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애애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열린 철제문 앞에서 아주 잠깐 심호흡을 한다. 괜찮아. 집에서 나올 때 환하게 웃으며 잘 다녀오라고 배웅해주던 동생을 떠올리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주머니에 넣은 손을 보이지 않게 꾹 주먹을 쥐고 활짝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간다.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지만 몇 발짝 걷기 전에 강의실 전체에 목소리가 뚝 끊어진다. 후줄근한 옷 아래의 팔과 다리가 떨리지만 긴 옷 덕분에 보이진 않을 것이다. 애써 무심하게 빈자리를 찾아(젠장, 하필이면 맨 뒷줄에 빈 자리가 없다.) 자리에 앉는다. 잔뜩 긴장한 감각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야, 어디서 밤꽃 냄새 안 나냐?” 악질적으로 키득거리는 소리를 애써 아무것도 못 들은 척하며 가방에서 두꺼운 전공 책을 꺼내든다. 다행스럽게도 책을 꺼내, 오늘 나갈 페이지를 펼치자 앞문이 열리며 교수가 들어온다. 강의실 내에 유일한 괴물학생인 자신을 보곤 빙긋이 웃으며 교수는 우선 출석을 부른다.


 “샌즈.”
 “예.”


 이름이 불린 시점에 순식간에 모인 시선을 무시하고 온 신경을 교수에게 쏟아 붓는다. 교수는 출석부를 닫고 “저번 시간에 어디까지 했죠?” 하며 매번 하는 질문을 던진다. 시선이 자신에게 박혀있기에 대답하려 입을 열려고 했지만 뭐에 숨구멍이 꾹 눌렸다. 잠시 침묵 뒤에 앞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이전시간까지 나간 페이지를 언급한다. 교수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그 학생에게 돌리며 “그래요.” 라고 말하곤 수업 노트 몇 장을 들고 칠판에 백묵을 들고 다가섰다. 수업이 시작되며 사라진 시선에 겨우 옅게 숨을 내뱉으며 손에 쥔 펜을 아프도록 꽉 쥔다. 휴학 같은 것은 꿈도 못 꾼다. 그러니 최대한 시간표에 수업을 꽉꽉 채워놓고 조기졸업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 학점이 높으면 한 학기에 다른 학생보다 한 수업을 더 받을 수도 있으니 이번에도 이를 악물고 공부해서 학점을 높게 받아야 한다. 티가 안 나게 이를 지긋이 다물고 교수의 말과 손에 집중한다.





 3시간을 쉬는 시간 없이 연달아서 수업을 하니 수업 중반부엔 강의실에 남은 학생들이 절반을 조금 넘는 숫자만 남아있었다. 그래봐야 수업 마지막 시간엔 꾸역꾸역 들어올 테지만 그래도 인구 밀도가 줄어드니 한결 낫다. 교수의 질문에 작게나마 대답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더 좋은 건 대답을 하면 교수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지난 수업에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 교수실에 찾아갔던 것이 기억났다. 친절하게도 설명을 해준 교수는 지상생활에 적응하기도 힘들 텐데 수업에 잘 따라와 줘서 고맙다며 냉장고에 있는 먹을 것을 이것저것 챙겨주기까지 했다. 교수생활이 힘든 것인지 받은 음식들이 대부분 유통기한이 좀 지나있었지만 그래도 학교에선 거의 유일하다 싶은 호의라 감사할 따름이다. 시계를 보니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강의실 뒷문이 스리슬쩍 열리며 중간에 나갔던 학생들이 몸을 숙이고 들어왔다. 때문에 몸이 살짝 경직되는 것을 펜을 잡지 않은 손가락을 쥐었다 피며 풀었다. 그렇지만 교수가 “밥 먹으러 갑시다.” 하고 말하며 수업을 끝낼 때까지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우르르 빠져나가는 인파에 함께 휩쓸릴 수 없어 멀찍이서 자리에 잠시 남아있었다. 마찬가지로 생각했는지 강의실 내엔 몇몇 조용한 학생들이 남아서 저마다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시선을 사람들과 마주할 수도 없어, 조용히 책에 고개를 박고 오늘 나간 범위를 복습했다. 별로 눈에 들어오는 내용은 없지만 그래도 수업동안 열심히 들은 덕에 몇몇 단어들이 익숙했다. 이정도면 다행이지. 펜대로 아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며 교재를 훑어 내렸다. 그러다 순간 드르륵하며 의자 끌리는 소리가 들려, 펜을 멈췄다. 다가오는 발소리에 온 신경을 다 쏟아 부으면서도 애써 흔들리는 시선을 책에 고정했다.


 “야, 너 이거 못 받았지.”


 몸에 닿는 것도, 특정된 호칭도 없었지만 분명 자신을 향한 말이었다. 들키지 않게 숨을 들이키며 고개를 들자, 친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에 묻은 것이 이전엔 친밀감이었다면 지금은 경멸감이라는 것이 다른 점이지만. 내밀어진 프린트 용지를 잡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지만 상대가 놓지 않았다. 별 수 없이 조금 몸을 숙여 싸구려 갱지에 복사된 프린트 물을 훑었다. 작년 전공 기출문제였다. 고개를 올려 그를 보자 대번 입이 열렸다.


 “선배들이 뿌렸는데 너 하나만 안 받았다 하면 우리가 까이거든. 이거 하나밖에 없으니까 복사해서 줄게.”
 “…….”
 “…따라와.”


