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 돌아다니기 귀찮은 갤럼들을 위해 하나로 정리해서 올린다.

다 따로따로 올렸던 글을 합치면서 적당히 수정도 했어. 전에 올렸던 글은 그냥 남겨 둘게.

일단 가장 크게 수정한 부분은 2부 감상문에 프리스크의 리본에 관련한 부분을 추가한 거.


처음에는 ‘1부/2부’ 로 나누려던 게 쓰다 보니 막 늘어나기 시작해서 ‘1부/2부/종합’ 이라는 3부작이 됐다.

감상문 주제에 약 4천자, 3천자, 5천자라는 미친 분량이 돼버려서 읽는 사람한테 좀 미안하기까지 하네.


1부 감상문은 프패대회 전에 올린 대회 대상 외의 글이라, 패스하고 2부부터 읽어도 돼.

일단 쓴 입장에서는 다 읽어 주면야 고맙겠지만.



* 원글 링크는 각각 이거야.

1부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undertale&no=746222

2부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undertale&no=799133

종합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undertale&no=799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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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갤에서 가장 길고, 가장 오랫동안 연재한 문학이지.

오래전에 막 내린 감상문 대회 시절에 감상을 쓰려고 했는데, ‘완결나면 써야지’ 하고 미루고 있었더니

글쓴이의 의지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세상에나, 언갤 닫기 직전까지 쓸 기세더라.

더 미뤘다가는 내 의지가 먼저 저물 것 같아서 중간 시점까지라도 먼저 써보려고 한다.

(1부/2부 구분이 있는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없네. 좀 멋대로 끊은 것 같아 미안...)






감상문 들어가기 전에 내용이랑은 별 상관없는 이야기 좀 할게. 귀찮으면 요약도 있어.


내가 2차 창작을 보면서 가장 열 뻗치는 건, ‘작가가 중간에 쨌을 때’다.

나는 원작과 비슷하게 시작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좋아.

(아예 다른 작품마냥 시작하면 이게 뭐야 싶은 거고, 계속 똑같으면 그게 왜 2차 창작이겠어)

원작이 끝났더라도, 만약을 가정한 다른 분기의 다른 이야기를 보면서 계속 뽕을 보충하고 있는 거지.

그런데 그 ‘달라져야 할 부분’에서 작가가 튄다? 그럼 내가 본 건 원작이랑 별로 다르지도 않은 부분뿐이야.


최근에 원작이 여러 매체로 많이 리메이크 되고 있는 페이트 시리즈로 예를 들어보자.

루트가 갈린 이후의 스토리는 좋아. 그런데 그 ‘갈리기 전’까지의 같은 내용을 계속 보는 게 진짜 고역이야.

도대체 학교 씬을 몇 번을 보고, 랜서한테 몇 번을 뒤지고, 세이버를 몇 번을 불러야 하는건데.


적어도 얘들은 정식 연재니까 확실하게 나중 이야기까지 다뤄준다는 보장이라도 있지.

2차 창작에서, 원작이랑 별 다를 것도 없는 초반부가 끝났다 했더니, 작가가 튀었을 때의 분노는 말로 못한다.

심지어 그 초반부가 재미있었다면 분노를 넘어 슬프기까지 해...

창작이고 뭐고 못하는 똥손은 그냥 닥치고 볼 수밖에 없는데, 존나 농락당한 기분이 들거든. 오...

언갤에서 기차게 재밌는 문학이나 AU가 나왔는데, 토리엘 스토리까지만 쓰고 작가가 탈갤한다고 생각해 봐.

심지어 너는 뼈박이나 물고기박이인데 말이야. 그리고 그런 일을 몇 번을 당하면?



『프리스크 패러블』이 연재된 초기에, 나는 잘 보면서도 솔직히 좀 체념하고 있었다.

폐허를 나오는 데만 7화가 걸리는 이 문학은 분명 중간에 쨀 거라고.

괴물 하나하나를 그냥 넘어가지를 못하는 이 문학러의 의지는 중간에 끝날 거라고.

위에서 문학러들의 연중에 분노하긴 했지만, 계속해서 뭔가를 꾸준히 써 주는 게 힘든 일이라는 것도 아니까.

