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크가 시한부인 이야기 


하이퍼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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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스크는 토리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게 하려 애썼다. 자신을 공격했던 꽃을 물리쳐주었던 일. 같이 폐허를 거닐고, 함정과 괴물에 맞서는 법을 알려준 일. 휴대전화를 주며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던 일. 피를 쏟고 쓰러지고 말았던 일까지. 그러나 토리엘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치였다. 프리스크는 절망에 찬 얼굴로 설명을 계속 이어가려 했으나, 이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음, 아가. 혹시 꿈을 꾼 건 아니니?”


 울컥.

 그 말에 프리스크는 순간 화를 낼 뻔 했다. 꿈이라면 대체 어떻게 토리엘의 이름을 알겠는가. 게다가 같이 있어주겠다며 손을 잡아주었던 건 토리엘이 아니었던가. 방금까지 그렇게 따뜻하게 대해줬으면서, 대체 왜…. 머리가 뜨거워짐과 동시에 가슴께가 욱신거렸다. 익숙한 고통이 조금씩 프리스크를 옥죄어 오기 시작했다. 감정이 격해지자 바로 몸에 이상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화를 내거나 했다간 지상에서 겪었던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기절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프리스크는 겨우 감정을 추슬렀다.


 “…우선 가자꾸나. 여기는 별로 계속 있기에 좋은 곳이 아니거든.”


 토리엘은 이번엔 프리스크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등을 돌려서 앞서 걷기 시작했다. 프리스크는 그 등을 바라보았다. 손끝이 떨렸다. 마치 엄마 같다고까지 여겼던 토리엘이 갑자기 멀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울음이 북받쳐 오르려했다. 그러나 프리스크는 꾹 참았다. 이런 데서 떼 써 봤자 바뀌는 건 없다. 프리스크는 묵묵히 토리엘의 뒤를 따라 걸었다.


 둘은 어둠 속을 지나 다시 밝은 폐허의 내부로 들어왔다. 저번과 똑같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프리스크는 이번엔 어떠한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주변의 모든 게 덧없게만 느껴졌다.


 어째서 토리엘은 날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


 프리스크는 잠시 사색에 잠겼다. 폐허 초입에서 만났던 꽃 생각이 났다. 이름은 플라위라고 했던가. 토리엘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플라위는 프리스크가 피를 토하고 죽은 것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꽃은 프리스크가 모르는 무언가를 더 아는 눈치였다. 어떠한 ‘힘’에 대해 언급하면서, 프리스크는 그것을 다룰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프리스크는 살면서 병과 외로움 빼곤 얻어 본 기억이 없었다. 지하에 떨어졌다고 뜬금없이 갖고 있지도 않던 이상한 힘이 생길 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은 걸까.


 얼른 답이 나오질 않았다. 상황은 안 좋게만 흘러가고 있었다. 프리스크는 아직 어린 아이였고, 아이가 감당하기엔 이해가 안 되는 일 투성이었다. 어쩔 도리가 없기에 프리스크는 일단 토리엘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둘은 저번보다 더 빨리 폐허를 통과했다. 함정도, 괴물도, 이미 다 지나왔던 것이다. 프리스크는 토리엘이 설명을 마치기도 전에 퍼즐을 해제하고, 괴물을 놓아주었다. 그럴 때 마다 토리엘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프리스크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다 알았냐는 듯이, 그러나 프리스크의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침울해져만 갔다. 어느새 저 멀리, 길고 어두운 복도가 보였다.


 “아가야? 왜 그러니?”

 

 프리스크가 얼른 따라오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토리엘이 뒤를 돌아보았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건만, 아이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선명한 고통이 떠올랐다. 가슴께가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죽지 않도록 열심히 해보라고.’


 꽃이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죽지 않도록 잘 해보라니, 뭘 의미하는 거지?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죽지 않는다는 건가?


 발이 얼른 떨어지지 않았다. 공포로 식은땀이 마구 흘렀다. 저 복도를 지나면 또다시 피를 토하며 죽게될 것만 같았다. 그때, 뒤편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프리스크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황금빛 꽃.

 플라위가 뒤편 모퉁이에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너!”


 말릴 틈도 없었다. 프리스크는 플라위가 있는 곳을 향해 뛰었다. 토리엘이 무어라 외쳤지만 아이는 무시하고 달렸다. 플라위는 킥킥 웃더니 바닥 속으로 쑥 들어갔다. 뒤이어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다시 솟아났다. 마치 프리스크를 놀리기라도 하듯,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도망쳤다.


 “거기, 서!”


 프리스크는 폐허를 질주했다. 격한 운동은 삼가라는 의사의 조언도 잊은 채, 떨어지지 말라는 토리엘의 말도 잊은 채 계속 달렸다. 가슴이 터질 새라 뛰었다. 막다른 곳에 다다르자, 플라위는 그제야 도망치는 걸 그만두었다. 간신히 플라위를 뒤따라온 프리스크는 가쁜 숨을 고르며 꽃을 노려보았다.


 “정말 열심히도 따라오네.”

 “너, 너….”


 물어볼 게 산더미였다. 대체 토리엘이 왜 저러는지, 힘은 뭐고, 나는 죽었던 건지, 단순히 기절했던 건지. 그러나 너무 오래 달린 탓에 현기증이 마구 일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프리스크가 할 말을 고르던 차에, 플라위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꼴을 보아하니, 아직도 깨닫지 못한 모양이지, 응?”

 

 그리곤 예의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조롱하듯 말했다.


 “너 같은 녀석한테 그 힘이 간 게 아까울 정돈데. 이 무뇌아 같으니라고.”

 “그러니까, 그 힘이 대체 뭔데!”


 화를 참지 못한 프리스크가 외쳤다. 폐허에 격양된 외침이 울려퍼졌다. 그러나 꽃은 조금도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프리스크가 화를 내고 힘들어할수록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이.


 “너, 진짜 멍청하구나.”


 플라위가 말을 마치는 순간이었다. 목구멍에 뭔가 차오르는 가 싶더니, 이내 뜨끈한 것이 단숨에 목을 타고 튀어나왔다.


 “헤헤헤… 네 몸은 네가 더 잘 알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네. 죽지 않도록 열심히 해보라고 했던 내 조언은 듣지도 않았지, 그치?”


 또다시 눈앞이 붉게 물들었다. 철퍼덕, 프리스크는 몸을 가눌 새도 없이 피웅덩이 위에 엎어졌다. 의식이 빠르게 멀어져갔다.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땀과 피로 엉망이 된 프리스크는 꽃을 쳐다보는 일 빼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경각심을 다시 일깨워줄 필요가 있겠군.”


 흐릿한 시야 너머로, 새하얀 알갱이들이 하나 둘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자, 이번에야말로 죽지 말라고.”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곧 몸을 헤집어놓는 듯한 격통이 찾아오더니,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의식이 힘없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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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이 쏟아지는 꽃밭.

 황금빛 꽃들 위에, 한 아이가 가만히 앉아있었다.


 아이는 천천히 옷을 매만졌다. 피로 얼룩졌어야 할 옷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해져있었다.


 그래,

 그런 거였구나.


 그 힘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아이는 고개를 푹 숙여 꽃밭에 얼굴을 묻었다.



 소리 없는 울음이 폐허를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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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부턴 죽는 빈도가 적어질 예정이다 너무 많이 죽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