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스크는 토리엘의 파이냄새를 잊어버렸다.
그것은 아주 작고 또한 가벼운 기억이여서,프리스크는 토리엘에게 파이를 구워달라고 손쉽게 기억을 덮을 수 있었다.
손이 바르르 떨렸다.
프리스크는 로드되기 이전에 폐허에서 나가는법을 물었고,토리엘은 아무말 하지 않은채 프리스크를 태워버렸다. 그건 정말로 끔찍한 경험이였다.
프리스크는 세이브를 로드하며 다시는 자신이 그런생각을 품지않길 기도했고,눈앞의 파이의 달콤함을 다시금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머리카락사이로 행복이 슬며시 파고들었다.
마법처럼.
첫번째 기억
*
"밖으로 나가고싶지않아?" 플라위가 방바닥에서 튀어나왔다. 토리엘은 거실에서 책을 읽고있었다.
"그럴생각은 없어." 프리스크가 대답했다. "토리엘이 슬퍼할거야."
"하긴 밖으로 나가봤자 개죽음당할게 뻔하니까." 플라위는 줄기로 책장을 넘겼다. "무슨뜻이야?" 프리스크가 물었다. "밖이 위험하다는건 들었어."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플라위는 프리스크를 보며 한숨을 내지으며 줄기로 아이의 이마를 툭툭쳤다. "궁금하면 네가 직접 물어보는게 어때?"
"아마 자지러질걸." 플라위가 웃었다.
"이렇게말야." 그 식물은 그저 유희를 즐기는듯 키득거리며 프리스크를 삽시간에 죽여버렸고,덕분에 프리스크는 토리엘의 이름을 다시묻게되는 무례를 끼쳐야했다.
그 행동은 토리엘의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
"여섯명의 인간이 죽었어."
토리엘이 말했다. "인간의영혼 일곱개가 모이면,결계를 부술 수 있단다..우리가 이 지하에서 나갈 수 있는거지."
"좋은 일이네요." 프리스크가 대답했다. "저만 빼고."
"그렇지 않단다,아가." 토리엘은 그 대답에 정말 슬픈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프리스크는 토리엘의 눈을 피했다. 토리엘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만약 그렇게되면,아스고어는 인류를 멸망시킬거야. ..물론 그렇다고 지금상황이 좋은건 아니지만."
"토리엘은 밖을보고싶지 않나요?" 프리스크는 한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물론." 토리엘이 미소지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냐."
"이만 자야할 시간이란다." 토리엘은 방불을 끄며 방문을 열었다. "좋은 꿈 꾸렴."
"전 토리엘이 밖을 봤으면 좋겠어요."
프리스크는 머뭇거리며 속삭이듯 말했고,토리엘은 방문을 닫으며 프리스크의 대답을 애써 무시했다.
*
"밖으로." 프리스크는 토리엘의 물음에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나갈거에요." 프리스크는 그렇게 대답했다.
"왜." 토리엘은 정말 무서운 어조로 말했다. "꼭 그렇게해야겟니?"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으니까." 프리스크는 토리엘의 말을 가로채며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다. "절 밖으로 보내줄 수 있나요?"
프리스크는 자기가 낼 수 있는 목소리중에서 가장 무겁고 진중한 어조로 말했고,그건 토리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럴 순 없어."
*
프리스크는 똑똑한 아이였다.
아스고어를 설득하지 못하면,자신이 아니더라도 결계는 부숴지고 전쟁이 일어나리라는걸 알고있었다.
프리스크는 아스고어에게 찾아가기로했다.
집에대한 기억은 없어졌다. 에봇산에 떨어진 이후로 이전의 일은 기억나지 않았다.
*
그후엔 같은패턴으로 일이 진행되었다.
프리스크가 폐허를 나가는법에 관하여 묻는다.
토리엘이 프리스크를 막아선다.
프리스크가 불태워진다.
프리스크는 이번엔 토리엘 몰래 밖으로 나가려 시도했으나,토리엘은 순식간에 프리스크의 눈앞으로 바로 달려와 프리스크와 전투를 벌였다.
프리스크는 잿더미가될때야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다.
"소용없었네." 프리스크는 방금전 감각을 잊으려 머리를 뒤흔들었다.
