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갤문학 - 너의 의심암귀




물리학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별개로 놓고 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한다. 이는 마법에서도 어느정도 통용되는 말인데,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쓰고 어딘가로 이동한 뒤에 능력을 푼다면 그것은 바로 공간이동이 되고 공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쓴다면 그 공간을 이동하면서 걸려야 했던 시간을 잘라내는 것과 같다. 때문에 시간마법을 쓸 수 있는 괴물은 이질적인 공간을 느낄 수 있고, 공간마법을 쓸 수 있는 괴물은 이질적인 시간선을 눈치 챌 수 있게 된다.


"헤헤. 똑똑."


그리고 여기, 폐허와 스노우딘을 가로막는 문에서 노크 농담을 연습하고 있는 뼈다귀 괴물 샌즈는 스스로가 '지름길'이라고 부르는 공간 계통 마법을 사용하는 괴물이다.


"......? 똑똑?"


샌즈는 항상 문 너머에서 자신과 말동무를 해주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노크를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역시 기나긴 침묵. 문득 무언가 위험한 느낌이 든 샌즈는 지름길을 통해 열리지 않는 문 너머로 넘어갔다. 그렇게 문 너머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광경에 샌즈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헤헤헤! 너도 결국 그들과 다르지 않구나!"


비통한 눈물과 애처로운 웃음을 흘리며 먼지로 변하는 염소 괴물의 목소리는 분명 샌즈가 항상 문 너머로 들어오던 목소리였다.


"너, 인간...!"


왼쪽 눈의 시퍼런 안광을 번쩍 뜬 샌즈는 폐허가,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암전된 세계가 다시 빛을 되찾자 샌즈의 눈 앞에는 자신의 방 천장이 비춰지고 있었다.


'꿈...?'


샌즈는 손을 들어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그냥 재수없는 꿈인지, 불길한 예지몽인지 어느 쪽이든 샌즈에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꿈은 꿈일 뿐이고, 예지몽이라면 막으러 가면 그만이니까.


'리셋....'


문제는, 꿈이 아니라는 경우의 수에 있다. 인간인 이상 결계를 깨기 위해 결국 죽여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인간이 그 말하는 꽃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심하게 골치가 아파진다. 과장을 보태면 세상이 무너질만한 위협.


"헤, 잠 자긴 글렀군."


샌즈는 오랜만에 가스터 블래스터를 손질했다. 부디 써야 할 일이 없길 바라면서.


***


"똑똑."


샌즈는 떨리는 마음으로 폐허의 문에 노크를 했다. 그런 광경을 본 탓인지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샌즈는 다시금 불안감을 느끼며 강제로 들어가려 했다.


"샌즈, 거기 있나요?"


그러나 뒤늦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샌즈는 기운이 없어보이는 토리엘의 목소리를 걱정하며 대답했다.


"네. 여기 있습니다."

"샌즈,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샌즈는 잠시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했다. 원래 자신은 남과 약속같은 것을 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꿈자리가 뒤숭숭한 것이 걸려 수락하고야 말았다. 왠지 이러면 토리엘이 괜찮을 것이란 막연한 믿음이 미약하게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물론이죠. 뭐든 말씀해보세요, 토리."

"잠시 후면 이곳에... 인간 아이가 올 거예요. 그 때는 부디, 그 아이를... 지켜주시지 않겠어요? 제발, 제발 부탁드릴게요."


그러나 그 부탁의 내용이 샌즈의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섞어놓는 폭탄과도 같았다. 어젯밤 꿈에서 보았던 그 광경이 다시금 생생하게 떠오르는 와중에 샌즈는 고개를 휙휙 저어 잡념을 떨쳐낸 뒤 겨우 무거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알겠어요. 그러니 그렇게 기운 없는 목소리는 참아줘요 토리."

"고마워요, 고마워요 샌즈."


순간 샌즈는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그 모습을 봤는데, 인간이 방심한 토리엘을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대체 그 인간의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안달나게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봤자 이미 얽히고설킨 실타래와 같았기 때문에 샌즈는 포기하고 문 근처 덤불 속에 눕고 눈을 감았다. 카메라가 거슬렸지만 완벽한 위장이었다.


'지금부터 널 지켜볼거야 꼬맹아.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아두라고. 네가 어떻게 행동하든, 나는 네 진짜 모습을 알고 있어.'


마음 속에서 그렇게 되뇌인 샌즈는 폐허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눈을 떴다.


프리스크는 토리엘이 준 시나몬-버터스카치 파이를 챙기고 폐허 밖으로 나왔다. 눈이 소복히 쌓인 숲 속을 걷다보니 커다란 나뭇가지가 보였다. 너무 무거워서 들고 갈 수 없어 그대로 지나갔으나 뒤늦게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


그러나 그저 박살난 나뭇가지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뭔가 불안해진 프리스크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넓은 다리 앞까지 도착했으나 건너려는 순간에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인간.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법을 모르는 건가? 돌아서서 나와 악수해."


