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하는 브금은


http://bgmstore.net/view/gb01n - Freetempo의 '비'와


http://bgmstore.net/view/SeqZt - Weekly Piano 의 밤벚꽃.



기왕이면 들으면서 봐주면 좋겠어. 내가 들으면서 썻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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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래서, 프리스크 대사.


-자네는 누구의 편이지?


-자네는 도대체 무엇인가.


-인간인가?


-아니면...


-괴물인가?




2.



 "... 그게 무슨."


 "확실히 세상은 평화로워. 분쟁은 끝났고, 더 이상 피가 흐를 이유가 없는 세상이 찾아왔지. '표면적'으로는 말이야."


남자의 손가락 끝이 신경질적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딱-딱-딱-딱-...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소음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억지로 남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소녀. 유감스럽게도 그런 예민한 소녀의 감성을 신경 써줄 만큼의 섬세함이 남자에게는 없는 듯 보였으나, 소녀에겐 어떻게 해서든 이 불유쾌한 상대와의 대화를 좋은 방향으로 끝맺음 지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꽤나 긴 시간이 흘렀어. 그 어리던 소녀가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되고, 젊은이 특유의 패기가 넘치던 남자가 중년의 멋을 뽐내는 나이가 되었지. 표면적으로는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히고, 어느 정도 평화로운 세상이 된 듯 보이는 시대가 왔다네. 그런 세상이 되었어. 하지만, 조금만. 조금만 그 겉껍데기를 까고 들어가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게, 지금의 현실이네."


자네도 알고 있지? 그 정도쯤은. 감정 없는 웃음을 띠며 남자의 입이 끝없이 움직였다. 소녀의 표정이 조금 더 일그러졌다는 사실을 뻔히 눈치채고서도, 가식적인 웃음을 지우지 않으며. 위선자. 교활한 녀석. 기생충같이 권력에 빌붙어 제 밥그릇 지킬 생각만 하고 있는 걸 누가 모를 줄 알아?


...따위의 폭언들이 머릿속에서 맴돌다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지만, 끝끝내 말이 되지 못한 채 가라앉았다.


 "아직도 사소한 부분에서의 분쟁들은 계속되고 있어. 일상적인 부분들. 복지. 일자리. 자원의 배분. 인간의 시점에서 생리적인 혐오감을 불러오는 외형의 괴물들은, 그것만으로도 주변의 트러블들을 끌어당기지."


 "하고자 하시는 말이 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시원한 진행 감사하네, 대사. 그럼 직접적으로 말하도록 하지."


째깍. 시곗바늘이 움직였다. 소녀의 시간이 멈췄고, 동시에 남자의 목소리가 끝났다.




3.


-우리는 다시금 괴물들이 지하로 돌아가주길 희망하네.


-가급적이면, 서로 피를 흘리지 않는 평화적인 방향으로 말이야.


-우리로서도 이런 선택은 가슴 아프네만,


-같은 '인간'인 당신이라면 이해해줄 거라 믿네. '대사'.




4.



바람이 차가웠다. 뺨을 쓸고 지나가는 공기의 감촉이 거칠다.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모자를 푹 눌러쓰는 것으로 가려보지만, 썩 기대한 만큼의 효과는 나오지 않았다. 한숨이 하얀 김이 되어 솟아올라 흩어져 갔다. 흐린 하늘이 금방이라도 눈을 토해낼 듯 일렁거렸다.


 "표정이 별로 좋지 않은걸, 친구."


허스키한 톤의 목소리. 어느샌가 소녀의 옆에 서서 함께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이형의 남자. 뼈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추위를 타는 것인지 입고 있는 점퍼가 꽤나 두껍다. 무슨 원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깜빡거리는 눈동자가 짓궂게 윙크를 날려왔다.


 "샌즈."


 "이런 날씨에 너 같은 꼬맹이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으면 안 되지. 나이에 어울리게 행동하라고. 웃어. 스마일."


 "너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해."


 "개그라도 해줄까?"


 "봐달라고."


킥킥. 어때, 기분이 좀 나아졌나? 응. 고마워.


 "지금의 넌 혼자가 아니야. 얼마든지 기대고, 얼마든지 의지해. '우리'가 네 부탁을 거절할 일은 없을 테니까."


 "참고할게. 그때 가서 딴소리하지 말라고?"


 "꼬맹이의 억지를 들어주는 거야말로 어른의 의무지."


 "나도 이제 꽤 컸다고. 꼬맹이라 하지 마."


 "이런. 뼈아픈 현실을 굳이 그렇게 입에 담을 필요는 없다고?"


물기가 얼어붙어 미끈거리는 바닥을 스키라도 타는듯한 감각으로 나아간다. 발걸음을 따라 녹아내리는 물방울들. 흘러내리는 물기가 눈물마냥 길게 이어지다 다시금 얼어붙는다. 순간의 변화. 길게 이어질 것도 없이, 뒤돌아보면 어느샌가 사라져있을 사소한 변화들. 옆을 걸어가는 저 눈치 빠른 괴물이 알아차리지 못하기를 바라며, 작게 한숨을 내쉰다. 훅 불어나오는 하얀 김이 그런 소녀의 바람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시야를 채웠다.


