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통화버튼을 두고 누르길 주저했다.
그 놈이 이 광경을 보면 뭐라고 할까.
아니, 그 전에 토리엘의 휴대전화에서 내 목소리가 들렸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 때문에 그녀가 이런 몰골이 되었다는 것을 알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예상하는건 어렵지 않았다.
그 놈이 뭘 할지, 내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렇기에 해서는 안된다.
그런 짓을 하는 순간 생물 실격이다.
내 머리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움칫 둠칫 움칫 둠칫 움칫 둠칫 움칫 둠칫 / 땃땃땃 따~다 다다다~ 땃땃따다 땃다다~ 땃닷다다 땃땃다~다~]
상황에 안맞는 골때리는 소리가 방에 울려퍼졌다.
별에 별 벨소리가 다 있네, 하고 실없는 웃음이 입가에서 새어나왔다.
아.
샌즈.
그 녀석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건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다.
도대체 어쩌다 일이 이렇게 꼬여버린걸까.
그냥 적당한 때를 찾아서 이 집에서 나가면 모든게 깔끔하게 처리되었을텐데.
다 나 때문이야.
"헤이. 아줌마. 무슨 일이에요?"
방음처리된듯 뭉개진 목소리가 능글맞게 흘러나왔다.
이게 내 목을 가져갈 놈의 목소리라니. 하, 참.
"..도와줘."
통화기에 대고 그 한 마디를 내뱉을 때 삶의 주마등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목소리.
너, 설마."
"씨발놈아 닥치고 오라고!!"
샌즈는 대꾸없이 전화를 끊었다.
이제 죽기 전에 신에게 기도라도 해야겠..
"인간."
뭐야?
아직 전화가 안끊어졌나?
왜 샌즈놈 목소리가 내 귓전에서 들리는거지?
분명히 전화 끊었ㄴ...
맙소사.
"새 친구를 맞이할 줄도 몰라?"
말도 안 돼.
어떻게.
언제부터.
왜.
주어도 목적어도 형용사도 사라진, 그저 공포에 점철된 의문과 부정만이 내 가슴 속에 메아리쳤다.
하지만 그걸 이해한다고 현실이 달라질까?
나는 자포자기했고, 갑자기 한없이 편안해졌다.
"뒤돌아서 나와 악수해."
삶의 의지가 사라진 내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아. 차갑다.
내가 지금 뭘 잡은거지?
칼날인가?
총신인가?
그것도 아니면 마법으로 만든 총인가?
하이고, 나란 놈은 진짜.
이 상황에서 토리엘이 한 말이 떠오를 줄이야.
마지막에 하는 생각이 이 모양이라니..
그래도 당신 덕분에 웃고 가네요.
고맙습니다.
토리엘.
처음부터 끝까지 민폐만 안겨드린 쓰레기 인생이었어요..
"뭐하는거야? 일어나."
"어?!"
내가 잡은 것은 총도 칼도 아니었고,
내가 잡은 것은 그대로 곧장 내 몸을 찌르러들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것은 날 일으켜세웠다.
한참만에야, 난 그게 앙상하게 뼈만 남은 손아귀임을 알았다.
"으허 씨발 으허허엏"
나는 손에 남은 뼈의 싸늘한 감촉에 몸서리치며 다시 주저앉았다.
"거 참 손많이 가는 인간일세. 맥 좀 춰봐.
'골'다공증이라도 걸렸어?"
잠시 스탠드업 코미디에서나 쓰일 법한 저질스러운 드럼 소리가 들린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아니, 이게 대체 다 뭐야?!
뭐, 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건데?
날 죽여야하는거 아니야?
뭔 개소리를 지껄이느냐고?!
나 자신과 샌즈 둘 다에게 어이가 없어서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뒤흔들고 싶었지만, 불현듯 미처 다 타지 않고 남은 불씨가 눈 앞을 지나갔다.
내 모든 우려와 절망감에 대한 반박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도와줘..
아무 것도 묻지 말고."
"그럴거야."
샌즈는 말없이 쓰러진 토리엘의 겨드랑이 쪽에 팔을 끼우고 일어섰다.
하지만 키가 작은 그로서는 제대로 일으켜 세우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거들어."
"내가 그게 되면 널 불렀을 거 같냐?!"
나는 악을 쓰면서도 어거지로 일어섰다.
하지만 역시 지지대로 쓸 지팡이가 없이는 가만히 서있는 것도 벅찼다.