난 창작력이 없는 걸 둘째 쳐도, 초등학교 방학일기도 제 때 써 본 적이 없거든. 작가로서는 최악이지.


그만큼, 이 긴 작품을 여기까지 끌고 와 준 이 글쓴이에게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야.

포기하지 않는 와중에 연재 속도도 빠르고, 내용도 좋았으니. 정말 고마워.

파피루스를 대차게 까면서도, 막상 쓰면 특유의 녜-헥!함을 잘 묘사해 주는 프로 정신에는 정말 감탄이 나왔다.

‘개좆같은 파피루스 씹쌔끼’에 대한 증오서린 첨언들을 보기 전까지는 글쓴이가 파피루스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


원래 언갤하면서 감상문을 몇 편 더 쓰려고 했는데, 바쁘기도 했고 언뽕이 좀 빠지기도 해서 꽤 오래 관뒀었어.

그런데도 『프리스크 패러블』 감상문은 마지막으로라도 쓰고 싶어 뽕을 긁어모아왔다.

창작도 그림도 못하는 비루한 손이 감사할 수 있는 방법은 감상문 쓰기밖에 없더라고.



요약: 작품을 시작했다면 부디 완결도 내 줘. 정말 잘 보고 있다.


그럼 주절거림은 끝내고 감상문 시작할게.






[프리스크 패러블 1부, 1~45편] - Non-playable frisk


"넌, 만족하지 않는 부류가 아니야. 그냥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은 인간 꼬마일 뿐이지."


 너는 이해하지 못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평범한 인간이다. 위대한 영웅도 아니고, 자비없는 살인마도 아닌, 그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에봇 산을 들렀다가 실수로 떨어지고 만, 작은 꼬마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너가 지니고 있는 것은,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 뿐이었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능력도 원하지 않았다. 다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어느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프리스크’의 이야기.



RPG 게임에서 주인공은 우리가 플레이하는 캐릭터(Playable character)에 지나지 않아.

최소한의 특징만이 주어지고, 남은 부분은 플레이어가 채워야 해.

언더테일의 프리스크도 마찬가지야. 아이에 가까운 건 알겠지만 성별마저 애매한 도트 이미지가 프리스크의 전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언더테일을 플레이하고, 프리스크가 되면서, 텅 비어있던 프리스크가 여러 모습으로 변하지.

남자에서 여자. 울보 아이에서 어른스러운 아이. 성녀에서 악마까지.


그런데 이런 게임이 가끔 애니메이션화나 만화화 될 때가 있어.

이 경우 주인공은 개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이게 좀 곤란해지는 거지.

지나치게 개성적인 녀석으로 만들었다가는, 소위 ‘내 주인공은 이렇지 않아!’ 같은 반응이 나올 테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특징을 지웠다가는 작품 내 비중이 그냥 공기가 되어 버릴 테니까.

플레이어들은 각자 ‘자신의 주인공’을 최고로 생각할텐데, 그 가운데를 잡아내는 건 얼마나 어려울까.


언더테일의 프리스크가 『프리스크 패러블』의 프리스크가 되면서,

우리가 플레이했던 프리스크가 플레이할 수 없는 하나의 캐릭터가 되면서, 프리스크 역시 개성을 가져야 했어.

이 작품의 프리스크는 기본적으로는 그저 천진난만한 아이지만 어떨 때는 어른스러워.

죽음의 트라우마에 떠는 평범한 아이지만 어떨 때는 자신을 대신 희생하는 영웅이 되는 아이.


이런 상반되는 모습을 난잡하게 그렸다가는 모순에 설정 붕괴라면서 욕을 무지하게 먹었겠지.

나는 『프리스크 패러블』이 이런 어려움을 딛고 ‘좋은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데에 성공했다고 생각해.

이입하기 쉬운 평범함과 동시에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뚜렷한 개성을 가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아이. 소년만화 계열의 주인공이 생각나네.

(감상문 부제 후보 중 하나가 ‘소년만화식 언더테일’이었어. 느낌이 뭔가 엿같아서 폐기했지만)



이 문학러는 작품의 섬세함을 생명으로 생각했다는데 딱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작품을 읽으면서 칭찬하고 싶었던 부분인데, 글쓴이가 이미 정확히 알고 있더라고.

