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생전(敎生傳)-上편

 

임고 재수생 허생은 삼막골 너머 관악에 살았다. 그가 여전히 다녔던 학당이 위치한 삼막골 캠퍼스에서 곧장 삼성산을 넘으면 입결 차원이 다른 오래된 국립종합대학교가 있고, 산너머 과천을 넘으면 환승역 상권이 최강인 서초교대가 있으나, 여전히 삼막골의 뭇 교대생들은 자신의 허세심과 술에 대한 욕구를 채우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허생은 전혀 개의치 않고 글읽기만 좋아하고, 그의 여자 친구가 교대 부전공 메이저과 이름을 팔아서 얻은 과외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의 여자친구가 성탄절 전야임에도 번듯한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가지 못하여 몹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서울 경기 임고를 보지 않으니, 글은 읽어 무엇 합니까?"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인천을 칠 생각은 없나요?"

 

"내 집이 본래 서울이고 1호선이나 광역버스로 겨우 닿는 인천 생활에 대해 익숙치 않은 걸 어떻게 하겠소?"

 

"충남이나 전남을 치실 생각은 없나요?“

 

정약용조차 자녀들에게 말하길 고을 사대문을 넘어 살지 말라하지 아니하였소

자뭇 자교대 출신은 자기 지역에 있어야 빛을 발하오.”

 

"그럼 기간제는 못 하시나요?"

 

"기간제는 인맥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여자친구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임용도 못 본다, 지방도 싫다, 기간제도 싫다는데 언플로 임고 학원에 데뷔하거나, 장사를 할 생각도 없단 말이오?‘

 

허생은 읽던 서브노트를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글읽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하고 획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허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운종가(雲從街)로 나가서 시중의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이 나라 사학 재단 중에서 제일 부자요?"

 

모 기업 지원을 받는 자사고 재단을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생이 곧 이사장 변씨의 집을 찾아갔다. 허생은 길게 읍()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10억을 뀌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사장 변씨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10억을 내주었다.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변씨 집의 자제와 손들이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이마트에서 산 10만원대 정장 위로 입은 너덜너덜한 삼막골 캠퍼스 어느 학과를 상징하는 과잠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ABC마트에서 산 구두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쭈구러진 스마트폰 케이스에 허름한 노트북 가방을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허생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10억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변씨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이왕 10억을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을 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