그 소리에 프리스크는 뒤를 돌아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그러자 푸쉬식-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헤헤, 옛날부터 자주 써먹던 방귀쿠션 악수. 언제나 재밌다니까. 나는 샌즈야, 뼈다귀 샌즈."


순간 웃음이 터진 프리스크. 폐허를 나와 처음 만난 괴물이 유쾌한 괴물이어서 다행이라 생각한 프리스크는 긴장을 풀었다. 프리스크의 안심한 기색을 읽은 것인지 샌즈는 오른쪽 눈을 감았다 뜨며 윙크를 보였다.


***


샌즈는 매우 기분이 언짢았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동생, 파피루스를 인간과 마주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만남 때부터 스노우딘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순간도 인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그 탓에 피로가 몰려 잠깐 잠이 들어버렸다. 일어났을 땐 이미 집은 텅 비어있었고 머리맡에 놓인 쪽지 하나만이 샌즈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이건......?"


파피루스의 필체로 써진 쪽지에는 인간을 막으러 갔다 올테니 푹 쉬고 있으라는 내용이 있었다. 황급히 외투를 걸치고 워터폴과 이어진 길목으로 뛰쳐나간 샌즈는 충격적인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괘, 괜찮아! 아직 머리는 남아있잖아!"


인간을 죽이지 않으려 애를 쓰며 싸우는 파피루스를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인간. 몸이 먼지가 되어 날아가도 괜찮다는 듯 웃어보이는 자신의 동생을 보게 된 샌즈는 미쳐버리기 직전까지 갔다.


"파아아아아아아압!!"


벌떡 일어나며 파피루스를 부르는 샌즈. 역시나 집 안, 거실의 소파였다. 샌즈는 금방 상황파악을 하고 식은땀을 닦았다. 자신은 잠시 소파에서 잠들었고, 파피루스는 인간이 워터폴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샌즈가 자는 사이 '혼자' 인간과 대치하러 갔다.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샌즈는 지름길을 이용하여 스노우딘과 워터폴을 잇는 길목으로 갔다.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두 개의 그림자는 구분할 수 있었다. 하나는 자신의 동생인 파피루스, 다른 하나는 자신이 경계하는 인간이었다.


"꼼짝...!"


엉겁결에 가스터 블래스터를 꺼내 충전한 샌즈는 뒤이어 일어나는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 파피루스가 감격하며 인간에게 안겼기 때문이다. 둘은 몇마디 대화를 나눴으나 멀리 떨어진 샌즈는 그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이윽고 파피루스가 자신 쪽으로 다가오자 샌즈는 가스터 블래스터를 감추며 어색하게 파피루스와 마주했다.


"어라? 샌즈? 여긴 웬일이야? 집에서 자고 있는 거 아니었어?"

"어, 응. 그냥 잠깐 소일거리를 찾고 있었어. 그보다 팝. 방금 인간이랑 무슨 대화를 나눈거야?"

"하하! 놀라지 마시라! 이 위대한 파피루스님께 반한 인간과 함께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했지!"

"데이트...? 그거, 나도 끼어도 될까?"

"물론이지! 인간도 좋아할거야!"


샌즈는 혼란스러웠다. 예전에 느꼈던 기분을 다시 느끼는 것 같았다. 그건 마치 빌어먹을 노란 꽃이 모두의 마음을 유린할 때 아무것도 모르는 파피루스가 그 꽃의 팬클럽 회장이 되는 것만 같은, 순간 이렇게 구체적인 상상에 샌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비유가 이렇게 상세해? 마치 정말로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기분이잖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데이트는 성공적이었다. 셋이서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고 파피루스는 평했다. 물론 샌즈의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있었다.


'왜 자꾸 이런 꿈만 꾸는 거지?'

'꿈? 그게 정말 꿈인가?'

'정말 꿈이라고 생각해 그게? 정말? 진짜로?'

'......아냐, 그래. 맞아. 그거야.'


무언가 확신을 하게 된 샌즈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굳은 결심을 했다.


***


그 후로 인간, 프리스크는 모든 괴물들과 친구가 되었다. 알피스에게 물 한잔을 건네주고, 그녀의 집에서 요리도 배웠으며 알피스 박사에게 편지를 전해주고, 알피스가 과거에 겪었던 죄책감을 나누었다. 샌즈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 뿐만 아니라 프리스크의 일거수 일투족을 전부 감시하였으며 식사도 여러 번 같이 했다. 토리엘과의 약속을 샌즈 나름대로 지킨 것이다. 그리고, 왕의 알현실 앞 복도에서 둘은 마주쳤다.


"샌즈!"