 "... 뭐, 기분도 꿀꿀해 보이니 간만에 다 같이 모여서 파티라도 하자고. 스파게티를 먹고, 사이다를 마시며, 후식으로 파이를 즐기는 거야."


 "설마, 파피루스가 만든 스파게티에 달팽이 파이는 아니겠지?"


 "그럴 리가. 내가 만든 스파게티에, 머펫의 가게에서 사온 파이야."


물론 사이다는 거미 사이다지. 이런, 샌즈 제발!


흐릿한 웃음이 지나갔다. 차가운 공기가 웃음소리에 섞여 이리저리 퍼져간다. 좋아, 모두에게 연락해줘. 오, 대사의 자택에서 파티라니 영광인 걸. 친구조차 부르지 못하는 집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 하하, 오늘 밤은 뼈빠지게 노는 건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힘들 땐 모두에게 의지해. '그 힘'을 다시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상, 넌 더 이상 전지전능하지 않아."


 "... 빨리 가자. 추워."




5.


-딱 하나, 딱 하나 남은 위협.


-모든 걸 지워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자.


-맞아. 난 지금 너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거야.


....


-그러니까 제발.

-그들을 보내줘.

-이 이야기를 끝내지 말아줘.

6.

유쾌한 웃음소리가 도심을 내달렸다.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마저 이곳만큼은 비껴간다는 듯, 거리의 '사람'들의 표정에는 조금의 그늘짐도 보이지 않았다. 토끼를 산책시키고 있는 토끼가 거리를 지나가고, 그 옆에서 음식점 앞에 쌓인 눈을 쓸고 있는 불덩이 남자가 보인다. 카페 안을 돌아다니며 손님에게 차와 간식거리를 내주고 있는 것은 거미들이며,  스마트폰을 켠 체 두꺼비의 모습을 한 베스트셀러 작가와 인터뷰하고 있는 기자 따위 그다지 신기한 볼거리도 아니다.


아직 해가 떠있는 거리. 평화롭다. 최소한 소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렇게 보인다 믿으려 했다.


골목길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구타음으로부터 귀를 닫았다.


피투성이가 된 체 비틀거리며 빠져나오다 다시금 골목 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괴물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언뜻 보인 촉수의 끝자락과 그 끝에 붙잡힌 체 발버둥 치는 인간의 모습을 기억에서 지우려 노력했다.


재 가루가 휘날렸고, 붉은 물방울이 튀어 올랐다.


흐릿한 쇠 냄새와 희미한 비명과 멀리서 들려오는 절규와...


 "... 하아."


눈을 감았다 뜬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침묵하고 있는 골목길이 보였다. 튀어 올랐던 핏방울도, 허공에 퍼져나가던 재 가루도 보이지 않는다. 비명은 멈췄고, 쇠 냄새는 사라졌다. 중증인걸. 요즘 좀 무리한 걸까. 병원이라도 가봐야겠어. 따위의 생각들이 소녀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두통이 몰려왔다.





7.


 "덤디덤-"


리듬감 있는 흥얼거림. 굵직한 목소리가 연주하는 클래식한 멜로디가 흥겹게 학교 내의 정원을 울린다.


 "요, 학교장님."


소녀의 목소리는, 어쩌면 그런 자신만의 예술에 심취해있는 저 중년의 남자에게 있어 방해였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오, 우리의 자랑스런 대사님 아니신가."


오늘은 운 좋게 오후에 업무가 없는데, 같이 차라도 한 잔 하겠나? 하하.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남자. 아스고르는 그런 소녀의 급작스러운 방문을 썩 환영하는듯한 모습이었다. 부드러운 시선. 여유 있는 목소리. 기울여져있던 물뿌리개를 바로잡은 아스고르가 바로 앞까지 다가온 소녀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토리엘과 알피스를 만날 수 있을까요?"


 "... 또 썩 골머리를 썩이는 화제를 들고 온 모양이군."


언다인은 지금 학교에 없을 텐데. 언다인에게 말하면 큰일 날만 한 이야기라. 오늘이 주말이라 다행이군.


 "토리... 토리엘은 지금쯤 교무실에 있을 걸세. 학교가 빈 김에 청소를 하겠다 했거든. 알피스 에게는 내가 연락을 넣어놓지."


 "금방 끝날 겁니다. 저녁의 파티에는 늦지 않을 거예요."


 "음? 파티?"


 "... 샌즈가 모두에게 연락을 넣기로 했습니다만..?"


조금 침울해진 표정으로 '그... 그런가.'라며 답하는 아스고르. 그 모습에 와하하 과장스러운 웃음을 터트리는 소녀. 분명 아직 전화를 하지 않았을 뿐일 거예요. 아무리 없는 듯 지내고 계시다지만, 전 왕님을 잊겠어요.


침울한 체 대답하는 아스고르를 뒤로 하며, 학교 건물의 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소녀. 뒤늦게 울려 퍼지는 휴대전화의 알림음에 화색이 된 아스고르의 목소리가 뒤따른다. 타이밍 끝내주는걸. 역시 샌즈야. 정원에 울려 퍼지던 흥얼거림을 이어받는다. 덤-디덤. 덤-디덤. 푸훗- 하는 웃음이 작게 터져 나왔다.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8.


 "... 고생했구나, 아가."


 "죄송해요. 나름 열심히 했는데, 잘 안되네요."


