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본 적 없지만, 분명하고 두려운 고통이 나를 가득 채웠다. 직접 겪은 그는 그 고통에 질식할 지경일 것이다.
프리스크. 프리스크가 없다면? 앞으로 찍히는 사진에 네가 없다면? 우리의 여행 계획에 네가 없다면? 머리를 쓰다듬으면 가만히 고개를 들고 웃는 네가 없다면.......
침묵이 우리를 갉아먹은 듯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 20살 생일에.\"
그의 목소리는 저 고통에서 애써 기어나오려는 듯했다.
\"처음으로 그러더군. 결혼하자고.\"
\"...... 사귄 거는?\"
\"15살부터.\"
15살, 20살의 프리스크라.
\"난 안 됀다고 했어. 너한테 맞는 \'사람\'을 찾아가라고 했지.\"
\"물론 안 들었겠지. 우리 꼬맹이는 고집이 세잖아.\"
\"그렇지.\"
그는 기억을 되새기며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 다음 해 생일에는 미래 계획을 세워 왔어. 어떤 공부를 해서 언제 학교를 마치고 뭘 하겠다 그런 거. 꽤 구체적이었지.\"
\"치밀하네.\"
열심히 설명하는 꼬맹이를 상상하고는 웃었다.
\"정말 그대로 하더라. 예전에 그런 것처럼 잘 지켜봐 달라고 하면서.\"
\"헤, 역시.\"
프리스크. 그 세계의 너는 잘 자랐구나. 난 언제쯤 그렇게 성장한 너를 보게 될까.
\"아주머니는 많이 기뻐하셨어. 울기도 많이 우셨지. 속 썩여서가 아니라, 그 애가 자라서도 우리를 많이 사랑해줘서.\"
\"좋았겠네.\"
짧은 말이지만 진심이었다. 우리의 희망이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렇게 지내다가...... 작년 초에 또 결혼하자고 그러더군. 너무 웃긴 게, 그때 나 핫도그 먹고 있었거든. 케첩 닦다가 그런 말 듣는다고 생각해 봐.\"
우리는 잠시 소리 내어 웃었다.
\"엉뚱하네.\"
\"거기에 넘어갔지. 그러고 몇 달 있다가 결혼식도 했어.\"
\"언제?\"
\"5월에.\"
\"좋을 때 했네.\"
따뜻한 지상의 5월에 결혼식을 올렸다고 했다. 바깥에 식탁과 의자를 놓아 자리를 만들고, 음식은 언다인이랑 파피루스가 준비하고, 축가는 메타톤이 부르고, 주례는 폐하께서 서 주셨다고 한다. 아주머니의 축사로 결혼식은 눈물바다가 되었다는 말도 덧붙여졌다.
\"사진도 찍었어?\"
\"응, 둘이 턱시도랑 드레스 번갈아 가면서 입었어.\"
\"세상에.\"
\"꼬맹이가 기억에 확실히 남게 찍자고 해서.\"
프리스크, 여기서도 느끼는 거지만 넌 거기에서도 재밌는 아이구나.
\"설마 파피루스가 스파게티 만들었어?\"
\"응, 근데 진짜 신기한 게...... 먹을만 했어.\"
우리는 크게 웃었다.
그는 결혼식 이후 최초의 인간-괴물 부부로 뉴스에 나온 일, 그 뒤 찾아온 괴물차별주의 단체 사람들을 언다인이 날려버린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멋있게 잘 지냈네.\"
그는 이제 조금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네 얘기도 해줘야지.\"
\"나? 난 뭐...... 너에 비하면 별거 없어. 저 밖에서 티비 보는 꼬맹이가 결계를 깬지 1년밖에 안 됐거든.\"
\"너도 좋아하지 않아?\"
\"좋지.\"
그런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쟨 아직 몰라. 말 안 했거든.\"
\"헤, 그렇구나.\"
\"난 고백도 못 했는데 어디서 튀어나온 누구가 꼬맹이의 키스를 빼앗아갔지 뭐야.\"
\"그건...... 미안. 진심으로.\"
밖에서 메타톤 쇼의 음악이 작게 들려왔다.
\"...... 가끔은 나도 막 드러내고 싶어.\"
\"드러내. 티를 내라고.\"
\"지금도 내는데 꼬맹이만 모르는 거야. 아, 파피루스도.\"
우리는 또 웃었고,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 많이들 힘들겠지.\"
그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아까처럼 고통에 잠긴 얼굴을 했다.
