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크와 샌즈 자리를 뜨는 장면 이후로 내용을 바꾸고 추가시켰습니다. 이미 읽으신 분들은 거기서부터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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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뻐근한 몸뚱어리를 움직이며 차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차문을 닫으면서 기지개를 쭉 폈고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하늘에는 햇빛이 고개를 내밀려는 여명의 기운이 서려 있었고, 남자는 그 모습을 하품이나 길게 빼며 잠깐 동안 쳐다보았다. 아직 어깨와 허리의 근육이 덜 풀려 찌릿하였고 평소보다 일찍 집에서 나서는 바람에 잠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는 팔을 하늘로 쭉 뻗고 허리를 양 옆으로 번갈아 움직이며, 찌뿌둥한 감각을 떨쳐내려 했다.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남자는 어제 자기 전에 외웠던 찬송가를 크게 부르며 자신이 운영하는 주유소로 걸어갔다.

 남자는 주유소를 운영했다. 이제 삼십 후반을 지나는 나이였고, 그 나이 대의 남성이라면 무릇 어느 회사든 취직하여 직장을 다녀야 했다. 하지만, 그는 취직을 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았고, 따로 숙련된 기술을 배우지도 못 했다.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알랑방귀를 뀔 줄 아는 특성도 없었다. 대신 그는 젊은 시절 의무 교육을 마치고 배를 탔고, 그런 생활을 거의 5년 가까이 했다. 그는 뱃일을 처음 시작할 땐 무역선의 말단 선원이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공부를 꽤나 하고 경력도 쌓이자 항해사로서 일도 했다.

 배를 타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리라. 그가 탄 배는 유람선이나 크루즈선 따위가 아니라 투박하고 거대한 무역선이었다. 무거운 짐을 옮기고, 다른 선원들과 싸우고, 언어가 다른 외국인 선원과도 어떻게든 이야기해야 했으며, 가끔은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악전고투해야 했다. 그것이 그 남자가 젊은 시절 했던 일이었고, 그 흔적이 남자가 주유소 문을 열기 위해 뻗은 손에 서려 있었다. 팔과 손 곳곳에 상처가 있었고, 깊게 패이거나 베인 상처의 흉터가 여기저기에 배어 있었다. 주유소는 그런 투박한 손의 남자를 받아들였고, 남자가 주유소에 들어서자 서늘한 공기가 가장 먼저 그를 맞이했다. 그는 그런 느낌이 좋은 듯, 찬송가의 마지막 절을 마저 크게 부르면서 카운터 앞에 있는 푹신한 의자 위에 걸터앉았다.

 그는 급유기를 점검하기에 앞서 먼저 카운터 위에 어질러져 있는 책이나 장부, 사무 도구 따위들을 정리했다. 그는 어제 주유소 영업을 아주 친한 아르바이트 생에게 맡겼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책상 정리는 더럽게 못 한다고 중얼거렸다. 책상 위를 깔끔히 정리하고, 책상 밑을 내려다 보았는데, 어제 일자의 신문이 지저분하게 구겨져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는 피식 웃으면서 나중에 보면 이 신문으로 알바생 머리라도 후려쳐 줘야겠다고 생각한 뒤, 자신이 생각해낸 그 발상에 낄낄 웃으면서 구겨진 신문을 주웠다. 신문의 1 면에는 괴물들의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어떤 여성과 괴악하게 생긴 괴물들이 나온 사진이었고, 평화 협정이니 협력이니 하는 소리가 써 있었다. 그는 그런 것에 큰 관심이 없었고, 신문 내용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신문을 접어서 쓰레기통에 던졌다.

 괴물들이 결계를 깨부수고 나온 것은 그가 한창 항해사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두 달 간의 항해를 끝내고 잠깐 육지에 머물렀을 때 들은 소식이었다. 오래 전에 결계에 봉인 되었던 괴물들이 그 결계를 부수고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그것은 꽤 시끄러운 이야깃거리를 남겼지만 남자는 그 당시에도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가 무역 관련된 일을 끝낸 뒤 해야 하는 것은, 화제 거리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떠드는 게 아니라, 다시 외국으로 나가서 바다에 있을 동안 필요한 물자들을 비축하는 것이었다. 영화나 드라마 따위를 CD에 구웠는데, 특히 포르노 영화나 영상 따위가 동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는 근무 시간을 대신 채워준다던가, 담배나 과자 따위를 받는 것으로 그런 포르노들을 제공했다. 꽤나 짭짤한 장사였다. 가끔씩 자신의 노트북에 불쾌한 액체가 묻어 있을 때만 빼고 말이다. 그런 일이 있을 때엔, 행위의 장본인에게 찾아가 욕을 한 바가지 먹여주었고, 그럴 때 당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민망함을 삼키며 욕을 들어야 했다. 물론 거래를 멈추진 않았다. 남자는 오직 그런 일에 관심이 있었지 괴물들의 행보에 관심이 없었고, 자신의 안위를 살폈다. 괴물들에 대한 태도는 지금도 별 다를 바가 없어서, 지금까지 몇 번 괴물을 본 적은 있으나 크게 관심을 가지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사업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에 대한 것에만 관심이 있었지, 그 괴물이 과거에는 무슨 짓은 저질렀으며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 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가 종교를 가지게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이것은 가장 훌륭한 태도였는데, 차별 받기 쉬운 입장에 선 자들에게 별 특별한 시선을 가지지 않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남자는 주유소 내부의 정리를 끝내고, 바깥으로 급유 기계를 확인했다. 그는 급유 기계를 보고 나서 살짝 미간을 찌푸렸는데, 급유기의 전원이 켜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주유소는 웬만하면 24 시간 운영을 했으므로 전원을 끄는 일이 별로 없었지만, 어제는 경우가 달랐다. 남자가 다니던 교회에서 행사를 하여 하루 종일 교회에만 붙들려 있어야 했으므로, 원래 새벽에 나와야 할 그가 나오지 못 하게 되어 예외적으로 문을 닫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원래대로 라면 급유기의 전원을 꺼져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투덜대거나 짜증을 내는 대신 너털웃음 소리를 내며 급유기에 얇게 쌓인 먼지나 손으로 툭툭 털어낼 뿐이었다. 그는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라고 시작하는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며 주유소 여기 저기를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기름 가격을 내걸고 주유소 진입로에 두었던 진입금지 팻말을 옆으로 치우면서 영업 준비를 마쳤다.