 "그런, 죄송하다니! 사과한다면 우리가 너에게 해야겠지. 어린 너에게 그렇게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한건 우리니 말이다."


그러니 사과하지 말렴. 자상한 목소리. 웃어 보이는 얼굴. 하지만 그런 따듯한 목소리가. 포근한 표정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소녀는 놓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굳이 그것을 지적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을 향한 그녀 나름대로의 배려였으며 동시에 그녀가 부릴 수 있는 최소한의 어리광이었다.


 "분명 그들도 두려운 것이겠지. 우리가 인간들의 강함을 두려워하는 것만큼, 그들 또한 우리의 불가사의함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임을 난 이해한단다."


이런 일 또한, 언젠간 일어날 일이었겠지. 토리엘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래. 그녀 또한 지금의 이런 얕은 평화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것쯤 진즉 깨닫고 있었다. 바깥의 세계는 산 아래의 세계처럼 부드럽지 못했으니까. 그녀가 지도자가 되어. 소녀가 완충 역할을 하며 억지로 억지로 끌어온 평화였으나, 그것 또한 일시적인 것. 그리고, 그런 불안정함이 이어지고 이어져와


 "이번이 고비...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든 버티고 서주세요. 제가 어떻게든 그들을 설득해서..."


 "아니, 아니다. 이번만큼은... 이번만큼은 네가 짊어지기엔 너무 무거운 일이구나."


 "저를 못 믿는 거예요?"


소녀가 날카롭게 물어왔다. 홉뜬 눈동자로부터 희미한 불안감과 짙은 의무감. 그리고 노골적인 실망감이 느껴져왔다.


 "아니, 아니란다. 그런 게 아니야. 그래, 그렇게도 받아들일 수 있겠구나. 내가 널 배려하지 못한 채 말했구나. 정말 미안하구나, 아가야."


하지만 너를 믿지 못 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렴. 토리엘의 손바닥이 부드럽게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토라진 아이를 달래듯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은 소녀였으나, 그런 토리엘의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불안감을 떠넘긴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으나, 이 손길을 뿌리치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일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이번 일은 아주 큰 위기가 될 거야. 지금까지는 너와 모두가 힘써주어서 잘 풀려왔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지."


벼랑 끝에 서있는 신세다. 토리엘은 소녀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트러블들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드는 불만들. 이익을 위해 이빨을 들이미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종교적인 이유로. 혹은 단순히 생리적 혐오감에 의해서 괴물들을 배척하려는 인간들 또한 있다.


표면적인 평화. 얕은 신뢰. 물러터진 믿음. 그런 괴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조율하는 것이 소녀의 역할이었으나, 그녀 혼자로선 그 모든 것들을 해결하기에는 당연하게도 역부족. 표면적으로 웃음을 띠면서도 등 뒤로는 칼을 갈고 있는 인간이라면, 분명 차고 넘칠 정도로 있었을 것이다.


토리엘 또한, 말하지 않았을 뿐 지속적으로 압박을 받아왔으리라. 이러한 사태 또한 예견하고 있었겠지.


 "아가야. 넌 너무 착하고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단다. 항상 굳은 의지로 앞을 향하려 하지만, 그렇기에 또 항상 쉽게 상처 입어버리고 말지."


무언으로 답한다. 특별히 반박할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언제나 어수룩하여 쓰러지려 한 소녀를 붙잡아준 것은 소녀의 친구들이었다. 동료들의 격려에 힘입어 앞으로 걸어올 수 있었다. 저런 따듯한 미소에. 헛웃음 짓게 만드는 농담에. 자신보다도 더한 밝은 어벙함에. 유쾌한 목소리에. 지금 자신이 서있는 이 자리가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소녀는 알고 있었다.


 "이 일이 어떻게 끝나든 우리는 널 원망하지 않을 거란다. 하지만, 넌 다르지. 착하고 정 많은 넌 분명 스스로를 많이 탓하며, 스스로를 많이 상처 입힐 모습이 눈에 훤하단다."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으나, 표정은 그리 부드럽지 못하다.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그런 말해봐야 웃음도 안 나와요. 걱정하지 마요, 그 정도로 약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요? 이번에도 분명...


이런저런 말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라앉아갔다. 목구멍 끝에 무언가 걸려있는 듯 답답한 열기가 입안을 맴돌았다. 소리가 되지 못한 말들이 한숨이 되어 흘러나왔다.


 "프리스크?"


 "어머, 조금 늦었네요? 알피스 선생님."


 "죄.. 죄송합니다 여왕님."


 "하아... 알피스? 슬슬 '토리엘 선생님'이라는 명칭에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네, 네넵 죄송합니다 토리엘 님! 하아, 알피스 제발.


급하게 문을 열고 뛰어들어온 것은 전 왕실 과학자 겸 현직 과학 교사인 알피스. 여전히 덜렁거리는걸. 따위의 생각을 하며, 슬쩍 손을 흔들며 시선을 모은다. 엣헴- 소녀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지나치게 과장된 낮게 깔린 헛기침 소리에 서로 점잖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 토리엘과 알피스가 조용히 시선을 떨군다.


 "욥. 알피스. 오랜만."


 "어.. 으... 미안, 프리스크."


 "아니, 뭐 사과할만한 일은 아니지. 간만에 얼굴도 봤겠다 당황해서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이해해. 너무 그렇게 시무룩해지면 오히려 내가 미안해지잖아?"