 “그래.”라고 대답하기 전에 명령조가 떨어졌다. 손가락에서 스륵 빠져나가는 용지와 함께 그는 몸을 돌려 먼저 걸음을 옮겼다. 멀뚱히 보고 있자니, 두 걸음이 멀어지고서야 따라오라고 했단 것을 인식하고 짐을 챙겨 그의 뒤를 쫓았다.




 10살 정도의 인간과 비슷한 키 인만큼 성인 남자의 보폭에 따라가자니 자연스럽게 종종걸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예전엔 뒤처지면 보폭을 줄여줬는데… 이젠 그런 것도 없다. 뒤를 쫓아서 거의 뛰다시피 걸으며 목 안쪽에서 응어리 진 것을 꾹 억눌렀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된 건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주변에서 사람들이 사라졌다. 뒤에서 소곤거리는 것에 딱히 귀를 기울이는 성격이 아니라, 뒷담이 어느새 앞담이 되어있을 때까지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뒤늦게라도 그런 것 아니라고 말해보려 했지만 그때는 너무 늦어, 그렇게 말할 상대도 없었다. 지하에서보다 더한 막막함에 자연스럽게 포기를 선택했다. 덕분에 지금은 대체 얼마나 소문이 도는지 가늠도 못했다. 그래도 뿌린 족보를 못 받으면 동기들이 선배에게 한 소리 듣는 정도는 되니 아직 선배들은 모르는 것일까. 그렇지만 강의실엔 재수강을 하는 선배들도 있으니 아주 모를 것 같진 않다. 그럼 그보다 더 높은 선배들일까. 젠장, 전혀 모르겠다.


 “기다리고 있어. 복사해서 가져올 테니까.”


 생각하느라 어디까지 온 건지도 몰랐다. 어느새 방금 수업을 들은 교수의 교수실 앞이었다. 옆에 달린 연구실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그저 이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갔구나 하고 짐작했다. 연구실에 들어간다면 이 교수 밑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짧은 아쉬움이 영혼을 스친다.


 “…래서 걔는 언제 나간대요?”


 점심시간이라 복도는 무척 고요했다. 덕분에 교수실에서 새어나오는 목소리는 무척 잘 들렸다. 절로 몸이 움찔거리며 낯익은 목소리에 귀가 기울어졌다.


 “학장님이 걔 찍어둔 거 몰라요? 나가긴 어딜 나가요. 본인이 나가고 싶대도 못나갈걸?”
 “말은 좋지. 인간과 괴물이 더불어 공존하는 세상이라니. 참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생물인지도 모르는데, 마법이라니……. 애당초에 그 것들은 살아있긴 한 거예요?”
 “지능도 있고 말도 통하니 대충 사는 거지. 그리고 인간한텐 마법 못 쓰게 정해놨잖아.”
 “으, 그래도 볼 때마다 소름끼치던데요. 왜, 전에 뉴스에 탔던 거 있잖아요. 어린 애들끼리 장난치다가 그랬다곤 하지만 괴물이 마법으로 애 전치 3주 냈잖아요. 그런 사고가 또 일어날지 누가 알아요. 지금도 수업 시간에 가서 보면… 싫은 티는 못 내겠고 해서 그냥 웃는데요. 으, 진짜 소름 돋아서…….”
 “아, 무서운 거 싫어하지 참.”
 “전에 상한 것도 한 번 줘 봤는데 잘만 먹고 잘만 다니더라고요. 그것들은 소화기관 같은 것은 또 어떻게 생겨 처먹었는지…….”
 “뭘, 소문 들어보니까 생식기관 같은 것도 다 있는 모양이던데.”
 “아, 그거……. 으으… 생각만 해도 역겹네요. 밥 먹는데 그런 얘기해야 해요?”
 “그래그래…….”


 주륵, 흘러내린 전공 책을 가까스로 떨어지기 전에 붙잡았다. 머리가 어질 거린다. 시야가 팽팽 돌며 아직 교수실에서 새어나오는 목소리가 윙윙 울린다. 눈구멍을 꾹 감고 이를 악문다. 괜찮아.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동생을 생각한다. 괜찮아. 인간과 대화하며 괴물들의 권리를 주장했던 괴물들의 왕을 생각한다. 괜찮아. 괴물들을 대변했던 어린 인간 아이를 생각한다.


 ‘나는 괜찮아.’


 괜찮다. 정말 괜찮다. 어떤 소문이 돌든 마지막에 매스컴을 타게 될 것은 뛰어난 성적이나 최초의 대학을 졸업한 괴물이라든가 하는 내용뿐이다. 이걸로 어떻게든 뒤에서 배움의 길을 선택할 괴물들도 늘어나겠지. 그걸로 된다. 중요한건 괴물들도 얼마든지 인간들이 하는 것을 할 수 있고 그보다 뛰어날 수도 있다는 인식을 박아 넣는 거다. 괴물들이 얼마든지 인간들과 공존할 수 있고 서로에게 유익한 공생관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 그 외에는 아무것도 상관없다.


 “야!”


 큰 소리에 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가까스로 눈을 뜨고 고개를 들자 그가 보인다. 손에는 아까 잡았던 것과 비슷한 두께의 프린트가 들려있다. 한 발짝, 손을 내밀며 다가간다. 그러나 그가 손을 팩 뒤로 끌어당겼다.


 “미쳤냐?”


 머리가 팽팽 돌아서 어지러운데 잡아야 할 것이 멀다. 종이를 마법으로 감싸자 푸르스름한 광채가 어른거리며 피어올랐다.


 “아이 씨발!”


 손에서 내던진 종이뭉치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서있었다. 둥실 떠오른 종이뭉치를 끌어당겨, 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제야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차리는 것과 동시에 몸이 굳었다. 마법을 썼다. 그것도 사람의 근처에 있는데. 숨 한 줌 집어넣기도 힘들어,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아아, 젠장. 그는 잔뜩 화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미……!”