 남자는 영업 준비를 마치자 몰려오는 피곤함에 다시 하품을 했다. 해는 뜨기 시작했으나 그의 몸은 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전날 새벽에 주유소를 지키고, 낮에서 밤까지 교회 일을 하고 나서야 잠을 조금 잔 것이었다. 그는 이틀 동안 하루 치의 수면밖에 취하지 못 했다. 그러나 다시 곯아 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그는 다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찬송가로 잠을 쫓으려 할 만큼 독실한 신자였다.

 그가 날 때부터 성격이 유순하고, 믿음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똑똑하지 못 한 사람이었고 배를 탄 사람이었으므로, 유순보단 과격이, 신앙보단 패악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뱃일을 그만두고 육지에서 사업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 성격은 바뀌었다. 사업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업 실패로 인해 불어난 빚은 사람을 유순하게 만들었고 소시민적으로 만들었다. 사업의 실패라는 남자의 고통을 이 이상 자세히 서술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너무나 흔해 빠진 동시에 지겹게 슬픈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신, 남자가 그 고통에 대응했던 방법을 설명하자면, 첫 번째 방법은 자살 시도였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의 부모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그런 결심을 접었다. 두 번째 방법은 또 다른 사업이었고, 그 행위는 또 다른 빚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남자는 여러 일자리를 떠돌아 다니며 근근히 먹고 살았다.

 그러던 와중에 한 피잣집에서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겉보기에는 그저 노총각일 뿐이었다. 남자가 피잣집에서 피자를 만드는 일을 배울 때, 그 친구도 또한 피자 만드는 일을 배우고 있었다. 비슷한 나이대의 그 둘은 일이 끝난 뒤에 술을 마시는 것을 즐겼다. 그런 과정을 겪고 친해진 둘은 서로의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그런 교류의 결과 그 친구와 같이 사업을 하기로 했고, 그 사업의 일환이 이 주유소였던 것이다. 평생 다시는 찾아올 수 없는 행운이었는데, 그 친구 또한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목적은 같이 사업을 할 만한, 사기를 치지 않을 만한 동업자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그 친구는 마침 빚더미에 깔려 있던 남자를 자신의 동업자로 삼았다. 그 친구는 남자의 명의로 이 주유소를 차렸고, 친구 본인은 이 주유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타이어를 제조했다. 그러므로 남자는 이 주유소의 사장이었고, 친구가 가끔 주유소 일을 도와줄 때면,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친구를 "아주 친한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소개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말이 같이 사업을 하는 것이었지, 별개의 사업을 하면서 그 친구가 남자에게 은덕을 베풀어준 셈이었다. 남자가 친구의 사업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는, 주유를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타이어에 관한 이런 저런 홍보를 해주는 것 뿐이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말이 안 될 정도로 더러운 일이 있는 것처럼, 말이 안 될 정도로 엄청난 행운도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은덕의 본질을 찾고자, 이 남자는 속으로 오랫동안 고민했다. 결국 그는 그 본질을 신에게서 찾았다. 그는 친구에게 은혜를 얻은 동시에 신에게 은혜를 입었다 생각했고, 그런 생각은 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천천히 빚을 갚아가며 일을 했고, 종교 생활도 꾸준히 했다. 그는 사려 깊게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고, 남의 단점을 헐뜯기 보단 덮어주는 방법을 배웠다. 행복을 나눌 줄 알았고, 옳은 일이란 무엇인지 숙고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또한, 험악하게 생긴 인상에 비해 차분하고 신앙심이 엿보이는 행동거지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점잖게 생긴 아줌마가 깊은 신앙심을 지니고 선행을 베푸는 것보다, 건달마냥 험악한 인상의 남성이 신앙심을 통해 선행을 베푸는 것이 더 큰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

 그가 찬송가 서너 개를 부르고 나서야 차 한 대가 주유를 하러 왔고, 그는 오늘 맞이한 첫 손님을 웃으면서 맞이했다. 오 만원이요, 라고 말하며 시큰둥하게 말하는 손님도 그런 남자의 인상이 나쁘지만은 않은 듯, 주유를 마친 뒤 나갈 때에는 '수고하세요'라고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를 해주었다. 그 뒤에 요란하게 생긴 오토바이를 타고 한 청년이 주유소로 들어왔다. 남자는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라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청년은 헬멧의 앞유리를 올리면서 남자가 있는 반대 방향으로 침을 내뱉었다. 남자는 그런 행동에 별 주목을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에 주목했다. 청년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히 배여 있었다. 다른 주유소에서 비아냥이라도 듣고 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가끔 어떤 주유소에서는 오토바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남자는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남자는 이 청년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좋게 해주고자 했다.


 "이만 원만 넣어줘요."

 "아, 그래요, 학생. 그런데, 이 오토바이 생긴 게 장난 아니네요. 저도 젊을 때 오토바이에 관심 많았는데요."


 남자는 오토바이에 관심에 가지긴커녕, 당장 타고 다니는 차도 십 년이 지난 연식의 중고 차였다. 그에게 있어서 자동차나 오토바이는 그저 이동 수단일 뿐이었다. 청년의 기분을 띄워주려고 하는 말일 뿐이었다. 남자는 청년이 웃으며 자기 오토바이에 대한 여러 가지 자랑을 늘어놓길 기대했으나, 청년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청년은 그저 오토바이의 주유구를 열어줄 뿐이었다. 그러면서 툴툴대며 말했다.


 "예, 이놈 튜닝 좀 하느라 고생 좀 했죠. 그런데, 오늘 한 미친 괴물 때문에 아주 개발살이 날 뻔했어요. 더러워서 진짜."

 "괴물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방금 있었던 일인데, 웬 낡아빠진 오픈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해골 새끼가 있었는데, 별 미친 놈이 따로 없더라고요. 아니, 뭔, 해골 새끼가 이상한 고글 같은 걸 쓰고 있던데, 아, 외관은 설명하기도 귀찮아요. 그냥 갈 데가 있어서 적당한 속도로 가고 있었는데, 앞에서 새빨간 스포츠카가 보이더라고요. 저는 그냥 앞질러서 가려고 했죠. 그런데 그 새끼가 갑자기 그 순간에 왼팔을 내밀면서 흔들어대더라고요. 아니, 씨발, 제가 피해서 다행이지 거기에 부딪혔으면 저랑 이 오토바이가 같이 박살났을 거라고요. 다시 추월하면서 욕이라도 박아주려는데, 이 미친 새끼가 그냥 웃어제끼면서 손이나 흔들면서 '안녕, 인간 친구!'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방금 절 죽일 뻔한 걸 전혀 모르는 것 같았는데, 그 점이 더 빡치더라고요. 똥 밟은 셈 치고 그냥 최고속도로 밟아서 여기까지 왔어요."