지금은 위로해줄 시간도 없다고. 피식. 소녀의 지친듯한 웃음에 알피스와 토리엘의 표정이 더더욱 굳어졌다. 사태를 알고 있는 토리엘은 당연하게도 할 말이 없었고,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알피스 또한 그다지 지금 상황에서 입 밖에 무언가 말을 내뱉을만한 염치가 없었다.


 "프로젝트는 어떻게 돼가고 있어?"


 "어.. 그, 그거?"


갑작스럽게 본론으로 들어가는 소녀. 굳어있는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일까. 알피스 또한 표정을 굳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녀의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계.. 계획 자체는 다 완성됐어. 필요한 건 인간들의 동의와, 충분한 지원뿐이지."


 "그렇다면?"


 "하지만, 그게 또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괴물들 전체를 수용할 만큼의 방대한 토지와, 그 토지에 생활을 위한 건물들을 짓기 위해 들어갈 돈. 인력과 시간. 무엇 하나 충분한 게 없달까, 안타깝게도 기술력이나 동원 가능한 인력 같은 건 우리 괴물들이 인간들에 비해 월등히 부족하니까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게 또 인간들 입장에서는..."


 "... 오케이. 알았어. 거기까지."


결론은 아직도 무리-라는 거구만. 골치 아프다는 듯 뒷머리를 거칠게 긁어내린다. 입맛이 썼다.


 "저기... 그, 갑자기 그건 왜..? 아직 계획했던 시간보다 훨씬 이른데."


 "... 그게 좀 그렇게 됐어."


대략적인 사정을 설명하고,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 더더욱 역동적이게 당황하는 알피스를 진정시키며 소녀는 두 괴물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중재안을 내기 위해. 지금까지와 같이, 한 발자국 자신들이 물러나는 방향으로. 이번에도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9.


유감스럽게도 그들에겐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여유'따위 남아있지 않았다.




10.


 "녜- 헤- 헤-! 위대한 파피루스 님께서 파티를 빛내주기 위해 찾아왔다고!"


 "이래 봬도 대사님의 집인데 그런 태도는 어떨까 싶은걸, 동생."


샌즈와 파피루스의 입으로부터 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불어오는 밤바람이 유독 차갑다. 말 그대로 뼈 시리도록. 그리 크지 않은, 두 종족을 이어주는 '대사'의 집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한 집. 흘러나오는 주홍빛 불빛은, 그 빛깔과 다르게 묘한 불안감을 품고 있었다. 옆에 있는 천진난만한 동생은 어떻게 생각하려나 알 수 없었으나 최소한 샌즈는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라는 막연한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여, 왔어? 늦었다구. 다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어."


 "이런, 미안하게 됐는걸."


목제 현관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희미한 불빛과 훈훈한 온기가 뒤섞여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흘러나왔다. 씨익 미소 짓고 있는 소녀의 얼굴이 빼꼼히 빠져나와 두 괴물을 환영했다. 얼른 안으로 들어와. 상체만을 문 밖으로 내밀며 손짓하는 소녀의 재촉에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서는 샌즈와 파피루스.


 "음? "


그러던 중, 불현듯 파피루스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현관문을 닫으며 돌아서는 소녀와 파피루스의 시선이 마주쳤다. 무슨 일이냐는 듯 기울어지는 소녀의 고개. 마찬가지로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는 듯 앞서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는 샌즈. 짧은 순간, 기묘한 침묵이 세 사람 사이를 맴돌았다.


 "프리스크."


 "응?"


평소와 같은 목소리.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진지하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파피루스의 시선에 의아함을 느끼며, 소녀의 입으로부터 얼빠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뭔가 걱정이 있다면 이 몸에 상담하라고. 무슨 일이던 이 위대한 파피루스 님께서 해결해 줄 테니까!"


 "... 푸훗. 그래."


 "녜헤헤! 드디어 진심으로 웃었군!"


좋아. 가자! 파티다! 스파게티다! 뼈 치고는 지나치게 상쾌한 미소를 흘리며 우두두 뛰어가는 파피루스의 뒷모습을 헛웃음 지으며 바라보는 소녀. 그런 소녀를 향해, 마찬가지로 피식 웃음을 터트린 샌즈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역시, 내 동생 정말 끝내주지 않아?"


 "하하, 정말. 정말로..."


내가 했던 말, 절대로 잊지 마. 우리는 네가 원한다면 무슨 일이라도 도와줄 거야. 절대 네 손길을 뿌리치지 않아. 그러니 의지해. 의지를 불태우며 노력하는 네 모습이 끝내주게 멋지다는 건 나도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타인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는 건 아니니까.


이봐 샌즈, 혹시 그것도 개그야?


아니. 진지하게 한 말인데.




11.

 "오우~ 자기들! 늦었는걸!"

 "오.... 둘 다... 안녕..."

여어. 넵스타블룩에 메타톤 까지. 보기 힘든 얼굴들이 많은걸. 녜-헤-헤- 다들 이 몸을 보기 위해 모인 거야? 방송 스케줄 조정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다구~

 "아후후후- 일단 안는 게 어떨까 다들? 리퀘스트받은 거미를 뺀 스파게티와 홍차. 따듯할 때 먹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하는데?"


