戊寅,耶律留哥率蒙古兵、契丹兵及東夏國元帥胡土兵十萬圍喊舍。
高麗助兵四十萬,敗之。
喊舍自縊死。
출처: 『元史』 耶律留哥傳
무인년에 야율유가가 몽골군·거란군 및 동하국 원수 호토의 병사 10만을 이끌고 함사를 포위하였다.
고려가 병사 40만을 원조하여 이를 격파하였다.
함사는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2. 『고려사』 병지 — 광군 30만원문
定宗二年,
以契丹將侵,
選軍三十萬,
號光軍,
置光軍司。
출처: 『高麗史』 兵志
정종 2년에
거란이 장차 침입하려 하므로
군사 30만을 선발하여
광군이라 이름하고
광군사를 설치하였다.
契丹蕭遜寧來侵,兵號十萬。
時邯贊爲西北面行營都統使,王仍命爲上元帥。
…
帥兵二十萬八千三百,屯寧州。
출처: 『高麗史』 姜邯贊列傳
거란 소손녕이 침입하였는데 병력이 10만이라 하였다.
이때 강감찬이 서북면행영도통사가 되었고 왕이 상원수로 삼았다.
…
군사 20만 8천 3백 명을 거느리고 영주에 주둔하였다.
王以平章事姜邯贊爲上元帥。
帥兵二十萬八千三百屯寧州。
출처: 『高麗史節要』
해석
왕이 평장사 강감찬을 상원수로 삼았다.
20만 8천 3백의 병력을 거느리고 영주에 주둔하였다.
이 정도 병력이면 당시 고려 인구는 최소로 잡아도 1000~1500만명
이상으로 보는게 제일 상식적임.
조선초기인구 조사
| 1404 | 태종 4 | 153,404호 | 322,786 |
| 1406 | 태종 6 | 약 20만호 | 약 69만 |
| 1426 | 세종 8 | — | 약 77만(남정 중심 가능성) |
| 1519 | 중종 14 | 754,146호 | 3,745,481 |
| 1531 | 중종 26 | — | 3,965,000 |
| 1543 | 중종 38 | — | 4,162,000 |
인구수를 보면 왜곡이 꽤 심해서 호구수로 역추산 하는게 나은데 1500년대 조선의 인구가 대략 420~450만으로 추정.
조사에서 안 잡히는 200~300만이 더 있다는 학자들 주장도 있는데 그건 국가가 아님....
전란상태나 마찬가지.
고려와 조선의 체급차이가 너무 난 나머지 학자들이 스스로 왜곡을 저지르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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