 조각이 반짝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녹지 않는 눈사람 조각을 향해 프리스크는 손을 모아 기도했다.

'지상으로 나갈 수 있기를..'

프리스크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자신의 흔적을 메아리 꽃에 남길 수가 없기에, 최소한 언제나 남아있을 수 있는 조각에 빌었다.
프리스크는 상자를 닫고, 물살을 비틀거리며 건넜다.
몸이 쉽게 지친다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만큼 체력이나 버티는 힘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살을 한번 건너고 나서 잠시 자리에 주저앉아있었다.
하지만, 다시 앞으로 가야 했기에 프리스크는 자신의 다리를 매만졌다.
조금 힘이 돌아오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갔다.
자신의 키보다도 커다란 수풀이 가득했다.
그 안으로 슬며시 들어설 때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녕, 언다인! 오늘의 아침 보고를 하러 왔어.. 그러니까, 인간은.."

파피루스의 머뭇거림과 언다인이라는 소리에 프리스크는 발을 멈춘 채 제 키보다 큰 수풀 속에서 쭈그려 앉았다.

"어, 그래.. 음. 만나긴 했어. 그런데, 내 생각보다 발이 빨라서.. 놓쳤어. ..어? 어디로 갔냐고?"

파피루스를 재촉하듯이 철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말할게, 물론. 넌 내 친구이자 스승인걸.. 그러니까, 스노우딘에는 없어. 아마 폐허로 갔거나.. 여기로 왔거나..
 음.. 그러니까 내 손 밖의 일이란 거야, 이제는.. 그런데, 꼭 잡아야 할까? 친구.. 라던가? ....으.. 아냐 아냐, 내가 말이 헛나왔어.
 그러니까 그 창은 좀 치워달라고.. 그래. 뭐.. 인간이 이 지하 어딘가에 있는 건 확실하단거야. ..그래. 다시 스노우딘에서
 본다면.. 그땐 연락할게."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갔다.
프리스크는 잠시 다른 소리가 더 나진 않는지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자, 프리스크는 살짝 숨을 내쉬며 일어나려고 손을 뻗었다.
그것으로 수풀이 흔들리며 소리가 났고, 갑자기 묵직한 발소리가 났다.
프리스크는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찌를듯한 살의가 느껴졌다.
여태까지 겪은 적이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살의였다.
들키면 죽을 거라는 생각에 프리스크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살의가 슬며시 죽어가듯 하더니, 그대로 발소리가 멀어져가며 사라졌다.
프리스크는 손끝을 겨우겨우 움직였다.
숨 한 번 조심히 내뱉으며 일어나 위를 쳐다보았다.
아무도 없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프리스크는 발을 옮겼다.
수풀을 나오고 얼마 안 가 괴물꼬마가 따라 나왔다.

"음! 너 굉장하네! 그분이 너를 쳐다보고 있었어! 눈이 마주쳤을 때 어땠어?! 아- 나도 그런 뜨거운 시선 받아봤으면..!"

프리스크는 눈앞의 괴물꼬마가 인간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처음부터 그 따가운 시선 속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자신에게 말을 걸 리가 없었다.
프리스크는 그저 웃는 얼굴을 했다.

"난 그분을 찾으러 가볼 거야! 수고해!"

급하게 달려나가던 괴물꼬마가 넘어졌다.
프리스크는 당황하며 괴물꼬마를 잡아주려 했지만, 괴물꼬마는 익숙한 듯 잽싸게 일어나서 다시 가버렸다.

프리스크는 다음으로 향했고, 거기에는 깊은 물이 있었다.
도저히 그냥은 건널 수가 없어 보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글이 적힌 표지판을 보았다.
프리스크는 글을 찬찬히 읽고 끝에 그려진 꽃을 보았다.
바로 옆에 피어있는 꽃들이였다.
프리스크는 그 꽃들을 살짝 들었다.
의외로 손쉽게 뿌리까지 뽑혔다.
땅에서 자라는 꽃치고는 뿌리가 너무나도 짧았다.
흙 위에 그저 내던져진 것과 다름없는 꽃을 물 위로 슬쩍 밀었다.
꽃은 수류와 상관없이 프리스크가 미는 대로 떠내려갔고, 네개의 꽃 모두를 밀어 넣어두자, 꽃들이 화사하게 펼쳐졌다.
커다란 꽃잎은 프리스크가 조금 웅크리면 누울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위를 조심스레 밟자, 물에 파문이 일어나며 프리스크를 온전히 받아주었다.
프리스크는 살짝 허공을 걷는듯한 출렁이는 기분과 함께, 꽃다리를 건넜다.

프리스크가 다음의 꽃다리를 만들기 위해 꽃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아직 살아있는 거야?"

퉁명스럽고, 잊을뻔한 그 목소리에 프리스크는 얼굴을 굳힌 채 뒤를 돌았다.
예상대로 그곳에는 플라위가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프리스크를 쳐다보고 있었다.

"꽤나 끈질긴 인간이네.. 아니, 그 꽃이 처음엔 없었던가..? 그 때문에 더 오래 가는 거겠지."

프리스크는 플라위에게 다가갔다.
플라위는 처음 이후 단 한 번도 프리스크를 죽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야? 이렇게 멍청할줄은.. ..?종이..?"
*플라위는 왜 나를 쫓아오는 거야? 혹시 친구가 되고 싶어?

플라위는 종이를 쳐다보다가 프리스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재미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뭐.. 네가 그녀랑 같을 리 없지.. 아니, 오히려 정 반대야. 왜 그렇게 지상으로 가고 싶어 하는 거야?"
*엄마아빠가 기다릴 테니까.