기껏 해놓은 음식들이 식으면 아깝잖아~? 아후후후.


여섯 개의 팔이 길게 이어진 테이블 위로 솜씨 좋게 음식들을 놓아갔다. 스파게티 한 접시, 차 한 잔. 후식으로 준비된듯한 도넛이 담긴 접시 앞에는, '개당 15G'라는 조그마한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는듯했지만.


 "그럼, 안타깝게도 파티에 참가하지 못한 토리엘 님을 대신해, 복슬 대왕님의 축하 말씀으로..."


 "느아아아! 이 몸을 빼놓고 파티를 시작하려 하다니! 그 스파게티를 만든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거냐아아-!"


와장창. 등장음 치고는 지나치게 요란한 소리가 한차례 파티장을 휩쓸었다. 들려온 소리와는 다르게, 의외로 깔끔한 상태의 언다인이 앞치마를 휘날리며 자신의 자리에 착석한다.


 "음? 뭐야. 알피도 보이지 않는데?"


 "어... 토리엘 님과 마찬가지로 바쁜 사정에 의해서."


 "간만에 다같이 모이나 했더니."


푸후- 하는 웃음인지 한숨일지 모를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엄... 그럼, 슬슬 다시 시작해도 되겠나?"


 "아, 예. 계속하시죠 복슬이 대왕님."


 "하아... 그 별명으로 불리던 옛날이 진심으로 그리워지는군. 그때는 나름 위엄 있는 왕이었는데 말이야."


푸념에 가까운 아스고르의 말들이 이어졌다. 대부분이 최근 들어 자신을 향한 토리엘의 태도가 까칠해졌다는 내용을 중년 아저씨의 감성을 섞어 부풀려놓은 내용이었기에 딱히 그의 말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는 듯 보였다.


저마다 각자의 이야기를 하나둘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자기들, 새로 나온 우리 음반 들어봤어? 오우. 끝내주던걸. 특히 도입부. 오~우 예~스 하는 그거. 아아, 그거! 누구 목소리야? 오... 그건... 자기들, 무슨 당연한 걸 묻는 거야? 아후후후- 스파게티 더 드릴까요?


묻힌 것이 슬프다는듯 덤-디덤 쓸쓸한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아스고르. 척척 손을 놀리며 빈 그릇을 채워주며 연신 아후후 웃음을 터트리는 머펫. 냅스타블룩을 끌어안으며 연신 음반을 홍보하는 메타톤과, 그런 메타톤에게 끌어안긴 채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는 냅스타블룩. 화제마다 끼어들어 웃음을 터트리는 파피루스까지.


소녀는 웃었다. 조용히. 진심을 담아서.




12.


-그 웃음소리들을 지키고 싶었기에


-소녀의 의지가 가득 찼다.




13.


 "어이, 꼬맹이. 파티의 주인공이 이렇게 빠져나와버리면 어쩌나."


 "샌즈..."


부드럽게 열리는 나무 문. 집 앞의 마당에 멍하니 홀로 서있던 소녀를 향해 걸어오는 키 작은 뼈다귀 괴물을, 유독 흐린 달빛이 어스름하게 비췄다.


 "샌즈."


 "흠?"


 "하나만 약속해줘."


 "오늘따라 이상할 정도로 진지하군."


 "그럴만한 상황이니까."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을 거지?"


 "내가 해결해야 할...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이래서 어린애들의 고집이란. 미안해.


 "약속은 정말이지 끔찍할 정도로 싫지만- 뭐, 꼬맹이의 부탁이니 일단 들어볼까."


구름이 흐릿하던 달빛을 서서히 가려갔다. 짙은 그림자가 두 사람의 위를 서서히 덮었다.




14.


만약, 정말 만약에 일이 잘못된다면... 내가 실패해버린다면.


샌즈, 네가 모두를 지켜줘.


모두를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 괴물들의 '집'까지 데려가 줘.




15.


 "지금까지의 상호 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도록 최선을 다해왔습니다만, 이렇듯 썩 유쾌하지 못한 화제로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토리엘 여왕폐하."


 "저는 이미 괴물들의 여왕도, 하물며 당신들의 여왕도 아닙니다. 당신께 그런 호칭으로 불려야 할 이유는 없다고 누누이 말했을 텐데요."


 "이런, 실수를. '앞으로는' 주의하도록 하지요."


비열한 웃음을 짓는 남자를 노려보며 아득- 이를 깨무는 토리엘. 원형 테이블에 마주 보고 있는 토리엘과 남자. 그 사이의 자리에 앉아있던 소녀의 시선이 회의장 내부를 둘러보았다.


검은색 슈트 차림의 남자들이 수 십 명. 허리춤에 매여있는 저것은 권총일까. 호신용 공포탄? 그럴 리가. 찌질한 놈. 꼴에 사람이라고 혼자서 나오긴 무서웠던 모양이지. 갖가지 욕지거리가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당장에라도 저 능글거리는 면상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으나, 참아낸다. 무엇이건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니까.


 "뭐, 이곳에 저와 당신이 이렇게 마주 보고 앉아있는 이유는... 대사께서 충분히 잘 전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복잡하게 갈 필요는 없겠지요. 전달했던 대로입니다. 끝없이 생기는 트러블들을 해결하는 것도 이제는 한계. 괴물들을 위해 투자되는 자금의 양이 지나치게 커졌고, 그런 투자에 비해 명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인간들의 땅'에 괴물들이 발을 딛고 서있는 것들이, 모두 저희들의 피나는 노력에 의한 한시적인 상황이라는 것. 당신은 알고 계시겠지요?"


