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로 떨어져서 손과 발을 시렵게 만드는 퇴근길은 너무 추웠다. 집에 가기도 전에 심장이 얼어 죽이 않을까 쓸대없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이미 집앞까지 온 상태라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왔는지 내 자신이 정말 신기했다. 세상 살이를 비판하는 한 숨 대신 입바람을 불어 손을 녹여 집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왔어?"
붉은 눈동자를 한 아이가 뭐 사온 건 없냐는 표정으로 맞이 해준다. 차라. 감금하려고 납치했다가 어느샌가 남들 집에 한 명 씩 있는 여동생이 된 것처럼 우리집에 늘어살고 있는 여자아이였다.
"우우 씨벌…. 밖에 존나 춥다…."
"추워 보이긴 한다. 얼어 디질 거 같은 표정 짓고 있네?"
차라는 납치 당하고 같이 산지 대략 3개월 정도 됐기에 지금 생활에 완전 적응했다. 오히려 차라는 갈 곳도 없기에 여기에 완전 지내고 싶어하는 기분이였다. 납치할 때는 몰랐었지만 나는 지금 얘때문에 식비가 더 들어가 쫓아내고 싶었다.
"근데 집 왜이렇게 따뜻하…. 야 집에 혼자 있을 때는 보일러 키지 말랬잖아!"
"아 씨 틀어도 괜찮잔아! 어차피 내집 아닌데."
"미친년이 프라이팬으로 대가리 처맞고 싶나. 밥은?"
"해놨어 빨리 쳐먹어."
서로 입이 험해서 대화하는 게 마치 남이 보면 싸우는 것 같지만 이런 말투로 서로 대화해도 심각할 정도로 싸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이게 더 친근한 것 같고 더 좋았다.
옷을 갈아입고 식탁앞에 앉아보니 칼질 잘되어 나름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생선 두마리와 반찬으로 초록채소들. 그리고 밥이 끝이였다. 차라가 어디서 배워왔는지는 몰라도 칼질은 정말 잘했다. 그래서인지 내집이지만 요리는 차라가 전부 다 했다.
-으물 으물
생선이 정말 잘 구워진 건 씹어만 봐도 알 수 있다. 생선 육즙과 식감이 푸딩 같고 냄새마저 진했다. 반찬 몇개 남긴뒤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치고 거실로 가보니 차라는 쇼파에 누워 티비보고 있었다. 리모콘을 뺏아 다른 채널로 바꿨다.
"아 씨발 보고 있는데 왜 바꿔."
"꺼져 좀. 집에 있을 동안 볼만큼 쳐 봤으면서."
하면서 티비를 보고 있자 빡친 차라도 티비를 보았다. 얼마 전 까지는 죽일 것 거처럼 화내더니 같이 티비 보고 있더니 웃긴지 실실 쪼개고 있었다.
보고싶은 티비프로가 끝나자 티비를 껐다. 시계를 보니 12시 6분이였다. 씻고 자고 싶었지만 양치만 하고 자려던 참에 차라가 입을 열었다.
"뭐 먹을 거 안 사왔어?"
"뭐."
"초콜릿."
"안 사왔는데."
"아 왜 안 사와."
차라가 초콜릿을 안 사왔다고 하니 성질 부리면서 대답했다. 미친년이 재워주고 먹여줬더니 초콜릿까지 사줘야하나 해서 성질머리 핫랜드 되는 기분이다.
"야이 개년아 내가 먹여주고 재워주면 오냐오냐 할 것이지 아주 지가 왕녀인줄 아네?"
"또라이야 납치한 건 니인데 그럼 좀 잘 키워줘야할 거 아니야. 내가 지금 봐주고 있었는데 감금죄로 경찰에 신고해버린다?"
생각해보니 납치한 건 내쪽이라서 잘못또한 나한테 있었다. 잘못한 건 나지만…. 이년한테 잘못을 씌우고 싶다.
"이 미친…."
"뭐 뭐 뭐 뭐! 신고해줘? 일자리 짤릴래? 콩밥먹고 싶어?"
"…."
하 미친년 존나 싸가지가 없다. 내가 이 싸가지없는 년을 납치하면서 제일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개년의 성질머리를 안 고쳐준 거라고 생각했다. 납치 당하기 전 이년 대인관계가 어땠는지 상상간다.
"미친년아 지금 선택해. 여기서 너 먹여주고 재워주고 티비보게 해주고 초콜릿 사주게 해줄 수 있는 건 전부나야. 그게 전부 꼬우면 지금 당장 니가 가지고 있는 거 다 챙겨서 집나가던가. 아니면 내가 정성스럽게 키워줄 때 가만히 있던가."
조금만이라도 더 빡치면 진짜 뺨 한 대 칠 정도로 화가나버렸다. 새벽이라서 소리 안 지르고 있는게 다행이였다.
차라도 내 분위기를 읽었는지 조금 얌전해졌다.
"너…. 나 쫓아내면… 진짜 너 신고해버릴 거…."
"그러고 싶으면 집 나가라고!"
"…."
차라도 조금 쫄았는지 중간 톤으로 소리 질러주니 얌전해졌다. 그렇다고 울 것 같아보이진 않고 화냈는데 억지로 참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좀 이상했다. 내가 차라 같으면 나같이 재워주고 먹여주고한 납치범이 있더라고 신고했을 것 같은데 왜 신고해보라는 말에 벙찌는 것인지 모르겠다. 여기가 좋은가 싶은 착각이 든다.
차라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미안해. 신고 안 할 테니깐. 아무 것도 안 할 테니깐…. 내쫓지만 말아줘."
방금 전 분위기와는 다르게 너무 순해졌다. 내가 미안해질 정도로. 내쫓지 말아달란 소리를 한 걸 보니 여기말고 있을 곳이 없는 건 진짜였나보다.
그런데 아직 정신 못차린 내가 병신같은 생각을 해버렸다. 그리고 그걸 입 밖으로 내버렸다.
"니가 원하는 초콜릿? 다 사주고 여기 평생 먹여살려줄 수 있어. 대신."
"… 대신?"
"내가 너 납치했을 때 한 거 기억나지?"
"…!"
"또 하자."
내가 괜히 순수한 의도로 얘가 좋아서 납치한 건 절대 아니다. 성욕이 가득찬 쓰레기 새끼였던 내가 이런 아이를 납치해서 할 행동은 하나 밖에 없었다.
차라도 기억났는지 바로 화냈다.
"야이 쓰레기새끼야! 니가 사람새끼…."
"왜. 싫으면 나가고."
완전 냄새나는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을 지은 차라를 보니 본능이 또 튀어나온다. 차라는 지금 당장이라도 때릴 기세로 주먹을 쥐고 떨고 있었다.
"한 번만 해보자. 응? 싫어?"
나도 차라를 그저 성도구 쳐다보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차라의 눈가 옆에 흐린 무언가가 보인다. 눈물같았다.
"내가 너…. 진짜 용서 안 해…."
나에게는 그저 승낙의 메세지로 들렸다. 차라의 어깨를 잡고 방으로 끌고가는 것 처럼 데려갔다.
담편에 계속
전에 썼던 쓰레기임
미친 갑자기 필력좋아짐
미친 필력의 상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