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리엘! 나, 저 왕관이 가지고 싶어.”

 

  차라의 말에 아스리엘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고어는 난감한 웃음을 흘렸다. 사랑스럽지만 때때로 장난이 지나친 그의 양녀는 이번에도 그를 곤란하게 할 생각인가보다. 아스고어가 당황하거나 말거나 아스리엘은 눈을 빛내며 아스고어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마어마한 체격의 아스고어답게 아이들이 뛰는 것 정도로는 왕관까지 닿을 수 없었지만 아이들은 놀랍도록 영악했다. 두 꼬맹이들은 아스고어의 붉은 망토의 끝자락을 붙잡고 그의 등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차마 아이들을 떨쳐낼 수도 없어 아스고어가 당황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어느새 아스고어의 어깨까지 올라왔고, 그의 왕관은 순식간에 아스리엘의 손에 넘어갔다.

 

“엣헴, 이 왕관을 받으시지요 공주.”

 

  제 어깨에 올라타고는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양 자뭇 의기양양하게 폼을 잡는 아들의 모양새에 아스고어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은가.
  그 순간, 아스고어의 망토가 뜯어졌다. 아무래도 아이들의 무게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이겠지. 아이들은 순식간에 아스고어의 품에서 차가운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이런, 어디 다치진 않았니?”

 

  아스고어는 황급히 아이들을 살피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들의 위로 그의 망토가 떨어져있어 아이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온통 붉은 망토로 뒤덮인 가운데 구석의 황금빛만이 희끗하게 보여 그곳에 왕관이 떨어져있다는 것만을 간신히 알 수 있었다. 아스고어는 망토를 걷어내려 무릎을 굽히고는 망토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그건 망토가 아니었다. 망토라고 하기에는 너무 따끈하고 불쾌하게 끈적거렸다. 아스고어는 그것이 망토보다는 조금 더 액체에 가까운 무언가, 이를테면 피와 같은 감촉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망토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던 그것은 확 퍼지며 핏물이 되었다. 이제 아스고어의 알현실 바닥은 핏물로 불쾌하게 찰박거렸다. 피,피,피. 피 뿐이었다. 바닥은 온통 핏물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디있지?’

아스고어는 아이들을 찾기 위해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 때 그의 눈에 황금색의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조금 전, 왕관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그것은 황금색의 꽃이었다. 꽃은 피에 젖어 본래의 황금색을 잃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황금색이었다. 황금색의 꽃, 지하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그의 양녀의 고향에서 핀다는 꽃. 어째서 그 꽃이 여기에 있는 거지? 그리고 나는 어째서 이 꽃을 본 적이 있은 것 같지? 순간 아스고어의 뇌리로 어떠한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그는 한 차례 몸을 떨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건, 그건 그냥 나쁜 꿈일 뿐이야.
  아스고어는 애써 모든 것을 부정했다. 그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차라, 아스리엘! 어디 있는 거니? 제발 돌아와주렴 얘들아. 이런 장난은 좋지 않아.’아스고어는 외치고 또 외쳤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but nobody came). 그럼에도 아스고어는 외쳤다. 피눈물을 흘리며, 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와 악몽에서 깨어날 때까지. 그의 머리맡에 놓인 황금꽃을 보며 또다른 악몽의 날을 시작할 때까지.

 

-----------------------

오랜만에 뽕차서 글 좀 써왔는데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