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햇살의 인사 / Red Sunshine Greeting - 불꽃심장 / Flaming Heart)
26 - 붉은 대지
프리스크는 길을 나아가다가 다시 둘로 갈랜 길을 보았다.
어쩔까 고민하던 사이, 타오르는 열기 속에서 희미하게 나는 자신과는 다른 꽃향기에 고개를 돌렸다.
앞으로 난 길보다, 그쪽으로 프리스크는 발을 옮겼다.
그리고 목격한 것은 붉게 피어있는 아르메리아와 그 사이에 놓인 낡은 초록색의 앞치마였다.
프리스크는 꽃 속을 걸어가 앞치마를 들어보았다.
아르메리아의 뿌리라도 얽혀있는 듯, 뚜두둑 거리는 소리와 함께 꽃잎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낡은 앞치마는 여기저기 자상이 남아있었다.
끝이 찢기거나, 도중에 칼로 베인 듯이 찢기거나..
프리스크는 여태까지의 여정 속에서의 붉은 꽃들을 떠올렸다.
"이제 알아차린 거야? 괴물들은 인간을 죽였어."
프리스크의 손끝이 떨린다.
"물론 인간도 저항은 했겠지. 그런데, 뭐.. 지상으로 나간 인간은 여태 아무도 없어."
붉게 빛나는 열기와 그 열기의 빛 속에서 붉게 물든 대지.
그리고 붉게 피어오른 꽃과 그 속에서 버려지듯 방치된 낡은 앞치마.
"실패하면 너도 이렇게 될 거야. 프리스크. 하지만 너는 누굴 다치게 하지 않겠지."
차라가 앞치마를 끌어안은 채 주저앉아버린 프리스크의 어깨를 잡는다.
"내기하지 않을래?"
*...내기?
"그래. 내기. 네 스스로 지상에 가게 되면, 난 네게 진실을 가르쳐주고 너를 해방해줄게. 그 죽음으로부터."
차라는 비릿하게 웃었다.
프리스크의 두 눈을 차라가 가린다.
"대신 네가 지게 되고.. 지상으로 가지 못한 채 죽게 된다면.. 다음에는 내 말을 따라줘."
*다음..? 다음이라니..?
프리스크는 놀라움에 고개를 돌렸다.
"지금 나는 네게 들러붙어 있는 망령이지. 하지만 아주 특수할 경우.. 너를 도울 수 있어."
프리스크가 차라를 빤히 쳐다본다.
차라는 살짝 떨어져서 불쌍하다는 듯한 감정을 담아 프리스크에게 조소를 보낸다.
"네가 죽고, 네 생명력이 이곳에 모였을 때."
차라는 프리스크의 왼쪽 가슴 부근을 검지로 찔렀다.
"그때 나는 마법을 시전할 수 있어. 내가 가진 미련으로 붙잡아둔 마력과.. 네 생명력이 치환된 마법. 이 두 개로 말이지."
*그게 뭐야.. 차라?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
그 소리에 프리스크가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차라는 그런 프리스크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키득거린다.
"물론, 이건 네가 완전하게 죽었을 때 이야기야. 넌 그럴 생각 없잖아?"
프리스크는 제 심장 부근을 꽉 쥐었다.
그리고 앞치마를 들고 일어났다.
*죽지 않을 거야.
프리스크는 앞치마를 자신의 허리에 두른다.
"어라? 그런 낡은 거 가져가려고?"
*데려가고 싶어. 지상으로..
"....그래. 잘해봐."
프리스크는 앞치마를 잡았을 때, 느낀 것이 있었다.
조금은 몸이 가벼운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프리스크가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원래 가려던 길로 향했다.
무빙워크가 보이자, 알피스의 전화가 걸려온다.
"아, 거기 버튼이 세 개 있거든? 타이밍 맞춰서 눌러. 그러면 길이 열릴 거야."
조금 멀리 빛으로 된 장벽이 보였다.
프리스크는 고개를 끄덕였고, 무빙워크에 발을 올렸다.
그리고 버튼을 차례로 누르며 끝에 다다랐다.
빛의 벽이 스르르 사라지는 게 보였다.
프리스크는 다시 앞으로 향했고, 눈앞에 증기미로가 보였다.
프리스크는 눈앞의 점이 그려진 발판을 한번 밟아보았다.
철컹 거리는 소리와 함께, 옆의 증기 방향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휴대폰이 진동소리를 내기에 프리스크는 휴대폰을 꺼내보았다.
[←↓↓←↑↓↑↑←]
알피스의 문자였고, 방향을 지시하는 표시가 보였다.
프리스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증기 발판이 가끔 화살표가 바뀌는 것을 기억해냈다.
프리스크는 발판을 다시 밞아 원상태로 해놓고, 알피스의 문자대로 미로를 빠져나갔다.
빠져나간뒤, 보이는 것은 금고가 올려져 있는 탁자와 쥐구멍..
프리스크는 슬쩍 쥐구멍을 쳐다보았다.
주머니를 뒤적여봤지만, 있는 것은 금화와 메모지,펜.. 그리고 휴대전화뿐.
프리스크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뭐야? 네가 왜 미안해하는 건데? 진짜 바보네.."
*장소가 장소잖아.. 배고프지 않을까 싶어서.
"괴물들에게도 그럴 거야?"
프리스크는 잠시 발을 멈추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 내 목숨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모험할 순 없어.
"..킥... 그래. 열심히 해봐."
프리스크는 조금 더 앞으로 가려다가 돌아오는 정찰병과 만났다.
"어이! 정지. 이 근처에 노란 머플러에 파란 치마를 입은 인간에 대한 제보를 받았거든. 여긴 위험해. 자.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줄게. 얌전히 따라와."