 당연하게 날아올 비난의 목소리를 숨을 들이마시며 받아낼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 도중에 멈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억눌린 숨을 참아내는 와중에 그의 얼굴이 변하는 모양은 절망적이다. 비릿하게 쫙 찢어지는 입과 내리꽂히는 시선이… 안 돼, 제발.


 “너 좆됐네. 그치?”


 완연하게 얼굴에 피어오른 감정은 친밀감도, 경멸감도 아닌 지배욕이었다. 팔이 부들부들 떨려 품에 안은 종이가 떨리는 것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다시금 변한다. 핥아 내리던 시선이 매섭게 주위를 살피곤 팔을 낚아챈다. 미처 갈무리 못한 종이가 우수수 바닥에 떨어진다. 억지로 딸려가면서도 떨어진 종이는 줍고 싶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러진 못하고 남은 책과 종이만은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힘을 줘 껴안는다.





 찰칵.
 빈 강의실에 걸쇠 잠그는 소리가 청량하게 울렸다. 강의실 한복판에 밀쳐져서 아무것도 못하는 사이에 뒤에서 또 다른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쩍쩍대는 고무밑창과 고무바닥이 마찰되는 소리는 정신이 깨지는 소리와 비슷했다. 금이 간 곳에 이름을 새겨 넣으며 정신을 다잡았다. 파피루스, 알피스, 언다인, 토리엘, 아스고어… 프리스크. 지난번 어린 괴물이 인간 아이에게 실수로 마법을 사용했던 일로 아스고어와 프리스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금방 떠올랐다. 포비아들이 그것보라며 괴물들과 인간을 함께 할 수 없다며 날뛰어댔는지는 뉴스 헤드라이트를 볼 때마다 푹푹 한숨짓고 아예 아스고어와 프리스크가 오면 TV를 꺼버리는 토리엘만 봐도 알았다. 그 일 이후로 인간의 반경 3미터 안에선 마법을 쓰지 못하도록 법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그게 고작 한 달 전 일이다. 그런데도 그걸 어기다니. 자책감이 목을 옥죄었다. 하지만 자책한다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행스럽게도 자신이 마법을 쓴 것을 발견한 것은 그밖에 없었고, 이곳에도 오직 그와 자신 단 둘 뿐이다. 애원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있던가.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며 숨을 들이켰다. 책상 위에 책과 종이를 올리고 크로스백의 끈에 손가락을 걸고 돌아섰다. 단 세발자국 앞에 멈춰선 그의 신발을 바라보고, 진청색 바지와 하얀 면 티셔츠, 마지막으로 약간 누리끼리한 목과 매끈한 턱에 시선을 고정한다. 차마 그곳에서 더는 시선을 올리지 못하고 시야가 흔들린다. 포비아, 괴물, 교수, 소문, 마법… 어느 것 하나 영혼의 시선을 잡아먹지 않는 것이 없어서 개별적인 생각들이 한꺼번에 의식 위를 흩트린다.


 “뭐하냐?”


 비웃음이 역력한 목소리가 턱 위에서 쏟아져 내려 어깨를 짓눌렀다. 잘못했다고 말하고 빌어야 한다. 제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이 일이 알려지면 괴물들이 어떤 일을 당할지 생각해달라고. 그저 우리는 지상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싶을 뿐이란 걸 호소하며 애원해야 한다. 포비아들 생각처럼 우리는 인간에게 어떤 악의도 가지지 않았다고. 그저 아까 그 마법은 실수일 뿐이었다고. 젠장, 포비아인 인간들도 많이 봐왔으면서 고작 교수 하나가 포비아인걸 알았다고 정신을 놓다니. 애초에 알피스를 제치고 왜 자신이 대학생이 되었는지를 잊었는가. 포비아들에게 겁먹은 알피스를 대신해, 자진해서 대학에 들어왔지 않는가. 그런데도 이런 병신같은 실수를 하다니. 애원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의식이 자꾸만 자책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시간도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알려줬으면…….”
 “미안해. 잘못했어.”
 “…좋겠어?”


 말을 하고서 후회했다. 조금 더 늦게 말했어야 했는데. 중간에 말이 잘린 그의 표정이 굳는다. 영혼이 철렁 내려앉는다.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어. 미안… 미안해. 뭐든 다 할 테니까……. 제발, 비밀로 해줘.”


 두 손을 모아잡고 필사적으로 애원하자 굳었던 표정이 서서히 풀린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그래, 그 이상한 소문이 돌기 전엔 그와 말도 자주 나눴었다. 제법 친하게 지냈었으니까, 그 이상한 소문 때문에 멀어졌더라도 어느 정도 인정에 호소할 수 있겠지. 다행이야. 포비아에게 들켰더라면 빼도 박도 못 하게…


 “뭐든 다 하겠다고? 와, 창남이라서 그런가 진짜 말이 잘 나오네.”
 “…….”
 “그래, 소문돌 때 토 나오는 줄 알았는데 궁금하기도 했거든.”
 “…….”
 “뭘 멀뚱히 보고만 있어? 와서 해봐. 빠는 것도 잘 하겠지?”


