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을 못차리고 주춤거리고 있는 사이, 갑자기 토리엘과 나 사이에 검은 사각형이 나타났다.

이것도 공격인 것 같아 충격에 대비했지만, 토리엘도 사각형도 별다른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었다.

내가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쓰는 사이, 나를 향한 사각형의 한 단면에 뭔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토리엘?이 당신의 앞을 막아섰다!




이게 대체 무슨..?

마치 나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듯한 문구였다.

내가 그 내용을 다 읽자 내용이 변했다.


*당신은 움직이려고 했지만, 이전에 받은 공격때문에 행동할 기회를 놓쳤다.


저것의 역할이 뭔지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저기에 적혀있는 것들은 모두 사실이었다.

일종의 괴물인건가? 아니면 피폐해진 정신이 헛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불행히도 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다.


"언제나 싸움은 먼저 치고 들어가는 쪽이 유리한 법이지."


토리엘의 피를 뒤집어쓴 플라위가 그녀의 입 속에서 이죽거렸다.

그와 동시에 토리엘의 양 팔이 나를 향했다.

나는 공격을 직감하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자 토리엘의 두 손바닥에서 무수한 불덩이들이 서로 교차했다 벌어지기를 반복하며 내쪽으로 날아들었다.

틈새는 있었지만 도저히 그 사이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양 손을 들어올려 옷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흐읍..! 컥, 컥!"


이미 한 번 그슬렸던 옷감은 열을 어느정도 막아주었지만, 공포 때문에 들이쉰 공기까지 어떻게 해주진 못했다.

뜨거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고, 용암을 토하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기침이 기관지를 할퀴었다.


토리엘?은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있다.


다시 검은 사각형이 나타났다.

저게 뭐든 간에, 저것이 나타나면 토리엘은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대기한다는 것만은 직감적으로 알수 있었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나갔다.

하지만 검은 사각형에 닿은 순간 마치 벽에 닿은 것처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뭐야, 젠장! 저리 비켜!"


나는 안간힘을 써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씨발!! 이건 대체 누구 편인거야?!

나는 분노를 터뜨리다, 지금의 나는 공격하기 손쉬운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하지만 이런 순간조차도 토리엘은, 아니 플라위는 웃는 얼굴로 이쪽을 보고만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설마 내가 이 사각형에 가로막힌것처럼 저 녀석도..?

나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 태세를 정비했다.

그리고 토리엘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주변을 에워싼 불길로 붉게 물든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 가시 돋친 덩굴이 살을 뚫고 나와있었다.

아마도 플라위겠지.

그 망할것의 수작때문에 엉망이 되었을 토리엘의 몸 속을 생각하자 욕지기가 치밀었다.


*토리엘 80 ATK 40 DEF

*플라위에게 조종당하고 있다.

그 여파로 공격에 취약하다.


*분노로 당신의 피가 끓는다.

 당신의 ATK이 올랐다!


뭐? 조종?

그게 가능하다고?

내가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사각형이 다시 사라졌다.


"하하하! 거기서 뭐하고 있어?

 어서 나한테 덤벼야하는것 아니야?"


플라위의 빈정댐을 신호탄으로 또 한 번 공격이 시작되었다.

토리엘의 손이 빛무리에 휩싸이며 움직이자, 거대한 손의 형체가 내 주변에 나타나 허공을 훑었다.

그 손들은 곧장 나를 향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곧 그 궤적에서 화염구가 나타나 내가 있는 방향으로 일제히 날아들었다.

나는 피하기를 포기하고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었다.


"으랴!"


가장 오른쪽에서 날아오던 불덩이를 향해서 지팡이를 왼쪽으로 휘둘렀다.

나무로 된 지팡이에 불이 옮겨붙으면서 화염이 속도를 잃고 사그라졌다.

회전이 부족해 모든 공격을 막을 순 없었지만, 왼쪽 다리에 무게가 실리자마자 고꾸라진 바람에 다른 불덩이들은 내 머리카락을 그슬리는 데에 그쳤다.


*시뻘건 화염이 대기를 달군다.


이젠 도대체 저게 뭔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아졌다.

하지만 적어도 저것이 말하는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다.