"응?" 세이브된 침대옆에는 토리엘이 있었다. "무슨일 있니?"
"아무일도."
프리스크는 대답하려했지만,그러지 않기로했다. "아무일도 없었어요."
프리스크는 웃었다. 눈물을 감추며.
*
이후에도 프리스크는 폐허를 나서기위해 토리엘에게 맞섰다. 그걸 맞섰다고 표현한다는게 옳은건지는 둘째치고.
끊임없이 세이브를 로드하며 흘러갔던 시간은 되돌릴수 있지만 사라져가는 기억은 되돌릴 수 없었다.
프리스크가 시간을 네번째로 로드했을때,플라위는 프리스크를 비웃으려 땅속에서 튀어나왔다. 플라위는 '넌 정말 멍청하구나'-같은 문장을 말하려했지만,먼저 말을 꺼낸건 프리스크였다.
"넌 누구야?"
"뭐?"
"말하는꽃은 처음봐." 프리스크가 다시 물었다.
"지금 나랑 농담하자는거야?" 플라위가 말소리를 조금 높였다. "무슨소리를 하는거야."
"그거 내가 할말인데."
프리스크는 손가락을 땅에대고 빙긋 돌렸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무슨소릴 하는지 모르겠어."
"내이름은 프리스크야,너는?"
플라위는 너무 당황한나머지 프리스크를 또 죽여버렸고,그덕분에 프리스크는 또다시 플라위를 잊어버렸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있었다.
*
프리스크가 여섯번째로 토리엘에게 불태워졌을때,아이는 눈에띄게 불안해져있었다.
어느때의 프리스크는 침대에서 일어나 토리엘의 이름을 물어보았고,어느때는 여기가 어디냐고하며 폐허에서 길을 잃어 해메고있었다.
토리엘이 손을뻗으면 아이는 항상 방어하려는듯 움찔였다. "아,이건.." 프리스크는 자신의 무례함을 토리엘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프리스크는 다시 손을 거두려 노력했다. 물론 거두진 못했다. "미안해요,정말로." 프리스크가 울먹였다.
"아니란다,얘야." 토리엘은 어렴풋이 느껴지는 살인의 감각을 떠올리며 양팔을 감쌋다. 그리고는 프리스크에게 무언가를 건내주었다.
목에 걸 수 있는 노트 한권.
"무언가 적어주렴." 토리엘이 부탁했다. "어떤것이라도 괜찮아. 떠오르는걸 적어보렴."
간단한 부탁이였지만,프리스크는 굉장히 피곤한 기색을보였다.
몇분이 지나서야 프리스크는 겨우겨우 문장하나를 완성했고,토리엘은 간신히 악필로적힌 그 문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노트에는 떨리는 글씨체로 한 문구가 적혀있었다.
내가 죽을때마다,기억 하나가 사라진다.
*
토리엘은 프리스크를 계속해서 가르쳤다.
프리스크는 정말 똑똑한 아이였지만 계속해서 기억이 사라지는건 막을 수 없었다. (그아이는 수첩에 무언가를 기록하는 버릇이생겼다.)
또다시 프리스크는 폐허를 나가는 방법에 관해 묻는다.
토리엘은 복도로 프리스크를 안내한다.
프리스크는 다시 기억을 잃는다.
시간은 되돌아갔고 다시돌아가,마침내 프리스크는 조각난 기억들로는 토리엘을 떠올리기 힘들어질정도로 망가지기 시작했다.
"토리엘." 프리스크가 침대에서 깨어나며 말했다.
"왜그러니? 얘야."
"그냥.." 프리스크가 한팔로 양쪽 눈을 가렸다. "지금 꼭 이름을 불러드려야 할것 같았어요."
"잊어버리기 전에-" 프리스크는 경련하듯 떨며 토리엘의 손을 꽉 붙잡았고,토리엘은 수치심에 고개를 숙였다.
그 행동에대해 토리엘은 말을 삼키기로 결정했다.
아이에게 미안한 감정을 품는것만으로도 충분히 이기적이였으니까.
*
내가 죽을때마다,기억의 단편이 하나씩 사라진다.
사라져가는 기억은 단편적이다.
퍼즐조각처럼 기억몇개가 빠진느낌이다..기억이 뚝뚝 끊긴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말을 더듬게된다. 어떻게든 기억을 더듬어봐도 떠오르지않는다.