 한순간 아득히 먼 곳으로 도망쳤던 정신은 눈앞에 들이밀어진 남근을 보면서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지와 팬티를 살짝 내리고 그 속에서 부풀어 오른 그것을 꺼내든 그는 한 손으로 그것을 쥐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역겨움과 당황스러움 중엔 아직까지 당황이 더 앞섰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자 그는 빨리 하라며 다문 이에 그것의 끝을 문질렀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뺐다. 굳어지는 그의 표정을 보고서야 아차 싶었다. 그렇지만, 뭐든 하겠다고 했지만 이런 것을 생각하진 않았다. 모멸감이 영혼 위로 피어올랐다. 하지만 애써 그걸 표정으로까지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어느새 그의 표정은 본능이 위험신호를 보낼 정도였다.


 “야.”


 긴장한 몸이 크게 움칠했다.


 “피해?”


 헛웃음을 지으며 내뱉는 말에 팔뼈가 덜덜 떨린다. 위험하다. 만약 그가 바깥에 “저 해골괴물이 나한테 마법을 썼어요.” 하고 말만해도 포비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텐데. 하물며 그게 진짜라면 어떻게 될 지야 뻔하지 않겠나. 그렇지만, 지금 그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진 않다.


 “이런 것 말고…….”
 “씨발, 창남새끼가 존나 몸 사리네. 야, 어차피 너 돈 주면 대주잖아. 돈 안주면 못 대준단거냐?”
 “그런 거 아냐!”


 억눌러왔던 부정이 하필이면 왜 지금 터질까. 이를 악물며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 눈구멍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난 그런 짓 하지 않았어. 대체 어떻게 그딴 소리가 도는 진 모르겠지만 난 절대 그런 게 아냐.”
 “…….”
 “마법 쓴 건 미안해. 내가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봐. 그렇지만, 이건… 이런 것 말고 다른 건 다 해줄 테니까…….”
 “와, 이거 존나 웃긴 새끼네. 야, 니가 지금 이거 저거 가려가면서 먹을 때냐? 존나 고오급이라서 내건 눈에 안차는가보네. 허이구.”


 더러운 창남 새끼. 이죽이며 쏘아 붓는 말에 뼛 마디마디가 시리다. 눈구멍 안쪽에서 차오르던 것은 쏙 들어간 지 오래다. 바닥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절망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느낌이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도 입만 뻐끔거릴 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 잘 생각했어.”


 그 입 움직임이 말하기 위함이었단 것을 모르는지 그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서며 그의 것을 벌린 사이로 찔러 넣었다. 아니, 알면서도 넣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어느 쪽이든 답은 이 길밖에 없다. 빈 입 안에 차오른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만약 괴물이 상해를 입으면 그 죄는 재물손괴로 죄를 묻는다. 법적으로 아직 괴물은 인외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괴물은 특정 인물의 소유물로 지정되어있단 것이다. 그 특정인물이야 물론 프리스크지. …그 수많은 괴물들이 고작 어린 아이의 소유물로 지정되어 보호된다. 처지를 생각한 순간, 절망과 이성이 하나가 된다. 시야를 어지럽히던 무수한 생각들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며 의식은 현재만을 또렷하게 인식한다.


 “씨발, 야 제대로 안 빨아?”


 혀도 없는 빈 해골의 입은 아무런 느낌도 없을 것이다. 이를 세우지 않으려 나름대로 노력하는데, 그 때문에 오히려 흡입력이 약했나보다. 뭐, 좆을 빨아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입 안 깊이 집어넣자 목뼈 최 윗단 부분에 끄트머리가 닿는다. 그 뿐이다. 해골에 이러는 건 전혀 의미가 없는 일이란 것을 그가 알아줬으면 한다.
 괴물을 살해한다 해도 그 죄목은 재물손괴이다. 하물며 괴물을 강간하는 것은? 물건에 박아 넣는 짓은 같은 인간으로서도 혐오를 불러일으키겠지. 그렇지만 그 죄 역시도 똑같은 법으로 처벌받을 것이다. 처벌받기라도 한다면 다행이다. 누군가 키우던 강아지를 수간했던 어느 남자는 동물보호법으로 처벌받았다. 그렇지만 괴물은… 그만 두자. 애당초에 이딴 생각자체가 쓸모없는 거다. 마법을 쓰는 것을 들켰으니 뭐든 해서라도 입을 막아야지. 더군다나 지금은 중요한 시기다. 괴물이 인간으로서 인정받느냐를 판가름 하는 이 시기에 또 사회에 나온 괴물 하나가 인간의 몸에 맞닿게 마법을 썼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어떻게 될 지야, 그런 실수를 저지른 머저리도 안다.
 깊게 파고든 페니스를 입안에서 빼낸다. 괴물들을 인간으로서 인정받게 하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꼬마와 왕을 생각한다. 다시 깊게 들이킨다. 인간으로 인정받을 때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괴물 모두를 생각한다. 안에서부터 풍기는 지린내에 구역질이 치민다. 그렇지만 지금 잠깐 하는 이 행위는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인내한다.


 “이 씹!”


 이마가 밀쳐지며 입에 머금은 것이 빠져나갔다. 물기 없이 메마른, 어두운색의 살덩어리가 눈앞에서 덜렁거렸다.


 “더럽게 못하네. 뭐야 씨발. 혀 없어? 혀?”


 우악스레 턱을 잡고 이마를 세게 민다. 입이 끝까지 벌어지고 그는 속을 들여다본다. 텅 빈 속을 확인한 순간, 표정이 확 구겨진다. 것 봐, 이런 해골에게 누가 박느냐고.
 다시금 욕지거리를 내뱉은 그를 무릎을 꿇은 채로 그저 바라봤다. 어쨌든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 남은 건 그의 입에서 다른 제안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좀 더 운이 좋다면 여기서 그만두고 마법에 대해선 함구해 준다는 약속이 나올 수도 있지만… 글쎄, 그런 기대는 안하는 것이 좋겠지. 내려다보는 눈을 보면 안다. 어중간하게 달아오른 욕정을 토해낼 배출구를 찾느라 번들거리며 훑어 내린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했는지 턱을 잡은 손마저 뒤통수로 돌리고… 시선 바로 앞에 귀두와 요도가 자리 잡는다. 설마 하는 생각보다 먼저 무의식적으로 눈을 질끈 감고 목에 힘을 주어 버틴다.