방을 둘러싼 화염은 점점 기온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시간을 계속 끈다면, 나도 토리엘도 오븐 속의 빵처럼 구워지거나 질식해서 죽던지 둘 중 하나였다.

어떻게든 플라위의 조종을 풀어야했다.

하지만 어떻게..?

불현듯, 토리엘이 공격에 취약하다는 문구가 뇌리를 스쳤다.

혹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면 저 녀석도 토리엘을 포기하지 않을까?

그녀를 때리는 것은 내키지 않았지만, 나는 의지를 짜내 오른손에 쥔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마치 알겠다는 듯 검은 사각형이 사라졌다.


"제발..!"


나는 곧장 뛰어들어 토리엘의 한쪽 손목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37


"으..."


토리엘이 나직하게 신음했다.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지만, 뼈가 부러지거나 못쓰게 된 것 같진 않았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털이 두꺼운데 지팡이가 무슨 소용이야?!

이런 썩을..!

이걸론 안 돼!


"뭐하는거야!

 이번에도 날 이겨야하는 것 아니야?"


벽에서 불길이 거세게 일며 나를 방 한가운데로 몰아넣었다.

정면에서 또다시 화염구가 날아들었지만, 너댓개마다 짧은 텀이 있었기에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토리엘의 몸이 꿈틀거린다.


토리엘을 무력화시키는건 불가능해보인다.

그렇다면 플라위를 직접 공격하는건..?

가능할까?

나는 다시 한 번 지팡이를 꼬나쥐었다.

검은 가림막이 사라지지마자 플라위의 머리를 노렸다.

하지만 지팡이가 채 닿기도 전에, 플라위는 머리를 내놓았던 토리엘의 입 속으로 숨어버렸다.

내 지팡이는 애꿎은 토리엘의 머리만을 때렸다.


144


"카학.."


아악! 이런 병신아아!!

토리엘도 이번엔 받은 충격이 컸는지 입가에서 피를 토하며 주춤거렸다.

공격할 때마다 나타나는 붉은 숫자가 뭔지는 몰라도, 저걸 계속 보는게 좋을 것 같진 않다.

뭔가 다른게 필요한데..

아, 신이시여!

씨발 대체 이런 상황에 댁은 뭘 하고 쳐자빠져있는거야!!!


"..."


입 속으로 숨은 탓인지, 플라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리엘?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정말 이런 방법 밖엔 없는거야?

씨발, 진짜 개 좆같이 이게 뭔 헛짓거린데!

내가 왜 토리엘하고..

이런 신도 신의 애미애비도 뒤진..!!


"토리엘! 제발 어떻게 좀 해봐요!!

 내 목소리 안들려요?!"


*당신은 토리엘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니미 씨부랄!

 괴물인지 뇌내망상인지 하여튼 좆같으니까 그 헛소리좀 그만 나불거려!!"


토리엘의 손에 다시 빛무리가 어렸다.

실수로 발이 엉켜 허공을 훑던 거대한 손에 부딪히면서, 이전에 플라위의 공격에 맞았을 때와 같은 충격이 나를 무너뜨렸다.

왼쪽 손목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당신과 토리엘의 몸에 그을음이 내려앉는다.


점점 호흡하기가 어렵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플라위가 노리는 것은 아마도 설욕전 같은 것일테다.

자기 공격을 피한 것에 앙심을 느끼는건지 뭔진 몰라도, 저 새끼가 노리는건 단순히 존나 패는게 아니라 그냥 날 죽이는 것이 분명하다.

계속 싸우려고 하면 토리엘과 나 둘 중 하나는 분명히 죽을것이다.

도망? 불가능하다.

내 다리론 애초에 불가능하고, 토리엘은 나에게 있어 도를 지나치도록 효과적인 인질이다.

게다가 다른거 다 제쳐놓더라도 저 불구덩이를 무슨 수로 뚫고 나가?

아무리 로브를 입고 있다고 해도 저기에 뛰어드는 순간 새까맣게 타버릴 것이다.


..잠깐만.

태워..?


*당신은 들고있던 지팡이를 주변의 불에 드리웠다.

