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프리 리메이크 - 너는 나의 전부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인간이여, 만나서 즐거웠네. 잘 가게."


아스고어는 피투성이가 된 인간 아이의 몸에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아이의 외견은 자신의 '인간 자식'을 떠오르게 했으나 이제 단 하나뿐인 자신의 가족과도 결별하게 만든 굳센 결심은 눈 앞의 아이를 죽이는 데에 힘을 보태주었다.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인간 아이의 영혼의 정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놀랍게도 아무 색도 없었다. 아스고어는 뭔가 잘못됨을 느꼈다.


"이, 이럴수가."


인간의 영혼은 괴물의 영혼과 달리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미덕에 맞게 걸맞는 색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스고어가 방금 죽인 아이의 영혼은 괴물의 영혼처럼 아무 색도 존재하지 않았다.


"뭔가가 잘못됐어."


자신의 사랑하는 두 자식을 잃은 뒤로 최대한 자기 자신과 타협해서 내렸던 결정이 막바지에 삐걱이자 아스고어는 마음이 심란해졌다.


"근위병!"

"넷!"


그의 부름에 로얄 가드의 일원이 재빠르게 등장했다. 아스고어는 작게 경련하고 있는 인간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인간을 가스터 박사에게 보내 인간의 영혼에 문제가 있다고 알리거라. 가능하다면 그 해결법도."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근위병은 그렇게 아이를 잘 포장하여 가스터 박사에게 자초지종이 적힌 편지와 함께 보냈다.


"......!"


택배의 내용물에 소리없이 놀란 가스터 박사는 첨부된 쪽지를 읽다가 상자 안의 내용물이 움찔거리는 것을 느끼자 어깨를 한 번 들썩였다.


"오호, 아직 살아있었나? 아니... 살아있다고 하기도 뭐한 상태군. 흠, 하지만...."


문득 가스터는 최근 자신이 몰두하고 있는 시공간 연구의 결과물 중 하나인 붉은 물질이 떠올랐다. 운명에 저항하며 과거를 고쳐쓰며 미래를 바로잡는 위대한 힘. 가스터는 이것을 의지라 칭했다. 이 의지란 놈은 그렇게나 위대하고도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반대로 그 힘 때문에 연약한 괴물의 육체에 달라붙고, 좀먹는 극독이기도 했다. 때문에 괴물인 가스터 자신도 섣불리 손을 댈 수 없었는데 마침 딱 좋은 실험체가 생긴 것이었다.


'내 이론상으로는 인간의 강인한 육체라면 의지의 힘을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거야. 괴물의 육체를 뒤섞어버리는 그 특유의 접착력이라면 영혼을 물들이는 것 쯤이야 쉽겠지.'


결정을 마친 가스터는 조심스런 몸짓으로 의지를 인간의 영혼에 주입했다. 행여나 자신의 몸에 닿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 가스터는 무사히 깔끔하게 인간의 영혼에 의지를 주입시킬 수 있었다. 가스터는 곧 일어날 반응에 기대하며 인간의 동태를 살폈으나 시간이 지나도 특별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의지가 이미 다 박살나버린 영혼의 형태를 유지하는 데에 힘을 다 쏟아붓고 있군. 더 이상 남은 의지도 없는데...."


물론 의지가 남아있다고 해도 더 주입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괴물이라면 이미 치사량을 한참은 넘었을 양인데 표본도 적은 상태에서 혹시 모를 불상사를 일으킬 수는 없었다.


'우선 영혼은 살려뒀으니 이제 육체를 낫게 할 차례네.'


영혼이 괜찮아지면 육체 역시 자연스레 낫는 것은 육체가 마법으로 구성된 괴물 한정이었다. 인간의 몸은 강인한 대신, 그런 편리함과는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가스터는 팔자에도 없는 인간의 의학적 지식을 익혀야 했다.


"하하, 꼴이 말이 아니로군. 어서 눈을 떴으면 좋겠구나. 너에겐 해보고 싶은 일이 아주 많거든."


대여섯개의 링거액이 주렁주렁 매달려있고 그 액을 주사하기 위해 몸 이곳저곳에 꽂힌 주사바늘은 인간 아이를 더욱 더 처참해보이게 만들었다. 물론 보이는 것과는 반대로 처음 택배에 쳐넣어져 배달왔을 때보다는 육체와 영혼 양쪽 모두 놀랍도록 호전된 상태다. 그에 대한 증거로 인간 아이가 눈을 떴기 때문이다.