 "어이구, 저런……. 꽤 놀라셨겠네요."

 "말도 마요.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요."


 남자는 주유를 끝내고 나서도 청년의 이야기를 몇 분 동안 더 들어주었다. 짜증나는 일이 있으면 누군가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꽤 마음이 풀리기 마련이다. 남자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험한 말이 섞인 청년의 말을 잘 들어주었고, 많이 놀라셨을 거라고 말해주고, 차라리 그런 차들 주변으로는 가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말도 해주었다. 몇 차례의 폭언을 쏟아낸 청년은 한숨을 푹 쉬고 난 뒤 말했다.


 "어이구, 사장님, 죄송해요. 혼자 흥분해서 별의별 소리를 지껄였네요."

 "아뇨, 괜찮아요. 그럴 만하죠."

 "시간도 늦었고……, 그럼 이제 가볼게요."


  청년은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고, 헬멧의 앞유리를 내렸다. 남자는 잘 가라며 손을 흔들었고, 청년은 어느 정도 속도를 내며 앞으로 가다가, 주유소를 나서기 전에 뒤를 돌아보면서 감사하다고 외쳤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주었고, 그러고 나서야 청년은 주유소를 나섰다. 남자는 고개를 저으면서, 괴물들은 상식이 부족하다는 새로운 편견을 마음 속에 새겼다. 추월을 시도하는 오토바이에 대고 팔을 내미는 것은 서로에게 큰 해가 될 것이리라. 괴물의 팔이 다치는 것은 둘째 치고, 오토바이를 탄 청년은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남자는 짧게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다시 찬송가를 외며 주유소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입 안이 심심하다 싶어, 카운터 옆에 있는 작은 냉장고를 열어 비타민 음료를 들이켰다. 시큼털털한 맛을 입 안으로 즐기며, 오늘따라 손님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문을 연지 시간이 시간이 좀 지났는데, 차 한 대와 오토바이 한 대밖에 오지 않았다.  아침이라 그럴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며 남자는 고개를 들고 카운터 바깥으로 보이는 아파트들과, 그 아파트들과 맞닿은 하늘 위를 둘러보았다. 그 광경 속에서 묘한 먹구름이 보인다는 것을 눈치챈 남자는, 비타민 음료를 마저 다 마신 뒤 카운터를 나왔다. 주유소 바깥으로 나와 하늘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는데, 멀리서 비를 머금은 듯한 무겁고 짙은 구름떼가 보였다. 남자는 기상청의 무능함에 대해 중얼거리며 다시 카운터로 돌아왔다. 한 시간 이내로 비가 올 것이라 남자는 확신했다. 그것은 뱃사람의 감각이었다.

 삼십 분 정도가 지났을 때 그의 예상대로 비가 내렸다. 오래 갈 비는 아니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양의 비였다. 주유소야 비가 오든 안 오든 별 상관이 없었으므로, 남자는 빗소리가 조금 시끄럽다고 느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오늘 읽어야 하는 성경 구절을 찾아보려고 핸드폰을 꺼내려다가, 카운터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이상한 풍경에 이목을 빼앗겼다. 주유소로 오는 길목 갓길에서 빨간색 차가 느릿느릿 기어오고 있었다. 무슨 차가 갓길에서 저렇게 느리게 달리나 싶었으나, 이내 남자는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어떤 사람이 내리는 비를 맞아가며 차를 밀고 있던 것이었다. 남자는 일단 저 사람을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장우산을 챙겨 주유소를 나섰다. 그러다가 남자는 자신이 보는 광경에 잠깐 움찔하여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요란한 옷을 입은 해골 하나가 차를 밀고 있었다. 붉은 스카프를 매고, 소재나 상표를 예상도 할 수 없는 이상한 하얀 옷을 입고 있었고, 허리에는 아무것도 없이 그냥 척추만 있었다. 그리고 눈에는 검은색 고글을 쓰고 있었다. 일종의 물안경인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커다란 고글을 쓰고 있었지만, 뼈만 앙상히 남은 손이나 다리, 척추, 턱이 그 사람의 신원을 명백히 밝히고 있었다. 아니, 남자는 그 사람이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 확신했다. 책상 밑을 정리하다가 본 신문에서, 저 괴물과 비슷한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 괴물처럼 생긴 다른 괴물이 또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생김새나 차의 모양을 보면,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말했던 그 괴물이 틀림 없었다. 남자는 저 괴물을 도와주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내 고민 자체를 하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란 걸 깨달았다. 그는 우산을 펴고 바로 그 해골 괴물에게 달려갔다. 해골은 남자가 온 것을 알아채지 못 한 듯, 바로 옆에 올 때까지 낑낑대며 차를 밀고 있었다.


 "어, 그, 저기요? 도와드릴까요?"

 "녜헥!"


 해골 괴물은 옆에 다른 누군가가 왔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 한 듯, 괴상한 소리를 내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다가, 우산을 쓴 채로, 난감을 표정을 지은 채 서 있는 남자를 보고 자신의 행동거지를 바르게 했다. 높고 찢어지는 듯한, 그리고 밝은 목소리로 그 해골은 이렇게 말했다.


 "아, 아니야, 인간! 나, 위대한, 파피루스는 이 난관을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노라!"

 "어……, 예?"

 "이건 내가 가장 아끼는 차라구! 이걸 다른 사람에 맡길 순 없어!"


 남자는 그 말을 들으며, 지금 당장이라도 이 차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의 이곳 저곳이 스크래치가 나서 보기 흉한 자국이 남아 있었고, 차의 앞 범퍼는 조금 찌그러진 부분이 있었다. 도색이 된지 오래된 듯, 빛이 바랜 곳도 많았다. 어느 점에서 차를 아끼고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괴물이라 차의 관리법을 모르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파피루스는 다시 끙끙 소리를 내며 차를 밀었다. 차는 확실히 밀리고 있긴 했으나,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남자는 알 수가 없었다.


 "저기, 기름이 없는 건가요?"

 "맞아! 기름이 다 떨어져서 내가 직접 밀고 있는 거야!"

 "바로 앞에 제 주유소가 있는데, 저기서 주유를 하시는 게……"

 "녜혝! 주유소가 여기 있었네?!"