절대로.
*
"난 토리엘이란다. 이 폐허의 관리자."
토리엘은 이제 프리스크가 침대에서 일어나면 늘 같은이야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은 아이를위한 그녀의 최선의 대책이였지만,노트의 내용과 자신을 비교하며 떠올리려고 끙끙대는 프리스크를보면 가슴이 저렸다.
작은 비명소리가 울렸다.
"그만두렴." 토리엘이 권고했다. "떠올리려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아."
"괜찮지 않아요." 프리스크는 노트를 꽉쥐고 힘겹게 대답했다. "저는 왜...전 이렇게 친절한사람을 단번에 잊을 수 있죠..?"
"제발." 토리엘이 간청했으나,프리스크는 계속해서 기억을 더듬었다.
자기가 쓰러질때까지.
*
사라진 기억은 절대로 연상할 수 없다.
조각난부분은 문장에서 지워진 단어처럼 구멍나버린다. 억지로 연상하려하면 따끔한 감각이 머리를 짓누른다.
이 문구도 몇번째 적는것일지 모르겠다. 세이브 되기전에 죽으면 노트에 쓰여진 글씨도 사라지니까.
..만약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면,나는 어떻게되는걸까?
*
무슨일이 일어난건지는 명확했고 또 비참할만큼 확실했다.
프리스크는 토리엘을 보자마자 침대에서 균형을잃고 무너졌으며,토리엘이 손을뻗자 공포에 휩싸여 귀를막고 돌아 엎드렸다.
"..밖으로."
토리엘은 프리스크에게 제안했다. "밖으로." 프리스크는 그 말에 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괴물은 무릎을 꿇어앉고 흐느끼고있었다.
"밖으로 나가자꾸나,얘야."
마침내 프리스크는 토리엘을 잊었다. 완벽하게.
*
"내 이름은 토리엘이란다." 토리엘은 그렇게 말하며 프리스크를 폐허의 문으로 인도했다. "기억하니?"
"....전혀.." 프리스크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듯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프리스크는 목에걸린 수첩을 읽고있었다.
"어쩌면...어쩌면 내가 널 이렇게만든거라고 생각한단다. ..아니,내가 널 이렇게 만든거겠지."
폐허의 문을열자 긴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터널같은 느낌이였다. "미안하구나,아가." 토리엘은 그렇게 말하곤 프리스크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미안해."
그리곤 프리스크를 꼭 껴안으며 흐느꼈지만,프리스크는 이 포옹이 무슨뜻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프리스크는 울었다. 이유없이 울었다.
그저 눈물이났다. 이상하게도.
프리스크는 폐허를 나갔다.
*
새하얀 눈싸라기가 떨어져 프리스크의 눈을 간지럽혔다.
폐허의 문에서 떨어진 눈조각들.
프리스크는 머리에 덮인 눈을 털어내려 손을 위로 뻗었다. 차가운 눈이 손가락에 엉겨붙어 녹아들었다.
입김이 나왔다.
프리스크는 앞으로 나아갔다. 의지가 가득한 채로.
두번째 기억
*
폐허에서 나와 처음 만난 괴물은 놀랍게도 해골의 형상을 하고있었다.그 해골은 무섭게 슬리퍼를 질질 끌며 프리스크의 등 뒤를 노려보며 쿡쿡 찔렀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법을 모르는건가?" 해골은 다가와 악수를 건냈고,프리스크는 거리낌없이 오른손을 뻗어 맞잡았다. 엽기적인 방귀소리가 프리스크의 귀를 간지럽혔다.
"이게뭐야?" 프리스크는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실실거렸다.
"항상 먹힌단말이지,방귀쿠션 악수." 해골은 그렇게 자기 이름을 말하며 윙크했다.
"난 샌즈야,뼈다귀 샌즈."
프리스크는 갑작스레 들어온 샌즈의 윙크에 결국 웃음보를 터트렸고,샌즈는 만족하는듯 빙긋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스크는 웃느라 샌즈의 이름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
"앞에 마을이 하나있는데." 샌즈는 그렇게 말했다. "이길따라 쭉 걸으면 나올거야."
"같이갈래?" 프리스크는 샌즈에게 손을뻗으며 물었다.