\"빈자리라는 걸...... 난 아직 경험해 본 적이 없어. 그래서 이런 말을 해도 네겐 잘 들리지 않을 거야.\"
\".......\"
\"그래, 되돌리고 싶겠지. 비디오 테이프를 뒤로 감듯이, 즐겁고 행복했던 그 부분을 또 보고 싶을 거야. 그 마음은...... 감히 말하지만 알 거 같아.
하지만.......\"
그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나는 아직 못 본 부분이 너무 많아. 꼬맹이와 앞으로 함께할 날들이 미지에 싸여 있다고. 파피루스가 먹을 만한 요리를 해낼지, 언다인과 알피스가 계속 닭살 커플일지,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그리고 난 아직 꼬맹이한테 고백도 못 했어. 우리가 잘 될지 아닐지도 아직 알 수가 없어. 꼬맹이가 성장하는 모습, 그 애의 수많은 모습을 더 알고 싶어. 그리고 이건 진짜 웃긴 소리지만 나도 얼마나 걔한테 키스하고 싶은지 알아?\"
내가 이렇게 누구에게 길게, 간절하게 호소하며 말한 적이 있었나.
\"부탁이야. 제발.......
테이프를 뜯어가 버리면 볼 수가 없잖아.\"
우리는, 나는 아직도,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프리스크가 필요해.\"
그의 눈에는 아까처럼 눈물이 흘러 넘쳤다.
방을 나서자 프리스크가 문에서 황급히 물러났다. 귀를 대고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많이 기다렸지? 이제 집에 간대.\"
그는 프리스크를 보며 기쁘게, 하지만 슬프게도 웃었다.
\"샌즈.\"
프리스크는 내가 아닌 그에게 다가갔다.
\"응?\"
\"다음에 또 놀러와.\"
그 말을 들은 그는 프리스크를 껴안았다. 오래도록 그 느낌을 기억하려는 듯 꼬옥 껴안았다.
\"잘 있어, 꼬맹이.\"
그의 몸은 서서히 흐려지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그나저나 파피루스는 어디로 샌 거야?\"
\"그러게. 언다인네 집에 갔을까?\"
\"가볼까?\"
\"응.\"
\"아, 아주머니. 꼬맹이가 놀다가 잠들어 버려서...... 깨웠는데도 안 일어나네요. 네. 네, 오늘은 저희 집에서 재울게요.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완전히 곯아떨어진 파피루스와 프리스크를 바라보았다.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자는 모습이 꼭 아이 같았다. 아, 한쪽은 진짜 아이지.
파피루스는 옮기기 힘드니 소파에 눕히고, 프리스크는 방으로 옮겼다. 오늘도 어김없이 자는 꼬맹이의 옆에 누웠다. 가장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이다.
\".......\"
갑자기 프리스크가 눈을 떴다. 내가 너무 바짝 붙어 있었던 것이 마음에 걸려 일어나려 했다.
\"샌즈.\"
프리스크가 잠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응, 꼬맹아.\"
\"나 아까...... 잘 한 거야?\"
아이의 두 눈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프리스크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잘 했어.\"
프리스크는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입가에는 작게 웃음이 내려앉았다.
\"잘 자, 프리스크.\"
P.S.
- 이렇게 설득당할 거면서 여기까지 올 생각은 어떻게 한 거야?
- 헤, 미안해.
그는 이제 괜찮아 보였다.
- 사실...... 목소리가 들렸어.
- 무슨 목소리?
- 원한다면 가져야 한다고...... 빼앗아서라도 얻으라는 소리가 자꾸 들렸어. 그리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였어.
- 지금은?
- 괜찮아.
제정신이 아닌 듯한 그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었다. 사실 그가 정말 작정했더라면 프리스크의 앞에 처음 나타났을 때 바로 데려갈 수도 있었을 터였다. 이성을 찾았다가 정신을 잃는 것을 반복했던 것으로 보였다. 정신이 없는 동안에는 기억도 못 했겠지.
- 이 실험은 정말 재밌어 보이는데
- 네 생각은 어때?
- 샌즈, 지금, 뭐하는 거야......?
- 아악, 아아악, 새, 샌즈.......!
...... 당신이 모두를 망치려 했잖아. 어쩔 수 없었다고.
\"......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당신 뜻대로는 안 될 겁니다.\"
눈앞에 긴 그림자가 나타나 \'웃었다\'. 나를 비웃는지 점점 더 크게 웃어댔다. 텅 빈 눈에서 검은 물줄기가 피처럼 흘러내렸다.
- 어리석기는.
그의 형체가 사라진 뒤에도 웃음 소리가 귓가를 울려댔다.
3줄요약점 - DCW
고생했다.
와 잘읽었다 고생했어 글쟁이 개추야
스토리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