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황금연휴를 앞둔 퇴근길이란 회사에서 과장한테 개같이 까이는 일이 있더라도 그저 신나야 하건만 그닥 기분이 좋지 않았다. 딱히 이렇다 할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뭐 일이 생겨야만 기분이 변하던가.

 아니, 일이 있긴 있었다. 일주일 전에 한 달 동안 공들였던 여자가 자기랑은 맞지 않은 것 같다며 문자로 통보했었다. 덕분에 이번 연휴의 계획이 통채로 날아가버렸다.
 당신은 괜히 껄쩍지근해진 기분에 뒷머리를 긁었다.
 한 달이나 만나놓고는 뭘 또 맞지 않는 것 같다야. 그럴거면 좀 진작 얘기해줄 것이지.

 생각하니 또 기분이 더러워 지는 것은 간만에 찾아올 뻔한 달짝지근하고도 씁쓰름한 연애란 것이 통채로 날아갔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 이유가 크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데이트 비용은 식후 커피밖에 산 적이 없는 어떤 여자때문에 이번 달은 허리띠를 좀 졸라매야 했다. 야근하고 돌아오면 한 캔씩 따던 맥주도 당분간은 자제해야 할 판이었다.
 처량해진 신세에 당신은 절로 한숨을 내지었다. 퇴근 후의 시원한 맥주 한 잔도 못하면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하나. 덜컹대는 퇴근길의 지하철 차창 너머로는 화려한 도시의 밤이 이어지건만 가련한 청춘은 피로에 찌들어 피곤한 몸을 한 평짜리 고시방에 뉘여야 한다니.
 불공평해 죽겠네.
 속으로 투덜대며 당신은 창문에서 시선을 떼고 눈을 감았다.

덜컹대는 지하철에 몸을 내맡기고 가만 있다보니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발갛게 얼굴을 붉히며 헤실거리면서 당신을 바라보던 벌레같은 시선. 오소소 소름이 돋아나는 것과 동시에 꼭 쥐고 있던 휴대폰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고 당신은 눈을 떴다.
 화면이 밝게 켜진 휴대폰에 뜨는 번호와 저장된 이름은 당신이 방금까지 생각하던 이의 것이었다. 예전처럼 또 무시할까 생각하며 휴대폰 화면을 밑으로 내린 당신은 다시 눈을 감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또.
 이번에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안내 메세지가 뜰 때까지 전화를 끊지 않는 모양이었다. 적당히 사람이 무시하면 아닌가 보다 하고 포기 할 줄도 알아야하는데 지하에 처박혀 있던 시간이 꽤나 길었던 모양인지 좀처럼 포기를 모르는 놈이었다. 문자로 통보를 날린 여자가 또다시 생각나 당신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깊게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배출해냈다.

조금 뒤 전화는 끊어졌다.





 사람에 치여가며 겨우 지하철에서 내린 당신이 그를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벤치에 앉아서 허리를 굽히고 양 손으로 휴대폰을 꼭 쥐고 있는 사람이라면 널리고 널렸지만 그게 해골 괴물이라면 그 희소성이야 두말하면 입 아픈 것이다.
 당신은 차라리 당신이 먼저 발견한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 해골이 당신을 발견하기 전에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적당히'를 모르는 이와는 얽혀봐야 피곤할 뿐이다.
 그렇지만 당신은 곧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그대로 못들은 척 무시하고 걸어가야 했건만 순간 걸음을 멈추고 말아 당신은 타닥대며 달려오는 발소리를 듣고 제자리에서 돌아섰다.


 "오, 오랜만이야. 퇴근길이었어?"


 발갛게 상기된 얼굴엔 당신에겐 애석하게도 반가움이 한가득 묻어있었다. 당신은 구역질이 치미는 것을 참으며 애써 자본주의 미소를 지었다.


 "예. 어떻게 여기서 뵙네요, 부장님."
 "이 그, 근처에 일이 조금 있어서……."


 그게 거짓말이란 것은 지나가던 어린애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 부장이 직접 밖에 나와서 일할 거리가 어디 있어. 부장급이 뛸 정도면 회사가 모가지 달랑거린단 소리인데. 괴물들이 건립한 회사 중 그것도 이름이 꽤나 알려진 그 회사가 먹고살기 어렵다고 하면 증권가 찌라시부터 뿌려졌겠지. 코웃음이 나올 뻔 했지만 당신은 그런가요. 하고 대답하곤 재빨리 조심히 가시라고 인사했다.


 "저, 내가 아직 밥을 못 먹어서 아직 저녁, 안 먹었으면 같이 먹을까 싶어서, 그래서 전화 했었는데……."
 "아, 전화를 하셨어요? 죄송합니다. 깜빡 졸아서 전화가 왔는지 확인을 못했습니다."
 "마, 많이 피곤해?"
 "예, 조금 피곤하네요."
 "그, 그렇구나……."


 이쯤하면 포기하고 보내줄 법도 하건만 눈앞의 해골은 아쉽다는 것이 절실히 느껴지는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보며 좀처럼 당신에게 인사를 해주지 않았다. 대충 무시하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상대는 당신이 취직한 회사의 주 거래처 회사 사장의 동생이자 부장이었다. 그리고 당신은 일개 사원이고. 상대가 갑이라면 당신은 을은 커녕 정이나 무정도 되는 찌끄래기였다. 이렇게 싫다고 철벽치는 것도 용납이 안될.
 그렇지만 당신이 뻗대는 것도 나름대로 확신이 있어서였다. 저 해골괴물이 역겹게도 같은 남자인 당신에게 반해서 저 스스로 갑에서 무, 기로 내려서는 것이 훤히 보였으니.