『프리스크 패러블』에 나오는 캐릭터 모두가 한마디로는 다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입체적이야.


"헤헤, 말이 길어졌네. 꼬마 친구. 어쨌든 기억해둬. 난 너에게서 지하 세계의 희망이 보여. 너가 온 뒤로……, 굉장히 안정적이거든."


‘파피루스가 언다인에게 뭔가 계속 말하고 있었지만, 언다인은 듣지 않는 것 같았다. 파피루스가 아무리 프리스크에 대해 말해봤자, 저 미친 물고기 새끼는 전혀 듣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몸을 던져 가면서 꼬마애 하나를 살려줬어요! 당신을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괴물에게 찾아가 따뜻한 말을 건네고 같이 요리도 했어요! 게으른 괴물도 하나 갱생시켰고! 근위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괴물마저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어요! 스노우딘의 추위를 버티려고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괴물의 투정을 듣고 슬퍼 했어요! 괴물들을 구해주겠다고 큰소리도 치고 다녔죠! 세상에! 제가 자기에 대해 얼마나 더 설명해야 하죠? 이런 당신을 죽이고 결계를 부수라고요?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의심병을 거두고 프리스크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주는 샌즈.

프리스크를 정말로 죽여버리는 ‘미친 물고기 새끼’ 언다인.

자기의 꿈을 접어두면서까지 프리스크를 도우려는 메타톤.


여러 캐릭터가 원작과는 다르거나 상반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설정붕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 이렇게 되었을 수도 있겠구나’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줬거든.

초반부에 전개가 느리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다 이런 스토리를 밟기 위한 포석이라 생각하면 뺄 수가 없었겠지.

의외로 날릴 부분은 잘 날리기까지 해서 내용 전개가 생각보다 그리 느리지도 않았어.

‘개좆같은 파피루스 씹쌔끼’ 파트라든가를 쓸 땐 고통받은 모양이지만, 덕분에 개연성 탄탄한 좋은 작품이 됐다.

설정붕괴의 대표사례로 꼽히는 샌즈프리 루트가 이 작품에서는 납득이 갈 정도더라고.


이 작품의 섬세함은 캐릭터 묘사를 넘어, 스토리 전개 면에서도 참 흥미로웠다.

특히 차라는 프리스크와 마찬가지로 2차 창작자에 따라 해석이 많이 바뀌는 캐릭터인데,

프리스크 이상으로 차라의 캐릭터를 독특하면서도 명확하게 잘 잡아서 흥미로운 전개가 됐다.

캐릭터가 달라진 만큼 스토리도 상당히 많이 달라졌는데, 이게 묘하게 원작을 따라가는 것 같다가도

이제 좀 예측이 가서 지루해질 것 같다 싶으면 또 휙 틀어 급선회 하는 운전 실력이 또 참 대단했어.






2부에 와서 한 번 더 변화한 캐릭터들과 전개도 참 흥미롭지만

아직 완결도 안 난데다 그것들까지 여기에 마저 다 썼다간 좀 난리가 날 것 같다.

지금 여기까지 썼는데도 4천자가 넘어가는데, 내가 도대체 뭘 쓴 거지...


내가 쓰면서도 후빨이 정말 오진다 싶은 감상문이기는 한데, 그 정도로 정말 마음에 드는 문학이다.

완결까지 힘내줘. 휘리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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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로드 해 봤더니 이유를 모르는 디씨 글자수 제한 때문에 후반부가 잘리더라.

수정하는 방법을 배우긴 했는데(메모장을 한 번 거치면 된다네. 한글이라 그랬나보다)

마침 쓰면서도 주제가 두 개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고, 그냥 한 번 자르기로 했어.



1부 감상문은 프패대회 대상 외기도 하고, 읽기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 1부 감상문을 요약하자면


1. 이 조따시 긴 작품을 기어코 완결까지 내줘서 정말 고맙다.

2.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좋은 주인공 캐릭터’를 잘 만들었다.

3. 개연성이 탄탄하면서도 흥미롭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섬세함이 참 대단했다.


세줄요약 끝. 그럼 시작할게.






[프리스크 패러블 2부, 46~72편] - ‘프리스크 이야기’의 끝


 "이번엔! 아무도! 죽지 않을 거니까!"