마법에 관한 지식과 그에 대한 실험체로서 괴물들을 제공... 아니, '팔면서' 그 대가로 땅을 제공받고. 거주지를 제공받고. 인력을 제공받아 괴물들은 지금 이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들이 괴물들에 비해 부족했던 건 그 정도뿐. 가지고 있는 패가 지나치게 적었다. 한 명. 한 명. 토리엘과 아스고르로부터 시작하여 대부분의 괴물들이 샘플이 되어 정보를 착취당했다. 프리스크로선 그들이 연구라는 명목하에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런 것들 또한 이제는 끝.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있지만, 결국은 그것이겠지. 챙길게 다 떨어졌으니 버린다. 그런 속셈이겠지.


 "알피스 박사의 프로젝트도 이제 거의 끝자락이라는 걸 당신들 또한 알고 있겠지요. 앞으로 조금. 앞으로 조금이에요. 그러니-..."


 "그 프로젝트를 끝맺음 짓는 것 또한, 저희 '인간들'의 힘이 필요한 일이지요."


토리엘의 말을 중간에 잘라내는 남자. 싸늘한 미소가 무언으로 토리엘에게 질문했다. '그렇다면, 너희는 더 이상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지?'


 "느리지만 괴물들은 천천히 인간들의 문화에 녹아들고 있어요."


끼어들듯 소녀가 입을 열었다. 차갑게 식은 남자의 시선이 소녀를 향했으나, 소녀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메타톤 벤드는 이미 인간 가수들 못지않은 팬층을 가지고 있고, 머펫의 제과점 또한 독특한 맛으로 빠르게 지점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괴물들의 마법을 응용한 기술들이 조금씩 실용화가 되어가고 있고, 괴물들 또한 그러한 기술 발전에 우호적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되진 않는군요. 할 말을 마친 소녀의 입이 굳게 닫혔다. 강한척하였으나, 주워진 패는 이게 전부. 정말로 '몰렸다'라고밖에 할 말이 없는 상황. 강한 척 나가고 있지만, 여기까지가 한계. 슬쩍 시선을 옆으로 흘린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토리엘의 모습이 보였다. 괜찮다는 듯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소녀는 이어진 남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뭐, 확실히 '모두가 함께 간다'라는 선택을 하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겠지. 결과가 조금 늦어지고, 처리해야 할 일이 조금 늘어나고, 얻어질 이익이 조금 나눠질 뿐이야. 하지만, 프리스크 대사."


남자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남자의 눈동자가 얇게 호선을 그렸다. 비웃듯이. 좋지 않은 예감이 소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굳이 그런 '자비'를 베풀 이유가 어디에 있지?"


그리고 그런 예감은, 빗나가는 일 없이 소녀의 마음을 갉아먹어왔다.




16.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17.


 "당신이...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친구들의 미소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아가?!'라며 놀란 목소리로 소녀를 붙잡으려는 토리엘의 팔을 뿌리치고 달려들어 남자의 멱살을 부여잡았다. 휘둘러지는 소녀의 손.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여진다.


 "내가 모를 것 같았어? 지금까지 몰라서 입다물고 있었던 거라 생각하는 거야?! 이유?! 자비를 베풀 이유?!! 웃기지 마! 너희는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어!"


남자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얄미울 만큼. 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주변에 서있던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소녀를 때어내려는 것을 남자가 손짓으로 저지한다.


 "호오, 내가 단 한 번도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인질이라도 잡는 듯 연구소로 끌고 가 내준 땅이라곤 변두리에 제대로 된 시설도 없는 불모지! 지원해준 인력이라곤 형식적으로 파견된 수 명이 고작! 마을을 만들고 틀을 잡는 건 대부분이 괴물들 스스로가 한 일들이지! 온갖 이유로 지원금을 뜯어간 건 이제 우습지도 않아! 그래놓고는 '우리는 충분한 지원을 해줬다. 이후는 너희가 알아서 해라'따위의 말이나 날리고 말이야!"


울분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당해왔던 일들이 하나둘 머릿속을 채워갔다. 머리가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혈관이 끓어오르는듯한 기분. 흥분하여 뜨거워진 머리가 정상적인 사고를 방해했다. 지금 내뱉는 말이 무슨 말인지조차 제대로 생각하기 힘들다. 그저, 감정에 맡기며 열기가 된 말들을 토해낸다.


 "그래놓고는 뭐라고? 이제는 필요 없어졌으니 버리겠다고?! 자비를 베풀 이유가 없어?!! 웃기지 마! 인정 못해. 베푼 적도 없는 녀석들의 텃세 따위에 밀려 친구들의 웃음을 잃어야 한다니, 인정할 수 없다고!!"


멱살을 붙잡힌체 일으켜 세워지는 남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남자의 의자가 넘어졌다. 남자의 얼굴에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미소가 남아있었고, 소녀는 할 수 있는 말을 모두 끝마쳤다.


 "좋아. 프리스크 대사. 당신의 의견 잘 알겠어. 당신은... 처음부터 인간이 아니었군. 인간의 편에 설 생각이 없었어. 처음부터 괴물이었던 거야."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


 "잠깐..."