"할 일이 있어서." 샌즈는 프리스크의 물음에 답하며 슬리퍼를 질질 끌었다. "저쪽 초소에서 인간이 들어오는지 지켜보는게 일이지."
"그거 나에대한 내용같은데?"
"그럴리가." 샌즈는 코웃음을치며 말했다. "난 방귀쿠션장난에 웃는사람밖에 못봤어."
프리스크는 어깨를 으쓱하는 샌즈의 태도에 비아냥을 하듯 웃었고,샌즈는 그저 실실거리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네 걱정이나 하는게 좋을거야,꼬맹이." 샌즈는 손가락으로 마을쪽을 가리켰다. "내동생은 인간사냥에 미친놈이거든."
샌즈는 경고하며 숲으로 되돌아갔지만,프리스크는 그가 자신처럼 비아냥을 한것같다는 느낌을 받은채 앞으로 걸어가야했다.
*
프리스크는 다리를 건너자마자(그 다리의 기둥은 들어가기 적당한크기로 휘어져있었다.) 전투에 말려들었다.
이곳엔 싸움을 말려줄 토리엘이 없었기 때문에 전투는 온전히 프리스크의 몫이였다.
플라위가 가르쳐준 전투에 대한 내용들은 모두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그녀의 붉은 영혼은 몸밖으로 끄집어내졌으며,공격에 닿은 육체는 비참하게 썰려나갔다.
붉은 피가 눈밭을 적셧다.
프리스크는 공격에 비틀거릴때마다 어떻게든 한팔로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있었고,곧 그 팔이 잘려나갈때 프리스크는 자신의 의식이 점점 멀어지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은 다시한번 되돌아가 샛노란 빛이 프리스크의 눈가에 아른거렸다.
세이브포인트.
*
프리스크는 샌즈의 방귀쿠션 장난을 잊어버렸다.
샌즈는 이번에도 프리스크에게 그 악수를 청했고,프리스크는 과거의 장난을 잊어버린탓에 전처럼 심각하게 웃었다.
똑같이 돌아간 상황속에서 한가지 다른점이 있었다면,이번에 다른 반응을보인건 오히려 해골쪽이였다는 것이다.
"너 이게 재밌어?" 샌즈가 눈을 찌뿌리며 말했다. 프리스크는 웃음을 참으려하다 다시한번 큭큭거렸다.
"혹시 웃으면 안되는거야?" 프리스크가 물었다. "나 이런거 잘 못참는데."
프리스크는 웃음을 참지 못해 웃고 또 웃었다. 곧게 감긴눈은 샌즈의 표정을 제대로 인식하기나 하는건지 의문스러웠다.
샌즈의 두 동공이 흐릿해졌다. 샌즈는 고개를 떨구고 약간 웃었다. 프리스크와는 전혀 다른 웃음을.
"..미치겠군."
"따라와." 샌즈는 프리스크의 팔을 붙잡고 끌어당겼고,프리스크는 너무 세개쥐여진탓에 약하게 신음했다. "내 이름은 알아?" 샌즈는 다소 거칠고,험악한 말투로 프리스크에게 말했다. "기억해둬." 그는 화난듯 강한어조로 토로했다.
"내이름은 샌즈야,뼈다귀 샌즈."
*
전투는 일어나지 않는다.
샌즈는 가는길 내내 프리스크의 팔을 붙들어 도통 놔주질 않았다. 프리스크는 조금 고통스러워했지만 또다시 영혼이 조각나는 경험은 하고싶지 않았고,결국 작은 의사표현으로 샌즈의 손을 어루만지는데 그쳤다.
시야에 어렴풋이 마을이보였다. 다리 건너편에서.
"꽉잡아."
"뭐?" 프리스크가 말하기도전에 샌즈는 프리스크를 들어안아 순식간에 다리건너편으로 이동했다.
중간과정은 보이지도않았다. "뭘-" 프리스크는 빠르게 말을끊고는 초월적인 반응속도로 절벽쪽으로 굴러 헛구역질했다.
"뭘한거야?" 프리스크가 입을 막으며 말했다.
"앞에 함정이있어서." 샌즈는 그제서야 프리스크를 일으키며 식은땀을 후드로 닦아냈다. "공간을 순식간에 넘나든 감상이 어때?"