 “야, 눈 떠.”


 눈꺼풀에 단단한 살덩이리가 문질러진다. 뒤에서 밀고 앞에서는 눈꺼풀 사이에 문지르는 통에 꼭 감은 눈구멍이 벌어지려한다.


 “이…….”
 “눈 안 뜨면 말한다?”


 처음부터 승산이 없던 힘겨루기였던 것은 안다. 설득을 위해 열었던 입을 다시 다물고 다가올 고통을 대비하며 결국은 눈구멍을 열자 곧장 틈새를 막대가 비집고 들어온다. 대비했다지만, 최악이다. 텅 빈 두개골을 메우고 있던 마법이 휘저어진다. 시야에 꽉 들어찬 흉물은 눈 안에서부터 보였다. 언뜻 다른 눈에 보이는 그의 표정은 놀람이 드러나 있다.


 “한 번쯤 뭐든 박아보고 싶었는데, 입보다 낫네?”


 이게 낫다고? 고통에, 이빨이 다다닥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건가? 어떻게든 이를 악물어보려고 애를 쓰지만 이건 이미 자의로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조금 더 턱뼈에 힘을 넣는 거 보다 먼저 그것이 두개골 끝까지 들어와 벽에 문질러졌다. 절로 눈물이 흘러나와 눈구멍을 적신다. 눈구멍이 절로 닫히려고 힘이 들어갔지만 안에 들어온 막대를 내보내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시야가 까맣게 타들어가고 이젠 그저 목구멍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것만 겨우 막아내는 실정이다. 그리고, 그걸 당연하게도 모를 그는 본격적인 추삽질을 시작한다.


 “끄…그윽……!”


 두개골의 양 옆을 잡은 손이 다시 들어오는 것에 맞춰 두개골을 힘주어 끌어당겼다. 깊숙이, 두개골 위로 올라왔다, 목구멍 근처까지 아래로 내려왔다, 아주 목뼈에 닿도록 박아댔다. 덕분에 벌어진 목구멍 때문에 잇새로 비명이 새어나온다.


 “씨발, 눈구멍… 썅…….”


 질척대는 소리와 안쪽에서부터 울리는 소리에 뒤섞여 목소리가 흘러들어온다. 입이 한껏 벌려지지만 악 소리조차 내뱉지 못하게 고통이 목을 틀어 움켜쥔다. 그의 청바지가 가까워졌다, 완전 암흑이 되었다, 점멸하는 시야가 요지경이다. 팍팍 튀는 고통에 따라 입이 벌어지고, 시야가 터져나간다.




 짧은 기절에서 깨어나는 동시에 그가 눈구멍에서 그의 것을 꺼냈다. 번들거리는 앞엔 희끄무레한 점액질이 묻어있다.
 두개골에서 손을 떼어낸 그는 어느새 그의 옷이 구깃구깃하게 콱 틀어쥔 뼈뿐인 손을 탁 떨쳐냈다. 휘청, 종잇장마냥 힘없이 몸이 흔들린다. 쓰러지려는 방향으로 겨우 손을 짚어 버텨냈다. 색이 뒤섞인 시야에 점차 빛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진다. 눈구멍을 몇 번 깜박이자 물질육신에 밀려났던 마법 시신경이 차차 돌아왔다. 고통도 점차 가라앉았다.


 “진작 눈에 박을걸.”


 옷이 들려올라가는 것이 느껴지고 뒤이어 그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눈을 깜박거리다, 옷이 내려가는 것이 느껴지고 지퍼 올라가는 소리를 듣자마자 스스로도 놀라울 반사 신경으로 그의 옷자락을 잡아챘다.


 “약…켁!”


 말하지 말아달라고 약속해달라는 말이 속에서 우러나온 액체에 턱 막혔다. 한참을 콜록거리는 사이에 그는 다시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의식적으로 더 꽉 틀어쥐고 놓지 않았다.


 “야, 씨발 안 놔?”
 “약, 허윽, 속을…….”
 “당장 안 놓으면 나가자마자 분다?”


 그 말에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결국은 손가락을 풀어냈다. 펄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가 새 옷인데 다 구겨졌다며 짜증을 내는 것이 들렸다. 떨어뜨린 손을 주억 쥐다, 고개를 치켜들어 그를 바라봤다.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그는 옷을 털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시선을 느끼곤 얼굴에 더욱 짙은 노기를 띄우고 눈앞의 해골을 노려보기 시작한다. 아직 입가에서 닦아내지 못한 액들이 턱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말, 하지 않을…….”
 “장난하냐? 남의 옷 이따위로 구겨놓곤 씨발, 어이가 없어서…….”
 “옷은, 보상… 해줄 수 있어. 그러니까…….”
 “허, 야, 그건 당연한 거지.”


 어이가 없단 듯 그는 집게손가락으로 두개골을 꾹꾹 누르곤 마지막으로 꾸욱 힘을 줘 밀쳐냈다. 헐떡대는 것만으로 벅차던 몸이 균형을 잃고 다시 기우뚱 기울며 이번엔 거의 반쯤 엎어졌다. 팔뚝으로 바닥을 짚어 상체 반만 겨우 세우고 시선을 그에게 고정했다.