 파피루스는 차를 미느라 주변 환경을 전혀 못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고글 탓에 주변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 하고 있었다. 남자는 이 어이 없을 정도로 대하기 힘든 괴물에게 무어라 말을 이어야 할지 감을 잡지 못 했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야 말로 이 괴물에게 실례라고 생각했다. 이 괴물이 비록 이전에 오토바이 청년에게 큰 실례를 범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이런 표정과 태도로 괴물을 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휘발유를 기름통에 담아서 넣어드릴 게요. 제가 이 주유소 주인이거든요. 일단 차가 움직여야 주유소 안으로 들어오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차에 들어가 계시면 제가 기름을 주유해드릴……"

 "아하! 인간! 호의는 고맙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주유는 주유소 안에서 해야지!"


 남자는 파피루스의 말을 듣고 무언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이내 자신의 앞에 벌어진 광경에 입을 쩍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파피루스가 하늘로 팔을 뻗자, 갑자기 땅에서 수많은 뼈다귀가 솟아나와 스포츠카를 떠받쳤다. 그리고 파피루스가 주유소 방향으로 다시 팔을 뻗었고, 뼈다귀들이 움직이며 낡은 스포츠카를 주유소로 옮기기 시작했다. 남자는 마법이란 개념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절대로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애초에 마법과 친숙한 자였다면 이런 일을 하고 있지도 않았으리라. 남자는 허공에서 불을 뿜거나 물을 생기게 하거나, 결계를 만들어내는 것 따위 마법을 별로 신기해 한 적은 없었다. 남자는 집에서 가스레인지로 불을 피울 줄 알았고, 수도꼭지를 틀어서 물을 만들어낼 줄 알았으며, 자물쇠로 문을 잠글 줄 알았다. 그러나, 바닥에서 뼈를 솟아오르게 할 줄은 몰랐으며, 그 뼈다귀로 차를 옮길 줄도 몰랐으므로 경악을 금치 못 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그 상황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으나, 그저 그 광경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파피루스가 뼈다귀 마법으로 차를 정확히 급유기 옆에 위치시키고 나서 팔을 내렸고, 동시에 뼈다귀들도 사라졌다. 파피루스는 놀란 표정의 남자를 보고, 고글을 이마로 올리며 우쭐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녜헤헤! 이게 바로 파피루스 님의 능력이라고!"


 남자는 그런 파피루스의 높고 찢어지는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애초에 왜 이 마법으로 차를 옮기지 않았는지 따위의 질문을 하고 싶었으나, 남자는 그저 마음 속으로 질문들을 삼켜두기로 했다. 남자는 파피루스에게 고객을 대하듯, 주유소로 빨리 들어가자고 했다. 그때까지 남자는 파피루스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몸은 거의 비에 젖고 있었다. 파피루스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웃으면서 당당한 걸음으로 주유소로 걸어 들어갔다.

 남자는 파피루스의 상태를 보고 걱정이 앞섰다. 혹시 정신적으로 떨어지는 괴물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단순히 기우일 뿐이었다. 파피루스는 자신의 차를 관리할 줄 모르긴 했지만, 주유소에서 주유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파피루스는 남자에게 돈을 건네주며 주유를 해달라고 했고, 남자는 주유를 해주었다. 굉장히 일반적인 주유소의 작업이었다. 파피루스가 굉장히 시끄러운 괴물이란 것만 빼면 완벽하게 일반적이었다.

 파피루스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기에 완벽한 날씨라고 말했고, 차에 배기구를 열 개라도 더 달아주고 싶을 만큼 기분이 좋다고도 말했다. 남자는 그런 파피루스의 말투가 부담스럽기도 했으나, 보기 드물게 밝은 성격의 소유자를 만났다는 생각도 했다. 남자는 파피루스의 헛소리를 잘 받아주었고, 그것은 파피루스를 더욱 기고만장하게 만들어주었다. 주유가 한참 전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파피루스는 자신이 요 며칠 간 이뤄낸 업적들에 대해 말했다. 자신의 형제가 스파게티를 아주 맛있게 먹어주었다는 사실이나, '괴물의 마스코트가 이뤄낸 일들'이라는 제목의 논문도 거의 작성을 마쳤다고 했다. 남자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야기가 너무 중구난방이라고도 생각했으나, 이 괴물이 쾌활하게 웃는 표정이나 큰 손동작을 보면서, 이 괴물이 기분이 정말 좋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성격이 급하거나, 효율을 추구하거나, 쓸모 없는 대화를 싫어했다면, 주유를 마치자마자 파피루스를 바로 쫓아냈으리라. 하지만, 그 둘은 주유가 끝난 차 옆에 서서 이십 분을 넘게 대화했다. 파피루스는 무엇이든 말했고, 남자는 웃으면서 무엇이든 대답했다. 파피루스가 주유소가 정말 멋지게 생겼다고 말하면, 남자는 별 것 없는 곳이라며 말할 뿐이었다. 파피루스는 그 별 것 없는 곳이 너무 멋지게 생겼다고 말하면, 남자는 그럼에도 별 것 없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그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중심이 없는 이야기는 남자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남자는 이 괴물이 방금 어떤 청년의 목숨을 본의 아니게 위협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정확히 주유를 한 지 삼십 분이 지났을 때, 파피루스는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이 즐거운 장소에서 말하는 것도 이제 끝이구만, 인간! 너무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어! 이제 가야 할 시간이야!"


 남자는 파피루스의 손목에 시간을 가리키는 어떠한 장치도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으며 말했다.


 "하하, 가셔야 한다면 가셔야죠. 손님처럼 항상 웃으면서 지내고 싶네요. 정말 즐거웠어요."

 "당연하지! 나처럼 위대하고 훌륭한 파피루스가 세상에 또 어딨겠어?!"


 남자는 이 괴물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며, 운전석 문을 열어주려고 했다. 그러다가 남자는 운전석 부분의 타이어를 보았다. 겉보기엔 별로 문제 없어 보였으나, 남자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교체할 시기가 지난 타이어였다. 특히 비가 오는 날씨에 이런 마모된 타이어로 운전을 하면 위험하다. 타이어를 파는 것도 주유소 사업의 일환이었으므로, 남자는 파피루스에게 타이어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


 "어, 그, 파피루스 씨?"

 "응?"

 "타이어가……"


 그러나 남자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 했다. 비가 오는 날씨, 미끄러지기 좋은 도로의 도면, 브레이크를 밟을 수록 걷잡을 수 없는 차의 움직임, 그것이 남자의 눈 앞에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파피루스는 자신의 뒤통수 뒤로 벌어지는 상황을 보지 못 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자신과 해골을 덮치려고 달려드는, 경로를 제대로 잡지 못 하고 달려드는 검은색 차가 남자의 눈 앞에 보였다. 검은 차는 빠른 속도로 급유기와 낡은 스포츠카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남자는 죽음의 위기를 몇 번 넘겨본 적이 있었다.