"역겨운데." 프리스크는 절벽아래에 헛구역질을하며 대답했다.
"익숙해질거야."
"그러는게 좋을거란 뜻이지." 그 해골은 그렇게 말하곤 웃었다.
*
"스노우딘 마을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프리스크는 마을 입구에 쓰여있는 현수막을 읽었다. 샌즈는 프리스크를 쳐다보며 손을 오른쪽으로 뻗었다. "우리집은 저쪽 앞이야. 동생과 같이살고있지."
"아깐 인간사냥에 미쳐있다며?"
"당연히 농담이지,kid." 샌즈는 헛웃음을 토해내며 양팔을 올려저었다. "누가 인간사냥을 하고싶어하겠어?"
"들어가볼레?" 샌즈는 프리스크에게 손을 뻗었고,프리스크는 아무 의심없이 손을 맞잡았다.
"너 진짜 이상한 괴물이야."
"너만하겠어,kid." 샌즈는 그렇게말하곤 시시한 미소를지으며 프리스크의 속도에 맞춰 발걸음을 옮겼다.
해골의 손은 제법 차가웠지만,손끝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온기는 스노우딘의 추위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프리스크는 웃었다.
*
샌즈의 동생 파피루스는 둘을 생각보다 반갑게 맞이했고("세상에! 인간이잖아?!" "내동생 팝이야,어..그냥 미친놈이지." "샌즈!") 둘은 파피루스의 식사제안으로 식탁에 마주앉아 서로를 바라보고있어야했다.(샌즈는 이것에대해 정말 절실히. 반대했다.)
"곧있으면 내동생이 끔찍한음식을 가져올거야." 샌즈는 지금까지 봣던 그 어느때보다도 깊게 한숨했다. "지금이라도 자리를 옮기는건어때?"
"성의를 무시하자는거야?"
"무시하는게 아냐,이건 그냥....
"여기있어." 파피루스는 둘이 앉은지 단 3분만에 완벽히 스파게티를 조리해 샌즈의 눈앞으로 선보였다. "이번건 특별히 공들였다고!" 그말에 샌즈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몰라,난 경고했어."
샌즈는 눈을 꼭감고 스파게티를 입속으로 쳐넣기 시작했고,프리스크는 오랜만에본 음식에 잔뜩 기대하며 스파게티를 탐욕스레 한포크 집어들었다.
프리스크는 지하에온뒤로 가장 끔찍한기억이 생겼다.
*
"여기 얼마나 묵을 생각이지?"
샌즈와 프리스크는 장장 20분동안 화장실에 들어가있다가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원한다면 이집에서 머무르는것도 좋은데."
"오래있을 생각은 없어." 프리스크가 대답했다. "저런 스파게티 또다시 먹고싶지도 않고."
"끔찍했지." 샌즈역시 이 의견엔 동의했다. 그는 아까전 먹은 그 소스의 향취를 다시 기억하며 눈살을 찌뿌렸다. "어쩔생각인데?"
"..나갈거야."
"어디로?"
"밖으로." 프리스크는 위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밖으로 나갈거야."
"웃기지도 않는 소릴 하는군,kid."
"잘들어." 샌즈는 잠시 프리스크를 멈춰세웠다. "지하는 네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아. 지금 이렇게 평화로운것도 정말 기적같은 일이라고."
샌즈는 프리스크의 팔목을 제법 아프게 집어들었다. 아픔을 넘어 간절함이 느껴질정도로.
"이 마을 괜찮아. 상점도있고,식당도..무엇보다 널 무리해서 죽이려드는 괴물도 없어. '우연히 지하에 떨어진 인간'이 살기에 정말 적합한 곳이라고."
"그래서?" 프리스크는 꽉붙든 샌즈의 팔을 뿌리치며 팔목을 감쌋다. "하고싶은말이 뭐야?"
"그만둬." 샌즈가 프리스크의 팔목을잡으며 말했다. "그냥 여기서 살아. 그게 최선이야."
강하게 부정하는 목소리가 프리스크의 목에서 끓어올랐다. "그럴 순 없어."
"하라면 해." 샌즈는 두눈을 내리깔아 동공이 보이지 않았다. 섬뜩한 바람소리만이 두사람 사이로 지나갔다.
