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언제까지 잠만 잘 거야!"
멀리서 들려오는 동생의 목소리에 다시 하루가 시작되었다. 샌즈는 눈을 감은 채 머리까지 덮고 있던 이불을 살짝 내려보았다. 아침 공기가 꽤나 차갑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 그렇게 중얼거린 뒤 그 해골은 그대로 이불 속에 다시 한 번 파고들었다.
"형은 맨날 게으름만 피운다니까!"
파피루스의 목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지자 샌즈는 잠꼬대하듯 중얼거렸다. 으음, 오 분만 더. 물론 이불을 확 걷어내고 등을 매섭게 내리치는 파피루스의 손에 곧 눈을 떠야 했지만. 좀 곱게 깨우면 안 되냐고 투덜거리던 샌즈의 눈에 양말과 이불로 범벅이 된 침대가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난장판이었다. 낯익은 풍경 사이 그의 동생이 한 손에 요리용 장갑을 낀 채 서 있었다. 파피루스가 환히 웃었다.
"녜헥, 일어나서 방 좀 치워! 그럼 아침으로 스파게티 만들어 줄게!"
당연히 난 오트밀을 먹을 거지만! 파피루스는 거들먹거리듯 턱을 치켜세웠다. 파피루스의 이런 표정이 왜 이렇게 간만인 것처럼 느껴질까. 샌즈는 언제나처럼 뼈 농담을 던지려 했지만, 마땅한 농담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파피루스 또한 샌즈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걱정스레 자신을 바라보는 동생의 눈길에 샌즈는 애써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생각을 밀어넣었다. 뭐, 잠이 덜 깨서 그런 거겠지.
"헤, 입맛 없는데. 간밤에 인간은 안 왔지?"
샌즈가 인간이라는 단어를 꺼낸 순간 집이 살짝 흔들렸다. 지진인가? 아니면 인간이 일으킨 이변인가? 그는 어깨를 조금 긴장시켰지만 파피루스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모양인지 잔뜩 들뜬 채 밤에 잠이 오질 않아 퍼즐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왔다는 둥, 스노우딘 날씨는 오늘도 춥다는 둥의 이야기를 조잘거렸다. 인간이 오면 뭐라고 인사해야 할까를 묻는 동생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샌즈는 이 기묘한 위화감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정말 이상한 아침이었다.
파피루스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정말? 그럼 지금 가자!"
"……어?"
"지금 퍼즐 고치러 가자고 했잖아, 형!"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샌즈는 파피루스에게 팔목을 잡혔다. 난처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늘 그랬듯 샌즈는 미소지었다. 아, 진짜 귀찮은데.
파피루스에게 질질 끌리다시피 하며 1층으로 내려온 샌즈가 집을 휘 둘러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마음을 짓누르는 이질감 때문이었다. 이상하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양자물리학 책에 소파, 탁자 위의 애완돌까지. 스믈거리며 치미는 불안을 꾹 누르듯 샌즈가 말했다.
"팝, 팝.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야."
샌즈가 장난스레 투덜거리는 것을 못 들은 것인지 못 들은 척 하는 것인지, 파피루스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채 턱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샌즈 형, 문 열어."
진짜 저걸 한 대 확 쥐어박을 수도 없고. 샌즈는 파피루스에게 잡히지 않은 쪽 손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마법을 살짝 사용했다. 이 정도 가벼운 마법이야, 크게 부담될 것도 없으니까. 파피루스는 문 여는 것도 귀찮아서 그러냐며 발을 구르면서 화를 냈지만 샌즈는 헤헤, 웃어버리기만 했다.
문이 열렸다. 스노우딘의 서늘한 아침 바람이 휙, 불어드는 감각에 갑작스레 감정이 꿈틀거렸다. 샌즈는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언제나처럼 평화롭기만 한 마을 풍경 속으로 그들은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샌즈! 오랜만이네."
"헤, 얼마 전에도 본 것 같은데."
그릴비 단골인 토끼 괴물이 샌즈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어왔다. 저 토끼는 볼 때마다 술에 절어있지 않는 꼴을 못 봤는데, 오늘은 드물게 멀쩡한 모습이었다. 술에 취했을 때는 분명 그를 샌지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샌즈, 아침부터 어디 가?"
"파피! 좋은 아침!"
형제를 스치고 지나가는 괴물들마다 그들을 향해 한 마디씩 인사를 던지고 지나갔다. 가끔 악의 없이 마법 알갱이를 던지는 괴물도 있었다. 다른 괴물이라면 장난이겠지만 그에게는 달랐다. 저런 마법에 맞아서 죽는다면 얼마나 웃길까. 샌즈는 자신의 비뚤어진 생각을 감춘 채 환히 웃으며 그 괴물에게도 뼈다귀를 가볍게 던져주었다.
"……?"
