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언더테일은 참 고얀 게임이다. 이미 다 망한 걸 알면서도 뭐 더 없나 껄쩍껄쩍 뒤져보게 만드니 말이다.


처음 접한 것은 클로저스 갤러리의 개념글의 테미샵 BGM을 들은 것이었다. 


그 특유의 흥겨운 토비식 가락에 홀린 나는 이놈의 게임은 이름이 뭔가..? 하고 찾아보게 되었고, 


마침 댓글에 언더테일 배경음악 아니냐? 하고 답이 달려있던 것을 검색 엔진에 집어넣으니 인터넷은 나에게 요리꾸리한 8비트 RPG게임을 뱉어냈다.


그게 시작이었다.


온통 3D니 와이드 스크린이니 하는 것에 익숙해진 게임판에 이놈의 도트 게임은 마치 최신식 아파트 마을에 초가집이 하나 선 듯 괴상했지만 사뭇 초연한 기색이 감돌았다.


빌딩 숲에 당당히 서 있는 초가집 한 칸이라니. 기묘하지 않은가? 얼마나 대단한 초가집이길래 그러고 버티고 앉았는가 궁금증이 들었다.


본래 3D 그래픽보다 도트가 더 익숙하여 딱히 거부감도 없었다. 크로노 트리거니, 천지창조니. 도트로 얼기설기 사람을 묘사하고 건물을 그린 작품 중에도 명작은 많으니까.


당장 도트가 아니어도 수 세기 전 판화에도 우리는 감동을 느끼지 않는가.


수 차례의 시도 끝에 결국 토렌트 정품 에디션을 다운로드 받고(고백하건데 한글 패치는 나에게 너무 어려운 작업이었으며 덕분에 스팀으로 사놓고도 플레이하지 못했다.)


굳게 닫힌 도트 덩어리 문을 열어젖히자 초가집은 수줍은 듯 내용물을 드러냈다.


초가집 안에는 수 많은 괴물들과 꽃들과 테미들이 가득했으며, 매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슴에 남았다.


덕분에 난 아직도 토리엘과 이별하는 순간을 잊지 못한다. 처음 나는 문 앞의 선택에서 집에 남는 것을 택했다.


그녀는 우리와 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정신으로 연결 된 어머니와 같았다. 


정상적인 어머니라면 내밀 수 있는 선택지를 설득력있게 나에게 내밀었고,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리에 남게 만들었다.


토리엘을 의심할만한 것들이 집안 구석에 널브러져 있었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째서 생판 타인인 그녀를 의심하지 않느냐, 어리석다 라고 말한다면 첫째는 내 목숨이 아니기에 그렇다고 할 것이고 둘째는 우리 어머니가 생각나서 그랬다고 대답하련다.


또한 아기자기한 첫 조우에서 불신과 배신을 면전에 들이미는 게임이라면 더 할 생각도 들지 않았을 것이고.


어찌어찌 침대에 엉덩이를 부비고 마치 호기심 덩어리 새끼 고양이처럼 온 집안 방을 쑤시고 다닌 후 떠나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한 번 선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마침내 떠나는 길을 택하였고, 그녀는 자신을 쓰러트리라며 모진 불덩이 탄막을 흩뿌렸다.


아직 공격하는 법도 몰랐고 자비 버튼만 누르면 어떻게든 해결되는 줄로 믿었던 나는 모은 음식을 꾸역꾸역 삼키며 버텼다.


그렇게 지리하게 버틴 것이 몇 턴인지 모르겠다. 


알고 보니 사실 토리엘의 공격은 죽이려는 공격이 아니었지만 그 때 나는 내 회피 실력이 출중한 것으로 믿었었다.


버티고 나니 어느 순간 공격은 멈추고 토리엘의 말이 이어진 후 포옹이 이어지는데, 그 때 나는 그녀의 공격을 피하며 모았던 모든 짜증과 감정을 내려놓았다.


매서운 늦가을 바람 속에서 따듯하게 내리는 오후의 햇살처럼 그 장면은 마음에 잔잔하게 울리는 기쁨을 나에게 주었다.


어머니를 배신하고 싶지 않은 아들의 심정이 닿은 것만 같았다.


그렇게 토리엘과 따스한 집을 뒤로 한 채 내 노란 프리스크는 스노우딘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실 샌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만사 귀찮아하는 무기력한 모습도 그렇고, 사고 자체가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는 유형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차라리 마음에 들었다. 모든 사람이 내 기준에서 착하고 바르게 행동할 수는 없으며 그것은 창작물의 인물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오히려 모든 인물이 거슬리지 않게 행동한다면 작품에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샌즈의 다면적인 인격은 바로 그런 거슬리는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다.


취향으로 인해 누군가에게는 매력이 될 수 있는 그런 성격 말이다.


그래도 첫 대면은 제법 유쾌했다. 방귀 악수라니, 유치했지만 요즘 그런 짓 하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 신선할만도 하다.


특유의 뼈다귀 유머는 이미 본인부터 많이 쓰고 있었기에 익숙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이후 파피루스의 대면에선 엄청 피곤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착한 건 얼추 알겠는데..


퍼즐 맞추는 건 재밌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했다. 두뇌를 말랑말랑하게 하는 체조조차 거부할 만큼 내 뇌는 딱딱하게 굳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파피루스를 통하여 작가가 드러내는 의도는 늘 반복적이고 딱딱한 삶을 기계처럼 사는 로봇 뇌를 가진 현대인의 비판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 쯤 퍼즐이 끝났다.







귀찮아서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