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조그마한 침대에 뉘였던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짧게 자른지 얼마 되지 않아 익숙하지 않은 자신의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며 대충 정리했다. 꽤 오랫동안 낮잠을 자고 일어났으나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몽롱하고 불쾌한 감각이 몸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다시 누워서 잠에 빠지고 싶었으나, 만약 다시 잔다면 오히려 허리가 아프고 편두통에 시달릴 것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다시 침대에 눕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이불을 한 구석으로 몰아놓고 일어날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일어나도 돌아다닐 공간은 없었다. 그녀가 몸을 뉘었던 그 공간은 네다섯 평 정도밖에 되지 않는 협소한 방이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방이 아니라 그녀의 집이었다. 몸집이 크지 않은 그녀가 겨우 몸을 누일 작은 침대와, 옷 몇 가지를 넣어놓을 수 있는 작은 옷장, 그리고 책과 필기도구가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는 책상 뿐이었다. 책상 옆에는 책을 놓아둘만한 두 층짜리 작은 책장이 있었지만 책이 있는 칸은 아래칸 뿐이었고, 윗칸에는 싸구려 화장품이나 물얼룩지고 가장자리는 살짝 깨어진 작은 거울 따위만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몸을 움직이기 너무 귀찮은 나머지 그냥 참기로 했다. 그녀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선 이 건물의 공용 화장실로 가야 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건물은 작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 개미집을 연상케 하는 고시원이었다. 고시원 중에서도 질이 안 좋은 곳이라 화장실마저 공용이었으며, 식사를 하기 위해선 공용 전기밥솥에서 밥을 떠가서 공용 전자레인지로 무엇이든 요리하여 먹어야 하는 곳이었다. 그녀는 책상에서 의자를 꺼내 앉았다. 책상 위 구석에 굴러다니는 검은 고무줄로 머리를 묶으려 했으나, 자신의 머리는 고무줄로 묶는 것이 의미가 없을 만큼 짧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책장 윗칸에서 머리핀을 꺼내어 그냥 자신의 앞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정리했다. 그녀는 기지개를 피며 끙 소리를 내었으나, 이마저도 개운하지 않았다. 그녀는 책상 위에 자신이 던져둔 핸드폰을 봤다. 잠금을 해제하여 보니, 대출 전화로 보이는 부재중 전화가 하나 있었다. 핸드폰이 보여주는 시간은 오후 6시 19분이었다. 그녀는 바깥 풍경을 보고 싶었으나, 이 작은 방에는 손톱만한 구멍도 나 있지 않았다. 이런 공간의 폐쇄성 때문에, 여자는 낮잠을 자든 밤에 자든 간에 불을 켜고 자는 게 습관이었다.
 그녀는 무엇이라도 먹을까 생각하였지만, 그러면 또 방 바깥으로 나가야 했다. 그녀는 방 안에만 틀어박히는 히키코모리적 기질을 가진 여자는 아니었으나, 자고 일어난 직후였기에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가 매우 귀찮았다. 그녀는 짜증섞인 한숨을 내쉬며 침대 한 구석에 박혀 있던 모자를 썼다. 전혀 꾸미지 않은 상태였으나, 고시원에서 그런 것 따위 신경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였기에 바로 나가도 상관 없었으나, 그녀는 일단 그냥 핸드폰이나 보며 잠깐 시간을 두었다가 나가기로 했다. 인터넷을 키면 항상 이러 저러한 뉴스가 뜨지만, 그녀는 요즘 뉴스를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핸드폰을 하면서 사회와 연결될 때엔, 그저 만화 따위나 찾아보고, 시시콜콜한 글거리나 찾아 읽어서 시간을 때우는 것이 일과였다. 세상이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 그녀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 앞가림에 바빴으므로.
 그녀가 핸드폰으로 시간을 때우는 동안에 이 여자에 대해 살펴보자. 책상에 너저분하게 놓인 책들은 한눈에 봐도 어려워 보이는 내용들 투성이었고, 행정학이나 법 따위 등의 내용이 써 있었다. 단순히 숫자의 셈이나 정보의 나열이 아닌, 그 이상의 정보가 꽉 채워져 있었다. 책 옆에 놓인 공책에는 책의 내용을 메모한 듯, 여러가지 내용이 써 있었으나 알아보기 힘들었다. 책상의 구석에는 볼펜 자국을 닦는 데에 쓴 휴지 조각 따위나 지우개 가루가 검게 뭉쳐 있었다. 그리고 다른 구석에는 '열심히 하자'라고 쓰인 분홍색 포스트잇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떨어져 있었다. 공부를 하면서 생긴 작고 작은 쓰레기들이 모여서 책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녀는 무엇이든 간에 굉장히 어려운 공부를 하고 있었고, 고시원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지금 짜증을 내며 핸드폰을 보는 것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탈일 뿐이리라. 그녀가 긴 생머리를 자를 결심을 한 것도, 자신이 저지를지 모르는 일탈을 막기 위한 스스로의 결심이었으리라. 그녀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가 힘에 부치는 일이 있거나, 가슴을 꽉 막는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나 그녀는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그녀에겐 그것이 습관이었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습관이었다.
 그녀는 문을 슬리퍼를신고 바깥으로 나섰다. 좁은 복도를 지나면서 어떤 방에서 남녀가 같이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눈살을 조금 찌푸리며 애써 그 모습을 무시했다. 그녀가 책상에 앉아 공부하다 보면, 낮이든 밤이든 간에 가끔씩 어디선가 무시할 수 없는 신음 소리나 교성 소리가 나는 경우가 있었다. 이 작고 열악한 고시원에서 청춘을 어떻게든 꽃피우고 싶은 것은 이해하지만, 그 소리가 그녀를 굉장히 짜증나게 했다. 성적으로 자극이 된다거나, 열등감을 느낀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공부를 하는 데에 교성이나 신음 따위는 짜증나는 방해 요소였다. 그녀는 며칠만 더 이런 일이 있다면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모자를 더욱 눌러쓰며 고시원 바깥으로 나왔다.
 고시원에서 편의점까지 가는 데에는 삼분 정도가 걸렸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였으나, 그녀는 그 시간마저도 귀찮은 듯 바지 주머니에 손을 꼽은 채 슬리퍼를 끌며 걸어갔다. 좁은 인도 옆으로 차가 몇 대 지나갔다. 그녀는 차가 지나가면서 내는 역풍을 맞을 때마다 조금 쌀쌀하다 느꼈다. 잠깐 그리 생각하다가, 그녀는 무얼 사먹을지 고민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리 많은 선택지는 없었다. 이렇게 갑작스레 대충 때우러 나왔다면, 편의점에서 사먹을 것은 라면이나 샌드위치, 김밥 같은 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잠깐, 담배를 피면 어떨까 생각했지만 바로 그만두었다. 그것은 너무 쓸데 없는 감상이었다. 그녀는 평생 담배를 입에 대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멀리서 특이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미 도넛이 왔어요~"