 한 번은, 태풍 때문에 거의 사십 도는 기울어진 배 갑판 위에서 난간을 잡고 매달렸던 때였다. 그 때에 남자는 초인적인 힘으로 살아남았다기보다, 어금니를 꽉 물고 죽기 살기로 버텼다. 그 덕에 남자는 첫 번째 위기를 넘겼다. 두 번째는, 배에 타고 있던 외국인 선원이 미쳐 날뛰었을 때였다.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내려달라고 소리 치던 그 선원은, 결국 날카로운 칼을 들고 인질극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그때의 인질이 바로 남자였다. 다만 이 인질극에 문제가 있었다면 인질을 그 남자로 삼았다는 것에 있었다. 남자의 목에는 조금의 상처가 생겼고, 난동을 피운 외국인 선원은 코와 광대뼈가 박살 난 채로 독방에 사슬에 묶인 채로 갇혀야 했다. 마지막 죽음의 위기는 그가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 앉았을 때였다. 그에게 닥친 죽음의 위기 중에서 가장 위태로웠던 것은 마지막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달려드는 검은 차 따위는 그의 목숨을 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남자는 재빨리 파피루스를 잡아채어 그 검은차의 경로에서 빠져 나왔다. 남자는 파피루스를 잡은 채 굴렀고, 방향감각을 잃은 검은 차는 파피루스의 스포츠카와 급유기를 들이받았다. 파피루스는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며 무슨 일이 난 거냐고 소리쳤다. 남자는 검은 차를 보면서 당장 파피루스에게 물러나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남자는 더욱 심각한 상황을 맞이해야 했다.

 급유기와 심하게 찌그러진 검은 차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는 그저 조금 피어 오르는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갑작스런 충격에 깨어난 화마가 순식간에 검은 차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주먹만한 크기의 불이 보이기 시작했고, 남자는 파피루스의 손을 잡았다.


 "이봐요, 파피루스 씨! 당장 여기서 도망쳐야 돼요!"

 "녜헥? 무슨 소리야?!" 

 "지금 스포츠카가 중요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이 폭발할 수 있었다. 여기는 주유소였다. 불에 타고, 폭발할 물질로 가득 찬 곳이었다. 남자는 자신이 파피루스의 차에 주유를 한 뒤, 급유기를 제대로 잠구었는지 고민해보았다. 분명히 잠그긴 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머리 속에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여기서 빠져 나가야 했다. 남자는 아직 넘어져 있는 파피루스의 손을 잡고 달려 나가려 했다. 하지만, 파피루스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스포츠카를 향해 걸어가려 했다. 남자는 그런 파피루스의 팔을 다시 잡아채며 말했다.


 "이봐요! 지금 당장 여기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고요! 스포츠카는 버리고……"

 "인간! 내 차는 문제가 아냐! 저 사람!"


 남자는 파피루스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 검은 차 안에 사람이 있었다. 당연했다. 검은 차의 운전자는 정신을 잃은 채 불타는 차 안에서 죽음과 마주 하고 있었다. 이런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불은 순식간에 피어 올랐다. 남자는 방금보다도 화염이 커졌다고 느꼈고, 잘못하면 저 사람뿐만이 아니라 자신까지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 차를 봐요! 이미 문까지 박살 나서 못 연다고요! 일단 피해요! 그러다 죽어요! 지금 급유기 옆에서 불이 났다는 걸 이해 못 하고 있는 거예요?"

 "알아! 알고 있다구! 그러니까 빨리 구해야 된다니까!"

 "손님! 그러다 손님까지 죽는다고요!"


 파피루스는 상황을 계산할 줄 몰랐고, 남자는 할 줄 알았다. 남자는 파피루스의 팔을 놓아주지 않았다. 남자는 어떻게든 파피루스를 그 사고 현장에서 떨어지게 하려 했다. 남자는 온 힘을 다해 파피루스를 끌어냈고, 결국 파피루스를 어느 정도 그곳에서 떨어지게 했다. 만약 폭발한다 해도 다치지 않을 만큼 거리를 벌렸다. 남자와 파피루스의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파피루스는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남자가 잡은 손을 어떻게든 뿌리쳤다. 파피루스는 자신의 팔이 자유로워지자, 온 힘을 다해 검은 차를 향해 달려갔다.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 하고 그 자리에서 안절부절하지 못 하고 있었다.


 "손님! 파피루스 씨!"

 "인간! 지금 빨리 119에 신고해줘!"

 "아니 그것보다……"

 "빨리!"


 그 말이 맞았다. 남자는 파피루스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이미 파피루스는 자신의 손을 떠나갔으므로 막을 수 없었다. 남자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남의 목숨을 구하러 갈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전화기를 잡고 신고를 하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파피루스는 거침없이 화마 속으로 달려들었다. 불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운전자의 피부를 태워먹을 수 있었다. 파피루스는 그 모습을 보고 전혀 망설이거나 뜸들이지 않았다. 파피루스가 팔을 휘두르자, 찌그러져 열 수 없었던 문 자체가 뼈다귀 마법에 의해 나가떨어졌다. 검은 차 안의 여인은 피를 흘리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의식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파피루스는 여인의 어깨를 잡아 끌어냈다. 축 늘어진 몸이 생각보다 무거워 잘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파피루스는 안간 힘을 쓰며 운전자를 끌어냈다. 파피루스가 여인을 결국 차에서 빼냈지만, 이 여자를 얌전히 업거나 안아들 시간조차 없었다. 파피루스는 축 늘어진 팔 밑으로 손을 넣어 여인을 질질 끌면서 꺼냈다.  그 순간, 급유기 쪽에서 펑 하는 소리의 작은 파열음이 들렸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폭발의 전조임을 눈치챘다. 남자는 응급센터에 주유소의 주소를 불러주고 나서 바로 전화를 꺼버렸다. 일단 지금 파피루스를 도와줘야 했다. 그러나, 파피루스를 도와주려고 움직이던 남자의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러다가 나까지 죽으면 어떻게 하지?'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에겐 친한 친구가 있었다. 모셔야 하는 부모가 있었다. 아내와 자식은 없었으나,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여기서 목숨을 내맡겨서 안 된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남자는 그 충동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다리를 쳐다보았다. 타닥, 하는 파열음이 남자의 귓속에 한 번 더 울렸다. 여섯 발자국 앞에, 쓰러진 운전자를 끌고 오는 파피루스의 뒷모습이 보였다. 남자의 다리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또 다시 한 번 더, 타닥, 하는 소리가 들렸다. 파피루스는 남자의 다섯 발자국 앞에 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선 이 자리도 별로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다. 남자는 앞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그의 다리는 앞으로 움직이지 않았으나, 뒤로는 움직일 수 있었다. 파피루스는 이제 여섯 발자국 앞에 있었다. 뒤로만 움직이는 다리와 남자의 눈 앞에서 끙끙대는 파피루스의 모습. 이것은 남자에게 이내 어떠한 충격을 주었다.