 “번호 있지? 부르면 재깍재깍 튀어나와라.”
 “뭐?”
 “뭐.”


 냉소어린 시선에 그만 몸이 얼어붙는다. 시야가 흔들리며 그의 몸마저 흔들거렸지만, 실제의 그는 전혀 흔들림이 없다. 반쯤 열었던 입이 다시 다물리고 그만 고개를 떨어뜨렸다.


 “도망치면, 알지?”


 피식, 비웃는 소리가 머리를 울린다. 그의 발이 뒤로 돌아갔다.
 자박거리는 소리에 맞춰, 텅 빈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간다.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메우고, 고개를 치켜들고, 돌아서는 뒤통수를 향해 왼손을 내뻗다가……. 그러다가… 결국은 손을 내리고 만다.
 여기서 그를 죽이고 먼지로 변한다면, 이라는 선택지를 택하는 건 결국은 또 혼자만 편해지자고 하는 일이겠지.
 처음 맞닥뜨렸었던 적의어린 시선이 떠오르는 와중에 걸쇠가 열리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려왔다.






 조롱이 현실이 되어 정말로 정액이 묻어 들숨을 들이킬 때마다 구역질나는 냄새가 풍겼다. 그렇지만 결석을 했다간 단번에 들통 나는 신분으론 남은 수업을 무단으로 불참할 순 없었다. 나간 진도를 다음시간에 설명해줄 만큼 교수는 친절하지 않았고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도 그럴 만큼 친하지 않았다. 수업에 불참한 사이에 나온 과제를 설명해줄 이 역시 없었다. 결코 집중할 수는 없는 상태였지만 결국은 본분을 되새기며 이제까지처럼 꾸역꾸역 남은 수업마저도 들어야 했다.
 그나마 천만 다행인 것은 수업이 모두 마친 뒤 집에 돌아오고서 까지도 휴대폰이 울리는 일은 없었단 것이다. 결코 연락이 오지 않았으면 하지만 점퍼 주머니에 넣은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도 못했다.






 헤이트들이 판을 치는 와중에 괴물 대사관과 괴물 대왕은 여러 방면으로 대단한 업적을 달성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에봇산 근처의 괴물 자치 구역이었다. 지하에 매장된 막대한 양의
금을 주고 에봇산 주위의 토지를 사, 온전히 괴물들의 땅으로 만든 것이었다. 덕분에 괴물들의 왕은 법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영토를 가진 왕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그저 결계가 지하에서 지상으로 넓어졌다는 것일 뿐, 괴물들은 여전히 갇혀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에봇산 괴물들의 자치구역과 가장 가까운 인간들의 거주구역은 고작 10km도 되지 않았지만 몇 건의 사고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괴물들은 자치구역에서 벗어나지 않게 되었다. 괴물들은 여전히 에봇산에 봉인된 것이었다.
 동생을 끔찍이도 아끼는 형과 괴물들을 사랑하는 대사관의 만류로 에봇산 자치구역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파피루스는 매일 저녁 그의 형이 돌아오는 것을 언제나 같은 감정으로 환영해주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잔뜩 곤두선 정신으로 조금은 힘없이 다녀왔다는 인사를 건네자 동생은 주방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형 왔어? 라고 말했다. 동생의 목소리가 좀 더 밝아진 것 같다. 동생에게 그래 하고 대답해주고 좀 더 걸어 거실을 살피니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지정석에 떡하니 널브러진 것이 눈에 띄었다. 자신보다 더 축 늘어진 그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팔만 들어 까딱거렸다. 며칠 잠도 제대로 못 잔 것인지 그마저도 금방 푹 떨어뜨리는 것을 보니 심경이 이래저래 복잡해진다.
 이미 자리를 차지한 이가 있다지만 계단을 타고 방까지 갈 정도의 힘이 남아 있지 않은건 이쪽도 마찬가지인지라 작은 빈틈에 뼈뿐인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정수리에 엉덩이가 닿는 것이 불쾌한 모양인지 인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천천히 몸을 올려 삐뚜룸하게나마 소파에 앉았다. 머리 자를 시간도 부족했던 것인지 전에 봤을 때보다 길어져 이젠 귀를 덮을 정도인 머리칼은 끝부분이 갈라지고 상해 제 색보다 더 연해져 있었다. 무엇보다 누렇게 뜬 얼굴이 정말로 피곤해 보인다.


 “하음. 아아, 나도 지름길 같은 거 있으면 비행기 안타고 다니겠는데…….”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하곤 예전엔 좀 더 꼬마였던 인간이 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려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작은 해골을 겨냥해 말했다. 지름길 같은 게 있으면 방에 올라가서 쉬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런 적대감이 한두 번도 아니었기에 평소 같았다면 그저 웃고 넘겼을테지만 오늘은 좀 많이 신경이 날카로웠다.


 “인간이 있는데 어떻게 마법을 쓰겠어, 친구.”


 제 대답에 인간은 감았던 눈을 한쪽만 밀어 올려 제 키보다 작은 해골을 내려다봤다. 그렇지만 딱히 아무런 행동도,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이쪽도 예전이었다면 질 나쁜 농담이라도 던졌을테지만 이젠 그런 건 없다. 이건 딱히 오늘 피곤해서 때문이 아니다. 오늘만이 아닌 이야기니까.


 “좋았어! 조금만 기다려! 이제 이 위대한 파피루스님의 스파게티가 다아… 되어가고 있으니까!”