프리스크는 반가운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든말든 샌즈는 프리스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긴 여행의 여정이 막 끝났어. 이제, 넌 심판을 받게 될거야. 네가 여태까지 해왔던 일들에 대한 심판."


분위기를 잡는 샌즈의 말에 잘못한 것 없는 프리스크는 괜히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무섭진 않았다. 샌즈 역시 여태까지 사귀어왔던 자신의 괴물 친구 중 하나라고,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샌즈가 뒤이어 내뱉은 말로 산산조각이 났다.


"너는 폐허에서 토리엘을 죽였어."

"...뭐?"

"그리고 내 소중한 동생... 파피루스까지도."

"샌즈? 무슨 소리야...?"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프리스크의 얼굴을 보며 샌즈는 인상을 찌푸렸다.


"꺼져. 이미 저질렀던 일을 되돌린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야."


그 말에 프리스크는 깨달았다. 자신이 플라위에게서 들었던, 세계를 리셋하는 힘, 자신이 결단코 오용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힘, 의지에 대해서. 자신이 친구들을 죽였다가 다시 되돌아와서는 입 싹 닫고 천진난만하게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샌즈는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프리스크는 일단 샌즈의 오해부터 풀고자 했다.


"샌즈...?"

"넌 네가 한 모든 행동에 대해 심판을 받게 될 거야, 이 더러운 동생 살인마."


프리스크를 비난하는 말과 동시의 가스터 블래스터의 광선이 프리스크를 꿰뚫는다. 영혼의 정수, 붉은 의지는 그대로 조각조각 찢어졌다.


'대체 뭐가? 뭐가 널 이렇게 증오에 가득 차게 만든 거니...?'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던, 이미 친구라고 굳게 믿었던 이에게서 받은 마음이 찢어지는 비난과 가슴이 꿰뚫리는 공격에 프리스크의 의지는 박살났다.


그래서, 버티지 못했다(So it accepted)




샌즈는 의문을 가졌다. 의지의 힘만 있다면 얼마든지 리셋으로 돌아와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가 그저 가슴 한복판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죽어있기 때문이었다. 왼쪽 눈의 시퍼런 안광으로 죽어있는 프리스크의 시체를 본 샌즈는 하얗게 탈색된 하트를 볼 수 있었다.


"...아니야."


무언가가 잘못됨을 느낀 샌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그런 샌즈의 부정을 또다시 부정하는 커다란 웃음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졌다.


"하하하하하하하!! 이거 완전 걸작이잖아? 설마 진짜로 성공할줄이야!"


어느샌가 튀어나온 황금빛 꽃은 메아리꽃처럼 말을 했다.


"안녕! 나는 노란 꽃 플라위야! 너, 나 기억하지? 이 멍청한 난쟁이 똥자루 같으니, 네가 이 지하세계에서 가장 의지가 강한 인간의 의지를 완전히 박살내 준 덕분에 내가 다시 그 힘을 되찾을 수 있게 됐어. 고마워!"

"내가... 아니야."


몸을 떨며 부정하는 샌즈에게 플라위는 조소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네가 저 아이를 죽였어. 저거 봐. 방금 전까지만해도 너를 친구, 가족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아이를 네가, 네 손으로 바람구멍을 내버렸잖아. 하하하!"


아무리 비웃어도 반응이 없는 샌즈를 보고 플라위는 히죽거리며 말했다.


"꿈을 꿨지? 두 번이나 말이야. 그렇게 불길한 꿈을 꿨는데 침착한게 이상한거지. 응, 그래. 꿈이야. 그저 꿈. 내가 너에게 보여준, 그냥 꿈이라고. 근데 꿈이 아닌 것 같았지? 시간선이 이질적인 걸 느꼈다고 실제 일어났던 일이라 생각했지? 이해해. 나도 그 힘을 가진 적이 있었으니, 내가 너에게 꿈을 꾸게 하려고 너에게 다가가니 이질감을 느낀 건 당연한거야. 아아, 아무튼... 네 덕분에 일정이 바뀌었어. 원래대로라면 여섯 개의 영혼을 먼저 손에 넣은 뒤 저 녀석을 죽여버릴 셈이었지만! 네가 내 일을 대신 끝내준 덕분에 나는 내가 되찾은 의지의 힘으로 남은 6개의 영혼을 아주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게 됐어! ...이봐~ 내 말 듣고 있는거야? 응?"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쓰다보니 제대로 쓰고싶어지는 내용이네. 나중에 시간 나거나 그럴 의지가 생긴다면 스킵 없이 제대로 써보고 싶음. 단편으로 쓰려다보니 샌즈가 너무 줏대없이 휘둘리는 것 같거든. 살 좀 더 붙이면 납득이 갈 수 있을텐데 아무튼 이 모든건 다 꿈쟁이 때문이야. 너그들도 꿈쟁이 꿈은 걸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