 "조심해요!"


 남자는 그렇게 외치며 자신의 발을 앞으로 움직였다. 파피루스에게로 다가가, 쓰러진 여인의 한 쪽 겨드랑이를 잡았다. 남자는 여인을 끌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남자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들어 앞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보았다.


 남자의 앞에는 오직 뿜어져 나오는 화염만이 있었고, 그것이 남자가 정신을 잃기 전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렇게 큰 폭발은 아니었으나, 남자의 머리 속에서는 작지 않았다. 그는 휘몰아치는 태풍 속에서 갑판의 난간을 잡고 살아남았다. 목에 칼이 들어온 상황에서 난동을 부리는 외국인 선원의 상판을 짓이겨놓았다. 그에게 그 어떤 위기도, 목숨을 위협할 순 없었다. 사람이란 무릇 그런 무수한 인생의 위기 속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나, 그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항상 인생의 위기 속에서 싸워 왔기에, 단순히 화마에 휩쓸려 목숨을 잃을 정도로 나약하지 않았다.

 남자가 화마의 아가리 속으로 삼켜졌을 때, 무의식 속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는가? 강직하고 화마 따위에 목숨을 잃을 리 없는 남자의 비겁함이었다. 그는 커다란 주유소를 보았다. 기름이 가득 찬 탱크를 마주했다. 그 위로 찌그러진 검은 차가 화염에 불타며 떨어지고 있었다. 남자는 그 차 안의 운전석에 나무로 된 십자가가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무의식은 참으로 정확한 통찰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금방이라도 모든 것이 폭발할 그 환상 속으로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기름이 불과 만나 폭발하고 불타든 간에, 자신의 목숨은 무엇보다도 소중했다. 결국 기름 속에 빠져 버린 자동차는 폭발했고, 그와 동시에 나무 십자가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는 그렇게 검게 변한 환상 속에서, 숯검댕이만이 남아버린 환상 속에서 자신 마저 검어진 것을 확인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종교 안에서 불안한 적이 없었으나, 무의식의 검은 환상 속에서 불안했다. 그는 어제 외웠던 찬송가를 불러보려고 했지만, 자신이 더 이상 어떤 찬송가도 기억하지 못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기억을 되돌려보았다. 자신이 찬송가 외우기를 게을리 했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성경 구절을 읽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수많은 업보가 지금에서야 찾아온 것인가? 그러나 남자가 믿는 종교의 신은 그렇게 속이 좁은 소인배가 아니었다. 그저 남자는 자신이 구해야 할 여인 하나를 내팽개쳤을 뿐이었다.

 그 사실에 다다르자, 남자는 눈을 떴다.

 남자가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들린 건 매우 익숙한 목소리였다.


 "녝! 인간! 인간이 살아있다! 살아있어!"

 "뼈다귀 씨! 지금 환자 후송 중입니다! 나와주세요!"


 그가 의식을 잃은 순간은 찰나였다. 남자는 지금 응급차에 실리기 직전이었다. 남자의 몸은 무거웠다.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살짝 화끈거리긴 했지만, 커다란 화상 따위는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을 돌아보았다. 소화기 같은 것을 살포하는 소방관의 모습과, 거의 반절은 타버린 주유소의 모습이 보였다. 기름이 다 불타버리는 대형 사고까진 가지 않았던 것 같다. 남자는 또 다른 곳을 돌아보려 노력했다. 이미 출발하고 있는 응급차의 모습이 보였다. 저 응급차 안에는 그 여인이 타고 있길 바랬다. 그러나, 남자는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하지 못 하고 자신의 의식을 내던졌다.



 *



 폭발은 정말 큰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놀라서 나가 떨어질만한 것은 되었으리라. 기껏해야 차에서 새어 나온 휘발유가 한 번의 폭발을 일으켰을 뿐이었다. 꽤 떨어진 거리였으나, 남자에게는 그것이 커다란 폭발만큼이나 위협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얼굴과 눈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고, 그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다. 남자는 갑작스레 찾아 온 재앙에 눈을 꽉 감았다. 주유소가 박살나면 앞으로 먹고 사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지? 보험금은 나올까? 내가 마땅히 도와줘야 하는 사람을 내팽개쳐놓고, 그 사람에 또 손해 배상 따위를 청구해야 하나? 저 사람이 들이 받은 것이니 저 사람 잘못이지만, 나는 죽어가는 사람을 내팽개치지 않았나? 그 뼈다귀 괴물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수많은 생각이 남자의 머리 속을 스쳐갔고, 의사는 그저 남자의 피부를 치료할 뿐, 이야기를 들어주진 않았다.

 남자는 그 여인이 살아 있으리라 믿었다. 문제는 그 여인의 생사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그 여인이 죽게 내버려 두었다. 그러고선 처음 보는 괴물에게 그 일을 모두 떠안겼다. 그가 원래 심성이 사악한 자였다면 고민이 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남자는 스스로를 종교 아래 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신성한 죄책감의 수렁에 빠져 있었다.

 남자는 문득 자신이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기억하는 병원의 모습은, 최소 여섯 명은 같은 방 안에 누워 TV나 보고 있던 장소였다. 그러나 남자는 혼자 있었고, 즉, 그는 1인 병실에 있었다. 그는 병원을 많이 이용해 본 적은 없었으나, 1인실이 비쌀 것임은 알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부모가 입원 수속을 이렇게 비싸게 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병원이 강제로 1인실에 있도록 두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그저 잠시 동안 정신을 놓았을 뿐이었다. 왜 응급실도 거치지 않고 1인실로 바로 들어왔는지 이해 되지 않았다. 자신이 혼절한 도중에 응급실을 거쳤다고 해도, 어떠한 수속을 거쳐야 1인실에 옮겨지거나 하지 않겠는가? 남자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팔에 꼽힌 링거가 뽑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나며 보행 보조대를 잡았다. 그 순간, 1인실의 문이 열렸다.


 "당신은 환자라고. 일어나지 않는 게 좋아."