 너는 한 번 숨을 골랐다. 조금 목소리가 이상해질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다시 참아내고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지켜 봐줘요! 해낼 거니까! 포기 안 할 거니까!"


 너는 다시 뒤돌아 섰다. 눈물이 흘러나오기 전에 그 별에 손을 뻗었다. 이내 그 광채가 쏟아져 나왔고 너의 시야를 하얀 빛으로 가득 채웠다. 찰나인 듯하면서도 영원한 듯한 그 순간 속에서 너는 느꼈다.


 너는 다시 황금꽃밭 위로 추락하고 있었다.


아이의 모험이 끝나고, 시작된 영웅의 모험.



1부는 오로지 프리스크의 모험, 프리스크의 이야기였어. 1부 감상문 제목도 그런 뜻에서 지었고.

해골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고, 죽음을 무서워하고, 모두가 행복해지길 원하지만 방법은 모르는 미숙한 아이의 이야기.

세상물정 모르는 프리스크를 도와주던 차라도 그저 상처 입었던 아이에 불과했지.

(프리스크보다는 어른스러워 보였지만, 그건 정말 성숙했다기보다는 상처로 인해 생겨난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봐)

프리스크와 차라는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랐고, 아이로서는 기특하기 그지없을 정도로 노력했어.

하지만 지하세계와 괴물들의 상황은 ‘아이’들의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의 순수한 마음은 많은 괴물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 마음은 아스고어에게도 분명 닿았어.

하지만 그럼에도 아스고어는 프리스크를 죽였다. 프리스크가 몇 번을 시도했어도 결과는 같았을거야.

언더테일에서 아스고어와의 전투를 ‘자비’로 해결할 수 없었듯 말이지.

그렇게 막다른 길에 다다른 아이에게 전환점이 나타났다.



 "다음번엔, 모두와 친구가 돼보는 게 어때? 알피스도 좋은 녀석이야."


샌즈가 죽어가며 남긴 말은, 언더테일에서는 플라위가 한 말이었어.

뭔가 ‘플라위도 사실 착한 녀석이었나?’ 싶어서 퍼덕퍼덕 낚인 대사인데, 알다시피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지.


샌즈의 목적도 따로 있었어. 샌즈가 플라위마냥 프리스크를 그저 이용하려고만 했던 건 아니었을 거야.

하지만 지하세계를 구하기 위해 필요했던 건 착하고 헌신적인 아이들이 아니라, ‘영웅’이었다.

프리스크가 끝없는 반복 끝에 소모되기 전에, 프리스크를 위해서든 모두를 위해서든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해.


하지만 저 말, 작중의 표현을 빌자면 ‘신뢰를 기반으로 한 계산’ 때문에

아이들은 소중한 시간들을 거슬러 처음으로 되돌아갔고 ‘아이’이기를 포기해야 했지.

때때로 아이같은 모습을 내비칠 때도 있었지만, 아주 잠깐씩에 불과했어.

반가운 모습을 봐도, 지치고 괴로워도, 자신의 마음은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건 ‘평범한 아이’의 행동이 아니잖아.



 "저 인간은 그냥 착한 게 아냐. 엄청나게 착하지. 희생적이고, 피학증적이면서, 동시에 완벽하게 이타적이고자 해.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알아?"


 아이는 즐겁게 노래했고, 테미와 함께 놀며 웃고 있었다. 그러나 언다인은 그 모습을 보고 아니꼬워하거나 좋아하거나 하는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쩐지 슬펐다. 그렇기에 언다인은 침묵을 지켰다.


프리스크가 고난을 헤치며 나아간다는 전개 자체는 1부랑 비슷했지. 하지만 그 기반은 정반대야.

1부의 프리스크가 때때로 영웅스러운 면모를 보이는 아이였다면,

2부의 프리스크는 때때로 아이스러운 면모를 보이는 영웅이었다고 하고 싶네.

프리스크가 앞으로 나아가는 전개 자체는 비슷했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던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캐릭터가 바뀌었기 때문이라 생각해.


예를 들어, 비 내리는 워터폴에서 노래하는 프리스크를 보면서, 언다인은 ‘슬펐다’고 하지.

