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ㄱㅈ
브루키애껴욧(birzabith)
2016-12-09 18:26
추천 3
답장은 제법 괴팍한 말투로 쓰여있었다. 메일이 와있고 난 그걸 확인해야한다. 그게 당연한 일이지. 온건 진작 알았지만 뭐 하느라 읽진 못했다. 팝업에 내용 두세줄이 보이길 아 올게 왔나보다 했지. 삭제해버리거나 확인을 늦출 수는 없었다. 나는 억지로 끄집어내져야했다. 답장에 감정이 실리는 것이 두려워 곧장 답변하길 그만두었다. 그의 잘못이 아니니 시간을 들여 마음이 가다듬어진 후에 답장을 해야했다. 이런 생각마저도 기운을 빼앗아 간다는 게 절실히 느껴진다. 귀에 뭔가를 채워넣는 행위 자체가 내게 편안함을 준다. 물이든 노래든 티비소리든 귀마개든 이어폰이든 영 아닐땐 하다못해 손가락이라도. 알던 노래가 흘러나오고 그럼에도 도망치는 타이밍이 뒤늦었기에 이미 마음이 미어졌다. 그저 그의 메일이 내가 애써 외면하려한 나쁜 것들을 연상시켰기에 나 스스로 이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조금 더 회복을 한 후 저것을 접했다면 의연하게 견딜 수 있었겠지만 현재로선 악효과만 남는 충격요법 같았다. 사실 요즘 기운이 없었다. 자괴감이 나를 빈번히 괴롭힌다. 아버지는 오해하신 듯 했다. 일부는 맞지만 근본적 원인은 아니었다. 컨디션도 최상이었고 전력을 다했으니 한 점 후회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 탓에 기력이 다했는지 귀가 후 엄청난 양을 먹어치웠고 숟가락을 내려놓자마자 죽은듯 한참을 잤다. 다만 그 이튿날 독하게 마신 술이 그 다음날까지 썩 좋지 않은 느낌으로 몸에 남았고 그리고 과거의 꿈을 꾸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실망과 애처로움을 느꼈다. 주된 이유는 더군다나 더욱 답이 없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 가만히 있질 못했다. 그런데 이젠 더 할 것이 없었다. 책장과 낡은 즐겨찾기 목록 따위도 이미 정리하였고 버려야할 폐지도 캐리어에 쳐박아둔 낡은 옷도 미련이 남아 쌓아둔 흔적들도 전부 저 먼 곳의 쓰레기장에 내어놓았다. 심지어 애석하게도 그리하는데 시간을 얼마 소요하지 않았다. 사람은 항상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적이 없었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으나 운이 좋게도 그런 이들은 내게 있어 귀중한 존재가 아니었고 오로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그저 존재만으로도 항시 내게 위안이 되었다. 그저 멋지게 찾아가는 내 모습을 난 항상 상상해왔는데...어떻게 될는지 모르겠다. 항상 그게 끝나면 허탈한 마음이 제일 앞선다. 떨림과 초조함이 아니라 허무함과 근거없는 자신감이 제일이다. 이제 난 다만 기다리기만 해야하고...보답은 극적으로 성공하며 후배에게 영광스런 나의 승리를 전송하고 난 지난 나날을 더욱 미화하며 내년 여름 즈음 방문할 그 어느 나라의 도시에 관하여 생각에 잠긴다. 아니 사실 우스운게... 기운이 빠졌기에 난 오래 전 즐겨찾기에 추가한 사이트의 아이콘을 눌러 당신 이름을 검색했고 여전히 내가 알던 내용이 나왔다. 즐겨찾기 목록을 정리하다 진작 발견한 것이었으나 그때 당장 거길 접속한게 아니었다. 난 안심하고 당신이 그립다. 단 두글자 뿐이지만 난 무수한 상상을 했다. 그 두 단어 사이엔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수많은 사건이 존재할 것임이 틀림없었다. 아직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흐르진 않았구나 싶었다. 당신을 업고 어둡고 긴 통로를 한참 내달린 게 빈번하던 때도 있었다. 전혀 몸을 가누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당신을 짊어지고 안전하고 빠르게 달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의 난 그 상황이 두려워 발목이 흔들리고 다리가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당신도 이 두 글자로 지내고 나는 그걸 읽으며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구리로 옮긴 이후로 매우 평온해보인다. 간결한 두 글자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에 관해 다시 상상한다. 그 곳이 당신에게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구리 방면이라 적힌 자전거길을 달린 적도 있었지만 좁은 길 끝에 바다도 아닌 주제에 등대 비슷한 것이 있고 거기까지 가느라 소모한 체력이 아쉬울 정도로 풍경이라 할 것도 없는 시시한 곳이 허무하게 막다른 길로 끝났던 것이 애매하게 기억난다. 어쩌면 요령이 없는 당신이기에 힘들지만 어떻게든 버티는 지혜가 언젠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던 당신이 그런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한다. 쪼그리고 앉아 당신을 올려다보며 자잘한 농담을 건네던 때를 떠올려 본다. 여전히 그러길 자처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알아서 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있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그건 고민도 아닐 것이다. 모두 내 마음가짐만이 문제인 것이지만 그걸 알아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게 남일이라면 난 어떻게 대처했을라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는 건 이 고민을 들어줄 상대방은 분명 지루할 것이며 하나 더 내가 이를 누구든 말하는 순간 그건 비밀이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딱히 비밀로 해야하는 이유는 없으니 말해버리면 그만이지만 드물게도 이번만큼은 상담의 전초작업으로 내 처지를 설명하는 시간 자체가 내게 스트레스였다. 대개의 고민은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해지기 마련이지만 이건 그렇지도 않았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콩밥에서 밥알만을 골라먹는 일과는 완벽하게 상황이 다르니 난 그냥 찌질하게 눈을 가리고 딴짓을 한다. 마침 나는 딴짓이 가능하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용기를 줌과 동시에 그로 인해 괴롭다. 질투 열등감 실망 그 어느 단어도 정답일테지만 그들을 증오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일말 아니었기에 더 괴로웠다. 바로 내가 문제다. 누굴 미워할 수 있다면 훨씬 편할텐데 아 그게 아니라서 이런다. 아이러니하게도 속이 이토록 썩어가는 와중에도 그 밖의 일들은 일사천리다. 오늘 일이 잘 끝났으니 곧 모든 게 다시 시작이다. 우선순위를 매기고 싶지 않았지만...홀로 있을 적마다 계속 이 생각이 나를 괴롭게 하겠지만 내 분수를 깨닫고 딴짓을 하는게 지금의 정답이겠다. C형이 술밥을 사준대서 회사 밑 카페에서 기다린다. 한 삼사십분만 기다리면 되었지만 시간을 때우려 적당히 돌아다닐 기력은 없다. 며칠 전 사고싶단 레고가 두개 있다던 것을 한참 낑낑대다 결국 돈이 아까워 못 사겠다고 결정하더니 내 술밥은 사준다니 그걸 얻어먹으면 내가 양심이 없는 씨발놈이지. 형 빨리 와. 배고파서 형이 넘무 보고싶다. 안 사줘도 되니까 칼퇴만 해줘. 눈치타임이 왔다니 메일은 집가서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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