 소파에 널브러진 한 인간과 한 해골은 부엌을 향해 동시에 그래하고 대답했다. 한쪽은 늘어지는 목소리로, 그리고 다른 한쪽은 가장 밝은 목소리로.
 인간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부엌 쪽을 바라보곤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눈을 감았다. 사랑하고 아낀다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이다. 동생의 애인이 동생을 끔찍하게도 아낀다는 사실을 고까워할 형은 없을 것이다. 비록 동생을 대하는 것과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극과 극일지라도. 뭐, 시간을 멋대로 돌릴 수 있는 능력자가 동생을 사랑하고 지켜준다는데 그걸 마다할 형이 누가 있겠느냐마는.


 “…일은 잘 되고 있어?”
 “언제는 잘 되었던 것처럼 말하네.”


 부엌까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인간은 한껏 비꼬았다. 그렇지만 이쪽에서 딱히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콧방귀를 뀌곤 나쁘게 되어가고 있진 않다고 대답했다. 인간은 벽에 걸린 달력에 잠시 시선을 두고는 한숨을 내지으며 소파 등받이에 완전히 기대어 목을 뒤로 젖히곤 팔을 들어 올려 눈을 가렸다.


 “오늘은 누구였어?”
 “전부. 세 번째에서.”


 그쯤에서 더 묻지 않고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텁텁한 먼지가 목구멍 속으로 쑤셔 넣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망각은 신이 내린 가장 큰 선물이다. 문득 그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요즘 들어서는 파피루스의 스파게티도 먹을 정도는 되었다. 50%의 확률로 먹을 만한 것과 먹지 못할 것들이 갈라져서 나왔는데, 안타깝게도 오늘은 꽝이었던 모양이다. 재료 선택도 완벽했고 조리법도 괜찮았는데 선물로 받았는데 마실 일이 없으니 요리할 때 쓰라고 프리스크가 가져온 와인이 구멍이었다.
 알코올이 올라 식탁에서 꾸벅거리는 파피루스를 무사히 방으로 데려다 놓고 오니 마찬가지로 술에 취한 인간이 스파게티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저대로 놔두면 질식사로 죽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 그래서 잠시 망설였다. 인간이 죽을 때마다 인간이 지하에 떨어진 때로 돌아간다면 오늘 있었던 일도 사라질 테니…….


 “…흐, 취했어?”


 지금 이 집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취한 모양이다. 실없는 생각을 저 멀리로 밀어놓고 인간을 일으켜 세우자 식탁의 등불 때문에 눈이 부신지 소스가 묻어 지저분해진 얼굴이 잔뜩 찌푸렸다. 싱크대에 널려있는 행주로 얼굴을 대강 닦아내주자 제법 으부부 하고 제법 귀염성 있는 소리를 낸다. 저도 모르게 픽 콧방귀를 뀌니 끔뻑대며 인간이 눈을 뜬다.


 “…이 상황, 저네도 이썬는데…….”
 “다른 샌즈랑 했던 것 같은데.”
 “…응.”


 웅얼대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곤 그래 맞네 하고 중얼거리는 폼이 술주정이 뭔지 알만했다. 능력도 시간을 되감는 것이면서 술주정도 돌림말이라니 어쩌면 인생을 악보로 비유하자면 프리스크의 인생은 온통 도돌이표로 점철되어있을 것이다.


 “그 때느은, 파피루스 스파게티 머꼬 이러지 아났어.”
 “그래?”
 “그래. 그 때는…….”


 게슴츠레 불빛을 바라보던 프리스크의 눈가에 금세 물방울이 맺힌다. 작은 눈망울 속에 담겨있을 총 23번의 시간선은 가늠할 수는 없지만 끔찍했단 것만은 안다. 얼굴을 닦아주던 행주를 손에 쥐여 주자 흐릿해진 눈동자가 이쪽으로 향한다.


 “그때도… 너만, 나마서…….”


 기어코 눈물이 방울져 눈가를 따라 흘러내린다. 울먹대는 목소리가 술에 취해 제대로 발음도 되지 않는데도 ‘너만’이라는 그 한 단어만은 또렷하게 떠올라 영혼에 쿡쿡 박혀댄다. 처음듣는 말은 아닌데도 언제나 그 ‘너만’이라는 단어는 영혼을 깊게 할퀴어댄다.
 모든 괴물들의 친구이자 구원자인 프리스크는 이미 오래 전부터 괴물들을 지키고 있었다. 그애는 지난 23번의 모든 시간선에서 모두와 친해지고 모두를 이끌고 지하에서 나왔지만 매번 모든 친구를 잃었다. 자신을 완전히 믿지 못해 지하에 홀로 남은 작은 해골 친구만이 언제나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래서 항상 친구들이 죽고 난 뒤 그 장례식에서는 작은 해골 괴물과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그 곳에서 모두를 보냈다고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시간을 반복하곤 프리스크는 괴물들이 죽었던 날이면 작은 해골과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리고 오늘이 가여운 꼬마가 세 번째 시간선에서 모든 친구를 잃은 날이었다. 지난번에 찾아왔을 때는 다섯 번째라고 했다. 지지난번에는 아홉 번째……. 이렇게 찾아온 것이 이젠 열손가락으로는 셀 수 없었다.


 “샌즈, 난… 이번엔, 제발, 제발…….”
 “…….”
 “모두와… 파피루스랑,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어.”


 다시금 불빛으로 향했던 시선을 유지한 채로 아이가 말한다. 영혼이 다시금 찔끔 울린다. 낮에 마주했던 가맣던 시선이 떠올라, 한동안 입을 열지 못한다.


 “잘, 되어가고 이쓰니까……. 이버는… 아직까지… 잘 되고 있으니까.”
 “…….”
 “이버니, 마지마기 되게…….”
 “…그래.”