"오오, 드디어 눈을 떴구나."

"......!!"


잔뜩 움츠러든 인간 아이의 행동에 가스터는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그 위대한 '의지'를 주입받은 영혼치고는 지나치게 위축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의지가 토대가 되고 있긴 하지만 의지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그냥 붉은색의 껍데기 영혼. 지금 그게 인간 아이의 상태였다.


'일단 의지부터 채워야겠어.'


이제와서 다시 의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미친 짓이지만, 무사히 의지가 주입된 영혼은 말 그대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그 힘을 채울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인간이 의지를 잘 채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했다. 그리고 문제는,


'근데 어떻게 해야 하지?'


가스터는 그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일단 자기소개부터 할까. 나는 W.D. 가스터. 이 지하세계의 왕실 과학자이다만, 최근 의사로 불려도 손색이 없게 됐지. 다 죽어가던 너를 살린 게 바로 나거든. 편하게 가스터 박사라고 부르게나."

"......."

"이런, 내 소개를 들었으면 응당 자네의 소개를 해야지. 아니면 뭐... 자기소개 예절은 인간에게 없나?"

"...프리스크."


드디어 말문을 열게 만들자 가스터는 묘한 성취감에 인간 아이, 프리스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프리스크(Frisk)라, 좋은 이름이구나. 과연 아무런 힘도 없이 지하세계를 들쑤시고 다닐 법한 이름이군."

"...헤헤."


칭찬으로 생각한 것일까. 프리스크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스터는 미약하나마 인간의 의지가 차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오호, 의지가 차올랐어. 무슨 작용이지? 자기소개? 머리 쓰다듬기? 미소?'


몇 번의 의구심 끝에 가스터는 프리스크에게 사랑과 정을 줄수록 영혼이 가진 의지가 차오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스터는 일의 진척을 위해 프리스크의 비위를 최대한 맞춰주기로 했다. 바야흐로 가스터의 육아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자신의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의 프리스크는 가스터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말 그대로 새하얀 백지였다. 


"긴 전쟁 끝에, 인간들이 승리했다. 인간들은 마법의 주문으로 괴물들을 지하에...."

"쿠-울...."


짧은 동화의 이야기가 끝을 맺을 무렵 들려오는 일정 규칙의 숨소리에 가스터는 읽던 책을 덮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프리스크를 바라보았다.


"괴물 아이보다는 손이 덜 간다고 생각했더니... 그것도 아니군."


원래라면 한창 연구를 해야 할 시간. 과학자에게 있어서 금쪽같은 시간에 가스터는 연구 대신 보모노릇을 한다. 인간 아이에게 주는 애정이 곧 의지가 되어 차오르기 때문이었다. 가스터는 좀처럼 차오르지 않는 의지를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미치겠군. 애초에 누군가와 대면하는 일이 적다보니 속마음을 감추는게 여간 쉽지가 않아.'


마음같아서는 당장 육체를 찢어발기고 의지를 뽑아내고 싶었지만 가스터는 한 번 참았다. 가득 차오르지 않은 의지는 결계를 열 수도 없었고 '그 연구'에 도움도 안 된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버터스카치와 시나몬 중 뭐가 더 좋니?"

"으응...."


괴물들 사이에서는 파이를 만들기 전 반드시 물어봐야 하는 질문이었다. 두 개를 두고 한참을 고민하는 프리스크의 태도에 가스터는 신경이 거슬렸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아무리 냉철하고 몰개성한 성격의 가스터라지만 완연한 의지를 가진 인간의 영혼을 얻기 위해 전혀 성격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의 상황이 전부 눈 앞의 인간 아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었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둘 다 좋아!"


방긋 웃으며 말하는 프리스크의 웃는 얼굴을 보자 돌연 그의 마음 한 켠에 의문의 감정이 살짝 지펴졌다가 사라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에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린 가스터는 '버터스카치-시나몬 파이'를 만들어 프리스크에게 주었다. 맛있게 먹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또 한 번 같은 이물감이 느껴졌다가, 사라졌다.


'언제 한 번 감정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봐야겠군.'


***


근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가스터는 프리스크를 친자식처럼 대해주었다. 결단의 때는 의외로 자의가 아닌 타의로 찾아왔다. 가스터가 프리스크를 양육하며 작성했던 연구노트를 프리스크에게 들킨 것이다. 노트에는 프리스크를 양육하는 이유, 목적 달성 이후에 할 일 등이 당연히 적혀있었으며 프리스크가 그걸 읽었다는 것을 알아챈 가스터는 프리스크를 구속해두었다.