 그녀는 높고 째지면서도, 교태가 섞인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TV 광고나, 어느 프로그램에서든 들어본 적이 있는 듯했다. 편의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분홍색과 보라색이 섞인 듯한 색의 푸드 트럭이 있었다. 안에서 팔이 여러개 달린 거미 괴물이 교태가 섞인 목소리로 주변 길거리 행인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거미 도넛 자체가 인기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리 자체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손님은 많지 않았다. 여자는 잠깐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거미 도넛이란 꽤 유명하긴 하다. 괴물이 이 세상에 다시 나타나고 나서부터, 괴물들이 먹는 음식 중 하나라고 소개가 된 적이 있었다. 맛은 의외로 괜찮다고 들었으나, 거미라는 이미지는 그녀에게 별로 좋은 인상을 심어주진 못 했다. TV 광고도 한 것을 본 적이 있고, 거미 도넛과 관련된 체인점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왜 굳이 푸드 트럭을 몰고 있는지 그녀는 이해하지 못 했다. 짝퉁 같은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으나, 그녀는 편의점에서 사먹기보단, 새로이 나타난 이상한 음식을 먹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녀는 푸드 트럭에 몰린 네다섯 명 정도의 손님이 빵을 사가길 기다린 뒤에서야 그 푸드 트럭에 다가갔다. 푸드 트럭에서 장사하기엔 지나치게 고풍스러운 차림새를 한 거미 괴물이 그녀를 맞이했다.
 거미 괴물은 여섯 개의 팔로 여자에게 손을 흔들며 고혹적인 자태를 지어보려고 노력하는 듯 싶었지만, 지나치게 많은 팔과 지나치게 많은 눈은 인간에겐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자신이 종차별적인 인간마냥 행동하고 싶지 않았기에 징그러워 보인다는 것을 티내지 않았다. 괴물의 묘하게 친근한 인상 덕에 덜 징그러운 면도 있긴 했다. 거미 괴물은 온통 보라색 투성이인 옷을 입고 있었다. 옷 끝단에 재봉된 하얀 레이스가 나풀거리고 황동 따위로 도금된 듯, 반짝이는 웃옷 단추들이 차림새가 보라색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볼썽 사나운 옷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녀는 괴물의 패션 감각까지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거미 괴물의 앞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보았다.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속 빈 편의점 샌드위치보다는 가성비가 훨씬 괜찮았다. 그녀는 거미 괴물에게 거미 도넛 두 개를 달라고 했다.