한 정찰병이 손을 뻗어오자, 프리스크는 두 정찰병 사이의 빈틈으로 달려나갔다.
살짝 옷을 잡혔지만, 프리스크는 플라스틱 봉을 휘둘러 빠져나간다.
"이, 이봐!"
"..! 친구. 노란 머플러.. 파란..치마.."
"..! 이런.. 거기서!"
프리스크는 아주 간발의 차이로 갑자기 나타난 빛나는 벽 너머로 도달했다.
"뭐야! 이게 왜 갑자기.."
"젠장.. 엘리베이터로 돌아가자! 저 너머에서 만나면 되겠지!"
"칫.. 할 수 없군."
프리스크는 만약 자신의 다리가 더 느렸더라면 분명 잡혔을 거라고 생각했다.
거친 숨을 고르며 어두운 곳을 향해 걸었다.
갈 수 있는 곳이 그곳 뿐이었기에..
갑자기 스포트라이트가 프리스크를 비춘다.
그리고 메타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멋진 저녁입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MTT 방송에서 생중계 중인 여러분의 메타톤입니다! 핫랜드 동쪽에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등장했어요! 그리고 저의 특파원이 거기에 있지요! 자, 거기 인간 자기! 어서 움직여요! 당신을 위해
특별히 스포트라이트를 준비했다구요! 열 명의 시청자들이 기다리니까, 어서 보도할만한 걸 찾아봐요!"
메타톤의 재촉하는 소리에 프리스크는 몸을 움직였다.
스포트라이트의 빛 덕분에 희미하지만, 주변이 보였다.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찾아 가보았다.
"오, 그것은 그냥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물잔이네요! ..잠깐.. 비치는 색이 이상한데.. 물 맞나요..? ...세상에! 그것은..!!
오, 폭탄이네요!! 이럴 수가! 엄청납니다!"
갑자기 주변이 밝아지며 나머지 다섯의 폭탄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메타톤도 나타났다.
"이런 이런..! 여기 있는 모든 게 폭탄입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긴장감이 흐를 수가 있죠? 물잔.농구공.개.폭죽.선물.책...
이 모든 것이 다 폭탄이에요! 제가 들고 있는 이것도 말이죠!"
메타톤의 마이크가 던져졌다.
그리고 프리스크에게서 세 발자국 앞에서 작게 폭발하며 분홍빛 연기를 내뿜는다.
프리스크는 작게 기침을 했다.
그리고 그 얼굴에 긴박함이 들었다.
도망치려고 주변을 둘러보지만.. 빛의 벽으로 갈 수있는 출구라 생각되는 길은 모두 막혀있었다.
"용감한 특파원씨.. 시간 내로 당신이 저 모든 폭탄을 제거하지 못하신다면..!"
메타톤이 빛의 벽 건너편에 있는 막다른 길에 있던 보자기를 펄럭이며 드러냈다.
시간이 적혀있는 커다란 폭탄 같았다.
"이 폭탄이 터질 거에요! 시간은 20분! 자! 어서! 어서 움직여요! 이렇게 말하는 사이! 폭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네요!"
문득 프리스크의 주변에 있던 폭탄들이 제각각 움직이기 시작했다.
"걱정 마세요! 폭탄마다 멈춤 기능의 버튼이 있어요! 자, 힘내봐요!"
프리스크는 다리를 움직여 움직이는 폭탄들을 잡아야 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그저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애매한 뜀박질이었지만, 프리스크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도망친 것들을 붙잡고 화살표가 표시된 버튼을 눌러야 했다.
겨우 5분이 남았을 때 전부 해체에 성공했고, 프리스크는 막혀오는 숨에 마지막으로 멈춘 물잔 폭탄을 든체 주저앉았다.
"분하네요, 자기! 폭탄을 모두 해체해버렸군요! 모두 해체하지 않았으면 5분 뒤 저 큰 폭탄이 터졌을 겁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것을 원하시겠죠! 이런... 모두들 실망이 크겠네요.. 할 수 없죠. 다음엔 더 좋은 쇼로 돌아오겠습니다!"
빛의 벽들이 사라지고, 메타톤도 사라졌다.
프리스크는 숨을 고르고 일어났다.
앞으로 나아가자 코어가 더욱 가까이 보였다.
그렇게 멍하니 있던 프리스크의 주머니 속 전화기가 울린다.
"그래, 메타톤이 점점 과격해지고 있는 거 같네. 그래도 용케 다 빠져나오고.. 운이 정말 좋구나? 아니, 그것도 실력인가?
코어도 가까워져 가고..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네. 물론 코어 안도 만만치는 않겠지만. 네게 조금 나쁜 소식이야.
아스고어 대왕을 지금 네 몸 상태로는 이기기 힘들어. 누가 도와주지 않는 이상. 그래도 넌 갈 거야? 내가 보고 있어.
고개만 끄덕이면 돼."
프리스크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은 긴장으로 일그러져있었다.
그리고, 조금 눈물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 메타톤은 끈질길 거야. 힘내봐."
알피스의 전화가 끊어졌다.
프리스크는 좀 더 앞으로 나아갔다.
엘리베이터가 아직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프리스크는 엘리베이터를 눌러 작동시킨다.
곧바로 문이 열리고, 5개의 활성화된 버튼이 프리스크를 반긴다.
[ L3 ]
엘리베이터가 올라간다.
프리스크는 플라스틱 봉을 들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
대지[大地] : 1 대자연의 넓고 큰 땅. 2 좋은 묏자리.
묏자리 : 묘자리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