개인적으로 저 장면(62화)이 2부에서 가장 인상 깊었어.

1부에서 같은 상황이 되었다면 그 장면은 그저 따뜻하고 밝은 장면이 되었을 거야. 하지만 2부에서는 그러지 못하지.

프리스크는 저렇게 노래할 때까지, 혹은 저렇게 노래하고 나서, 몇 번을 되돌아가야 했을까가 생각나거든.

겉으로 보이는 분위기는 밝은데, 속에서는 잔잔하게 마음이 켕겨오는 느낌이 참...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지하. 어슴푸레 빛나는 꽃들. 잔잔한 오르골 소리.

‘빗속에서 노래하는 아이’를 연기하는, 한 때 아이였던 영웅.

내가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었다면 정말 그려보고 싶은 장면이야. 머릿속에는 떠오르는데, 끄집어 낼 수가 없어.

가끔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선명하게 이미지가 떠오를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그 좋은 장면을 그려내 준 작가에게 감사하고, 내 손을 욕할 따름이다.



후기라든가를 볼 때 글쓴이가 살짝 강조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프리스크의 리본’이야.

이 문학의 팬아트들에도 이 리본이 달려있고 말이지.

솔직히 그렇게 신경쓰면서 본 요소가 아니라 띠용?하고 다시 처음부터 찾아봤는데,

리본이 직접적으로 강조된 부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그 위치가 확실히 중요하더라고.


일단 리본이 처음 나온 건 6화였어. 냅스타블룩이 프리스크에게 선물해 줬지.

그리고 이 리본은 코어(38화)에서 프리스크의 머리에서 한 번 떨어졌어. 프리스크의 무언가와 함께.

모든 일을 천진난만한 아이다움으로 극복해 나가던 프리스크가, 순간 살의를 품어버렸을 때.

(38화에 관해서는 다음 감상문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게)


 죽이려고 했다.

 샌즈를 구해주겠다고 해놓고, 머펫에게 괴물들을 구해주겠다고 근거 없는 말을 해놓고, 너는 너 자신을 위해서 괴물 하나를 죽이려고 했다. 너는 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놓았다. 애초에 너를 막겠다고 괴물들이 이렇게 거친 방식을 쓸 필요가 있었을까? 하지만, 너는 이런 생각조차도 그저 구차한 변명일 뿐이었다. 괴물들은 어떻게든 널 구해주려고 했고, 너는 그걸 오해해서 결국엔 괴물 하나를 죽이려고 했다.


나는 이 리본이 프리스크의 ‘아이다움’을 상징하는 요소가 아니었나 싶어.

그저 긍정적이고 밝고 사랑스러웠던 아이는 결국 현실에 부딪혀 어둠을 마주하게 된 거야.

프로깃이 리본을 다시 매 주었지만 저 장면 이후, 2부 내내 리본은 오랫동안 언급되지 않아.

프리스크의 아이다운 모습이, 저 장면 이후로 마냥 때 없는 순수함이 아니게 되었듯.


리본이 다시 나오게 되는 건, 프리스크의 기억이 사라진 에필로그야(72화)에 와서야.

프리스크가 고생했던 것들이 다 없었던 일이 됐다는 게 좀 찝찝하기도 했지만 이 방법밖에는 없었겠지.

괴물들은 위화감을 느꼈고, 아이는 한계 직전까지 소모됐어.

평범했던 아이의 마음을 희생시켜서 이루어진 결말이 멀쩡할 리가 있나.



『프리스크 패러블』의 내용 전개는 참 내 취향이었어.

나는 마냥 밝은 이야기보다는 좀 어두운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1. 착착 맞아떨어지는 개연성: 너무 대놓고 굴리지 말자

2. 상황의 비참함: 대놓고 사지를 절단내기보다는, 상황을 개판내는 쪽이 좋다.

3. 행복한 결말: 실컷 굴렸으면 마지막은 좀 애끼자.


예전 감상문에도 썼던 이 사항들까지도 아주 만족시켜줬다.






그럼 전 감상문까지 포함해 프리스크에 대해서는 많이 쓴 것 같으니, 다음 감상문은 다른 괴물들을 중심으로 써 볼게.