 남자는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 보았다. 키 작은 해골이었다. 남자는 파피루스라는 해골과 어떤 관련이 있음을 알아챘다. 당연한 추론이었다. 둘 다 해골이었으니까.


 "당신은……?"

 "샌즈야. 뼈다귀 샌즈. 일단,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내 동생의 목숨을 살려줬다고 들었어."


 남자는 샌즈라는 괴물의 말을 이해하지 못 했다. 자신이 누굴 구했단 말인가? 자신은 파피루스라는 괴물로 하여금 목숨을 담보로 몸을 던지게 했을 뿐이었다. 남자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런 생각이 담긴 표정을 지었다. 샌즈는 그런 표정을 읽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었으므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갑작스런 상황이라서 이해가 안 되는 건가? 아니면, 기억이 가물가물한 건가? 파피루스한테 들은 걸 그대로 말해줄게. 기름이 떨어진 차를 옮기다가 당신이 도와줬고, 파피루스랑 거진 삼십 분은 대화를 했고, 파피루스가 꼼짝 없이 치여 죽을 뻔한 상황에서 당신이 구해줬고, 마지막엔 검은 차에 타고 있던 여자도 도와주다가 폭발에 휘말려 정신을 잃었다고. 내가 들은 건 이거야. 이 얘기만 들으면 당신은 내 영웅이라고. 정말이야."

 "아니요. 전 그렇지 않아요……."


 남자는 침대에 그대로 풀썩 쓰러지듯 누우며 말했다. 남자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기를,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 남을 죽게 내버려둔 소인배일 뿐이었다. 남자는 이제껏 자신이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종교의 가르침을 헌신짝마냥 내던졌다고 느꼈다. 샌즈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그 검은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을 처음부터 안 구해줬다고, 지금 죄책감을 느끼는 건가?"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한숨을 푹 쉬면서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샌즈는 그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남자는 그 웃음 소리를 듣고 화가 북받쳐 올라, 자리에서 허리를 세워 앉은 채로 샌즈를 노려보았다. 샌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


 "내가 당신이랑 정말 잘 어울리는 인간을 하나 알고 있지. 기다려봐, 헤헤."


 남자는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샌즈는 바로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문도 제대로 닫지 않았다. 남자는 혼자서 무언가 중얼거렸다. 자조 섞인 말, 혹은 예의 없는 해골에 대한 불평이었다. 남자가 또 불평을 이어가려 하자,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샌즈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혼자가 아니었다.


 "파피루스를 도와주신, 주유소 사장님이세요?"


 그다지 길지 않으면서도, 단발 머리도 아닌 갈색 머리의 여인. 그 여인의 피부는 동양인의 것이었으나 남자의 눈에는 매우 희어 보였다. 작지만 귀염성이 있는 눈매였으며, 코끝은 낮았지만 지나치지 않아 안정감이 있었다. 단아한 미소가 어울릴 듯한 입에서 또 다시 말이 흘러나왔다. 남자는 그 얼굴을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 여인은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외쳤다.


 "감사합니다!"

 "어……, 저 혹시, 괴물 외교 대사님?"

 "네, 맞아요."


 남자는 신문이나 TV 따위에서 이 여인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으나, 괴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곳이라면 이 여인이 빠지지 않았다. 괴물을 위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장이 마련되거나, 괴물 대해 여러 이익과 거래가 오가는 곳이라면 항상 이 여인이 있었다. 남자는 이 여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여기는 어쩐 일로?"

 "파피루스를 구해주셨다면서요. 제가 할 수 있는 해드리려고요. 이미 한 번 해드렸고요. 혹시 불편한 게 있으신가요?"

 "아니, 그, 혹시 병원 수속을, 당신이……?"

 "네. 비용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쪽에서 다 알아서 할 거예요."

 "아니 그럴 순 없어요. 제가 입원한 건데 어떻게 남의 손을 빌려서……"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작은 답례예요. 앞으로 답례해드릴 건 많이 남아있어요."

 "네?"


 남자는 불편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병원 비용을 모두 부담할 것이라 하는 것도 모자라, 앞으로 또 다른 답례를 해줄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남자는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이전에, 애초에 자신은 그런 답례를 받을 정도로 훌륭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자는 여인의 답례를 극구 사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샌즈가 끼어들었다.


 "이미 부모님과 친구에게 연락을 돌렸어. 이 병원에 당신이 입원하고 있고, 이 건에 대한 모든 피해를 우리 괴물 측이 부담하겠다고 했지. 인간을 구한 괴물과, 괴물을 구한 인간이라는 소재가 있으니 기자도 오지 않을까 싶어. 뭐, 우리에겐 좋은 일이지."

 "그게 무슨 소리죠?"

 "너는 내 동생의 은인이야. 내 수중에 있는 모든 돈을 다 털어서라도 은혜에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어? 주유소의 재산 피해나, 당신의 신체적 피해나, 금전적인 건 모두 다 보상해줄 거야. 앞으로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단 소리지. 우리가 여기에서 작은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건, 이런 사실을 언론에 알려서, 괴물을 구해준 인간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감사를 표하는 지를 사회에 보여주는 거야. 괴물의 권리 신장에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남자는 샌즈가 하는 말을 듣고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만 벙긋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남자의 머리 속에서 계산이 멈추었고, 여인이 샌즈의 말에 덧붙여 말했다.


 "조금 있으면 다른 분들도 오시겠죠. 저는 이만 가볼 게요. 가족의 병문안을 방해하고 싶진 않아요. 이 건에 대해서 처리해야 할 것도 많고요.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다시 만날 거예요."


 그 말을 하고 나서, 여인과 샌즈는 고개 숙여 남자에게 인사한 뒤, 병실을 걸어 나가버렸다. 남자는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맨발로 뛰어나갔다. 보행 보조대를 잡고 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자는, '잠시만요!' 라고 외치며 병실 문을 나섰다. 그러나, 남자가 복도에 나왔을 땐, 여인도, 키 작은 뼈다귀 괴물도 없었다. 그저, 간간히 지나가는 다른 환자나 간호사가 보일 뿐이었다. 남자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스러워 하며, 천천히 자신의 침상에 돌아가 걸터 앉았다.