"너. 그 다리.."
"뭐 씨발롬아."
샌즈는 말을 흘리다가, 갑자기 자기 머리통을 탁 때렸다.
"왜 처음부터 이러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니까."
샌즈는 토리엘을 다시 바닥에 눕히고는, 예전에 하던 것처럼 허공에 손짓했다.
그러자 갑자기 토리엘이 누운 자세 그대로 공중에 떠올랐다.
"윽.. 생각보다 무겁네."
샌즈는 혼잣말을 주억거리면서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쪽으로 향했다.
나는 다시 한번 어이가 없어지려고 했지만, 그냥 마법이라는 단어만 되뇌이면서 머리를 비우려 애썼다.
어쩌면 주어지는 상황에 순종하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하는 깨달음과 함께.
"아니 근데, 난 안도와주냐?!
도와주는게 어색하겠지만서도!!
아, 야, 야! 안 서?
야!"
"넌 뼈에다 근육도 있잖아.
의지를 짜내보라고."
"아 저 개새끼 진짜"
혹시 내 혈압을 올려서 화병으로 뒤지게 할 심산인가? 아오!
분통이 터졌지만 녀석의 관심사는 토리엘 하나 뿐인 것 같았다.
하긴, 죽여야하고 시도도 했었던 상대를 부축해주는게 더 웃긴 일이긴 하다마는..
결국 나는 벽을 짚다 바닥을 기어가길 반복하며 샌즈와 토리엘의 뒤를 따랐다.
따라갔다고 해봤자 속도의 차이가 너무 커서, 내가 1층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토리엘이 침대에 뉘여진 뒤였다.
샌즈는 그녀가 있는 방의 문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알려줘."
"흠. 내가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다시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이 뼈다귀 새낀 대체 뭐야?
토리엘은 이 녀석을 그렇게 반겨했는데, 정작 그녀가 다 죽어가는 판국에 이 놈은 대체 무슨 태도야 이게!!
"그녀를 아끼잖아!
뭐라도 해서 치료를 해야하는 것 아니야?!"
"목소리 낮춰.
환자 앞이다."
저 씨발놈이 진짜..!
나는 앞으로 나가려는 주먹을 간신히 벽에다 때렸다.
"..그녀를 알고 지냈잖아.
날 살려준 것도 토리엘이 부탁했기 때문이고.
그런데 그녀가 저 꼴이 되어서 쓰러져있는데도, 침대에 눕혀놓으면 끝이야?
그 빌어쳐먹을 마법이든 응급처치든 해야할 것 아니야?"
샌즈는 잠시 말이 없었다.
녀석의 텅 빈 눈두덩이 잠시 토리엘의 방쪽을 향했다.
"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그리고 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알고 있어.
그러니까 화제를 좀 바꾸지.
이게 다 무슨 상황이냐는 거지."
이전에 한 번 겪어보았던 것과 같은 실체없는 싸늘한 시선이 내 눈을 향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게 쫄 것 없어.
아줌마가 저번에 나를 고스트라이더로 만든 시점에서 널 죽이려는 생각은 접었으니까."
묘하게 인간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묘사가 기류를 더 낯설게 만들었다.
도대체 이 놈은 정체가 뭘까.
"이 해골 새끼야. 내 꼴을 보고도 지금 그런 말이 나오냐?"
서있는 것이 슬슬 힘들어져서 벽에 등을 대고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사람을 장애인으로 만들어놓고 말은 잘하네.
토리엘만 아니면 당장에라도 두개골로 볼링을 해버릴 같잖은 새끼가..
"뭐. 그건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되돌릴 방법은 없어졌어.
그러니까 포기하라구."
"없어졌다니.
꼭 예전에는 있었다는 말처럼 들린다?"
샌즈는 불편한듯 말없이 짝다리 짚던 다리를 바꿔섰다.
"실례. 당황해서 말이 헛나온 것 같네."
그는 뺨이 있었을 하악골을 손가락 뼈로 슬슬 긁었다.
괴물들은 다 정신상태가 이 모양인걸까?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내가 세우고 있던 분노의 칼날이 덧없게 느껴져서 견딜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깐 날 더러 뭐?
친구?
여긴 진짜 미쳤어..
다 미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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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터 12까지. 이대로 가다간 조만간 한페이지를 다 링크만 넣게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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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잊어먹고있었어.
뭘 잊어먹고 있었다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