 "아후후, 고마워요."

 거미 괴물은 자신의 왼쪽 팔들을 뻗어, 작은 푸드 트럭의 주방으로 보이는 곳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았다. 빵을 어디선가 꺼내는 건지 즉석에서 굽기라도 하는 건지는 몰라도 왼팔 세 개가 바쁘게 움직였는데, 여자의 위치에서는 볼 수 없는 곳이었기에 정확히 무엇을 하는 지는 알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적당히 따뜻하면서도 뜨겁지 않은 보라색 도넛 두 개가 거미 괴물의 왼손에 들려 있었다. 거미 괴물은 종이 봉지에 빵 두 개를 담아서 그녀에게 건네었고, 그녀도 돈을 지불했다. 고시원으로 돌아가서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녀가 고시원으로 발걸음을 돌리면서 걸어가다가 뒤에서 어떤 남자가 호탕한 목소리로 대화하는 것이 들렸다.

 "머펫 씨! 굳이 여기서 장사를 해야겠어요? 그냥 들어가는 게 낫지 않나?"
 "아후후, 그냥 장사를 하러 온 게 아니에요. 맨날 가게 안에 박혀 있는 것보단 이것도 신선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꼬마 아가씨가 이리저리 돌아다녀 달라고 부탁도 했고요."

 걸걸한 아저씨 목소리와 교태가 섞인 여자 거미 괴물의 목소리가 섞이는 대화가 여자를 흥미를 끌었는지, 여자는 잠깐 가만히 서서 그 대화를 엿들어 보기로 했다. 뒤를 돌아 보니, 푸드 트럭의 운전석에 있던 아저씨가 차에서 내려서 대화를 하는 듯 싶었다. 저 여자 괴물이 운전을 할 줄 아는 것은 아닌 듯 싶었다. 두 개의 다리, 여섯 개의 팔로 운전을 하는 건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여자는 그런 자세한 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괴물들이 세상에 풀려 나온 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이런 풍경이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여자가 한창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잘 알지도 못 하는 '괴물'이라는 존재들이 해방되었다. 그 시절부터 많은 일이 있었지만 괴물과 인간이 친숙하게 지내는 것은 아직까지 익숙한 일은 아니었다. 특히 나이를 먹은 아저씨가 그런 경우는 특히나 적었다. 괴물과 친해지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힘들었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빠르게 받아들였다. 반대로, 나이가 있을수록 괴물들의 존재는 거부할 수는 없었으나 수용하기 힘들었다.

 "꼬마 아가씨?"
 "프리스크를 말하는 거예요. 아후후, 아저씨도 참 눈치가 없네요."
 "프리스크 씨가 꼬마면 나는 이십대 청년이겠네요."
 
 가벼운 담화를 주고 받는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탓에 오히려 더 어색하게 보였다. 더부룩한 머리, 면도를 했음에도 저녁 즈음이 되어 돋아난 턱수염, 주머니가 잔뜩 달린 가죽 자켓과 헐렁한 청바지를 입은 아저씨. 그리고 지나치게 보라색이 넘치는 옷의 어지러운 색상의 기성복을 입은 거미 괴물. 그 둘의 대화는 지나치게 가벼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