『프리스크 패러블』은 프리스크 뿐만이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도 열심히 써 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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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크 패러블, 1~72편] - 프리스크와, 괴물들의 이야기



언더테일의 등장인물들은 제각기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줬고, 많은 창작러들이 그 모습을 다양하게 해석해 줬다.

언갤을 포함해 많은 곳에서 좋은 2차 창작을 많이 봤어. 그런데 나는 ‘더 보고 싶은 모습’이 있었거든.

이 작품에서는 내가 보고싶었던 걸 정확하게 찝어서 써 줬더라고. 총 셋인데 순서대로 써 볼게.



먼저, ‘방송보다 아이를 중시하는 메타톤과 괴물들’이야.

내가 처음으로 플레이했을 때는 마냥 감동적이었지만, 반복 불살을 뛰면서는 기분이 묘해졌던 부분이

여태까지 자비를 베풀었던 주인공을 쭈욱 지켜봤는데도 그 주인공을 죽이려 하는 방송에 환호하는 괴물들이었어.


 메타톤을 향해 쏟아지는 감동적인 말의 홍수.

 아마도 지금까지 프리스크와 만나고, 이야기하고, 함께 웃고 떠들었을 괴물들이 거는 응원의 전화.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프리스크의 이름을 입에 담는 사람은 없었다.


 (『몰살을 시작하는 이유』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undertale&no=231047)


내 기분이 딱 저랬어서 인용해 봤어.

사실 게임에서 주어지는 선택지는 딱 둘이지.

주인공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느냐, 아니면 다 썰어버리고 지나가느냐. 자비냐 몰살이냐.



 "하지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말이야."


 리본이 다시 머리 위에 떴다. 요정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잠깐 멈춰 있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 움직이면서 너의 머리 한 쪽에 리본을 능숙한 동작으로 묶어주었다. 마치 요정이 아름다운 공주의 머릿결 위에 왕관을 씌워주듯, 가볍고 잔잔한 움직임으로 놓아주었다. 


 "너 같은 인간 꼬마 애는, 웃는 게 더 보기 좋아."


하지만 『프리스크 패러블』의 메타톤과 괴물들은 프리스크의 행보를 보고 프리스크를 보호하는 쪽으로 돌아서줬어.

코어에서 프리스크에게 리본을 다시 매주는 파이널 프로깃이, 프리스크를 보내지 않으려고 통로를 가로막는 메타톤이, 

거꾸로 괴물들을 공격하려고 했던 프리스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는 괴물들이’ 나는 그렇게나 좋았다.

프리스크는 그냥 아이란 말이야. 성녀가 아니라고.


예전에 감상문을 썼던 작품, 『치스크 스토리라인』이 마음에 들었던 것도

이런 ‘자비도 공격도 아닌 방법’으로 해피엔딩에 도달하는 모습이 좋은 대리만족이 되어 주어서인데, 이 작품에서 그려내 준 길은 그 이상으로 좋았다.

2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게 위의 워터폴 장면(62화)이라면, 1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이 장면(38화)이었어.



두 번째는 이 작품에서 ‘가장 비난받게 되는 토리엘’이야.

언더테일을 포함한 많은 2차 창작에서 토리엘은 엄마같은 존재로 나오고 있지.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느꼈는데, 역시 여러 번 플레이 하다 보니 이게 또 느낌이 달라지더라고.


토리엘은 아이들을 죽인 아스고어가 잔인하다며 비난했지.

그와 동시에 ‘결계 밖으로 나가 진작에 다른 영혼을 모아오지 않은 행동’이 우유부단했다며 비난했어.


그런데 저 말을 한 토리엘도 비슷한 이유로 비난받을 수 있거든.

아이들이 죽는 게 싫었다면 왜 직접 폐허 밖으로 나가 아이들을 지켜주지 않았냐고.

왜 아스고어에게 직접 반항하지 않았고, 왜 아이를 보호하는 책임을 샌즈에게 떠넘겼었냐고.

아스고어가 ‘지하세계의 왕’이었던 만큼 토리엘도 ‘지하세계의 왕비’였을 터인데

토리엘은 ‘왕비’로서의 책임도, 그 책임을 버린 이유인 ‘인간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에 대한 책임조차도 지지 않았어.


나는 게임을 하다가 토리엘의 저 대사가 나왔을 때 솔직히 좀 깨는 기분까지 들었다.