"어... 어째서...."

"어째서냐고 묻는 건 너를 묶은 이유를 묻는 건가? 아니면 노트에 대한 걸 묻는 건가? 뭐, 어느 쪽이든 대답해주지 않아도 그 이유를 충분히 알겠지만 말이야."


구속된 프리스크의 뒤에 있는 의지 추출기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의지가 가득한 영혼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프리스크의 몸이 서서히 붕괴해간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가스터는 전에 느꼈던 생소한 감정이 다시 피어오름을 느꼈다. 아무 말 없이 죽어가는 프리스크를 바라보며 가스터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걸로 된 거야.'

"나는...."


프리스크의 입이 열리자 속으로만 맹렬히 휘몰아치던 감정이 순간 차분해졌다. 가스터는 프리스크가 다음 말을 이어하길 기다렸다.


"나는, 가스터에게... 대체 무엇이었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영혼이 완전히 뽑혀 숨을 거둔 프리스크의 눈가에는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그 눈물이 육체적 고통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런 면에 둔감한 가스터도 느낄 수 있었다.


'맙소사....'


의지 추출기의 인터페이스에 표시된 '추출 완료'라는 문구를 보며 가스터는 통렬한 고통을 느꼈다. 이따금씩 느껴졌던 정체가 불분명한 그 따뜻한 느낌의 감정이 지금은 하나의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가스터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


'애정이었단 말인가.'


가스터는 무아지경의 상태로 의지 추출기를 열어 괴물에겐 극독이나 다름없는 붉은 의지를 두 손으로 감싸 자신의 가슴에 넣었다. 비통함으로 바뀐 사랑이었던 감정은 가슴과 함께 그 위로 포갠 두 손에 구멍을 만들었고 마침내 흐르는 가스터의 눈물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겠다는 듯 그의 얼굴에 검은 자국으로 남았다.


'아아... ♋♒♒♒'


비통함이 낸 가스터의 영혼의 구멍에 의지가 대신 채워지고, 운명에 저항하는 의지의 힘에 가스터가 연구해왔던 시공간이동의 묘리가 접목되며 그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

.

.

.

.

-당신은 워터폴을 여행하는 도중 쥐구멍과 치즈 조각을 보고 다시 한 번 웃고 넘어가다가 본 적 없는 이상한 회색 문을 발견했다.


"......?"


-당신은 회색 문을 열어 방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그러자 그 곳에는 기괴한 형상의 괴물이 하나 있었다. 눈 아래로 검은 선이 죽 그어져있고 양손에 구멍이 나 있는 괴물이었다. 당신은 의지를 갖고 괴물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저기...."


-당신은 말을 걸었으나 괴물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당신의 눈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 ⬥♏❒♏ ❍⍓ ♏❖♏❒⍓⧫♒♓■♑



***



아무도 올 수 없는 회색 방에서 가스터는 멍하니 있었다. 그가 지금 있는 곳은 원래 그의 차원과는 다른 시공간이며 이곳에서의 자신은 코어를 만든 뒤 이상한 실험에 의해 실종된 상태였다. 그 이후의 실험은 전부 자신이 아닌 알피스라는 새로운 왕실 과학자의 업적이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안심하는 이유는 이 시공간에는 자신이 사랑했던 아이, 프리스크가 '의지를 가득 가진 채로' 지하세계를 여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의지만 충분하다면 자신이 아닌 이상 프리스크를 어쩔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덜컥-


그 순간 아무도 올 수 없어야 하는 방의 문이 열렸다. 가스터는 소스라치게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프리스크였다. 당장이라도 하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가스터는 자신이 이 시공간의 존재에게 간섭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숙지하고 그가 말을 걸기 전에 다른 공간으로 도약했다. 이미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프리스크의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가스터는 그가 입을 열었을 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가스터에게 대체 무엇이었어?"


이제는 그 말에 대답해 줄 수 있다.


"너는 나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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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원작 링크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undertale&no=800395


진짜 쓰면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는데 그걸 여기다가 풀어서 썼다간 게시글이 존나게 난잡해질 것이 눈에 훤히 보이기 때문에 말을 아끼도록 할게. 아 이걸 쓰면서 하나 깨달은게 있는데 그건 바로 진짜배기는 나무로 못 바꾼다는 사실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