 "아뇨, 토리엘. 더 이상 할 말은 없을듯하군요. 대화는 끝났고, 이제 더 이상 인간과 괴물 사이를 이어줄 대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있는 건 두 괴물과 사람들뿐. 그런 겁니다. 그쪽에선 더 이상 협상할 마음이 없는 것 같고, 이쪽 또한 더 이상 대화를 나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고. 그것으로 끝내도록 하죠."


최악의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 뒤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달은 소녀가 멍한 표정으로 남자의 옷깃을 놓쳤다.


 "그게... 괴물들의 '의지'라는 거겠지요?"


 "대표! 잠시만, 잠시만 시간을!"


 "지금까지 수고하셨습니다 토리엘. 이후로의 일 처리는... 서로 간의 의지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하도록 하죠. 뺏거나, 빼앗기거나. 하하. 원래 이게 올바른 형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처음부터. 괴물들이 지상에 올라와, 처음으로 의견을 나누었던 그 순간부터 저 인간은 이렇게 일을 끝마칠 생각이었던 거야.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은 그것에 보기 좋게 걸려들었고, 덕분에 성대하게 일을 망쳐버렸고. 최악이잖아.


 "전쟁...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거창한가요? 뭐,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죽이고 죽는 게 전쟁 말고 또 뭐겠습니까 만은. 여하튼 이후로 더 이상 서로 간의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겠지요. 투쟁의 시작인 겁니다. '괴물에 의해 위협받은 인간'이 '괴물에게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한' 투쟁. 썩 괜찮지 않습니까?"


지금 상황에서 '괴물'에 의해 먼저 공격받은 것도 '인간'이고. 킥킥.


 "당신이란 사람은..!"


 "괴물의 편에 서서, 괴물이 되기로 결정한 건 당신이잖나? 대사. 너무 날 원망하진 말라고."


그러니 사람은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된다는 거야. 한순간에 일을 그르치게 되버리거든. 경호원들이 하나둘 허리춤에 매고 있던 총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예정이었다는 듯.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고. 옷깃을 바로잡으며 뒤돌아서는 남자. 멀어져 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소녀의 시야를 토리엘이 가로막는다. 소녀를 지키듯, 주변에 떠오르는 불덩이들. 하지만, 숫자가 지나치게 부족하다. 압도적일 정도로. 저 방아쇠들이 당겨지는 것. 두 생명을 지워버리는 대에는 그 정도로 충분하리라. 주변에 떠올라있는 불꽃들은 방패조차 되지 못하겠지.


 "너희들이 이 성스러운 투쟁의 시발점이 되는 거다. 영광스럽지 않나? 더러운 괴물 새끼들."


처리해. 짤막하게 이어진 남자의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철컥- 하는 쇳소리가 울려 퍼졌고,


 "멈- 춰어어어어-!!!"


동시에 크다는 표현이 미안할 정도로 거대한 초대형  뼈다귀가 회의장 천장을 박살내며 떨어져내렸다.





18.


휘날리는 붉은 머플러. 낙하하는 뼈다귀 위로 잔상을 남기는 주홍빛 안광.


-영웅이 나타났다.






19.


 "녜- 헤- 헤-!"


 "파. 파피루스?!"


 "프리스크! 나 파피루스 님께서 친히 구해주러 달려왔다고!"


박살난 천장의 돌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거칠게 펄럭이는 머플러가 망토라도 되는 듯 시야 위를 어지럽게 춤춘다.


 "파피루스, 당신이 어떻게?!"


 "녜헤?! 그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 몸이야말로 지상에 있는 유일한 로열가드니까!


토리엘의 질문에 씨익 미소 지으며 답하는 파피루스.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경호원들이, 뒤늦게 자세를 바로잡으며 총구를 들이민다. 운 나쁘게도 떨어진 파편에 맞고 전원 기절한다던가 하는 해프닝은 일어나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바.. 바보 같은! 이곳에 어떻게..?!"


 "녜헤헤! 바깥의 녀석들이라면 지금쯤 언다인에게 '죽지 않을 정도로' 얻어터져 있겠지! 자아, 도망칠 구멍은 없다고 인간!"


순순히 이 파피루스 님의 친구에게 사과하고 화해하는 게 어떠냐! 남자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당혹감과 짜증스러움. 그리고 분노. 머리 위며 어깨를 하얗게 덮은 가루들을 털어낸다. 주륵-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핏줄기와 함께 분노로 일그러진 눈동자에 세 사람의 모습이 담겼다.


 "후... 좋아. 좋아요, 토리엘. 대사! 당신들의 뜻은 잘 알겠어! 곱게 묻히긴 어지간히도 싫었나 보지?!"


비틀거리며 자세를 바로잡은 남자가, 근처에 서있던 경호원의 권총을 빼앗듯 잡아든다. 철컥- 슬라이드를 잡아당기고는, 총구를 파피루스를 향해 돌린다.


 "너부터 뒤지고 싶은 모양이지?! 앙! 빌어먹을, 뒤지려면 곱게 뒤질 것이지! 더러운 괴물 새끼들이!"


광기에 찬 남자의 목소리가 성대를 타고 터져 나왔다.


 "녜헤?"