  지팡이에 마법의 불이 옮겨붙는다!

*당신의 ATK이 상승했다!


"뭐야? 이젠 정신이 나간거야?

 그것 참 잘됐네! 수고를 덜겠는걸!"


어느새 다시 토리엘의 입으로 튀어나온 플라위가 이죽거렸다.

엄청난 속도로 교차하는 불덩이들이 쏟아져들었다.

하지만 큰 폭을 그리며 움직였기 때문에 빈 공간은 존재했고, 나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간신히 간격을 유지했다.


*토리엘?의 눈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내 차례가 왔다.

그렇지?

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미안해요. 토리엘.

이걸로도 안되면..


"내가 간다 이 씹새야!!!"


*당신은 불이 붙은 지팡이를 토리엘?의 몸에 대었다.

  털이 타는 노린내가 당신의 코를 찌른다!


"아, 아, 앗 뜨거!!"


마법의 불이 살을 뚫고 노출되어있던 덩굴에 옮겨붙자, 플라위가 비명을 지르며 토리엘의 입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놓치지않고 잡아챘다.


"어..이런 젠장."


우리가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건 처음이다, 그치?


"내가 할 소리다 이 좆만한 새끼야!!"


나는 있는 힘껏 토리엘을 걷어차며 뒤로 뛰었다.

플라위의 얼굴이 있는 부분과 그 아랫쪽 줄기가 팽팽해지다 이내 툭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나는 비명 지를 틈도 주지않고 냅다 놈의 대가리를 불에다 던져넣었다.


"끼아아아아아악!!!"


아, 비명이 이렇게 아름답게 들릴 수도 있구나.

찢어버렸을 땐 어떤 소리를 내려나.

..아니 잠깐, 이게 대체 무슨..?


"토리엘!!"


나는 부리나케 토리엘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조종이 풀린 것인지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코에 손을 대었다.

..다행이야.

숨은 쉬고 있었다.

토리엘의 안전을 확인하자마자 현기증과 함께 구역질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앓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그녀를 살폈다.

플라위의 머리통이 뜯겨져나가면서, 거죽을 뚫고 몸 여기저기를 옭아매던 덩굴은 말라비틀어지고 없었다.

덕분에 불이 그녀를 안에서부터 구워버리는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기를 달구던 불길도 어느샌가 사그라들어서, 방금 전까지 벌어졌던 난장판이 상상속의 일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토리엘. 정신 차려요.

  토리엘, 토리엘!"


닻을 매단 듯 무거운 몸과 화끈거리는 피부, 그을음이 내려앉은 토리엘의 몸은 모든 것이 현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나란 놈은.. 이게 최선이었을까.

후회가 막심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후회할 시간도 없었다.

토리엘은, 그녀의 몸 상태는 좋을 턱이 없었다.

약을 바르던 뭘 하던 간에 일단 집으로 옮겨야하는데..

나 혼자서 그게 될까?

지팡이는 플라위 조지는데 써서 다 타버린데다 계단이....


"..아. 씨발."


제정신이면 절대로 하지 않겠지만 제정신이어야만 할 수 있는 선택이 내 뇌리를 스쳤다.

정말로? 진짜로? 와 미친, 진짜? 리얼리? 트루? 레알?!

나는 속으로 죄송합니다를 연신 외치며 토리엘의 품을 뒤졌다.

휴대폰은..아직 안망가진 것 같다.


"내가.. 내가 대체 이게 무슨 짓거리야.."


떨리는 손가락으로 토리엘의 전화기록을 뒤졌다.

곧 프로깃, 베지토이드, 윔선 등의 이름이 좌르륵 늘어졌다.

하지만 내가 찾는건 이놈들이 아니었다.

..누굴 찾느냐고?

하. 하하. 하하하하. 하하하ㅏ하ㅏ하하하하ㅏ하하ㅏ하하ㅏ하ㅏ하하

씨발 그걸 내가 말해야되냐?!

으아아아아ㅏ!!!!!!!!!!!!

내가 왜!!!!! 내가 도대체 그 씨발 것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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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터 11까지 순서대로.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난 존나 못쓴다.

근데 다시 쓰고 싶진 않네..씨벌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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