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 전 주의 사항
1. 흙손이고
2. 고증은 따로 안 한 시대극이며
3. 제목 상 등장인물들 중 하나는 죽는다


#0
서문
수필가, 아마추어 수집가, 에섹스 지방 변두리 고즈넉한 마을의 시청 직원, 그리고 나의 오랜 친구인 크리스토퍼 클럭슨 차라는 예전부터 기묘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뭐랄까, 이를테면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대는 걸 보고 즐거워하는 동시에 그를 돕고자 하는, 아무튼 쉬이 설명하기 어려운 역설적인 성격이었다. 그렇지만 차라가 사회에서 문제인으로 낙인이 찍혔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를 처음 만난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점잖고 도덕적인 인품의 소유자라며 칭찬을 해 대기 일색이었다.
두서없이 그의 성격으로 글의 포문을 연 것은, 앞으로 2년 전에 내가 차라와 함께 경험한 하나의 기이한 사건에 관해 몇 자 적기 위함이다. 그날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그 모든 일이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자, 이야기를 아무래도 조금 차분히 풀어나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단 그날 아침에 있었던 일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보도록 하자.

알렉산더 버나드 프리스크, 1890. 12


#1
화이트헤드 저택으로의 초대
1888년, 11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두어 달 전부터 화이트채플 가에서 미치광이 하나가 괴물들을 끔찍하게 연쇄 살인한 사건으로 온 런던이 뒤숭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법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정장 겉에 푸른색 코트를 살짝 걸치고 6시 즈음을 전후로 사무실을 향해 집을 나왔다. 내 변호사 사무실까지 이동하는 5분 가량은 그날도 별다를 것 없을 하루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무실 문에 붙어 있는 종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그 종이에는 마치 내가 써붙여 놓은 양 당당한 안내문이 인쇄되어 있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사무실은 하루 쉽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그 이상한 종이를 어리둥절한 상태로 들여다보던 것도 잠시, 갑자기 내 등 뒤로 꼭 나 만한 그림자가 덮쳐 왔다.
"으악?!"
반사적으로 상대를 밀쳐내고 그의 얼굴을 봤을 때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깜짝 손님, 내 오랜 친구가 땅바닥에 처박힌 그의 왼팔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비틀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참, 그냥 놀래켜 주려고 한 건데. 꽤 오랜만이지, 프리?"
"...차라!"


#2
내 과격한 환영 인사 덕에 차라와 나, 그리고 그 시각 사무실 앞 거리를 지나던 몇 사람들 사이에는 잠시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정적을 깨고 먼저 말을 건 것은 내 쪽이었다.
"..ㅇ..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지?"
"아, 그래"
내심 이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듯한 기색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은 그는 내가 사무실 문을 열자 내가 들어가기도 전에 쏜살같이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사무실은 바깥보다 훨씬 따뜻했다.
내가 현관에 코트를 걸고 계단을 올라가자 차라는 벌써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소파에 몸을 맡기고 편안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장난에 호되게 당한 건 내 쪽이었는데 막상 편히 쉬고 있는 건 손님 쪽이라니.. 뭔가 주객이 전도된 것 같았다.

약간의 차와 과자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잠깐 추억에 잠겼다. 크리스 차라. 어릴적엔 항상 같이 다니던 둘도 없는 친구였다. 초등학교, 고등학교 때를 지나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계속 그와의 사이는 각별했다. 그러나 그가 공직자가 되고 먼 시골 마을로 발령을 간 뒤부터 차라와 내가 만날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그와의 관계도 자연스레 소원해졌다.
찻주전자에서 뿜어 나온 증기가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과거를 해메던 내 정신도 현실로 돌아왔다.
차를 내어 오며 차라가 하필 지금 날 찾아온 이유를 나름대로 곰곰히 생각해 봤지만 딱히 짚이는 건 없었다.
다과상을 내려놓자마자 차라는 재빨리 손을 뻗어 초콜릿 과자 하나를 입 안에 털어 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왠지 한 마디 해야 할 것 같아서 일부러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너 지금 되게 예의 없어 보이는 거 알아?"
"알아."
...그의 당당한 태도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꼐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