 "회, 회사가 좀 힘든가봐. 일이 많아?"
 "하하, 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죠."
 "아, 아냐. 네가 어, 어디가 부족하다고 그래."


 아, 거 적당히 좀 보내주지 진짜. 정색하며 반박하는 해골을 바라보자니 더할나위 없이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빨리 집에 가서 샤워하고 라면이나 끓여먹고 게임이나 하거나 아니면 tv나 보면서 보람차게 휴일을 보내고 싶건만 눈앞의 해골은 당신의 초단위로 아껴서 즐겨야 할 휴일을 분단위로 잡아먹고 있었다. 오호 통재라.


 "너, 넌 충분히 머, 멋지고 하, 핫하고… 그, 그리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응, 난 널 조, 좋…게 보고 있으니까."


 뭐, 그래도 이런 지하철역에서 급작스런 고백을 할 정도의 위인은 아닌 모양이었다. 다행이기도 해라. 텅 빈 눈구멍 속의 하얗게 빛나는 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당신은 그 안광을 못 본 척, 그저 생글거리며 웃었다.
 영업직 사원은 이 미소가 생명이다. 더군다나 요즘 세상은 여존남비라고 영업직 남자직원은 몸 사리면 바로 눈총이 박힌다. 결혼이라도 했다면 몰라 여자친구도 없는 총각이 어딜 몸을 사려? 아가씨 있는데 데려가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따라가서 재롱 피워야지. 여자도 아니고 남자가 같은 남자 엉덩이나 가슴 만져볼수도 있고 여자가 남자 만져주면 감사합니다할 사안이지. 암, 그렇고 말고요, 씨발.


 "감사합니다, 부장님. 그리고 죄송하지만 제가 오늘 몸이 좋지않아서… 다음에 이쪽에 오실일이 있으시면 다시 연락주세요. 그땐 점심이고 저녁이고 바로 달려나가겠습니다."
 "그, 그, 그래?"
 "그럼요. 부장님께서 부르시는데 제가 당연히 달려나가야죠."


 물론 전화를 받는 일이 없을테니 이런 호모 해골따위를 만날일은 절대 없을 거다. 전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래도 당신의 변명은 제법 좋게 통했다. 다음 지하철이 오자 재빨리 당신은 해골에게 작별인사를 건넸고 해골은 여중생마냥 수줍게 웃으며 빨리 건강해지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떠나는 지하철에 당신은 허리를 수직으로 꺾으며 인사했다. 참으로 청춘은 먹고살기 힘든 때였다.






 솔직히 피곤한 것은 사실이었다. 집(집이라고 해야할까 방이라고 해야할까)에 도착하기 무섭게 침대에 머리부터 박은 당신은 노곤해진 정신이 흐물흐물해지는 것을 느끼며 반쯤 졸았다. 씻고 밥먹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이대로 잘까라는 생각에 완전히 지기 직전, 다시 또 울리는 진동음에 당신은 한숨을 푹 내쉬며 휴대폰을 집었다. 그리고 화면에 뜬 글씨에 윽 하고 질겁했다. 부장님. 그러니까 방금 만났던 샌즈 부장이 아니라 당신회사의 당신 부서의 부장님이었다. 퇴근 이후로 부장에게서 연락이 오는 경우는 십중 십은 그거였다. 접대 좀 해라. 덕분에 창창한 20대 중반에 술먹고 토하다 식도염이 생겼지.
 당장 휴대폰 배터리를 분리해버리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의 휴대폰은 배터리 일체형이었다. 씨발. 당신은 욕을 뱉어내곤 곧이어 활짝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넵, 부장님!"







 씨발씨발씨발씨발. 벌써 30분째 당신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휴대폰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하, 씨발 하필이면 왜! 소리라도 지를 수 있었으면 백번이라도 고함을 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얇디앏아 벽너머 사는 고시생이 방귀뀌는 소리까지 스테레오 사운드로 들리는 고시원에서 소리를 질렀다간 당장 '너 나가.' 신세가 되어 짐과 함께 넓은 서울바닥을 떠돌게 될 터였다. 그래서 당신은 대신 소리없이 아우성을 질렀다. 씨발, 왜!
 부장에게 전화를 받자마자 들은건 부장의 고함이었다. "이 새끼야 일을 어떻게 쳐하는거야!"
 일을 어떻게 하긴요. 당신네들이 시키는거 그냥 닥치고 하는거죠. 당연히 당신이 할수있는 말은 죄송합니다 라는 5마디 뿐이었다.
 부장은 당신이 거래처에 보낸 서류에 오류가 있다며 당신에게 회사 말아먹을 작정이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 니가 그거 보내라면서요 개새끼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할수있는 말은 또 죄송합니다 였다.
 부장의 요구는 간단히, 이번 휴일동안 그쪽 회사에 가서 서류의 오류를 바꾸라는 것이었다. 샌즈 부장에게 직접 가서.
 거래처에 보낸 서류에 오류가 있는데, 그걸 사과하러 가는데 신입사원더러 가라고? 지나가던 개가 코웃음칠 일이었다. 니가 사고쳐놓고선 샌즈 부장이 나한테 딴 맘 품고 있으니 가서 꼬시고 대충 무마하란 소리잖아 부장 씹새끼야. 볼멘소리가 터져나오려고 했다. 이러려고 취직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너 말고도 일 시킬 애들 많단 부장의 말에 다시 또 취업경쟁에 뛰어들자니 겁이나 당신은 덜컥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지금 이상태였다.
 당신은 샌즈 부장의 번호가 뜬 휴대폰 화면을 노려봤다. 진짜 먹고살기 빡시네. 마지막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당신은 결국 통화버튼을 눌렀다.







클리너로 날아가서 1편부터 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