 답을 하자 아이가 이쪽을 향해 눈을 돌린다. 그 눈에게 염치없는 부탁을 할 수 없어 쉬지 않고 다시 입을 열어 말한다.


 “그래서, 나같은 사람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 않잖아.”


 순간 아이의 눈이 표독스레 모가 났다, 다시 풀어진다. 그리곤 푸흐하고 실없이 웃음을 흘린다. 이쪽 역시 그 웃음을 따라 짓는다.


 “마자. 그래, 이버넨… 이번에는 그러니까…….”


 또다시 그러니까를 반복하곤 아이는 한숨을 내짓는다. 몇 초 동안 자는 것처럼 눈을 감은 채 가만있다, 돌연 다시 눈을 뜨고는 입을 연다.


 “힘내자.”


 또박또박 발음하는 목소리엔 어떤 의지가 서린 것 같다. 노란빛으로 빛나는 등불이 모든 괴물들을 보호하는 아이의 눈동자 속에서 반짝인다. 그 의지에 함께 물들어, 그 말을 다시 꺼낸다.


 “힘내자.”




 몇 번 눈을 끔벅대다 프리스크는 그대로 의자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잠든 녀석을 소파에 옮겨두고 돌아오니 요리에 쓰고 남은 와인이 눈에 띄었다. 잔에 따르기 귀찮아 병 채로 들고 마시자 달면서도 쌉쌀한 맛이 입 안에 감돈다. 빈 부엌을 둘러보니 데자뷰가 느껴진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그 때가 떠오른다. 프리스크와 처음 만났던 날도 이렇게 혼자 술을 마셨었다.
 처음 만남부터 프리스크는 본인이 시간여행자라는 것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놓고 자신을 적대했다. 불러 세우는 목소리를 줄곧 무시하다 휙 돌아섰던 작은 꼬마의 눈동자에 서린 적의는 평범한 아이가 가질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모두를 죽였기에 나온 반응이라 생각해, 이쪽도 우호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게 착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분명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30번 이상의 시간을 반복한 것은 가늠으로 알 수 있었다. 안내를 받지 않고도 동생이 지은 문 틈 사이로 지나간다던가, 등불 뒤로 숨는다던가, 모든 퍼즐을 능숙하게 푼다던가, 다른 괴물들과 친해지는 것이 마치 매뉴얼이라도 숙지한 것마냥 자연스럽고 빠르다던가, 그리고 동생을 볼 때면 짓는 표정이라던가.
 동생을 볼 때면 꼬마는 언제나 울음을 참는 표정을 지었다. 동생이 30번 이상은 죽은 것을 본 듯한 반응이었다. 그것도 자기가 저지른 짓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짓으로.
 꼬마는 동생과 데이트를 했고, 그 뒤로 한참동안을 워터폴로 향하지 않았다. 동생이 없는 동생의 방에서 꼬마는 울기도 했었다. 동생이 30번 이상 죽었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도 그 형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건만.
 여러 번, 꼬마와 대화를 해보려 시도를 했었다. 그러나 번번이 꼬마는 무시하거나 또는 경멸어린 시선으로 쏘아보고는 그대로 꺼지라고 욕을 늘어놓거나 할 뿐이었다. 다른 괴물들에게는, 특히나 동생에게는 그렇게 다정하고 친절한 꼬마가 그 형에게는 자기 피 빨고 날아가는 모기보다 못한 취급을 하는 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동생의 중재로 꼬마와 겨우 단둘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처음엔 퉁명스럽게 대답하던 꼬마는 곧 제 속에 쌓인 울화를 내뱉으며 비난과 폭언을 서슴없이 쏟아 부었다. 스스로도 제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아이는 첫 번째 시간 선에서부터 이제까지의 그 모든 죽음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이유도.
 게으름만 잔뜩 피우는 해골이 지상으로 나가지 않는 것은 봐 줄 수 있었다고 아이는 말했다. 다만 모두가 죽고 난 뒤에 단둘만 남아 누구도 오지 않는 장례식을 치를 때 했던 말은 누구에게나 친절한 아이가 그 해골만큼은 미워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나 같은 괴물이 가만히 있으니 일이 이렇게 된 것이겠지.’


 사실은 그저 푸념성의 말이었다. 그저 지난 과거에 대한 후회의 말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 말은 똑같은 상황에서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면. 그 말을 내뱉는 괴물이 매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모두가 죽고 난 뒤에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 말을 했다면. 그 말을 들은 어린 아이는 과연 그 괴물을 좋게 바라볼 수 있을까.
 술이 좀 모자란다. 빈병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적막한 부엌엔 모든 것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벽에 걸린 시계만이 짹깍대며 초침을 움직인다. 술을 더 마시기엔 적격인 시간이다. 그렇지만 그깟 술 좀 모자란다고 움직이기엔 자신은 너무나도 게으른 해골이다. 테이블에 엎드려 하나부터 열까지 초침을 따라 세어본다. 술에 취한 해골이 잠들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전화는 예상했던 것보다는 덜 빈번했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꼭 전화벨이 울렸지만 과 특성상 같은 수업이 많다보니 수업에 빠지는 일은 없었다. 가끔 지각을 하긴 했다. 가장 눈에 띄는 학생이 늦으니 교수가 흰 눈으로 보긴 했지만 결석이 아닌 이상은 점수 채점에 관여하는 정도는 적으니 이만한 게 다행이었다.
 물론 예상대로인 것도 있었다. 인간은 LV와 EXP를 취하듯, 날이 갈수록 잔혹해졌다.











생각난김에 올림

다음편은 언제쓸지 모름

오홍홍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