"왜..." 프리스크가 서있는채로 떨었다. "왜 날 막는거야?" 프리스크는 목에서 차오르는 막막함을 막으려 애썻다.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널 막는게아냐,이건 널 위해..
"난 나갈거야." 프리스크는 이제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필요없어. 잠자리도,식당도,친구도... 넌 몰라,이게 나한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너.."
"나,널 친구라고 생각했어.근데 이젠.." 프리스크는 부서질듯한 숨을 골랐다. "이젠....잘 모르겠어."
"너 싫어."
프리스크는 그대로 팔을 붓들고 뒤돌아 내리뛰었고,샌즈는 그저 멀어지는 프리스크의 뒷모습을 바라보아야했다.
그저 바라보아야만 했다.
*
메모장의 기록은 세이브되기전에 죽으면 사라져버린다.
매일아침 죽고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거의 성공한 적은 없었다.
침대에서 일어날때마다 공포를 느낀다. 이번엔 어떤기억이 사라졋을까? 오늘은 어떤 기억이 사라졋을까?
난 그저 살아가는걸지도 모른다.
어짜피 다 사라질 기억들일지도 모르니까.
*
샌즈는 그릴비에서 캐첩병을 들고 스러앉아있었다.
한시간. 두시간. 반나절이 지나도록 프리스크는 마을에있던 샌즈의 눈에 띄지않았고,샌즈는 그것에대해 잔뜩 열이 뻗쳐있었다. "내가 누구때문에-" 샌즈는 다먹은 캐첩통을 터칠듯이 쥐고있었다.
기억하고싶지않은 약속이 떠오르고있었다.
"진정 해야해." 샌즈는 그렇게 떨고있는 손을 멈추려 애썻다.
스노우딘 바깥은 시간대를 정확히 파악하지않으면 눈보라때문에 제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샌즈는 천천히 프리스크를 기다렸다. 어찌됫건 인내를가지고 아이를 설득해야했다.
이건 그런약속이였으니까.
샌즈가 마음을 갖추고 프리스크를 찾아나가기로 결심했을때,프리스크는 그릴비의 문을열고 들어왔다.
프리스크는 전투의 흔적 없는 완전히 멀쩡한상태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샌즈는 먼발치에서 들어오는 프리스크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뭐 두고간거라도 있나봐?" 샌즈가 말했다. "들고다닌건 있나?" 샌즈는 지금 자신이 충분히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이정도는 충분히 예상범위 안이였을거라고 애써 생각했다.
프리스크의 행동은 샌즈의 예상범위 밖이였지만.
"네가 혹시 샌즈야?"
"뭐?"
"뼈다귀 샌즈." 프리스크는 수첩을 넘기며 말했다. "분명 여기서 봤는데.."
"잠깐만." 샌즈가 잠시 한손으로 얼굴을 파묻고 한손을 뻗었다. "너 지금 날 기억 못하는거야?"
"모르겠어." 프리스크가 고개를 저었다. "정신차려보니까 눈밭에 누워있었는데,괴물들이 자꾸 공격해서.." 프리스크는 뭔지모를 말들을 계속해서 중얼댔다. "눈감고 계속 뛰어보니까 여기였어."
프리스크는 노트페이지를 하나 가리키며 말했다.
노트에는 샌즈로보이는 후드를쓴 해골이 그려져있었다. 밑에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뼈다귀 샌즈'.
"이거 너 맞지?" 프리스크는 거의 울면서 샌즈에게 수첩을 들이댔다. "너 맞지?"
"하고싶은 말이 뭐야?" 샌즈는 머리에 뭔가를 크게 맞은듯한 기분을 느꼈다. 자기가 지금 무슨말을 내벹는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있었다.
"도와줘." 프리스크는 샌즈의 팔을 거의 부등켜안았다.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
"너밖에 없어." 프리스크는 눈에서 뜨거운 무언가를 흘리며 샌즈의 팔을붙잡고 탈진하듯 쓰러져버렸고,샌즈는 다른쪽손으로 눈을붙잡고 헛웃음을 내지었다.
그는 잠든 프리스크의 수첩의 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곤 정말,정말 잠시동안 의자에 기대어 붉은 조명을 바라보았다.
정말 잠시동안.