플라위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
너무 놀라는듯했다.

"넌.. 부모가 있는 거야?"
*..? 누구나 있지 않아?
"..아, 그래. 있지. 괴물도, 부모 정도는 있지.. 음.."

플라위는 잠시 프리스크를 감상하듯 쳐다보았다.
그리고 시선은 프리스크의 손에 들린 메모지에 멈추었다.

"그걸 건네주는 놈이 있긴 했나 봐?"
*어.. 전부 본건 아니었어?
"스노우딘은 그닥 마음에 안 들어서 안가."

프리스크를 메모지에 뭔가를 쓰다가 줄을 쭉쭉 긋고 다시 써 내렸다.

*샌즈가 줬어.
"아- 그래. ..어, 잠깐.. 뭐? 그 해골이? 인간인 너한테?"

플라위는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프리스크를 쳐다보았다.

"..그래.. 어쩌면.. ....힘내봐. 응원정돈 해줄게."

플라위는 프리스크에게 그 말을 남기고 왔을 때처럼 휙 하니 땅속으로 사라졌다.
프리스크는 갑자기 사라진 플라위에게 뭔가 할 말이라도 있던 마냥 땅 위로 손을 뻗었다.
잡힌 것은 그저 흙이었다.
프리스크는 손에 묻은 흙들을 털어내며 일어났다.
이미 가버린 플라위에 미련을 남기며 머뭇거리는 건 위험하다 생각했으니까..

프리스크가 다리꽃으로 길을 만들어 가려다가 전화기가 울렸다.
또 토리엘인가, 하며 프리스크가 받자, 의외로 파피루스의 전화였다.

"녜헤.. 조금 물어볼게 있어서.. 인간! 만약 내 질문에 Yes! 이면, 전화기를 두들겨! 너, 옷 말이야.. 그때랑 다름없지?"

프리스크는 아까의 일을 생각하며, 마이크 부분에 손가락을 두고 툭툭 쳤다.

"그래! 변함없구나! 알았어!"

파피루스의 전화가 끊어졌다.
그다음의 메아리 꽃이 피어나있는 복도를 거닐 때였다.
어디선가 뜨거운 물이 와락 쏟아졌다.
프리스크는 급하게 몸을 돌렸지만, 다리 부근에 그 물이 튀며 부딪쳤다.
살짝 화끈거리는 발목을 쓰다듬을 새도 없이 프리스크는 주변을 경계했다.
워슈아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몸 안에 담긴 물들을 바글바글 끓이고 있었다.
그 물을 다시 한 번 프리스크에게 쏟아내려는 듯이 워슈아는 몸을 뒤흔들고 있었다.
프리스크는 워슈아의 공격이 저것 뿐이기를 바라며 마구 튀어오는 물들을 어떻게든 피하며 달렸다.
하지만 튀어오른물들은 가차 없이 프리스크의 몸에 스치듯 닿았다.
워슈아를 지나쳐서 달리다가 두 개로 길이 나뉘었다.
문제는 두 길 모두 막힌 것이 눈에 빤히 보인다는 것이었다.
프리스크가 망설이는 틈에 워슈아가 물을 프리스크에게 다시 한 번 뿜었다.
프리스크는 온몸이 뜨거운 화상을 입으며 땅을 뒹굴었다.
아파서 꼼짝도 못 하는 프리스크의 위로 워슈아가 뛰어들었다.
잘근잘근 밟히는 감각에 프리스크는 절명했다.

다시 눈을 뜨고, 괴로운 꽃을 토하고서, 다리꽃 퍼즐을 풀어 앞으로 나아갔다.
어김없이 파피루스의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어, 음.. 이 질문, 했던 거 같지만.. 뭐 상관없겠지! 인간! 만약 내 질문에 Yes! 이면, 전화기를 두들겨! 너, 옷말이야.. 
그때랑 다름없지?"

프리스크는 전화기를 다시 두드렸다.

"그래! 변함없구나! 알았어!"

프리스크는 파피루스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였다.
자신이 아는 한 괴물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난 적 없는 것 같았지만, 만났다는 듯이 말을 내뱉기도 했었다.
파피루스도 분명 그런 줄 알았지만, 어째서인지 재질문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죽었다는 감각만을 기억하는 프리스크는 괴물들은 자신이 죽기 전의 일을 기억한다고 내렸던 결론이 있었다.
파피루스는.. 뭔가 다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생각을 일단 떨쳐버렸다.
가야 할 길이 남아있었으니까.

프리스크는 다시 워슈아를 만났고, 이번에는 막다른 길이라도 있는 힘껏 도망쳤다.
그리고 구석에 몰린 프리스크에게 워슈아는 바들바들 떨며 물을 뱉을 준비를 했다.
프리스크는 더 도망갈 곳 없는 벽을 더듬거리다가 뒤로 넘어졌다.
벽에 길이 생겼고, 프리스크는 워슈아를 피해 도망쳤다.
다리가 조금 데였지만, 참을만했다.
어두운 물 위에 떠 있는 판자에 올라타니, 저절로 앞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워슈아는 더 쫓아오지 못하고 잠시 씩씩거리며 프리스크를 쳐다보고 있었다.
프리스크가 타고 있는 판자는 반대편의 땅에 부딪히며 멈추었다.
프리스크는 건너편 땅에 앉아서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숨을 다 고른 뒤 다시 일어나 앞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