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내음이 사방에 가득 찼다. 부드럽게 감은 두 눈 틈새로 어둠을 바탕으로 붉고 빛나는 세상이 잔잔하게 흘러다녔다. 선잠 속에서 들리우는 세상의 알 수 없는 이야깃소리가 과거를 일으켜 불러왔다. 시선을 등진 채 꽃밭에서 무언가 꼼지락거리는 소년의 모습이 지나갔다. 흰 털에 물들어가는 누런 꽃잎이 천천히 그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똑 꺾이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무언가 손을 꼬느라 끙끙대기도 하고. 갈라진 줄기에서 날 법한 풀비린내가 신기하게도 콧등에 닿았다.
등에 느껴지는 투박한 나무거죽과 가지에 매달린 잎들의 숨소리. 돗자리를 깔고 앉아 하루를 여유롭게 보내는 지금의 낮잠 속에서 과거가 잇따라 떠올랐다. 옅은 하품이 절로 나왔다. 나른하고 평범한 일상이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졌다. 소년은 아직도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유별난 인연들이었는데. 모두 함께 친구가 되어 손을 잡고 나아갔건만, 오직 단 한 명 만이 그러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한숨을 살짝 쉬었다. 누군가가 어깨를 톡톡 쳤다. 햇살에 흐릿해진 눈망울이 트이면서 제 볼 것을 찾기 시작했다.
백옥같이 흰 소년이 뒷짐진 채 고개숙여 바라보고 있었다. 빤히 보는 그 순수한 눈망울에는 잔뜩 미소가 피었다. 손 끝에 붙은 꽃잎 조각에 거칠어진 털이 머리위에 닿았다. 조심조심, 이리저리 손을 놀리는 모습 끝에 소년은 흐른 땀을 닦으며 당당하게 허릿짐을 지었다. 그의 등 뒤로 비추는 햇살과 만개한 금빛 꽃의 언덕에 바람이 일렁였다. 그저 한 송이 꽃처럼 밝은 웃음을 비춘 채 아지랑이 마냥 사라지는 소년에게 손을 뻗어보았지만 애꿎게도 닿지 않았다. 그저 그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가지 말아달라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맑지만 추억에 물든 눈물 한 방울이 턱을 타고 흘렀다.
티 한 점 없는 푸른 색으로 빛나던 하늘이 어느사이에 붉고 누렇게 물들었다. 조금 마른 입 안에서 단내가 났다. 침을 한 번 삼키고는 옆에 핀 꽃잎을 조심스레 보듬었다. 나무 뒤에서 언덕을 치고 올라온 바람이 은은한 석양 하늘을 향해 도약하며 꽃잎의 손을 잡아챘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지상의 모두와 함꼐하고 싶어하던 소년의 소원이 뜻을 이룬건지, 온 세상에 흐드러진 금빛 꽃의 향연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하늘에 치솟는 꽃잎과는 다르게, 턱끝에 매달린 눈물은 품 안에 떨어졌다. 그간 되뇌어온 기억들이 둥그렇게 스며들었다. 소년이 정성들여 만들어 전해준 금색 화관이 하늘의 주황빛을 잔뜩 머금었다. 당신은 그제서야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잘 있어, 아스리엘."
좋다. 그런데 제목은 무슨 의미야? 빠가라서 모르겠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