일단, 인간을 그렇게나 아끼던 모습하고는 정반대되는 것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고,

(저 말을 들은 프리스크가 빡돌아서 몰살타는 문학도 있었는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안나네)

저 말대로 아스고어가 영혼을 하나 모으자마자 밖으로 나가서 나머지 영혼도 전부 가져와 결계를 부쉈다고 해도

토리엘은 아스고어를 비난했을 거고, 그 후 일어날 인간들과의 전쟁이라든가에 대해서 책임지지도 않았을 것 같거든.



그리고 또 하나.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아이를 감옥에 가두려다가 거기서 나오려는 애를 불로 지졌다는 거 아닌가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우리 아이를 괴롭힌 건 다른 괴물들도 마찬가지니까, 조금 화가 나긴해요. 하지만, 당신에겐 그 이상으로 치가 떨리네요."


사람이 사라진다는 에봇산에 스스로 올라올 정도의 아이, 차라에게는 토리엘은 진짜 엄마보다도 나았을거야.

프리스크 또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처음으로 도움을 주는 토리엘은 상냥하고 좋은 인물로 보였겠지.

토리엘에 공격에 맞고 나서도, 아이들에게 토리엘은 ‘좋은 괴물’이었어.


하지만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 프리스크의 부모님에게 토리엘의 행동은 결코 좋게 보이지 않았다.

토리엘이 그럴 마음이 없었다고 해도 토리엘의 공격은 평범한 아이에게는 분명히 위험했고, 죽을 수도 있었거든.

프리스크의 부모님이 아스고어가 아니라 토리엘을 더 비난했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


아이들을 죽였으면서도 결계 밖으로 나가 영혼을 모아오지는 않았던 아스고어의 모순이

‘괴물들의 왕’이면서 ‘마음 약한 털북숭이’기도 한데서 나오는 입체적인 모습이라면

(예를 들어 언다인이 ‘응, 인간이 착한 건 알겠는데 그냥 죽어!’로 일관하는 인물이었다면 어땠겠어. 차라 말마따마 그냥 ‘미친 물고기 새끼’지)

아이를 사랑한다면서 죽을 수도 있는 공격까지 하는 토리엘의 모습은 자기 마음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더라고.


2부에서 토리엘은 폐허에서 나와 적극적으로 프리스크를 보호해 줬지. 그게 내가 언더테일에서 원했던 토리엘의 모습이었어.

하지만 토리엘은 좀 더 일찍 그렇게 해야 했다고 생각해. 샌즈가 도움을 청한 후에가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소중히 하고 싶었던 다른 아이들이 죽기 전에.


이렇게 장문으로 토리엘을 까긴 했지만 내 말은 ‘토리엘 이거 아주 개년이에요’ 하는 게 아니야.

사실 언더테일의 등장인물들이 다 이런 식이었잖아.

덕분에 괴물들을 까는 2차 창작도 많이 나왔고. 위에 예시로 든 『몰살을 시작하는 이유』처럼 말이야.


다만 그런 2차 창작에서도 토리엘은 다른 인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면죄부를 받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프리스크 패러블』에서는 토리엘이 가장 큰 비난을 받았지. 뭔가, 내 마음속의 균형추가 이제야 맞는 것 같았다.

전부터 토리엘 까는 글을 좀 쓰고 싶었는데, 이제야 써 봤네.



마지막으로는 ‘행동하는 샌즈’야.

언더테일에서의 샌즈는 ‘포기해버린’ 상태고, 그 때문에 행동하려 하지도 않아.

토리엘과 인간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했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샌가놈이 핫캣 쌓아준 것밖에 기억이 안난다.


사실 뭔가 적극적으로 행동을 했다면 언더테일에서는 그게 더 이상했겠지.

언더테일의 샌즈가 보는 세계는 인간에 의해 언제든 없었던 게 될 수 있는, 아무 의미도 없게 될 일들이니까.


하지만, ‘만족할 줄 모르는 부류’가 아닌 인간을 만났을 때 샌즈가 어떻게 행동하게 되는가.