그에 당황한 파피루스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고,


 "위험해 파피!"


동시에 소녀의 절규와 뒤섞인 총성이 휑하게 뚫린 하늘 위로 퍼져나갔다.


날아오르는 파피루스의 몸을, 소녀는 그저 허망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20.


-안녕, 자기들? 잘 지냈어?


-우흠. 나? 스타는 항상 반짝반짝 빛나야 하는 법이라구? 자기들도 참. 이 내가 컨디션 조절 같은 걸 못 해서 축 늘어질 일 따위, 우주가 멸망해도 일어나지 않을걸?


-하아... 하지만, 고민이 한가지 있긴 해.


-응? 노,노,노. 나에 관한 건 아니고. 내 친구에 관한 거.


-으훔... 좋아. 그럼, 곡 시작하기 전에 잠시 토크타임을 가져볼까?


-하긴. 쇼에는 즐거운 토크타임이 빠져선 안되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블루키?




21.


 "좋아. 화창한 날씨에 어울리는 뜨거운 스포츠 잘 감상했어."


 "녜... 헤헤? 형!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빨리 내려줘!"


 "쉿. 동생아, 잠시만 조용히 해주겠니?"


골이 다 울리겠어. 미세한 마찰음과 함께 열리는 회의장의 문.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뚫고 나타난 것은, 파란 안광을 흩뿌리고 있는 키 작은 뼈 괴물. 왼손에 휘감겨있는 파란 불꽃이 거세게 일렁거렸다. 허공에 멈춰 서있는 파피루스의 코앞까지 날아온 총알이 까만 연기를 뿜어냈다.


 "너.. 넌, 또 무슨..."


 "쉿. 아직 너의 차례가 아니야, 인간. 난 잠시 내 '친구'들과 짧은 반성회를 가져야 하거든."


그러니 조금 찌그러져 있는 게 좋겠어.


 "커헉?!"


-쿵! 남자의 몸이 급작스럽게 날아올랐다. 있을 수 없는 속도로 벽에 날아가 처박히는 남자의 몸. 침과 피가 뒤섞인 검붉은 액체가 한 움큼 남자의 입으로부터 토해진다.


 "좋아. 꼬맹이. 내가 말했지? 힘들다면 의지하라고. 의지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으니, 그럴 때만이라도 '우리에게' 의지하라고. 하지만 넌 그러지 않았어. 여왕님과 너. 두 사람이 모든 걸 해결하려고 했지. 그건 분명 고귀한 자기희생이라 말할만한 행동이었지만, 넌 그래선 안됐어. 모두와 상담하고, 모두가 힘을 합쳐 이 일을 해결하려 해야 했어. 이것 봐. 네 객기가 이렇게 상황을 위험하게 만들었잖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꼬맹이는 꼬맹이답게 어른에게 의지하도록 해. 어린애의 어리광을 들어주는 게 어른의 의무니까 말이야."


이건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토리엘. 찡긋 윙크를 날리며 말하는 샌즈를 향해, 소녀와 토리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의 다른 대답을 내놓지 못 했다. 회장이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파란 안광만이 번뜩이며 회장 안의 인물들을 주시했다.


 "하아... 뭐, 훈계는 다음에 이어서 하도록 하고. 거기 '인간들'."


움찔. 경호원들의 몸이 희미하게 떨리는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쿨럭거리며 기침을 토해내고 있는 남자의 입으로부터 연신 알아듣지 못할 욕지거리들이 흘러나왔으나, 샌즈는 그것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다는 듯 시원하게 무시하며 입을 움직였다.


 "너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를 주겠어. 하나는 저기 주저앉아있는 멍청이처럼 배드 타임(Bad time)을 보낼지."


남자의 몸이 다시금 허공에 떠올랐다. 으어어?! 하는 얼빠진 비명이 짧게 울려 퍼졌고,


-쿵!


이어서 머리부터 파편 더미 속에 처박히며 다시금 침묵했다.


 "아니면 밤에 떠오를 아름다운 달빛을 기대하며 집에 돌아가 달콤한 베드 타임(bed time)을 가질지."


자. 선택해. 어느 쪽으로 하겠어?




22.


-아하하! 뜨거운 반응 고마워 자기들!


-괴물들을 위해 후원하고 싶다면, 여기. 이 사이트로 기부금을 보내주면 돼!


-좋아! 이 열기를 이어서, 오늘도 신나게 노래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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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세이프!


나름 캐릭터성을 살리면서 쓰기위해 고심하면서 썻는데, 흙손이라 그런가 이래저래 아쉬운부분이 많네.


솔직히 4일이면 엄청 널럴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끝에오니 시간 부족해서 후반부에는 정말 내용이 엉망이다... 아쉬워. 원래 한 30까지 쭉쭉 쓸 생각이었는데.


ㄱ....ㅣ....ㅅ...ㅡ..ㅇ...전결! 같은 느낌이잖아. 내가봐도 뒷부분은 좀 아닌거같아. 점보닭다리 먹고싶었는데..!


... 여하튼, 푸념은 여기까지 하고. 오늘 묘하게 분위기가 이상하던데 오늘같은날 올려서 묻히는게 아닌가 걱정되긴 하지만, 쨋든 여기까지 읽어준 박이들 전부 고마워.


주절주절 더 적는것도 모냥빠지니 이만 글 마치도록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