 남자는 그렇게 잠시 동안 허공을 바라보다가, 다시 털썩 하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지금 자신에게 불어 닥친 모든 일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는 숨을 고르며 모든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그의 주유소는 교통 사고로 박살이 났을 것이고, 그것 때문에 남자의 생계는 불투명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 교통 사고 속에서 한 괴물을 살려준 덕에 그 모든 피해를 보상받을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남자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자신은 분명히 한 여인의 목숨을 버리려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자신에게 찾아올 수 있는가? 남자는 이 일이 순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도덕적일수록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희망적인 명제 따위를 믿는 것은 아니었으나, 남자는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는 그러한 명제를 엄격히 적용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자면 같은 명제는 아니지만, 자신이 비도덕적인 짓을 했다면 그에 따른 불행한 일이 찾아오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난 일은 완전히 반대였다. 그는, 한 목숨을 내팽개치려 했음에도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사실 그가 정말 그렇게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거기서 누군가를 구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은 남을 돕고 구하는 것이 도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예'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현실과 타협할 줄 아는 자들, 계산을 할 줄 아는 자들은 이런 딜레마에서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방법은 알았지만 확실히 대답할 줄은 몰랐다. 남자는 계산을 할 줄 알았으나, 자신이 믿는 신의 가르침 아래 속박되어 고통 받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고통을 받는 자야 말로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임을, 남자 스스로는 깨닫지 못 하고 있었다.

 그런 고통 속에서 잠깐을 있다가, 이내 그의 부모가 병실에 도착했다. 그 가족의 대화는 특별한 부분이 없었다. 부모는 거의 울면서 안부를 물었고, 남자는 몇 번이나 괜찮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남자는 갑작스레 그런 상태에서 부모를 마주하자, 약한 화상을 입은 그의 눈이 시큰거렸다. 남자는 눈물을 가슴 속으로 삼키며 어떻게든 부모를 안심시키려 했다.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가고 나서야 부모는 진정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을 준비가 되었다. 남자의 부모는 처음에 파피루스를 만난 일부터, 방금 괴물 대사와 샌즈를 만난 이야기까지를 모두 말해주었다. 부모는 그저 다행이라고 평할 뿐이었고, 남자의 도덕적 판단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부모는 원래 그런 존재였다. 아들이 무탈한 데다가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받는다면, 그저 부모는 좋아하리라.

 이후에 의사가 들어와서, 남자는 입원을 할 정도로 부상을 입은 것이 아니며, 남자는 약간의 화상을 제외하면 아주 건강하다고 말해주었다. 남자는 의사에게 자기 자신보단, 여인의 안부가 더 중요하다며 그녀의 상태에 대해 물어보았다. 의사도 그것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는 듯, 그저 그 여인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만을 알려줄 뿐이었다. 남자는 알았다고 대답했고, 남자의 부모는 의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남자는 부모에게 일터로 돌아가라고 말했으나, 부모는 계속 남자의 옆을 지키려 했다. 의사의 말을 듣지 않았냐며, 자신은 괜찮다고 수십 번을 반복해서 말하고 나서야 부모는 병실을 나섰다. 남자는 혼자 있고 싶었다. 혹은, 괴물 대사나 해골 괴물이 들어와서 다른 이야기를 해주길 바랬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친구라도 들어와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병실에 들어오지 않았고, 간호사만이 가끔씩 들어와 몇 가지를 확인하고 돌아갈 뿐이었다.

 남자는 복잡한 마음을 구겨놓은 채, 아직 해가 뜬 낮에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



 "야 이 씨발놈아! 안 죽었으면 일어나 새끼야!"


 남자는 자신의 잠을 깨운 사람이 누구인지 '씨발놈아'라는 구절에서 정신이 깨었을 때부터 알아챘다. 남자는 눈을 뜨고 옆을 보았다. 동업자이자 친한 친구가 너저분한 등산용 카라티를 입고 낡아빠진 정장 바지 주머니에 손을 꼽아 넣은 채 욕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고, 그 모습에 친구는 더욱 열이 받치는 듯 더 욕을 했다.


 "아니, 이 새끼야. 불 타서 죽을 뻔 했으면 연락을 해야 할 거 아니여, 연락을!"

 "나중에 형이 타이어 더미에 깔려서 죽기 직전이 되면, 그때 나한테 연락해보쇼. 연락할 수 있으면 내가 손목을 자르고 물구나무를 서줄게."

 "웬 괴물 놈들이랑 괴물 대사가 매장에 와가지고 알았다. 애초에 너랑 나랑 동업하는 걸 그 괴물들이 어떻게 안 거야? 아니, 뭐 어쨌든, 이문 좀 보긴 했지. 주유소 박살 난 건 그 괴물 측에서 보상해주겠다고 했어. 도대체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손해만 안 보면 되니까 별 신경 안 쓴다고. 그런데, 이 씨발 놈아. 뒈지려고 작정했냐? 어?"

 "아, 거 진짜, 나 환자야, 이 사람아! 나 얼굴에 화상 입었어!"

 "이 사람아? 내가 니보다 삼 년은 먼저 태어났어, 새끼야! 내가 볼 땐 니 얼굴 말짱하거든? 내가 화상을 입혀줄 게 새끼야!"


 그대로 친구는 손에 들고 있던 국화 꽃뭉치로 남자의 얼굴을 수 차례 내리쳤다. 남자는 욕지거리를 하며 두 팔을 들어 꽃뭉치 찜질을 막아냈다. 사람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격언을 완벽히 무시하는 행태에 남자는 저항했으나, 친구는 왜 연락을 안 했으며, 왜 남이 시키지도 않은 영웅놀이를 하다가 목숨을 버리려 했냐며 찜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 작은 소란을 지나가던 간호사가 보았지만, 친구의 폭력 행위를 막지 않고 그저 웃으면서 지나갈 뿐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작은 실랑이일 뿐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아, 뭘 내가 목숨을 내던져! 오히려 그 반대구만!"

 "지랄하네. 그 주유소 CCTV 화면 내가 핸드폰으로 돌려봤어 새끼야. 아주 그냥, 대단하시더만? 굳이 해골 놈이, 잘 꺼내고 있던 사람한테 달려가서, 도와주다가 아주 불이랑 박치기 하셨더만! 각도는 뒈지게 잘 맞춰서 자기만 그 불에 맞았어! 옆에 있던 해골이랑 그 주유소 박살 낸 여자는 멀쩡했는데 자기만 불에 상판떼기를 그냥 갖다 박아가지고, 어?"


 친구는 이렇게 말하면서 계속 꽃뭉치 찜질을 했고, 말을 끝내고 난 뒤엔 숨을 고르며 꽃뭉치를 옆에 있던 탁상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남자는 친구가 너무 야단법석이라고 생각하며, 얼굴에 묻은 국화꽃잎을 몇 개 떼내어 던져버렸다. 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