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흔들거리는 기분이다. 즐거운 척 하는데 즐겁지 않다. 아니 사실 즐거울까. 그냥 보통일까.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불안을 웃음으로 덮어누른다. 웃음은 좋다. 웃으면 행복해보이는 것 같다. 가끔 중독자처럼 웃긴 글을 탐닉하고 있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뭐하러 이런 비생산적인 짓을 하고 있는걸까 현타가 찾아오지만 그런 비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뚜껑을 덮지 않으면 우울해질지도 모른다. 세상은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살아야 할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사실 살아야 할 의미 같은 건 없어도 되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생각만 할 수 있을 때 혼자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내린 결론은, 그냥 바로 앞만 보고 살아가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1년 후, 10년 후, 혹은 죽은 후를 생각해봐도 나는 그저 태어났을 뿐인 잉여적 존재이고 대체가능한 존재였다. 부모님에게는, 부모님은 내가 사라진다면 좀 타격을 입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동생이라는 스페어가 있으니 아주 좌절하지는 않을것이다. 여러명 낳는 이유가 그것 아닌가. 하나가 죽어도 하나가 살아남아 대를 잇는 것. 나야 어차피 대를 이을 생각은 없으니 이왕이면 세명쯤 낳았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어쨌든 삶은 생각하기에 매우 안좋은 환경이다. 


생각하기에 존재한다. 존재란 과연 무엇인가? 생각은 무엇인가? 과연 생각한다고 존재할 수 있는가? 내가 과연 누군가의 프로그래밍에 의해 내가 생각하므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착각하는 일개 칩은 아닌가? 미친 뇌에 의해 자극을 당하는 통 속의 가련한 S 과학자는 아닐까? S인데 조교를 당해서 통탄스러운 과학자가 아닐까?

뭔생각이지.


주변인들은 죽음타령을 하는 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요새 좀 듣다보니... 물 마시려고 따랐는데 부유물이 가득하다. 대충 헹군 통의 문제일까 정수기의 문제일까. 여튼 마시진 않겠는데 냉동실 얼음도 이 통에 담았던 물을 부어서 만들었다... 약간의 세균은 무균상태보다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준다고 한다. 마치 천적을 한마리 넣은 어선의 수조처럼. 바로 눈앞의 죽음을 피해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헤엄쳐서 부두까지 팔팔하게 살아남아 칼로 회쳐져 죽는 것이다. 물고기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다른 종족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혼자서 생각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나는 내 좁은 지식의 테두리 속에서밖에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1억년... 1억년 정도의 시간이라도 있다면 혼자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진리에 다가갈 수 있을까. 그렇게 도달한 진리가 버츄얼게임 속의 프로그래머가 집어넣어 놓은 만들어진 진리였다면?


물컵을 다시보니 먼지는 한톨이고 나머지는 공기방울 같다. 하지만 찝찝하니 마시지는 말아야지. 그보다 의자에서 떨어지는 수수께끼의 검은 가루가 문제다. 조용히 집주인과 관련없이 살고싶은데 이 집은 나의 인간관계를 걱정하는지 조금씩 하자를 내보이며 나와 집주인이 연락하길 은근히 어필한다.

플라스틱이 마모되면서 나오는 가루같은데 귀찮으니 그냥 청소하며 살까... 싶기도 한데 방금 청소한 바닥에 금방 검고 작은 덩어리가 흩어져있는 장면은 매우 불쾌하니 조만간 연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