내가 보고 싶었던 이 부분에 관해서, 이 작품은 정말 철저할 정도로 다 써 내 줬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는 행동 하나하나가 그냥 불쑥 튀어나오는 법이 없고, 감정이 휙휙 변하는 법이 없었어.

이건 창작에서 당연하게 지켜져야 할 점이긴 한데, 자세히 하려고 하면 정말 쉬운 일이 아닐 거거든.

그런 섬세함이 기본으로 깔려있는 중에서도, 샌즈의 이야기는 특히 공들인 것 같다.

샌즈는 아이를 아끼고 보살피는 동시에 그 관계를 이용했고, 결국 그 책임을 지게 됐지.

이 일련의 과정을 참 말 한두마디로는 정리 못할 정도로 징하게 붙들어 써 줬어.



처음 『프리스크 패러블』을 봤을 때는 그냥 언더테일을 따라가되 좀 더 특색을 더했을 뿐이라 생각해서

‘그럼 스토리는 결국 똑같은 거니까 좀 지루해지지 않을까’ 했는데,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지.

70화가 넘는 분량에서 이제 좀 늘어지는 것 같다, 지루하다 싶을 때가 없었다.


예를 들어, 순정만화에서 ‘성격 더러운 부자 남자 주인공’, ‘가난하지만 씩씩한 여자 주인공’이 나왔다 쳐.

그럼 내용이 어떻게 될지 짐작이 가잖아.

‘날 이렇게 대한 여자는 처음이야’ -> 주위의 시기, 몇 번의 위기 -> 라이벌도 몇 명 끼어들고 -> 오해도 생기고

-> 고백해서 끝나나 싶다가 -> 어두운 집안 사정(최종 보스) -> 극복 -> 해피엔딩


내용이 보이면 결국 긴장도 없고 재미도 없어지지. 그게 스포일러를 하면 욕 처먹는 이유고.

내가 너무 덕질을 해서인지는 몰라도, 최근에 와서는 스포일러 당할 필요도 없이 내용이 보여버리는 작품이 많았어.

결말까지 기대하게 하는 작품은 드물었는데, 『프리스크 패러블』은 그 중의 하나가 되어준 작품이었다.



갑자기 억지반전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라, 조금씩 쌓아올려 만들어진 섬세하고 탄탄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좋았어.

AU처럼 아예 기본 설정을 바꿔버린 게 아니라, 거의 같은 캐릭터에 상황에 아주 약간의 변화를 줬을 뿐인데

이야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2차 창작을 봤다기보다는 또 하나의 언더테일을 본 것 같았다.

심지어 많은 2차 창작에서 바뀌거나 무시되는 설정. ‘샌즈는 다른 시간선을 기억하지 못한다’까지도 잘 지켜내더라고.


위에 쓴 인물 세 명에 이전에 썼던 감상문까지 합해서 보니 새삼 공통점이 보이기도 했어.

나는 프리스크가 괴물들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해 나가는 이야기가 싫었고,

우리가 플레이하는 ‘주인공의 언더테일’이 아니라 ‘인간과 괴물들의 언더테일’이 보고 싶었던 것 같아.

내 언더테일 덕질 마지막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 기분이 드네.


다시 한 번, 『프리스크 패러블』 덕분에 요 몇 달간 즐거웠어. 정말 마음에 드는 문학이었다.



세줄요약

1. 이 문학의 감정·상황 흐름의 섬세함은 정말로 변태스러울 정도다.

2. 그러면서도 지루함 없이 신박한 전개를 보여주었고

3. 참 내 취향이었다.








감상문 끝. 세상에 내가 진짜 뭔 짓을 했지...


어째 후반부에 와서는깔끔하게 못 다듬은 것 같고

『프리스크 패러블』을 넘어 다른 작품도 스까 넣고, 아예 ‘언더테일 총 감상문’이라는 느낌이 되어버리기까지 했는데

여기에서 뭘 더 할 수 있다는 생각도 안 든다. 날도 더워서 죽을 것 같아.

기간이 좀 늘어났긴 한데 더 붙들 의지도 없고. 의지가 다시 차면 저 위에 말했던 워터폴 그림이나 그려볼까.


이 쓸데없이 긴 감상문을 다 읽어줬다면 고마워.

프패도 끝났고, 감상문도 다 썼고, 나도 슬슬 탈갤 준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