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가운을 둘러쓴 공룡이 있다. 더러워진 안경과 눈물이 들러붙은 눈가, 바싹 갈라진 손등이 초라하다. 왕실과학자를 뜻하는 배지가 옷깃에 힘없이 매달렸다. 공룡은 복잡한 기계 컨트롤러 앞에 못 박힌 듯 섰다.

공룡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공포와 절망이 뒤섞인 울부짖음이었다. 꽥꽥대던 목소리가 여러 갈래로 찢어질 때까지 계속 소리를 내지르던 공룡이 제 풀에 못 이겨 쓰러졌다. 목소리처럼 툭툭 갈라진 손바닥이 실험실 바닥을 짚었다.


그녀, 알피스는 멍청히 바닥을 보다가 아기처럼 몸을 웅크렸다. 울음을 삼키는 목구멍이 꿀럭꿀럭 요동을 쳤다. 두툼한 몸집을 덮던 옷감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그 볼썽사나운 꼴처럼 실험실도 엉망이었다. 여러 번 접힌 자국이 있는 서류들과 파쇄된 종이들이 쓰레기처럼 바닥에 널려있었다. 잉크가 묻은 더러운 차트에는 전공자들이나 알아먹을 용어가 휘갈겨졌으나, 그 마저도 물에 번져서 알아보기 어려웠다. 스포이드나 실험용 비커가 깨졌는지 조그만 유리조각도 사방에 가득했다.

알피스는 눈물을 흘리다 간헐적으로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훌쩍거리는 소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무언가가 유리창을 세차게 두드렸다.


알피스는 겨우 고개를 들었다. 퉁퉁 부은 얼굴에 포기와 자괴감이 잡탕처럼 범벅이 되어 있었다. 흐느적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우다 유리조각을 밟았지만 그녀는 신음도 내지 않았다. 온갖 잡동사니와 이젠 쓰레기나 다름없는 실험 결과의 산물들을 제치며 노란 꼬리가 흔들렸다.

툭툭 두드리는 소리는 이제 유리창을 박살낼 것만 같다.

알피스는 그 소리를 내는 게 무엇인지 이미 안다. 발걸음이 무겁다. 그녀는 당장에라도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뒤로 물러설 수 없었다. 이 실험실에서 나가는 순간 그녀는 일생을 후회하면서 살게 될 게 뻔했다.


그녀의 앞엔 이제 통유리로 가로막힌 실험실이 있을 뿐이다. 먼지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잔뜩 묻은 유리창이 세차게 흔들렸다. 알피스는 이를 악 물었다.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안경을 벗고 눈가를 거칠게 문댔다. 확인해야만 했다. 어리석은 과학자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두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무슨 짓을 해서건, 다시 되돌려야만 했다.

알피스는 유리창 너머를 겨우 볼 수 있었다. 유리창이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렸다. 두툼한 다리가 사정없이 후들거렸다. 이제 그녀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실험실 밖으로 나가려고 애쓰는 그 무언가에게 시선을 떼기란 불가능한 것 같았다.


“아아...”


이번만은 다를 거라고 예상한 그녀가 오만했다.


“언다인.....”


이젠 자신의 이름도 알아듣지 못할 무언가가 씩씩거리며 유리창에 달려들었다. 진득거리는 게 유리에 철퍽 묻더니 아래로 느리게 흘렀다. 진회색으로 녹아내리는 피부였다. 언다인이었던 ‘그것’은 거의 유리에 달라붙었다. 얼굴에 있던 부위가 점토처럼 뭉개졌다. 한 때는 밝은 노란빛을 띠었던 눈에서 검붉은 게 줄줄 터져 나왔다. 그것이 입을 쩍 벌리고 유리 너머를 향해 눈알을 굴렸다. 서슬 퍼런 시선이 알피스를 노려봤으나 그녀가 누구인지 못 알아보는 게 확실했다.


실험은 실패였다. 부정할 길이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긍지 높은 왕실근위대의 수장이었던 ‘저것’은 이제 판단력이 없다.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였다.


물컹거리며 녹아내리는 몸이 반죽처럼 바닥에 눌러붙었다가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어떤 절대자가 마법이라도 선사한 것 같았다. 단단한 갑옷과 푸르게 윤기가 나는 피부. 붉은 머리칼과 다부진 주먹. 그러나 눈빛만은 흐리멍덩했다.


그것이 입을 크게 벌리고 유리창에 달려들었다. 무언가가 철퍽거리며 터지는 소리가 났다. 바닥에 먼지도 진흙도 아닌 것이 느리게 물처럼 퍼졌다.

알피스는 다시 한 번 무너져서 울었다. 그저 죽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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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질 좀 해주셈

단편집에 낼 일부인데 아직도 완성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