"..진짜 미치겠군." 샌즈는 이제 자신의 눈앞의 프리스크를 바라보아야만했다.
그저 바라보아야만했다.
프리스크와 샌즈의 첫 만남이였다.
두번째 기록
프리스크의 노트의 윗쪽 절반은 꼭 읽어야할 내용,아랫쪽 절반은 일기장으로 쓰여져있다.
위쪽부분의 말머리는 0번째 페이지.
아랫부분의 말머리는 0p 라고 쓴다.
아래에는 노트 아래쪽의 내용을 기재한다.
12
아는 괴물이 생겼다.
완전히 해골로 이루어진 뼈 괴물이엿다. 파란 후드를 쓰고 슬리퍼를 신고있었다.
뼈다귀 샌즈. 아마 그런 이름인것같았다. 풀네임인가?
태도를보면 날 좋아하는건지 싫어하는건지 영 알 수가 없다. 그 괴물은 날보며 웃기도하고 화내기도하고 울것같기도했다.
그는 내가본 괴물중에 가장 이상한 괴물이다.
12.5
(노트의 찢어진 부분이다.'만약에 내 로드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있다면-' 이후의 부분은 찢어져있다.)
13
파피루스의 스파게티를 먹었다(진짜맛없었다).
스파게티를 먹는 내내 샌즈의 눈동자를 전혀 볼 수 없었다.
혹시라도 이 기억을 잊고서 이 노트를 봤다면 스파게티만은 먹지말아줘.
14
샌즈의 부탁을 거절하고 나오는길이다. 이곳에서 함께 살지 않겟냐고 제안했다.
솔직히말하면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니였던것 같아. 따듯하고,배부르고..즐거웠어.
하지만 난 멈출 수 없어.
이유는 기억나지않아. 이유가 필요햇던가.
15
꿈을 꿨다.
샌즈와 내가 같이 왕에게 가는 꿈.
나는 잠시나마 샌즈와 내가 같이 가줄 수도 있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정말 멍청하지 나. 난 지금 윗페이지를 쓴 기억도 나지않는데.
16
(흐릿해서 제대로 읽히지 않는 글씨다. '눈보라'라는 글자가 흐릿하게 보인다.)
18
길을 잃어버렸다.
눈보라때문에 앞도 제대로 보이지않는다. 이상한 동굴같은데에서 눈이 그치길 바라고있다.
길찾는법을 또 잊어버린것같다. 만약 친구가생긴다면 엄청 고생할거같다.
내게 친구는 과분해.
19~22
(눈에 젖어 보이지 않는다. 찢어낸 흔적이 보인다.)
23
처음보는노트가 있길레 읽고있다.
노트의 내용이 사실이라면,아마 나는 이 노트를 계속 쓰고있었겟지.
..솔직히 읽어도 기억나지않아. 미안해.
*사라지는 기억의 종류는 완전히 랜덤이다.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은 상관하지 않는다.
*단,'의지'가 들어간 기억은 비교적 오래 기억되거나 차라가 되새겨준다.
*행복한 기억과 불행한 기억중 어느것이 사라질지 또한 알 수 없다. 그저 기도할뿐.
*프리스크의 기억은 '기억햇다고 생각한'기억과 '기억하지않았다' 라고 생각한 기억 두가지로 구분된다.
후자의 기억은 사라질때 뭉텅이로 사라진다. 길을 잃을때처럼.
*프리스크의 저주는 인과관계 때문이 아닌 순전히 저주이기때문에,기억을 잃어도 뇌에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기억은 '지워지는'게 아니라 '사라지는'것이기 때문에 프리스크는 기억을 덧씌울 수 있지만 되돌릴 순 없다.
*프리스크의 노트의 제목부분은 'UnderTale'(지하이야기) 이라고 적혀있다.
*프리스크는 자신이 어느쪽 손으로 밥을먹는지 잊어버려 머뭇거린적이 있다.
*프리스크는 자살을 기도한적이 있다. 단지 그 기억을 잊었을 뿐이다.
(수첩에 써놓은 유언또한 로드될때 같이 제거되었다.) 23번 기록 참고.
*프리스크는 자신의 목적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 기억은 프리스크에게 의미가 굉장히 크다.
연중된줄 알았음 천천히 쉬어가면서 연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