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속에선 여러 색깔의 선이 어지럽게 요동치고 있다.
지하에서 유일한 방송을 하던 로봇이 고장 나버렸기 때문이다
햇빛이 한두 가닥 겨우 들어오는 답답하고 적막한 집 안을
티비 소리는 사정없이 깨어 부수고 있다.
그 적막과 소음의 기묘한 어울림 속에
또 하나의 존재가 우두커니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시체와 같이 존재감이 거의 없는 해골 하나.
아니, 해골이면 그냥 시체인가?
그는 미동도 없이 벽 한 쪽에 기대어 앉아 있다.
눈은 감은 채로, 숨은 쉬고 있는 건가?
이런 알 수 없는 조합이 서서히 하나로 뭉쳐져 가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방안이 밝아진다.
한순간 소음과 적막에 금이 가며 그는 눈을 감았다.
그것도 잠시, 바닥에 쏟아지는 환한 빛을 가리며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불쑥 들어선다.
방안에 앉아 있던 그는 여전히 아무런 기척이 없다.
문이 닫히고 그림자는 방을 모두 대낮처럼 밝히며 말한다
형! 나처럼 티비를 보는 것도 아니면서 왜 매일 티비를 틀어놓고 그래! 나처럼 퍼즐을 만들러 가야지, 8 일째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어!
언젠가 내가 왕실 근위병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을 잡아야 한다니까!
티비의 소음과 그림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그에게는 어째서인지 그립게 다가온다.
그림자의 손길은 티비를 끄고는 그를 한번 더 흘겨보더니
성큼 성큼 방을 가로질러 걸어 나간다.
방안은 이제 절대적인 적막과 어둠에 휩싸였다.
어떻게든 밀어 올려 볼 수도 없는 적막, 밀쳐 낼 수도 없는 어둠에
그는 다시 어두워진 방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서야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한다, 방금은 현실이 아니다.
온몸의 힘을 쥐어짜는 듯이 느리고 힘겨운 동작으로
티비를 향해 기어간다.
그는 손을 뻗어 티비의 전원을 켠다.
다시 시끄러운 향연이 방안을 가득 메운다.
그는 지친 듯이 다시 벽으로 쓰러지듯 기대앉는다.
이제 지하에서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이는
시끄럽지만, 그래도 티비 뿐이다.
차라가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