그 순간 샌즈는 다시 한 번 발 아래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이번엔 착각이 아닌 분명한 진동이었다. 급히 고개를 돌려 파피루스를 확인한 샌즈는 동생의 얼굴에 아무 변화가 없다는 사실에 움찔 놀랐다. 그의 동생 뿐 아니라 다른 괴물들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거리를 평화롭게 걸어가고 있었다. 단지 샌즈가 방금 뼈다귀 마법을 인사차 던져 준 그 괴물만이 그사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을 뿐. 샌즈는 자리에 멈춰선 채 괴물이 사라진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함께 멈춰선 파피루스가 물었다.
"형? 왜 그래? 아까부터 이상한데."
"……아, 그냥 좀 어지러워서 그런가 봐."
"세상에! 아침을 안 먹어서 그런 게 분명해! 당장 집에 가자!"
옆에서 파피루스가 야단법석인 사이 샌즈는 생각에 깊이 잠겨들었다. 다들 왜 이렇게 멀쩡한 거지. 그 괴물은 어디로 간 거지. 파피루스의 손에 덥석 잡혀 끌려가는 도중에도 그의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이 지진은, 설마. 날카로운 두통이 정으로 머리에 새겨지는 듯했다.
"팝."
"응?"
"나 먼저 갈게."
파피루스의 손을 뿌리치듯 놓으며, 샌즈는 그 자리에서 공간을 이동했다. 사라지는 공간 너머 보이는 파피루스의 당황한 표정이 낯익었다.
샌즈는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갑자기 큰 마법을 써서인지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인간과 리셋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지끈거리듯 아파와 그 자리에 더는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길거리에서 주저앉거나 하면 파피루스가 걱정하겠지. 샌즈는 이를 악물었지만 식은땀이 이마에 배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곧 바깥이 조금 소란스럽더니 파피루스가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자기를 혼자 버리고 먼저 들어왔다고 잔뜩 화가 나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샌즈의 이마를 한 번 짚어보던 파피루스가 조용하게 말했다.
"형, 정말 괜찮은 거야? 몸이 안 좋아 보이는데. 누워 있어."
"팝, 스파게티라면 괜찮아."
"녴! 아플 땐 잘 먹어야 하는 거야!"
말릴 틈도 없이 파피루스는 부엌으로 달려들어갔다. 스파게티가 나오면, 도망가야겠다. 샌즈는 피식 웃어보이고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평화롭다.'
오늘 보았던 이 평화로운 풍경을 절대 인간이 망치게 할 수는 없다. 샌즈는 다시 한 번 그렇게 다짐하며 부엌을 바라보았다. 형이 아프다고 요리를 해주겠다는 저 착해빠진 동생을 인간에게 잃을 수는 없다. 무슨 방법을 사용해서든 인간을 막아야 한다.
무슨 방ㅂ
샌즈는 생각을 돌렸다. 그 사이 파피루스가 만든 스파게티 특유의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떤 핑계를 대며 도망갈까 궁리하던 샌즈는, 생각해보면 파피루스의 스파게티를 먹는 것도 참 오랜만이니 한 번쯤 먹어줄까 하는 생각에까지 도달했다.
오랜만……?
'그러고 보니 어제는 뭘 먹었더라.'
어제.
그 순간 샌즈는 어깨를 굳혔다. 그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파피루스가 쟁반에 스파게티가 담긴 접시를 들고 들어와 소파 앞에 섰다. 샌즈는 파피루스를 올려다보았다.
"팝."
"응."
"……."
'……."
그들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샌즈는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가볍게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파피루스가 탁자를 끌어와 그 위에 스파게티를 놓았다. 샌즈는 조용히 파피루스의 스파게티를 먹었다. 남김없이.
짧지 않은 침묵 끝에 샌즈가 입을 열었다.
"팝, 맛없어."
"……."
"말해주고 싶었는데."
"응."
샌즈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이거, 꿈이지?"
파피루스가 샌즈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얼굴에 천천히 퍼져가는 환한 미소. 빛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커다랗게 웃는 표정으로, 파피루스는 대답했다.
"응."
거울이 깨지듯, 파피루스가 깨졌다. 깨진 얼굴의 틈 사이로 파피루스의 웃음이 번졌다.
"꿈이야."
샌즈는 팔을 뻐ㅡ
ㅡㄷ었다. 눈은 감은 채였다. 손끝에 만져지는 것은 폐허 바닥의 차갑고 까슬한 감촉이었다. 그리고 약간의 먼지. 진짜 먼지일지, 괴물의 먼지일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 누워 있으면 다시 잠들 수 있을까. 다시 그 언제나처럼 평화로운 날들을 즐길 수 있을까.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는 그를 책망이라도 하듯, 귓가에서 파피루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언제까지 잠만 잘 거야!"
응, 오 분만 더.
혼자 남겨진 파피루스가 속삭거렸다.
문학배달로 쓴 글이라 닉언
ㅗㅜㅑ... ㅁㅊㄷㅁㅊㅇ
퍄퍄 - 자극히 정상적인 파피애낌이
담담한 문체 뒤에 반전이 뼛속에 스미네;;
ㅗㅜㅑ.... - 뼈는 박아야제!
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